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4/12/30 22:09:55
Name 반전
Subject [후기] 2004.12.30, MSL 승자 4강, 서지훈 vs 박태민 / 이윤열 vs 김정민.
* 서지훈 vs 박태민 1경기, in Arizona.

보통 서지훈 선수에 대한 이미지는 '선 수비, 후 물량'인 경우가 많다. 그의 별명이 퍼펙트테란이고, 그가 유명해진 맵이 뒷마당 미네랄을 먹고 안전하게 후반을 도모할 수 있는 맵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사실상 그의 승리의 문법은, 오늘 김동준 해설이 잠시 언급한 대로, '네가 뭘하든 난 신경 안 써'에 있다. 일반적인 선수라면 이승원 해설이 예감했던 대로, 요즘 최고의 상한가를 달리는 박태민을 상대로 1경기는 약간 극단적인 전략을 선택하려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지훈은 숙달된 문법대로 플레이했다. 원배럭 - 벌처 - 레이스 - 3바락 - 드랍쉽 - 멀티로 이어지는 공식 그 자체의 플레이.

그리고 박태민 선수는 정말 완벽한 방어를 보여줬다. 벌처 플레이에 성큰, 레이스에 스포어, 3바락에 러커. 오늘 경기를 보면서 박태민 선수에게 붙일 적절한 별명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퍼펙트 저그가 어울리는 것 같다. 상대 체제를 예상하고 완벽한 플레이를 해내는 모습.

하지만 오늘 박태민 선수는 불과 몇 초 정도의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바로 6시 멀티의 스포어 콜로니 완성 직전에 레이스가 들이닥친 것. 그 때 잡힌 무탈 3기가 이어지는 날카로운 본진 드랍을 피해없이 막지 못하게 했으며, 뒤따라 들어오는 6시 마무리 드랍쉽 플레이에도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드랍쉽 플레이는 5시 해처리 파괴라는 성과까지 거두었다.

이후의 힘싸움에서 두 선수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을 보여줬으나, 기세는 박태민 선수가 조금 더 우위였다. 다크스웜을 힘입어 그 병력 열세를 가지고도 테란의 제 2멀티 코앞까지 다가갔으며, 타이밍 좋은 중앙싸움으로 상대의 2시 멀티 견제를 효율적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초반에 놓친 불과  몇 초의 시간은 후반의 기세로도 되돌릴 수 없는 치명타가 되어, 결국 박태민은 GG를 선언하고 말았다.



* 서지훈 vs 박태민 2경기, in Into the Darkness 3.

1경기 감상평을 쓰다가 2경기 초반을 놓쳐서 당황했다. -_- 내가 목격한 상황은 서지훈 선수가 벌처가 레어 안간 히드라에게 맞는 순간부터였다. 짐작하건대 서지훈 선수는 상대가 2해처리인지 3해처리인지를 확인하지 못한 것 같고,  이후 플레이는 본진 트윈에 이은 멀티 3해처리와 히드라 확보에 주력, 상대적으로 다소 늦은 테크를 예상한듯 보였다. 그리고 박태민 선수는 서지훈 선수의 예상보다는 조금 더 과감한 5시 멀티를 가져갔고, 서지훈 선수는 다소 이른 탱크 확보에 이은 앞마당 멀티를 가져간다..

김동준 해설의 의견과 달리, 빠른 체제변환을 하지 않은 것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골리앗, 탱크 체제였으며, 서지훈 선수의 성향상 멀티 방어를 위해 빠른 공격을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긴 했지만, 그래도 지상군의 화력에서 뒤지는 순간 한 타이밍 전진에 바로 쓸려버릴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첫 스탑러커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메카닉 운영에 있어 베슬이나 아카데미가 없는 진출도 없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지훈 선수는 당연하다는 듯이 터렛을 지었고, 다소 당황한 듯한 박태민 선수는 터렛을 무리하게 제거하려다 그 때문에 지상병력을 소진했으며 이 때 박태민은 분명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사실상 첫 무탈은 5시 확장이 공격받을 때 11시 멀티를 건설하며 소수 지상군 드랍과 함께 상대의 본진을 공략하는 게 옳았고, 그나마 방어하러 간 무탈도 중간 중간에 골리앗에게 잘라먹히고 말았다. 이후 서지훈 선수가 타이밍을 잡고 나올 때 맞엘리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까웠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서지훈 선수의 2:0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박태민 선수의 꼼꼼한 건물 타격도 좋았고, 서지훈 선수의 화력 집중도 또한 서지훈다운, 테란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익숙한 메카닉 부대 운영에 상대가 저그라는 것을, 그래서 가장 주의해야 할 사실은 서지훈 선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바로 저그와의 엘리전에서 키워드는 베슬이라는 사실을.

