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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7 18:02
세종대왕의 상황은 톨킨보다 언어를 만드는 데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직접 비교가 힘들죠. 조선시대 초기의 왕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모자라 세종은 대왕 답게 즉 농업, 문학, 언어학, 음악, 법학, 과학, 공학, 철학, 경제학, 재무학, 회계학, 천문학, 물리학 등 모든 학문과 체계를 개선하려고 했고 심지어 물론 군사적인 측면과 영토 확장에도 신경 쓴 임금인데 언어 창제에 충분한 자원을 쓰기는 힘들었죠.
게다가 톨긴은 만드는데 의의를 두고 임했지만 세종대왕은 기득권층의 거부에 맞서 인위적으로 언어를 교체할수 있도록 쉽고 직관적인 언어를 원했기에 훨씬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했을 겁니다. 더구나 세종은 왕이 되기도 전에 시각장애와 당뇨가 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종대왕이 직접 한글처럼 위대한 문자를 뚝딱 만들었다는 설은 오히려 영화보다도 더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부가적으로 영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영화는 당연히 흥행을 염두에 두고 세종 단독 주연보다 특정인물을 과장되게 부각해서 갈등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연출한 것 같은데 설사 영화에서 나오는 정도로 신미스님이 관여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언어는 공동의 작업을 통해서 제작되어야 하고 세종대왕이 그 작업에 전부 참여 할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음을 전제로 보면 한글 창제에 있어서의 세종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라고 봅니다. 작업과정에서 결정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세종대왕이 직접 낸게 아니라 작업반의 일원이 냈다고 하더라도 세종대왕의 공적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떤 공동작업이든 그 공적은 결과적으로 대개 그 작업반을 구성하고 운영한 사람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만약 영화에 나오듯이 만약 신미스님이 하자는대로 다 했으면 한글의 장점으로 꼽는 직관적인 체계를 유지할수도 없었고 자모도 훨씬 많아서 배우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불교색이 가미되어 기득권층인 유교세력이 집단적으로 거부해서 수용되기도 전에 버려졌을 겁니다 이를 관리감독하면서 지금의 한글을 만들어 낸건 세종입니다)
19/07/27 18:24
새종대왕이 한글 창제한 시기는 상당수의 행정운영을 건강문제를 이유로 세자였던 문종에게 물려준 시기입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내기 수월했구요.
한글창제하는데 왕가의 인원 여럿이 도움을 준 기미는 있습니다. 문종 포함해서요. 그리고 신미는 어떻게 해서든 말이 안되는게 세종 말년에 불교에 심취해서 신미를 궁에 부르는데 이때는 이미 한글창제된 지 몇년 뒤입니다. 시기적으로 맞지 않아요. 왕이 몰래 변복하고 잠행나가는 경우에나 만남을 숨길 수 있지 외부인사를 궁에 부를 경우에는 실록에 무조건 남습니다. 근데 신미의 첫 등장은 창제 몇년 후입니다.
19/07/27 20:35
건강문제가 악화됐다면 어차피 충분히 노력을 투자하기 힘든건 마찬가지고 일부 업무를 대신했더라도 여전히 왕으로서 자리를 지키거나 할일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영화에서도 그렇고 문종이 한글창제에 상당히 참여를 많이 한것으로 나오는데 문종이 빠진다면 인적자원이 부족해지는건 마찬가지구요.
어차피 직접(또는 왕가 몇명의 노력만으로) 만들어 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언어 방면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작업반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그런 가능성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표현한걸 역사서에 나오지 않았다, 역사기록과 맞지 않다라고 평가하는 건 자유지만 세종이 직접 뚝딱 만들었다고 표현하지 않으면 세종을 폄하한거라고 보는건 바람직 하지 않은듯 합니다.
19/07/27 21:54
네 그래서 몇년이 걸린 겁니다. 세종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님이 말하는건 전혀 근거없는 상상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료에도 남아있지 않아요. 언어방면 전문가가 있으려면 배운 사람입니다. 학문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죠. 근데 일반 신하라면 왕과 몰래 독대하는거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 몇년간 작업하는걸 숨길수가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작업분를 교류해야 하는데요. 애초에 님이 하는 상상이나 불교계 이야기가 왜 나오냐면 일반 유학자 신하들은 몰래 저렇게 왕과 접촉해서 일을 진행하는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보는 눈이 많고 서로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근데 그렇다고 불교인사가 궁을 몰래 드나든다? 그건 더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정식 입궁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님은 아무리 천재라도 글자 창제는 불가능하다는 전제 하나만 가지고 언어전문가 집단이 있었을거라니 하는 가정법만 쓰시는 겁니다. 근데 사실 논리적인 체계의 문자는 이후에도 한명이 만들어낸 경우가 많죠.
19/07/27 22:01
신미대사가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공을 세운 부분은 애초에 세종과의 첫 만남 자체가 창제 이후였기도 했지만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언해하는데 공을 세운 겁니다. 당시 세종은 신하들에게 이런저런 언해나 훈민정음 저작물을 만들게 시켰는데 신미에게도 그런걸 시킨 겁니다.
한글창제 과정에 있어 왕실가족을 제외한 신하나 외부인들에게 시킨건 전부 창제이후 저작물 만들때입니다. 명나라에 음운론 관련하여 자료구하러 신하 보낼때도 창제 이후였습니다.
19/07/27 21:58
참고로 역사서에 없다고 없었던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 역사서 뿐 아니라 당시 그리고 이후 여러 인물들의 개인적인 저작에서도 세종 창제에 관한 이야기만 있지 신미의 관련설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신미창제설이 처음 나온건 원각선종석보라는 책인데 이건 현대인에 의해 만들어진 위작으로 밝혀졌습니다.
하다못해 야사에도 신미설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박연설은 있었죠. 애초에 가짜인 겁니다.
19/07/28 02:09
한글자체가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혼자 만들었다고 하는데 대해 의문이 생기는 듯합니다. 실록을 근거로 심지어 협찬설까지도 부정하는 것 같은데 세종대왕이 더 높이 평가받으면 저도 좋겠지만 오히려 타문자 모방설이 퍼지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도 있고, 창제과정을 연구할때도 노동집약적인 가설은 배제하게 되는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상황과 과제의 난이도를 감안할때 지도자로서 한글을 창제하고 수용되도록 관리하고 통치하는 능력이 언어학자로서의 능력보다 훨씬 중요하고 오히려 직접 창제하지 않았다고 할때 그 통치능력이 더 강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남긴 글입니다.(신미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도 없지만 그런 언어전문가가 있다고 해도 수천명 갖다놔도 세종대왕이 없었으면 현재와 같이 한글은 사용할 수 없을거라고 봅니다) rsnest 님글도 잘 참고하겠습니다.
19/07/28 02:28
딱히 통치능력을 강조할 필요도 없고 언어학자로서의 능력도 강조할 필요없이 그냥 그대로 보면 됩니다.
협찬설은 딴거 없어요. 왕실 식구들 동원한 모습들이 보이니까요. 당장 행정분담한 문종도 도와준걸로 보이는데 하는일 없이 놀고먹는 왕실식구들이 뭘 했겠습니까?
19/07/27 23:57
보통 사람이 못하는 걸 할 수 있으니까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겁니다.
언어랑 문자도 구분 못하시는 문외한으로 보이시는데, 정설인 세종창제설을 전면으로 부정하시는 근거로 드는 것이 잉명님의 상식에 기반한 정황추론 뿐이면 상당히 약하네요. 한글을 혼자 뚝딱 만들었다고 하지 않은 것은 폄하(폄하가 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는 저도 동의합니다만)는 둘째치고 왜곡이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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