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2/11/24 07:36:42
Name 맨발
Subject 토끼춤과 셔플
아마 2011년 겨울쯤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동네의 댄스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연말을 맞이하여 댄스학원 발표회를 준비 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예체능에 소질이 없던 나는, 춤이란 나와는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인싸들처럼 클럽을 다니며 노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성들과의 썸이 있는 세계를 동경하고 있었다. 물론 소심한 내 성격으로는 클럽은 가지 못하고, 다닌 것이 동네 댄스학원이다.

한 해 동안 배웠던 방송댄스를 메들리로 만들어서 공연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2011년을 강타한 셔플 댄스였다.

LMFAO - Party Rock Anthem의 뮤직비디오에서 중간에 나오는 셔플 안무는 그 당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건 토끼춤이고요~ 셔플은 이렇게 해야 된다니깐요!”

그 당시 공연을 하게 된, 팀원의 연령은 10대 초반부터 20대 후반까지였는데, 나는 20대 중후반으로 20대 후반의 다른 형님과 함께 최고령자였다. 그 20대 후반의 2명은 열등생이었는데, 공연 연습을 하면 중간중간 10대 후반의 에이스 친구에게 따로 개인교습을 받았단 기억이 난다.

하여튼 우리(앞으로 형님과 나는 우리로 지칭하겠다)는 셔플댄스가 되지 않았는데 빠른 비트를 따라가기에는 우리의 몸은 너무 삐꺽 되었으며, 어떻게 따라 해도 그렇게 추는 게 아니라는 핀잔을 들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토끼춤은 다운이고, 셔플을 업이고, 토끼춤은 한 번에 내려가고, 셔플은 나눠서 끌고 와야 된다는 등 그런 설명을 하며 보여주는데 도저히 연습해도 에이스 또는 선생님의 춤과 우리의 춤은 뭔가 다름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Party Rock Anthem 파트에서는 우리는 맨 뒷줄로 배정이 되어 공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방송댄스의 세계를 떠나 라틴댄스 동호회로 진출하게 되는데, 동호회에서도 간간이 셔플 댄스를 가미한 라인댄스를 배울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안무를 가르쳐준 선생님은 내가 배운 셔플과 정반대로 추고 있었으며, 내가 셔플은 업이고, 발을 끌어와서 나눠서 춰야 되는 거 아니냐 질문을 하면, 나는 이렇게 배웠다고만 했다. 뭔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누가 봐도 선생님이 나보다 춤을 잘 췄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고, 셔플댄스를 검색해 봐도 영상마다 설명의 차이가 있어서 알 도리가 없었다. 이후에 유튜브가 활성화되고, 춤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동영상을 올리면서 토끼춤과 셔플 댄스의 차이를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설프게라도 셔플댄스처럼 보이는 춤을 추게 되었다.

이후에는 토끼춤으로 셔플을 추는 자에게

“아니야 그건 토끼춤이잖아, 셔플은 업을 해야 된다고 이렇게 업하고 끌고 오고~~”

등등으로 나의 지식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은 댄스학원을 다니던 나처럼 몇 번 해보더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나를 피하고는 했다.

후에 많은 직접적 간접적 경험을 통해, 타인이 물어보지 않으면, 춤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애초에 궁금하다면 주변에 물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물어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어보고 싶은 사람은 춤 잘 추는 사람이지, 어설픈 춤을 추면서 춤에 대한 지식만 많은 꼰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튜버 곽준빈이 침착맨과의 방송에서 셔플을 배웠다며 보여주는 동영상이 유머 게시판에 올라왔다. 10년 차 셔플댄스 감별사의 눈에는 잘못된 셔플을 추고 있었다. 나는 그것은 셔플이 아니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삭제하였다.

그리고 혹시나 몰라 토끼춤과 셔플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유튜브에서 토끼춤 셔플 등등을 검색하면서 동영상을 보는데, 현진영이 토끼춤을 알려주는 강심장 동영상이 눈에 띄었다.

현진영이 말하기를 토끼춤으로 알고 있는 춤의 정확한 이름은 러닝맨이라고 하며, 이것이 진짜 토끼춤이라며, 마치 유재석의 메뚜기춤과 유사한 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아니!! 토끼춤이 러닝맨이라고??? 아니야 러닝맨은 셔플댄스의 동작이야!!!’

라고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올 뻔했다. 어떻게 현진영이라는 왕년의 대한민국의 최고의 댄스가수가 셔플댄스와 토끼춤도 구별 못하다니. 하지만 10년이 넘는 댄스 경험 상, 잘 추는 사람의 말이 진리가 되는 것을 알기에, 나는 침묵을 지켰다.

이후 검색을 통해서 의문점이 나름 정리가 되었는데, 러닝맨이란 동작은 발을 내디뎠다가 끌고 오면서 제자리에서 달리는 듯한 동작이 러닝맨이라는 것인 듯하다. 정박에 다운을 하던, 업을 하던 그것은 스타일이란 차이인 것이다.