베슬이 없었던 서지훈 선수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그 허를 찔러 역전승을 일궈낸 박태민 선수의 전술적 움직임이 돋보였던 한 판이었다.



* 서지훈 vs 박태민 3경기, in Luna_당신은 골프왕.

어느 순간부터 성큰 셋이 초반 테란의 바이오닉 병력을 막는 최적화 수치가 되었다. 예전에 종종 성큰 셋만 짓다 뚫려서 바로 게임이 끝나버리는 경기들이 펼쳐졌던 걸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테란은 초반 마린을 뽑을 자원을 아껴 대신 빠른 멀티 혹은 테크트리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운영이 되었고, 가장 무난한 맵 힘 싸움에서 퍼펙트테란 서지훈이 빠른 멀티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저그는 그에 맞춘 무탈 이후 더블멀티를 선택했다.

서지훈 선수의 팬 입장에서라면, 서지훈이 조금 더 일찍 진출했다면, 서지훈이 조금 더 방어를 튼튼히 했다면,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서지훈이었기에 무난한 힘싸움 맵에서 가장 최적화된 수를 두었고, 그런 서지훈을 잘 아는 박태민이었기에 무탈로 견제를 가고 더블 멀티를 하면서  '서지훈이니까 나오지 않는다'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있게 플레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사실상, 첫번째 박태민의 드랍이 먹히는 순간 경기는 끝이 났다. 이후의 박태민은, 테란이 불리해질 때 쓰는 드랍쉽에 대해 완벽한 대응을 했고, 한방 병력 또한 자원으로 압도했다. 그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태산과도 같았으며, 적은 자원으로 어쩔 수 없는 한 판 승부를 해야 했던 서지훈 선수의 패배는 필연이었다.



* 이윤열 vs 김정민 1경기, in Into the Darkness3.


  이제 프로게이머들간의 경기에선 '최적화'로는 부족하다. 최적화는 반드시 그것을 예상하고 과감수를 두는 선수에게 패배할 수 밖에 없고, 박지호의 다크템플러에 대비한 최적화 대비를 했기 때문에 패배했던 박종수, 강민의 프로토스를 상대로 최적화된 원팩 더블 플레이를 했기 때문에 패배했던 차재욱, 그리고 오늘의 이 경기는 모두 그런 교훈을 남겼다.

초반에 BBS를 해서 모든 걸 걸었다면 게임은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박정석 선수의 Bifrost III의 대 테란 상대 뒷마당 투게이트를 생각하면 알 수 있듯이, 요즘 기습 전략의 트랜드는 모든 걸 거는 게 아니라 최적화된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것이다. 김정민 선수는 대세에 맞게 상대에 피해를 주고 다음 최적화수를 가져가는 전략을 사용했고, 그것은 상대가 이후 투팩 벌처로 일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대비한 투팩이었다.  

어쩌면 그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이윤열의 마인드는 상대의 최적화를 완전히 예측하고 (배럭 정찰도 가지 못했으니) 과감수를 가져간 것이었다. 과감수가 최적화를 이기는 경기를 몇 번 보았기에, 나는 사실 커맨드를 보는 순간 이윤열 선수의 승리를 예감했다.

그리고 김정민 선수보다 더 빨리 늘어나는 3팩과 더 빨리 확보된 드랍쉽. 가벼운 입구 돌파 액션에 이어 본진 원드랍쉽, 당황해서 탱크 5기를 끌고 온 김정민 선수를 비웃기라도 하듯 앞마당으로 떨어지는 투드랍쉽, 두 번의 드랍으로 얻어낸 자원차를 바탕으로 본진 건물을 마비시키는 재차 드랍에 이은 앞마당의 자원을 끊는 앞마당 드랍, 마지막으로 러쉬를 갔던 김정민 선수의 병력을 상대로 미련없이 커맨드를 띄우며 맞부딪힐 병력을 모아 막아내는 이윤열 선수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 이윤열 vs 김정민 2경기, in Luna_당신은 골프왕.

