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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0/05/31 03:47:23
Name Hell[fOu]
Subject (10)클랜 숙소 생활에 대한 추억, 그리고 여러분께 올리는 부탁.
게이머 육성 학원 박모씨가 연루되었다는 승부 조작 관련 기사로 하여금, '게이머 육성 학원' 이라고 불리우는 클랜 숙소들이, 그렇잖아도 안 좋은 이미지였는데... 더 악한 이미지가 되었더군요.
저는 2007년경 프로팀에 잠시 몸담았던 시절 전후로 클랜 숙소에서 꽤나 생활했었고, 최근까지 클랜 숙소 운영을 하고 있던 입장에서 기사를 보니 너무 슬프더군요. 최근에는 클랜 내 다른 운영진에게 숙소를 넘기고, 숙소 운영엔 일절 관여하지 않으면서 군대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입장인 20대 초반이지만요. (ㅠㅠ)

몇 자 적어 보려 합니다. 과거 회상도 할 겸, 종사자(?)의 입장에서 보는 견해도 피력해볼 겸이요.

전 숙소 생활을 17살때부터 시작했습니다. 부산에 본가가 있어서, 무작정 게이머의 꿈을 가지고 상경..은 아니고 남양주에 있던 조그마한 아파트에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당시 월 회비는 15만원이었지요. 12명이서 180만원의 한달 예산을 가지고, 아는 분의 집이라 보증금은 없이 들어갔지만 50만원 월세 내고, 일반 아파트라 전기세도 누진세 적용대상이라 관리비 역시 약 50만원 넘게 나왔지요. 하하.

2달에 한번 고지서가 왔는데, 그때마다 100만원의 목돈을 가지고 조마조마 하며 은행에 갔던 기억도 나구요. 전 막내였어서, 심부름으로요. ^^;

뭐.. 여차저차 하여 남은 80만원 가량으로 12인의 한달 생활을 꾸려 갔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참 추억이 많습니다.

아파트 앞에 있는 할인마트에서 3분 카레를 50% 세일한다는 광고를 전단지에서 보고, 우르르 몰려가서 사재기 해온 뒤 한달 내내 다른 반찬 없이 그것과만 밥을 먹기도 했고,(덕분에 몇년간 카레 냄새도 맡기 싫었답니다.)

시장에 가서 콩나물을 3천원어치 정도 사 온 다음에, 3~4등분해서 그저 물에 콩나물, 고춧가루를 풀고 끓인 순수 콩나물국 냄비를 12명이서 가운데에 놓고, 밥그릇 하나씩 들고 역시나 다른 반찬 없이 먹기도 했었구요.

아... 물론, 배가 너무 고프면 용돈으로 나가서 해결하곤 했습니다. -_-;

그 땐 아마추어 숙소라고 해봐야 두어개 정도였지요. 상업적인 이윤을 바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단순히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연습을 위해 모인 정말정말 순수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숙소는 하나 둘씩 늘어갔습니다. 그러다 정말 '학원' 식으로 상업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좋은 집에, 좋은 컴퓨터에, 더 좋은 음식들을 홍보하며 가격을 올리고, 대부분 어린 나이였던 게이머 지망생들은 부모님과의 협의 끝에, 돈을 더 내더라도 더 좋은 환경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저가로 투명하고도 조촐한 운영을 유지하던 숙소들은, 기존 멤버 중 게임을 그만두거나 프로팀으로 가는 경우로 인한 '최소한의 월세,관리비 등 유지비용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인원수'도 채우지 못하게 되고,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저희 클랜 숙소도 그런 이유들로 인해 한때 없어졌었지요. 그 뒤에 부끄럽게도 최고급 시설과, 식당과 연계되어 있는 곳에서, 상업적인 용도로 쓰여짐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간판을 걸고 약 1년간 운영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상업적인 용도로 쓰려고 했던 분 들이 생각했던 것 만큼 이 아마추어 시장이 크지 않았나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게이머 지망생들도 줄고,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가 아니라 물가 상승으로 인한 동반 가격 상승으로 인해 신규 유입이 줄어들며, 그런곳은 하나 둘 줄어갔지요.

