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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1 11:53
본문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관우 딸내미 보내달라고 손제리가 떠 본 것도 있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익양 대치는 관우의 자부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혔을 겁니다.
18/09/20 18:25
형주공방전 시작이네요. 한달 안에 나올 원소의 세 아들, 조조의 통치법이 나오고 바로 다음주에 나올
[종년의 아들 원소는 어떻게 하북의 지배자가 되었나] 도 기대하겠습니다.
18/09/20 18:30
으아아앙 관우 흑흑 관우 너무 불쌍해 한 번만 양양 좀 먹어봤으면 좋겠어.
글곰님 혹시 관우가 형주 공방전에서 이긴 걸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니면 최소한 무....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요)?
18/09/20 18:31
와우.. 내일 나올 2편때문에 오늘 밤은 잠을 설치겠네요.
한달 안에 나올 원소의 세 아들, 조조의 통치법도 기다려지고, 바로 다음주에 나올 '종년의 아들 원소는 어떻게 하북의 지배자가 되었나'도, 그 다음주에 나올 드래곤나이트도 기대하겠습니다.
18/09/20 19:29
모양빠지지만 유비로 군단해제시키고 강릉버리고 촉땅으로 인재와 물자 다 이동시키면서 천천히 나가 보겠습니다.성공하면 리플 더 달게요ㅠㅜ
18/09/20 19:26
삼국지 보다 보면 진짜 궁금한게 조조의 인재 발탁의 주요 명제인 불인불효 유재시거인건 알겠는데
왜 패권을 잡고 난 이후에도 진군에게 계속 구품관인법을 하게 했을까요?? 뭐 조조는 그렇다 쳐도 이후 조비 부터 해서 전부 말이죠... 그 구품관인법때문에 결국 조씨 일가가 멸망했는데 말이죠. 당시 하후씨 누구였더라;; 개가 구품관인법 느리게 하자 이러고 사마의는 밀어붙이고 그랬던거 생각하면 조씨 일가랑 하후씨 일가가 몰랐던건 아닌거 같은데
18/09/20 21:18
한나라의 인재를 얻는 방식은 지방관과 지방 유력인사들의 추천제였는데
이것을 중앙관리들이 주도하는 구품관인법으로 바꿔서 지방의 태수등의 권력을 약화시킨겁니다. 한나라는 결국 지방관들의 난리로 무너진거니까. 그 지방관이나 지방호족들이 인재를 추천할때 명성을 기반으로 추천하는데(능력치가 찍히는게 아니니까) 그 기준인 효렴·현량·방정·직언·문학·계리·수재중에서 그때쯤에는 가장 명성을 얻기 쉬운방법이 효도였습니다. (효렴) 첩도 아니고 노비의 자식인 원소가 자기어미가 아닌 원술의 어머니(정실부인)를 위해 3년상을 하면서 명성을 얻었다는걸 보면 위력을 알수 있죠. 그러므로 조조가 통치중에 강조했었던 불인불효 유재시거라는건 재능을 우선한다는 말도 되지만 지방관의 추천을 배제한다는뜻도 포함된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의 귀족들과 호족들이 약해진대신 중앙의 귀족가문들한테 실권이 죄다 넘어가 버렸다는겁니다. 조비나 조조는 후임들도 강력하게 중앙의 권력을 쥘수 있다고 생각한거 같은데 그렇지 않았던거죠. 위가 한나라에게 권력과 황제자리를 뺐던 과정을 똑똑히 본사람들이니 진이 위를 대신하는것도 이상 하지도 않고.. 그런데 이걸 어리석다고만 할수 없는게 조조사후 사마염이 통일하기 전까지의 기간에는 저런 조치를 했는데도 지방관의 반란이 여러차례 일어났죠 만약 그들이 독자적인 인재풀까지 있었다면 정말 머리아팠을겁니다
18/09/21 14:46
군주의 가장 큰 임무는 천재적인 정치가 아니라 무병장수라는걸 온몸으로 보여준게 조위지요.
조비는 그렇다 치고 조예만 살아있었어도 아들들은 몰라도 사마의는 반란을 일으킬 생각조차 안했을겁니다.
18/09/21 12:44
영천 지역의 호족은 물론 존재하죠. 순욱도 있고 종요도 있고요. 다만 조조가 세력을 구축하는 초기에는 상당한 역할을 했겠지만 그 이후로는 소위 one of them일 뿐, 조조의 세력이 영천호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거나 하는 건 과장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8/09/20 22:24
역사에 if라는건 없다지만 오나라가 이 기세등등한 관우를 치지않고 독자적으로 위를 공격했다면 삼방향으로 위가 공격받는 형태였을텐데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유비가 오나라가 공격하걸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하진 않았을 것같은데 이렇게 중요한 타이밍에 공격을 할거라고 예상을 못했을까 라는 궁금증도 들구요. 아니면 내부의 배신자를 예상못했던건가?
19/02/24 21:34
[장군은 항왕실의 후예로서 사해에 신의가 알려져 있으며, 영웅들을 모으고 현명한 사람을 목마르게 찾고 계십니다. 만약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면 바위처럼 단단하고 험준한 곳을 지키십시오. 또 서쪽으로는 여러 융족(戎族)과 화의를 맺고, 남쪽으로는 이족(夷族)과 월족(越族)을 위무하여 후방의 염려를 없애고, 동쪽으로는 손권과 동맹을 체결하여 조조를 견제해야 합니다. 당연히 내부의 정치에 치중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다가 천하에 변고가 생기면 상장(上將)에게 명을 내려 형주의 군대를 이끌고 완성(宛城)에서 낙양으로 진격하게 하고, 장군은 친히 익주의 군사를 이끌고 진천(秦川)으로 출병하여 장안을 공격한다면, 백성들이 대그릇에 밥을 담고 호로병에 간장을 넣어서 장군을 맞이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된다면 패업은 이루어지고 한왕실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제갈량의 용중대책중
이부분을 보면 관우를 제거할 이유가 딱히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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