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6/13 22:33:50
Name 신불해
Subject 강희제 이야기(1) ─ 평화의 조화를 위한 소년 황제


여기 아담 샬이라고 불리우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풀 네임은 요한 아담 샬 폰 벨(Johann Adam Schall von Bell) 이었고, 그를 아는 중국인 친구들이라면 애정을 담아 이 남자를 탕약망(湯若望)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예수회 선교사로서 적절한 모험심과 용기를 가지고 있던 그는 과거 명제국이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에는 화포 제작과 관련된 조언을 위해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고, 제국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살하고 이자성이 집권했으며, 다시 만주의 '오랑캐' 들이 진군하며 '천하' 의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그 역사적인 순간에도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상 할 수 없는 혼란이 베이징을 휘몰아쳤고, 수십 명의 군중들은 아담 샬이 머물고 있던 교회 회당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그때, 금발의 키가 큰 서양인 검객 ─ 바로 이 예수회 사제는 카타나를 들고 군중 앞에 맞섰고, 그 기세에 눌린 사람들은 "우리들은 약탈을 하러 온것 아니" 라고 하면서 돌아갔습니다.


머나먼 서역에서 온 이방인은 이 거대한 대륙의 주인이 변발을 한 만주족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아쉬울 것은 없어보였습니다. 대청(大淸)이라고 불리우는 이 새로운 나라 역시 아담 샬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행성들의 궤적을 알려주고, 일식과 월식 및 유성우와 같은 예기치 못한 이변에 대비할 수 있는 역법을 만들어줄 사람. 제국의 성공적인 통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역법이 필요했습니다.


아직 명나라 정부에서 아담 샬이 일하고 있던 시절, 여러 중국인 관리들은 이 서양 오랑캐를 못 마땅하게 여기며 비난했으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머리를 밀고 청나라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던 처지였습니다. 지난 날 비난을 퍼붓던 그들은 이제 오히려 아담 샬을 설득하여 '새로운 주인' 을 위해 역법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담 샬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명제국이 무너지기 전, 그는 서광계(徐光啓)라는 인물의 지지로 기존의 대통력(大統曆)을 보완하는 신역법(新歷法)을 준비하고 있었던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서광계는 명나라 말 중국에 들어온 마테오 리치에게 서양 학문을 배워 서구 문물에 우호적인 인물이었는데, 공고롭게도 그 전에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아담 샬의 신역법은 청나라를 위해 쓰여지게 된 것입니다.


제국의 지도자, 순치제(順治帝)는 이 오랑캐가 꽤나 재주 많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그의 책력은 1644년 9월 1일에 있을 일식을 정확히 예측하면서, 중화 제국 전역의 많은 도성들에 각기 달리 나타나게 될 일식의 시각과 지속 시간을 알려주었습니다. 순치제가 조사를 해보자 이는 매우 정확하였고, 흡족함을 느낀 황제는 아담 샬을 황실의 천문대장인 흠천감감정(欽天監監正)에 임명했습니다. 60세의 나이였던 아담 샬은 당초 이 직책을 맡을 의사는 전혀 없었으나, 여러 차례 황제의 특사들이 설득을 하자 동료들과 논의를 해 보고 결국 승낙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르곤


그러나 당시 진정한 제국의 주인은 황제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도르곤(Dorgon)이 있는 한은 말입니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아직 청나라가 중화의 주인이 아니라 명나라와 강산을 놓고 겨루던 시기, 청태종 홍타이지는 갑작스레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급박한 시기에 군주 자리는 잠시도 비워 놓을 수가 없기에, 홍타이지의 친형이자 태조 누르하치의 장남이었던 예친왕 다이샨은 만주 정권의 황족, 제왕, 패륵를 모아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습니다.


태조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에서 명나라 최후의 명장 원숭환에게 패배하고 사망한 뒤, 후계자 자리는 무주공산이었고 35살의 홍타이지는 여러 후보자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이샨이 그를 지원해주었기에, 무리 없이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홍타이지가 사망했을 무렵, 도르곤은 당당한 32세의 청년이었으며 군주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또한 도르곤은 그만큼 유력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이샨은 이렇게 제안 했습니다. "태종의 장남이 후계자가 되는것이 옳지 않은가." 라고 말입니다. 