90년대 초반에는 러닝맨을 우리가 말하는 토끼춤처럼 췄을 것이고, 2010년 초에는 Party Rock Anthem의 뮤직비디오처럼 내가 아는 셔플처럼 러닝맨을 췄다는 것이다. 그리고 셔플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어서, 한국에서 일반인이 알고 있는 셔플은 멜버른 셔플이라고 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어서 셔플 신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나는 셔플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사실 셔플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댄스학원에 다닌 것은 인싸들처럼 요즘 유행하는 노래에 리듬을 타며 노는 그런,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90년대 초에는 문나이트에서 토끼춤을 췄을 것이며, 2011년 클럽에서는 내가 셔플이라고 알고 있는 셔플을 췄을 것이다.

방구석에서 양말을 신고, 유튜브를 보면서 셔플댄스를 춰보니 아쉽다. 지금 2011년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클럽에 가서 셔플 댄스를 나름 잘 출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다.

벌써 11년 전 이야기인데, 장황한 글을 쓰는 이유를 보니, 내 인생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과 춤에 있어서, 유행은 늘 변하고, 그때의 트렌드에 맞는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뒤늦게 학원에 가서 유행한 춤을 배워 소화한들 그때는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 그 순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인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뒤따라 가고만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 유머 게시판의 (https://pgr21.com./humor/465777) (https://pgr21.com./humor/467549) 두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을 글로 써봤습니다.