현재는 대개 클랜 자체적으로, 클랜 내에서 숙소 운영을 하겠다는 사람이 오피스텔을 임대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격은 보통 월 30~40선에 의식주를 보장하구요. 사람이 20명 넘게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 이하라면 정말 남는 돈을 관리자가 쓰게 된다면 용돈 정도랄까요. 배틀넷이라는 오픈된 환경 속에, 보는 눈이 많으니 남들보다 밥 잘 먹여야 하고, 남들보다 좋은것 써야 한다는 인식들 때문인지는 몰라두요. 하하. 게다가 웬만하면 정기적인 회식들을 하고, 관리자가 웬만해선 최연장자이니 이것저것 돈도 나갑니다. 현재 저희 클랜 숙소 운영자도, 투잡(-_-;)을 뛰고 있답니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옛날에 정말 먹고 살기 위해 했던 '스파르타'식 연습방법도 안 됩니다. 못 견디고 편한 곳으로 가겠다고 나가버리면, 그것은 바로 숙소 예산의 절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정말 요새 클랜 숙소 운영하는 분들, 어떻게 보면 정말 힘들겁니다. 안타깝구요.

전례에 없던 승부조작이라는 안타깝고 분노할 사건에, 모 아마추어 숙소 운영자가 연루된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사람 하나로 인해. 클랜에 속한,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무명 프로게이머들을 형 동생관계 입장으로, 휴가때 불러다가 사비로 맛있는거 사주면서 격려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숙소나 클랜 아마추어들 피드백 좀 해주는 것에 정말 고마워하고, 게이머 자신의 영달, 클랜의 명예를 위해서,무엇보다 형,동생,친구인 그들의 성공을 바라며 방송경기 나오면 숙소원 전원이 다 모여서 시청하며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던, 그런 순수함들이 부정되는 것 같아 너무 슬픕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 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게임하던 아마추어들, 그리고 지금도 힘들어하면서도 힘들지 않은 척하며 숙소를 꾸려가는, 다른 아마추어 클랜 운영자분들, 포괄적인 의미로 간접적인 E-Sports 관련자들이요. 조금만 따뜻하게 바라봐주세요.

너무 제 입장만 쓴 것 같기도 합니다. 한때 아마추어판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으로써, 그리고 이 무거운 PGR의 Write 버튼을 몇번이고 고심하고 누른 사람으로써, 어떤 질책이 오더라도 겸허히 받겠습니다.

p.s ; 게임게시판에 올려야 할 글일까요? ㅠㅠ. 혹시나 이 글을 옮겨야 하실 지 모르는, 항상 고생하시는 운영진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1-1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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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10/05/31 04:4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충분히 자게에 어울리는 글이네요.
아직 미성숙한데다 미래마저 불확실하고 불분명 이 판이지만, 그 속에서 꿈을 키우고 꿈을 경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모독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리고 별 도움은 안되지만... 그 꿈을 응원합니다.
세잎클로버
10/05/31 05:02
수정 아이콘
저도 숙소생활을 좀 꽤 많이 햇엇는데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저도 숙소관리자형이 숙소 운영하시면서 애들 밥 챙기랴 애들 반찬투정과 보일러+에어컨 숙소 청소 환경상태(?)같은것 그리고 특히 애들 말 안듣는거;;때문에 많이 고민하시고 받는 스트레스도 장난이 아니어서 그만두고 싶어도 남아잇는 5~6명 애들때문에(거기서 코치가 2명;;)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숙소운영하셧는데 정말 숙소운영이란건 참 힘들어 보엿지만 꿋꿋히 참고 하시는거 보니;;좀 안쓰럽게 보이더라구요..
여튼..숙소 생활을 해본 경험자로써 대부분 스타의 올인을 하고 오는애들이라 공감대도 많이가고 즐거웟던 경험이 많이 잇네요
그리고 여담인데..숙소나오고 집에온 이후로 3분카레는 절대 안먹게 되더라구요;;
10/05/31 09:25
수정 아이콘
이렇게까지 어려운 생활을 견뎌내면서 게이머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눈앞의 욕심에 이 판을 망가뜨려버린 양심없는 작자들만 생각하면 더 화나고 저런 분들 앞에서는 그저 미안할 뿐..
마음 속으로 응원은 물론이고,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모두가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abrasax_:JW
10/05/31 09:57
수정 아이콘
이런 글 정말 좋습니다. 잘 봤습니다.
Dark_SlayerS
10/05/31 13:18
수정 아이콘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ㅠㅠ
이런글 진짜 멋진듯...
미친잠수함
10/05/31 14:02
수정 아이콘
욕보십니다그려 소주나 한 잔 합시다 동생..
몽정가
10/05/31 18:02
수정 아이콘
이런말 조금 격한 것 같지만...이스포츠가 배가 불렀어요 ㅠㅠ 순수한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때 입니다!!
Mr.쿠우의 절규
10/05/31 22:14
수정 아이콘
글쓴분이 비록 힘들었지만, 가끔 뒤돌아 보고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추억이라고 생각되네요.
좋은 글에 추천 하나 드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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