도르곤은 누르하치의 아들이니, 홍타이지의 장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의외의 이야기에 대해, 홍타이지의 장남이었던 하오게(豪格)는 "복이 없고, 덕이 없다. 감히 천위를 이을 수 없다." 는 말을 하며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도르곤은 하오게가 저렇게 몸을 뺀다고 해서 자신이 군주가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만주의 여러 장수들이 칼을 차고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제의 은원을 입었으니 만약 선제의 아들이 위에 오르지 않는다면, 차라리 지하의 선제를 섬기겠습니다."


그러나 그 선제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집단 자살을 하겠다는 소리입니다. 하오게가 순순히 물러난 것은 이런 사태를 예상 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이미 나이가 60여세를 넘었던 다이샨은 위험한 일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의장 직에서 물러났고, 그 의장 자리는 도르곤에게 넘어왔습니다. 하지만 도르곤은 자신이 황제가 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눈 앞에는 아직 명이라는 초거대 제국이 버티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내분은 만주 정권을 몰락으로 이끌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오게를 황제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후계자 자리를 가지고 묘한 기류를 형성했는데, 이제 와서 하오게가 황제가 되면 도르곤 자신도 위험해질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궁리 끝에 도르곤이 선택한 인물이 후린(福臨), 곧 홍타이지의 6살 짜리 아들이자, 순치제가 되는 그 소년이었습니다. 후린을 군주로 추대하는 대신 도르곤은 섭정이 되어 실질적인 권한을 휘둘렀고, 황제의 사촌형인 지르하란(濟爾哈朗)을 공동섭정으로 하여 너무 속이 보이는 일을 피했습니다.




순치제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순치 황제는 사실상 도르곤의 꼭두각시나 다름 없는 상태라는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순치는 아담 샬에 대해 상당히 좋은 감정을 공공연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점성술에 근거한 아담 샬의 자문에 크게 의존함에 따라 아담 샬은 꽤 큰 권한을 누렸고, 그 대신 조정의 많은 만주족 대신들에게 시기와 경계의 대싱이 되었지만 황제의 총애는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곧 아담 샬은 최대의 정치적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순치제의 나이가 성년에 이를 무렵, 역으로 도르곤의 권력도 절정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도르곤은 스스로를 "황부" 라고 일컫었으며, 곧 그가 황제가 될 지도 모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기세가 당당하던 도르곤은 한 기념물 건축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치제의 신료들이 도르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황궁 입구에 두 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을 세우는 일을 계획한 것으로, 이것이 완성되면 도르곤의 위세도 더욱 대단해질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이 공사에는 아담 샬도 자문역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는 도르래 공법을 제안하는 등 자문에는 꽤 충실하게 응했으나, 정작 실제로 행동에 나설 때가 되자 '점성술 상의 이유' 로 공사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천문대장인 그 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별들의 신호가 모두 이 일에 대해 경고하고 있소이다."


도르곤은 화를 냈지만, 그 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이지 그 직후 도르곤이 사망하자, 순치제는 더욱 경외의 눈으로 이 예수회 사제를 바라보았습니다. 1651년, 아담 샬은 병에 걸린 황제의 어머니를 돌보면서 크리스트교도로서의 경건한 모습과, 중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예의와 존경으로 전통 예법을 완전히 숙지한 세련된 모습을 보였고, 이는 황태후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황태후는 그를 '수양 아버지' 라고 부르게 되었고, 순치제는 아담 샬이 앞날을 예지함은 물론, 병을 고치는 능력까지 있다고 확신하면서 이 노인을 친근하게 '할아버지' 라고 일컫었습니다.