* 오르골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4-06-25 10:56)
* 관리사유 :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11/24 08:41
수정 아이콘
여우보다 느린 토끼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붉은 여왕이 등 뒤에 바싹 붙어 토끼춤을 달리다 지쳐버린 토끼를 채찍으로 후려쳐 홍콩이든 땅속이든 보냈을까요?
인싸들은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왔던 걸까요?
아니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채찍의 풍압에 스릴을 느꼈던 걸까요?
아싸인 저로썬 도저히 닿지 않을 삶의 방편인것 같습니다...
22/11/24 09:01
수정 아이콘
어떤 토끼는 여우 등 뒤에 타고 올라 즐겁게 놀지 않았을까요?
아싸인 저도 모르겠지만, 여우라기 보다는 파도라고 할까나요?
파도의 높이에 따라서 누구에게는 생명의 위협이지만, 누구에게는 서핑의 재미를 주겠죠.
22/11/24 08:44
수정 아이콘
어제 독일 일본전 전반 보면서 일본 개발리고있는데 불판분위기 왜이러지 싶었는데 자고일어나보니 일본이 뒤집었더군요
나름 축구에 경험도 지식도 많은편이었는데 삶에 바쁘다보니 축구보는눈이 뒤쳐졌나봐요
나이먹으면 빠르게 따라가기 어려워지는가봐요
근데 꼭 따라가야할 필요있나 싶네요
22/11/24 08:54
수정 아이콘
헉 일본이 독일을 이겼군요.
꼭 따라가야할 필요는 없는데, 춤이 아니라 다른 문제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되는 일들이 발생하더라고요.
결국은 따라갈 수 있는가 없는가로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가 나오는 더라고요.
뭐 따라가지 않고 선도하거나, 어떤 트랜드가 와도 따라갈 수 있는 내공이 있거나 이런 생각을 담아봤습니다.
답이머얌
22/11/24 09:58
수정 아이콘
셔플은 외국 말, 토끼춤은 우리 말로 동일한 춤인줄 알고 있었던 춤 무식이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22/11/24 12:07
수정 아이콘
그게 저도 뭐가 뭔지 잘 모른다는 글입니다......
박현준
22/11/24 10:14
수정 아이콘
몸치 박치에 가까운 수준인데 저도 클럽에 처음 놀러 갔다가 당시 대 유행이었던 셔플이란 춤을 배웠습니다. 그 후 왠지 단순한 그 동작 하나만큼은 어느 정도 따라할 수 있었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나쁘지 않았었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안 다니던 클럽을 자주 다녔는데. 어느날은 만취한 채 땅 바닥만 보면서 셔플을 몇 시간 추다 정신 차려보니. 친구들은 다 가고 저 혼자 스테이지에서 셔플을 추고 있었던...
덕분에 재미났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네요 크크
22/11/24 12:06
수정 아이콘
업박자가 몸에 잘 맞으셨나봐요 크크크 감사합니다.
저는 처음에 업이 안되서 ㅜㅜ
22/11/24 11:23
수정 아이콘
저도 런닝맨이나 찰스톤 같은 동작들을 처음에 다운으로 배웠다가 나중에 다시 업으로 배울때 당황했던 기억이 나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2/11/24 12:05
수정 아이콘
저는 처음에 업으로 배웠는데 다른 사람은 다운으로 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예 다른 춤인줄 알았는데
런닝맨이나 찰스톤이란 동작이 있는 거였더라고요. 감사합니다.
한뫼소
22/11/24 15:47
수정 아이콘
하우스 추고 다녔을때 업다운을 몸에 때려박는데 고생했던 기억 나네요. 아니 어차피 박자타면 위아래로 움직이는데 뭐가 업이고 뭐가 다운이야... 했다가 방학시즌에 클러빙 돌고나니 몸에서 감각이 생겨있는게 신기했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2/11/24 16:39
수정 아이콘
흐 감사합니다. 업 다운은 몸으로 깨닫는 뭔가가 있죠. 어 되네 그런....
-안군-
22/11/24 16:28
수정 아이콘
토끼춤은 쿵짝쿵짝, 셔플은 쿵딱쿵딱쿵딱쿵딱 아닌가요? (모름)
22/11/24 16:41
수정 아이콘
안군님 이참에 댄스학원 가서 pt로 배워보시죠~~잘 맞으실꺼 같아요.
하늘하늘
24/06/25 14:06
수정 아이콘
토끼춤은 지면에 한쪽발만 딛은 상태가 계속되고
셔플은 양발을 동시에 착지하고 한발로 서고 다시 양쪽발이 동시에 지면에 닫는 식으로 연결되는거에요.
그래서 변형이 아주 많고 춤에 리듬이 착착 실리는거죠.
마일스데이비스
24/06/25 18:48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이성과의 썸은 내가 셔플을 추는지 토끼춤을 추는지, 그 두 개의 구분이 가능한지랑은 어떤지랑은 별 상관도 없고 춤을 잘 추는거랑도 별 관련이... 없죠. 누굴 가르쳐야 한다거나 유투브 댓글 소재로는 쓸 수 있겠지만..
24/06/27 11:41
수정 아이콘
춤을 잘 추는 것은 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잘 춘다는 것 보다는 상대에게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는가인데, 춤 잘추면 기술력적인 측면으로도 상대를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죠.
엔터테인이 되는 사람이 연애 못하는 경우는 거의 못 본거 같네요.
초록물고기
24/06/25 19:11
수정 아이콘
몸치로서 토끼춤과 셔플의 차이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군요. 부럽습니다. 한번 춰 보고 싶다는 마음과 한다고 출 수 있을까, 이미 늦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지나가네요.
24/06/27 11:42
수정 아이콘
몸치는 그냥 고칠려고 하지 말고 놀다보면 고쳐질 때도 있는 거 같습니다.
댄스동호회 가보면 몇년 뒤에 몸치도 춤 잘 추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계속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더라고요.
물론 계속 안되는 사람도 있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638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걸 [20] 원미동사람들12620 22/12/12 12620
3637 사랑했던 너에게 [6] 걷자집앞이야12061 22/12/09 12061
3636 게으른 완벽주의자에서 벗어나기 [14] 나는모른다13244 22/12/08 13244
3635 [일상글] 나홀로 결혼기념일 보낸이야기 [37] Hammuzzi12141 22/12/08 12141
3634 이무진의 신호등을 오케스트라로 만들어 봤습니다. [23] 포졸작곡가13900 22/12/08 13900
3633 현금사용 선택권이 필요해진 시대 [107] 及時雨15349 22/12/07 15349
3632 귀족의 품격 [51] lexicon14145 22/12/07 14145
3631 글쓰기 버튼을 가볍게 [63] 아프로디지아13752 22/12/07 13752
3630 아, 일기 그렇게 쓰는거 아닌데 [26] Fig.113676 22/12/07 13676
3629 벌금의 요금화 [79] 상록일기15670 22/12/04 15670
3628 배달도시락 1년 후기 [81] 소시15645 22/11/27 15645
3627 늘 그렇듯 집에서 마시는 별거 없는 혼술 모음입니다.jpg [28] insane13373 22/11/27 13373
3626 IVE의 After Like를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봤습니다. [7] 포졸작곡가13097 22/11/27 13097
3625 CGV가 주었던 충격 [33] 라울리스타14157 22/11/26 14157
3624 르세라핌의 antifragile을 오케스트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16] 포졸작곡가14184 22/11/25 14184
3623 토끼춤과 셔플 [19] 맨발14307 22/11/24 14307
3622 [LOL] 데프트 기고문 나는 꿈을 계속 꾸고 싶다.txt [43] insane14342 22/11/21 14342
3621 나는 망했다. [20] 모찌피치모찌피치14389 22/11/19 14389
3620 마사지 기계의 시초는 바이브레이터?! / 안마기의 역사 [12] Fig.114073 22/11/18 14073
3619 세계 인구 80억 육박 소식을 듣고 [63] 인간흑인대머리남캐15669 22/11/14 15669
3618 [테크 히스토리] K(imchi)-냉장고와 아파트의 상관관계 / 냉장고의 역사 [9] Fig.113422 22/11/08 13422
3617 [LOL]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5] 어빈13548 22/11/06 13548
3616 [LOL]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우는 것이다 [39] 마스터충달13545 22/11/06 1354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