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1/11/07 19:52:25
Name VKRKO
Subject [번역괴담][2ch괴담]햄버거 - VKRKO의 오늘의 괴담
지금 살고 있는 맨션에서 걸어서 몇십분 정도 가면, 햄버거 가게가 있었다.

프랜차이즈 가게가 아니라 수제 버거라는 것을 표방하던 곳이었다.

감자튀김과 음료수가 같이 있는 세트를 시키면 800엔이 훌쩍 넘는데다, 그다지 매우 맛있는 것도 아니었던 탓인지 언제 가도 손님이 없었다.



가게는 상당히 컸기 때문에, 종종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게에는 중년 남성이 계산대와 주방을 맡고 있었고, 아내 같아 보이는 여자가 서빙과 잡무를 맡고 있었다.

가게 안 쪽은 그 사람들이 집과 연결되어 있어서 음식점치고는 아마추어 같은 느낌이었다.



가게 그 자체도, 운영하는 부부도 마치 70년대 같은 느낌의 스타일이었다.

그것도 멋지거나 그리운 옛 추억이 아닌, 음침하고 가난한 느낌이었다.

플로어 중앙에는 각종 소스가 놓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살사 소스도 있었기 때문에,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을 때는 그 곳에 가서 식사를 때우는 일이 종종 있었다.

조미료를 두는 곳에는 [우리 가게의 햄버거에는 독자적인 조미료가 들어 있습니다. 소스는 한 번 드시고 나서 뿌려주세요.] 라는 메세지가 써 있었다.

그렇지만 독자적인 조미료라고 해도 케찹과 프렌치 드레싱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처음 갔을 때부터 살사 소스를 잔뜩 뿌려서 먹곤 했다.

그리고 아마 내가 3번째로 그 가게를 찾아갔을 때였을 것이다.

주문을 하는데 갑자기 [우리 햄버거는 그냥 먹어 보는 게 좋아요. 소스를 뿌리면 원래 맛이 지워지니까요.]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귀찮은 참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 예.] 라고 대충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날도 살사 소스를 잔뜩 뿌려 먹었다.

별 생각 없이 그 날 사건을 지나치고, 2, 3개월 정도 후 문득 또 먹고 싶어져 오랜만에 그 가게를 찾게 되었다.



[우리 햄버거는 그냥 먹어주세요. 소스를 뿌리면 맛을 알 수가 없잖아요.]

완벽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번 갔을 때와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아저씨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어조도 무엇인가 감정을 눌러 담은 것 같은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게는 계산대가 1층에 있고, 손님이 식사를 하는 플로어는 2층에 있다.

서빙을 하는 부인도 식사를 가져다 준 후에는 내려가 버리기 때문에 내가 햄버거를 먹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방금 전의 그 말투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비난 같은 느낌이었다.

언제나 내가 살사 소스를 잔뜩 뿌려 먹는 것을 보고 있던 것일까.

그렇지만 손님이 어떻게 먹던 그것은 자유다.



부인이 세트 메뉴를 두고 가는 것을 확인한 다음, 나는 또 소스를 가지러 가서 햄버거에 살사 소스를 잔뜩 뿌렸다.

어쩐지 아저씨가 강요하는 것 같아 화나지만 종종 먹으면 맛있다는 생각을 하며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반 정도 먹었을 무렵, 와장창하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소리가 난 쪽을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그 소리는 플로어 안 쪽 가게 주인집에서 난 것이었다.

거기에서 상반신만 보인 채 부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바닥에 던져서 깨버린 것 같았다.



순간 시선이 닿았지만 바로 눈을 깔았다.

나는 그 자리로 가게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저 그 시선이 무서웠다.



그 표정은 나에게 화를 내거나 위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아의 붕괴라는 것이 표정에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몇개월 뒤, 나는 그 가게 앞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다.



가게는 문을 닫고 없어져 있었다.