이후 순치제는 여자들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일부일처제와 관련된 크리스트교에 대해서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아담 샬 개인에 대한 평가까지 낮아진것은 아니었습니다. 순치제는 최소한 한달에 한번은 아담 샬을 만났고, 신뢰할 수 있는 사제에게 형언할 수 없는 존경심을 보냈으며, 이 좋은 친구가 신하의 예를 취하며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황제를 뵙기 위한 허락도 필요 없이 매번 만날 수 있었는데, 이는 도르곤 조차도 누리지 못한 특권입니다.


종종 아담 샬의 누추한 숙소에 순치제는 불쑥 방문 했고, 그는 황제에게 어울릴만한 호화로운 의자가 아닌 평범한 의자에 앉아 아담 샬이 먹는 변변치 못한 술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황실 연회에서 늙고 노곤한 아담 샬이 추위를 타는 듯 하자, 황제는 친히 자신의 외투를 벗어 이 노인에게 덮어 주었으며, 직접 사냥해서 잡은 산토끼 두 마리를 그에게 하사했다고도 합니다. 아담 샬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순치제와 스스럼 없는 농담을 나눌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이 '오랑캐' 대한 총애를 황제가 보이자 이에 대한 반발도 심해져서, 일부 신료들은 이러한 순치제와 '할아버지' 사이의 격식없는 관계를 못 마땅해 했습니다. 순치 14년인 1657년, 오명현(吳明炫)이라는 인물이 상소를 올려 새로운 역법에 오차가 있다며 따졌지만, 순치제는 조사 결과 신역법에는 전혀 착오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명현은 목이 달아날 뻔 했습니다. 그 후 강남 휘주 관리인 양광선이 서양 학문을 비난하면서, 아담 샬의 신역법을 욕했지만 순치제는 아담 샬을 굳건히 옹호했습니다. 양광선과 오명헌의 일파는 이후에도 아담 샬을 계속 괴롭혔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치제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꽤나 괘팍한 성격을 자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아담 샬에게는 여전히 신뢰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아담 샬은 간혹 순치제의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서로 격렬하게 논쟁도 벌였지만, 이 역시 황제의 친구인 그 밖에 가능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순치제 시절의 흥미로운 이야기라면 정성공의 북벌이 있을 것입니다. 순치제는 정성공을 격퇴한 뒤, 황호라는 인물의 조언에 따라 지상 최대의 해안 봉쇄 정책으로 정성공에게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정작 북경에서 그 이야기는 관심 밖에 있었는데, 순치제가 다른 문제에 골몰해 있었던 탓입니다. 그는 효헌황후(孝獻皇后), 즉 동악비(董鄂妃)를 상대로 불같은 사랑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황제와 동악비의 애정은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동악비는 임신을 했는데, 그녀가 낳은 아들은 유산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고, 특히 동악비는 천연두까지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젊은 군주, 순치제는 생에 느껴보지 못했던 비통함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세상사에 지쳐버렸습니다. 의욕을 상실한 황제는 급속도로 병에 굴복해버렸고, 어떤 처방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황제는, 아담 샬에게 만약 자기가 살아난다면 크리스트교도가 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하늘의 섭리를 이해하는 할아버지도 죽어가는 사람을 죽음이라는 이름의 바다에서 건져 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죽어가는 황제는 거듭 아담 샬에게 누가 황위를 계승하면 좋을지, 최후의 순간에도 현명한 판단을 부탁했습니다. 아담 샬이 조용히 불러준 이름은 다름 아닌 히오완예이, 중국식으로 말하자면 현엽이라고 불리우는 한 사내 아이였습니다. 히오완예이는 천연두를 한번 앓고 난 뒤여서, 이제 중화제국에 절실하게 필요한 오랜 재위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순치제는 자신이 그동안 지은 죄 때문에 하늘 앞에 서기가 부끄럽다는 요지의 말을 했고, 그리고 사망했습니다. 


이후 발표된 유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짐의 아들인 강비 동가씨 소생의 제3황자 현엽은 연치가 겨우 8살이나 그 용모가 단정하고 영민하니 이 나라 종묘사직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고로 현엽을 황태자에 책봉하여 다음 황제에 올리도록 하라. 27일 동안 상복을 입다가 그 뒤 옷을 대례복으로 갈아입고 즉위식을 치르도록 하라. 특히, 영시위내대신 색니, 소극살합, 알필륭, 오배는 조정의 원훈이자 개국공신으로 짐이 언제나 신뢰하던 대신들이니 충성을 다하여 신제를 보좌하고 정무를 처리하라."