김정민 선수는 전 경기의 패배를 잊을 수 없었다. 머리를 애써 흔들며 전경기의 패배를 털어버리려는 듯 했지만, 털어버리려 노력하는 것까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넘어 능동적인 전략 선택은 할 수 없었던 것인지, 결국 초반에 원팩 원스타라는 가장 유연성 있는 빌드를 쓰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반면 이윤열 선수는 또한 과감한 원팩 더블을 가져간다.

원팩 원스타는 레이스로 상대의 진영을 흔들며 탱크가 와서 입구를 조일 수 있는 빌드다. 하지만 이윤열은 그야말로 '맵핵' 타이밍으로, 정확히 탱크 두 기가 올라오는 타이밍에 SCV 3기와 탱크 두 기로 입구 조이기를 막아내며,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김정민 선수의 레이스까지 깔끔하게 잡아낸다.

이후 중앙 장악을 할 것처럼 보이다, 다시 드랍쉽을 쓰려고 하는 듯한 이윤열 선수의 액션. 하지만 앞 경기와 다른 점은 빠른 5시 멀티였다. 번기승부에 정말 강하다는 이윤열 선수의 심리전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임요환 선수가 '안 하겠지'하는 걸 또해서 상대를 흔드는 편이라면, 이윤열 선수는 상대가 '하겠지'하고 대비하는 것을 한 번 더 이용하는 선수다.

결국 '하겠지'에 걸려든 김정민 선수는 드랍 출발이 늦었고, 또한 무난히 막히며 상대의 다수 드랍쉽을 확인하고 쉽사리 나가질 못한다. 이윤열 선수는 이어 11시에도 멀티를 가져가고, 다시 한 번 '맵핵' 타이밍으로 11시를 막아낸다.

이후 5시 멀티가 끊겼을 때 상대의 앞마당을 치는 모습. 이어 앞마당으로 다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김정민 선수의 뒤통수를 치듯 들어오는 9시 견제, 그리고 자원줄이 끊긴 김정민 선수가 선택할 마지막 한 방을 예측하고 본진 드랍까지.

이윤열의 오늘 모습은 김정민의 머리위에 올라앉다못해 하늘에서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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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hting [RED}Nada
04/12/30 22:19
수정 아이콘
와~ 대단합니다. ^O^~ 비교적 빠른 시간에 올라온 후기라 간단할 거라 생각했던 예상을 확~ "반전"시켜 버리시네요..
필력도 대단하시고, 경기를 보는 센스~도 대단하시네요.. 요소요소 정확하게 찍어주시고.. 후기를 보니 경기를 안봐도 비디오네요~ ^^
하이메
04/12/30 23:05
수정 아이콘
pgr에 오는 이유는 이런 글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경기분석후기가 별로 없는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아무튼 좋은글 감사합니다..^^
04/12/30 23:13
수정 아이콘
흠...제생각에는.. 2경기에서 무리하게 럴커 변태를 하지않고 3가스로 무탈개때를 해서 견제 했으면 박태민선수가 무난하게 이겼을꺼 같은데..
슈가지오
04/12/31 00:09
수정 아이콘
서지훈선수 엘리전하다가 왜 다시 수비를 하러 왔는지..11시와9시 멀티를 바로 공격갔으면 했는데..어쨌든 박태민선수 내일 경기도 꼭 승리하세요~
.........
04/12/31 00:44
수정 아이콘
정말 대단한 선수들..
이별없는사랑
04/12/31 01:03
수정 아이콘
머리위에 올라앉다못해 하늘에서 바라보는 느낌...공감합니다.
글쓰는 솜씨를 저와 비교하면 그럴 것 같다는...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홍차소녀
04/12/31 08:31
수정 아이콘
정말 공감가는 글입니다. 앞으로도 후기가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04/12/31 15:40
수정 아이콘
감사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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