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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16 19:25:54
Name 화잇밀크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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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민들레 꽃 길 - 6 -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고 진한 빨강 색을 하늘에 퍼뜨리며 색의 농도를 희석시켜 세상에 알맞는 밝음을 선사했다.
그 빛의 퍼짐에 닭 또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힘차게 울어댔고 그 소리에 이소는 잠에서 깨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미세하게 열려진 문 틈으로 마당에서 빗질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소는 '먼저 일어난 민들레가 청소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퍼뜩 일어나 마당을 향했다.

"아가씨, 마당 청소는 제가 하겠습니다."

종 주제에 주인보다 늦게 일어나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안하고 있었다니.
이소는 자기 자신의 한심함을 책망했다. 하지만 민들레는 허겁지겁 나온 이소를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제가 하던 일이니 제가 끝낼게요. 어차피 몇 일전까지만해도 제가 했던 일이기도 하고 아침 공기를 마시며 몸을 움직여 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랍니다."

그래도 이소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몇번 더 자신이 한테니 집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지만 민들레가 굽히지 않아 할 수 없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이소는 아침밥을 준비하려다 문득 전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아까는 마당쓰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나가 거리낌없이 민들레를 마주했지만 생각해보니 자신은 허락없이 민들레의 입술을 훔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민들레의 행동을 긍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녀의 의사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비록 거기에서 끝났더라도 충동적인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잊지 못하는 이가 있음에도 입맞춤을 했다는 것이 어김없이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거의 고백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으니 민들레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 난감했다.

밥상을 다 차린 이소가 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마당 청소를 끝맞친 민들레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소는 아무 말없이 상을 내려 놓았다.
평소에도 이소는 별다른 용건이 없으면 먼저 말을 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같이 말을 꺼내기 난감한 상황이 되니 말없던 자신이 고마워졌다.

"잘 먹겠습니다."

민들레는 평소와 같이 인사를 하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식사가 끝난 이후의 하루도 별 다른 일 없이 보내게 되었다.
이소는 '어젯밤의 일이 꿈이었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민들레가 해준 해와 달의 이야기가 가슴을 흔들었던 감각과 그 감각에 이끌려 마주했던 입술의 온기가 생생하게 기억되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민들레에 태도에 변함이 없는 것이 자신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일부로 평소와 다름없이 대해주는 것이라고 추측한 이소는 그녀에게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러한 행동이 각자를 속이는 듯해 이소는 꺼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몰라도 정이 통했던 일이 있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민들레가 약간 무정해보였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자신에게는 더 생활하기 좋다고 생각을 하지만 왠지 이소는 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하루 하루가 평소의 하루와 같았다.
민들레는 계속 아침밥을 먹고 산에 갔다온 후 주민들과 만나 천관이 해야 할 기원, 예식, 제사 등을 하고 점심밥을 먹은 후 산에 오른 다음 내려와 하늘에 예를 올리는 기도를 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 다시 산에 갔다오고 저녁 식사를 먹고나서 세탁, 멱 감기 등의 개인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맞쳤다.
그런 큰 변화없는 일상 속에서 작게나마 바뀐 것이 있었는데 산마루에서 머물고 있는 시간이 길어진 것과 이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민들레의 눈길이 예전보다 더 그를 향했던 것이었다.

아련한 봄날 밤으로부터 일주일 가량이 흐른 뒤의 산행때 산 정상에서 명상에 잠겨있던 민들레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이소는 그녀에세 다가가려했지만 민들레가 오지말라는 듯한 자세를 취해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녀는 흐느낌도 없이, 훌쩍임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몇 분을 그 상태로 있던 민들레는 진정이 되었는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멍한 눈동자로 하늘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산을 내려갔고 이소는 아무 말없이 그녀를 따랐다.


아침 산행이었던지라 아직 두 번의 산행이 더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민들레는 산에 오르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만나지도 않고 계속 신수(神樹)에 기대어 홀로 있을 뿐이었다. 이소가 식사를 차려줘도 몇 수저도 들지 않으며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 식사 이 후에 그녀는 마당에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이소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러냐고 묻고 싶었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민들레의 슬픔이 담긴 이상한 행동을 보고 있으니 이소는 자신의 마음이 타들어감을 느꼈고 그것이 옜 여인에게 느꼈던 감정과 같은 것임을 알았을 때 민들레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혼자만의 마음으로 민들레를 대할 수 없었는데 해와 달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밤 이후의 일을 기억하기에 민들레는 어찌되었건 평소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옜 연인의 존재는 마지막까지 자물쇠가 되어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도록 막았다.

유성우가 지구를 향해 떨어질 때 남기는 긴 꼬리처럼 눈물 또한 눈에서 지구를 향해 흘러내릴때 얼굴에 긴 눈물자국을 새기며 지나간다.
청명한 밤에 등을 돌린 채 하늘을 응시하는 민들레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 아닌 지는 이소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두개씩 적은 수 일지라도 연속하여 떨어지는 유성우가 보이자 왠지 밤하늘이 그녀를 대신하여 울어주고 있지 않나하는 감성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평소에 잠자리에 들던 시간이 되었을 때 이소는 이부자리를 깔고 민들레가 자기를 보기 껄끄러워 할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잠든 척을 했다.
정말로 잠들어 보려고도 하였으나 밖에 있는 그녀 생각에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후 방문이 열리며 민들레가 들어왔고 그녀는 방에 들어선 다음 가만히 서 이소를 바라보다가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녀의 숨소리로 그녀가 잠이 들었음을 알 수 있게 된 이소는 그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깬 이소는 민들레가 방에서 보이지 않자 그녀를 찾아서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 안에도 민들레는 없었고 어제의 일 때문에 더 걱정이 생긴 이소는 그녀를 찾기 위래 낮은 돌담으로 이뤄진 집밖으로 나가려했는데 그 때 딱 민들레와 마주치게 되었다.
허겁지겁한 표정이던 이소와 마주친 민들레는 묘하게 아무 일 없던 일상에서 보여주던 미소로 웃으며 말했다.

"이소씨, 마지막 산행을 하러갈까요?"

마지막 산행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과 미소의 위화감에 이소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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