朕子玄燁,佟氏妃所生也,年八歲,岐嶷穎慧,克承宗祧,茲立為皇太子,即遵典制,持服二十七日,釋服,即皇帝位。特命內大臣索尼、蘇克薩哈、遏必隆、鰲拜為輔臣,伊等皆勛舊重臣,朕以腹心寄託,其勉天忠盡,保翊沖主,佐理政務。


순치제의 죽음을 둘러싼 묘한 이상기류 때문에, 간혹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순치제가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 때, 수많은 인파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뒤를 이은 새로운 제국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순치제가 죽지 않고 황위에서 물러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야기와 관련되어 오대산 청량사의 주지와 관련된 기괴한 이야기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 절의 주지를 모델로 하여 만든 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죽었다는 황제와 꼭 닮았다는가 하면, 새 황제는 즉위 후 10년동안 세 번을 청량사에 왔는데, 주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단 한번도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670년 주지가 35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새 황제가 실물 크기의 주지 금상을 절에 내리고, 그의 무덤에 부장할 보화들도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파일


순치제의 죽음이란 진상이 어찌되었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8살의 꼬마 아이는 만주와 중국, 내몽골을 관할하는 거대한 세계 제국의 주인으로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밀려 왔습니다. 


그리고 천하는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지난날의 치욕에 이를 가는 동방의 조선인들, 야만스런 러시아의 서양 오랑캐들, 헛된 꿈을 꾸며 반격의 준비를 대만의 명나라 망령들, 사막의 늑대들인 준가르와 노회한 삼번의 무장들이 버티고 있었으며, 소년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공을 세워온 대신들은 의심쩍은, 혹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대제국의 주인이던 자신의 아버지를 거의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종소리는 북경의 겨울하늘로 퍼져 나갔고, 건청궁에 있던 아홉 마리의 용이 그려진 누런 비단 휘장 뒤에 순치제의 시신이 모셔졌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소년의 머리를 깎았고, 하얀 상복을 입혀 주었습니다.


새 시대를 이끌어갈 소년에게 사람들은 안녕과 평화를 뜻하는 강(康), 조화와 흥성을 희(熙)라는 말을 주었습니다. 강희(康熙). 평화로운 조화. 이 소년이, 이 거대한 제국에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지, 아무도 짐작 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7-17 15:33)
* 관리사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6/13 23:09
수정 아이콘
저번에 올려주신 강희제에 대한 글을 읽고 흥미가 생겼는데 시리즈로 올려주신다니 정말 반갑네요 크크
기대하겠습니다~
왜사냐건웃지요
13/06/13 23:20
수정 아이콘
정말 흥미롭네요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항상 기대가 되네요!!
루크레티아
13/06/13 23:24
수정 아이콘
청나라 최고의 축복은 강희제 이전에 그런 강희제를 확실하게 뒷받침을 해준 황실의 여인들, 즉 강희제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있었다는 점이죠.
특히 청태종의 아내이자 순치제의 어머니였던 효장문황후 보르지기트씨는 어린 강희제 히오완예이의 재능을 한 눈에 꿰뚫어 보고, 곧바로 아들의 유조를 집행하여 혼란을 막았다는 점에 있어서 실로 청나라의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편에는 그 이야기가 나올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3/06/13 23:45
수정 아이콘
왕조시대 후사의 개입은 정치의 꽃인데 왜 종교인이 정치에 개입 할까요 예수 자신은 어부들을 제자 삼아 귀머거리 장님 귀신들린 자와 부대꼈는데 콘스탄티누스 때의 달콤한 추억 때문일까요
나이트해머
13/06/13 23:55
수정 아이콘
아아아... 곳곳에서 찬사 일색인 강건성세의 여명 시리즈인가요...
Jealousy
13/06/14 00:48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봤습니다. 다음글이 기대되네요.
13/06/14 01:10
수정 아이콘
마지막 부분은 영화의 한장면 같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yonghwans
13/06/14 04:36
수정 아이콘
전 개인적으로 중국의 황제하면 진시황이나 한무제보다 강희제를 먼저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이런식의 소설 흥미진진하네요~
Je ne sais quoi
13/06/14 07:45
수정 아이콘
아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기대할께요
13/06/14 08:35
수정 아이콘
저번에 올려주신 글 보고 강희제에 무척 궁금했는데 이렇게 연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코토
13/06/14 09:42
수정 아이콘
마치 조너선 스펜스를 연상시키는 우아하고 유려한 필력을 인터넷에서 보니 눈이 호강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13/06/14 10:23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Neuschwanstein
13/06/14 11:33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의 강희제를 향한 무한사랑은 불펜을 넘어 pgr까지...