앞에 붙은 폐업 공지로 보아, 문을 닫은 것은 내가 그 가게를 마지막으로 찾은지 얼마 안 되어서의 일이었던 것 같다.






영어/일본어 및 기타 언어 구사자 중 괴담 번역 도와주실 분, 괴담에 일러스트 그려주실 삽화가분 모십니다.
트위터 @vkrko 구독하시면 매일 괴담이 올라갈 때마다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VK's Epitaph(http://vkepitaph.tistory.com)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1/11/07 20:29
수정 아이콘
으스스하네요. 왠지 있을 법한 이야기라서 더더욱 말이죠.
눈시BBver.2
11/11/07 22:46
수정 아이콘
장인정신...... 뭐 이런 건가요 0_0;
허클베리핀
11/11/08 14:35
수정 아이콘
그 햄버거가 맛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수없군요..흐흐. 왜 그런게 궁금하지ㅜㅜ
니아들스
11/11/08 22:48
수정 아이콘
아..그냥 한번만 시키는대로 먹어보지...
나는정이에사자다크항
11/11/12 18:59
수정 아이콘
시키는대로 그냥 먹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Abrasax_ :D
11/11/12 23:39
수정 아이콘
아 전 이런 게 좋네요. 있을 법한 이야기 말입니다.
초절정미소년
12/08/21 15:53
수정 아이콘
살사소스가 비싼게 아닐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95 [실화괴담][한국괴담]화상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530 11/12/10 6530
294 [번역괴담][2ch괴담]손자국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5762 11/12/08 5762
293 북유럽 신화 - 로키의 아들 [10] 눈시BBver.28817 11/12/07 8817
291 북유럽 신화 - 아스가르드의 성채 [10] 눈시BBver.28302 11/11/28 8302
290 [실화괴담][한국괴담]손 - VKRKO의 오늘의 괴담 [6] VKRKO 7050 11/11/28 7050
289 [청구야담]여자의 한(洪川邑繡衣露踪) [5] VKRKO 6440 11/11/26 6440
288 [번역괴담][2ch괴담]바다신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5992 11/11/24 5992
287 북유럽 신화 - 스카디 [4] 눈시BBver.28866 11/11/24 8866
286 [청구야담]귀신의 구슬(鬼物每夜索明珠) - VKRKO의 오늘의 괴담 [6] VKRKO 7150 11/11/22 7150
285 [번역괴담][2ch괴담]흙인형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441 11/11/21 5441
284 [번역괴담][2ch괴담]바다는 어느 쪽인가요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6111 11/11/14 6111
283 [실화괴담][한국괴담]낡은 의자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6362 11/11/13 6362
282 [청구야담]수령의 아이를 가르친 중(敎衙童海印僧爲師) - VKRKO의 오늘의 괴담 [11] VKRKO 6223 11/11/12 6223
281 [번역괴담][2ch괴담]안경 - VKRKO의 오늘의 괴담 [8] VKRKO 6325 11/11/10 6325
280 북유럽 신화 - 로키의 장난 (2) [7] 눈시BBver.27639 11/11/10 7639
279 북유럽 신화 - 로키의 장난 (1) [4] 눈시BBver.27829 11/11/07 7829
278 [번역괴담][2ch괴담]햄버거 - VKRKO의 오늘의 괴담 [7] VKRKO 6049 11/11/07 6049
277 [실화괴담][한국괴담]경찰 학교의 귀신 - VKRKO의 오늘의 괴담 [7] VKRKO 6502 11/11/06 6502
276 [실화괴담][한국괴담]기숙학원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111 11/11/05 6111
275 [번역괴담][2ch괴담]정글짐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691 11/11/04 5691
274 [번역괴담][2ch괴담]마네킹의 집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939 11/11/03 5939
273 북유럽 신화 - 로키, 합류 [10] 눈시BBver.28011 11/11/02 8011
272 [번역괴담][2ch괴담]실종의 땅 - VKRKO의 오늘의 괴담 [9] VKRKO 5675 11/11/02 567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