시간 되시면 본격적으로 고조를 시리즈로 한번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강희제는 철인군주 느낌이라 인간미(?)가 안느껴지는데 고조는 알면 알수록 흥미진진한거 같아요
Practice
13/06/14 12:22
수정 아이콘
큰 틀에서 강희제를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시작은 서양 오랑캐와 순치제... 읽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벌써부터 다음 편이 기대가 되네요.
주홍불빛
13/06/14 13:1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374 강희제 이야기(8) ─ 동트는 새벽 [11] 신불해8294 13/06/20 8294
2373 강희제 이야기(7) ─ 절망적인 형세 [11] 신불해9168 13/06/19 9168
2372 난중일기, 명량으로 가는 길 [29] 눈시BBbr7632 13/06/19 7632
2369 [LOL] Olympus LOL Champions Spring 결승전 경기 보고서 #3 [20] 노틸러스10177 13/06/18 10177
2368 [LOL] Olympus LOL Champions Spring 결승전 경기 보고서 #2 [13] 노틸러스9632 13/06/17 9632
2367 [LOL] Olympus LOL Champions Spring 결승전 경기 보고서 #1 [35] 노틸러스11215 13/06/16 11215
2366 강희제 이야기(6) ─ 오삼계 vs 강희제 [13] 신불해10045 13/06/18 10045
2365 강희제 이야기(5) ─ 삼번, 진동하다 [17] 신불해9781 13/06/17 9781
2364 [LOL] 오존은 어떻게 블레이즈를 이길 수 있었나 [68] 레몬커피11572 13/06/16 11572
2363 강희제 이야기(4) ─ 오삼계 [13] 신불해10321 13/06/16 10321
2362 강희제 이야기(3) ─ 제국의 황혼 [11] 신불해10363 13/06/16 10363
2361 오늘도 글로써 여자를 배워봅시다.-생리 편- [68] 돌고래다26488 13/06/15 26488
2360 sexual talk. [46] Love&Hate20044 13/06/15 20044
2359 병인양요와 신미 양요 때 썼을 서양 총기 [5] swordfish8394 13/06/14 8394
2358 신미양요 - 조선군 전멸, 그리고... [18] 눈시BBbr9354 13/06/16 9354
2357 신미양요 - 작은 전쟁의 시작 [6] 눈시BBbr7315 13/06/14 7315
2356 내 생애 최고의 순간 [12] tyro8886 13/06/14 8886
2355 [LOL] MVP오존이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인 'Dade' 배어진 선수 [24] 백학10431 13/06/16 10431
2354 강희제 이야기(2) ─ 만주 제일의 용사, 무너지다 [15] 신불해10575 13/06/14 10575
2353 강희제 이야기(1) ─ 평화의 조화를 위한 소년 황제 [15] 신불해9651 13/06/13 9651
2352 병인양요 - 프랑스군 철수 [8] 눈시BBbr5743 13/06/14 5743
2351 병인양요 - 양헌수, 강화에 상륙하다 [8] 눈시BBbr9604 13/06/11 9604
2350 병인양요 - 강화도 실함 [6] 눈시BBbr5387 13/04/05 5387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