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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5/08 23:09:02
Name 저그ZerG
Subject '원균'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험이 끝나서 여유를 찾아서 오래간만에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이덕일·이희근 지음, 김영사)

라는 책인데, 읽다가 원균에 대해 흥미로운 글을 읽었습니다.



글이 중간길이 정도 되고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해서 원문을 다 올리지는 못합니다만, 책의 내용을 몇가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원균은 무과에 급제하여 조산 만호로 있으면서 변방의 오랑캐 토벌에 세운 공으로 부령부사에 특진되었으며, 병사 이일과 시전부락을 격파한 공으로 선조 25년 경상 우수사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 당시의 엘리트 코스였으며 그가 정당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단지 연줄만으로 경상 우수사의 자리에 올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2. 많은 사람들이 원균을 평가함에 있어서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을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둘 중 하나만을 근거로 하여 원균을 평하는것은 온당치 않다. 《선조실록》은 광해군 때 편찬되어 당시 집권세력인 북인의 영향이 많이 반영되어 북인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있었던 원균이 상대적으로 잘 기술되었다. 그리고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때 편찬되어서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 남인의 영향이 많이 반영되어 북인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있었던 원균이 폄하된 부분이 없지않다. 그러므로 양 사초 모두를 두루 살펴야 원균을 제대로 평가했다고 할 수 있다.

3.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에 원균이 오름으로 인해서 이 자리바꿈이 원균의 책략에 의한 것처럼 각색되어 원균이 전 민족적 공적이 되었지만, 사실 이는 원균은 책략이 아니라 어리석은 조정이 왜정 가등청정의 계략에 넘어간 결과였다.



위 책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1. 원균은 용감한 무장으로서 이순신만큼은 못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싸웠다.

2. 이순신이 투옥된 후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었다.

3.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도원수 권율의 명령을 받아 재침하는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4. 선조의 호의로 선무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

5. 종합해 보면 원균은 불패의 신장은 아니지만 공적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는 한사람의 용감한 장수이자 왜적에 맞서 싸워 목숨을 바친 공신일 뿐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그야말로 민족의 영웅으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순신이 영웅이 되기 위해 꼭 원균이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것은 아니다.
    이순신은 유독 인재 키우기보다 인재 죽이기에 열중하는 우리 풍토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인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순신을 추앙하기 위해 다수의 문신들이 왜적의 침입에 놀라 달아나기 바쁜 와중에 힘을 다해 싸웠던 원균같은 무장이 희생양이 될 필요는 없다. 하물며 나라를 위해 전사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전 위의 글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남깁니다.



그리고 한마디 개인적 생각을 덧붙입니다. 많은 분들이 '원균이 이순신이 일궈놓은 그 군대 다 말아먹었잖아! 그러니까 나쁜놈이야!' 라고 말을합니다. 그렇지만 전 그건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시대에 이순신 장군이 이상한 사람인겁니다. 인간은 보통 자기가 속한 사회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의 조선사회는 무(武)의 측면에서 일본사회를 이길 수 없는 사회였습니다. 조선사회의 한계로 원균이 패배한것이지, 원균이 못나서 진건 아닙니다. (물론 원균이 더 잘낫으면 이겼겠지만, 왜 그가 그 정도까지밖에 자랄 수 없었는가는 그의 책임이 아닌 조선사회의 책임입니다. 그 때문에 그가 욕을 먹는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쓴 후, 리플을 보고 덧붙인 글)
happyend 님이 댓글로
'그런 면에서 원균을 평가하자면 그냥 장수...이순신에 비할 바 없이 평범한 장수...
그에 비해 너무 높게 평가되는 것도 옳지 않을 듯하며...이순신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너무 낮게 평가되는 것도 옳지 못할 듯....
이런 말이 있어요.쇠가 오른 쪽으로 너무 구부러지면 왼쪽으로 많이 당겨줘야 한다는....
원균에 대해 재평가하려는 사람들은 그런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지....'
라는 말씀을 달아주셨습니다.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 구부렸던것 같군요. 제가 하고싶은 말을 happyend님이 댓글로 잘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균을 평가하자면 그냥 장수' 이 말이 가장 하고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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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
05/05/08 23:17
수정 아이콘
.... 엄청난 맆흘이 뒤따를 것 같은 예감-_-;;;;

원균의 문제는 역시 자기가 올라가지 말아야 할 자리에 올라갔다고 생각되네요. 작전수행능력은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칠천량의 패배는 B0급과 A-급 장수가 만나서 A-급이 이긴거라고 생각합니다. -_-;;;;
05/05/08 23:18
수정 아이콘
이순신장군;;; 저의 부모님 세대 때의 박정희 대통령이;; 강조해서 우리모두 마음에 위인중 위인으로 자리매김한듯;;(물론 그게아니어도 정말 영웅입니다만;;) 그렇죠 이순신장군은 좀 이상한 사람;;; 당연히 져야 할 전투를 다 이기는;;
05/05/08 23:20
수정 아이콘
사실이 그렇다면 원균을 탓할 수는 없는 거겠죠. 열심히 잘싸운
사람한테 '졌으니까 즐'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콜록)
워크초짜
05/05/08 23:22
수정 아이콘
이순신 장군이 대단한 건 변함없네요 ;;
발걸음
05/05/08 23:25
수정 아이콘
그, 영국의 최고 장군이,, 이순신 장군이 최고라고 했으니.......자기는 그사람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고.....
날씬공자
05/05/08 23:26
수정 아이콘
지금 뭐라 말할수 없죠.. 진실은 저너머에.. 하지만 패장은 말이없다라는 말이 있죠..
05/05/08 23:27
수정 아이콘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순신 장군은 머큐리에서 저그세명
(같은 편이었다가 얼라이 푼 한명까지.ㅡㅡ)상대로 프로토스 골라
앞마당 멀티만 먹고 싸웠는데 교전에 한번도 안지고 적절한 운영을
통해 상대로부터 GG를 받아낸 케이스라 할수 있는거죠..(쿨룩)
시커.R
05/05/08 23:27
수정 아이콘
잘났다, 못났다는 것은 상대적인 평가 방법입니다. 그 당시 이순신과 원균을 두고 보면.. 누가 잘났는지, 누가 못났는지는 뼌히 보히는 일입니다.-_-

그리고 사회적 환경으로 그 정도 밖에 자랄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패했다는 것도 조금 잘못된 주장으로 보입니다. 원균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왜적에 맞써 싸운 의병들도 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물며 정규군을 이끌면서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도 그는 패했습니다. (물론 의병에 대한 왜병의 방비와 정규군에 대한 왜병의 방비가 같을리는 만무합니다.)
원균이 이끄는 군대는 패하고 많은 정규군을 잃었습니다. 단지 사회적 잘못으로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네요.
사회적 한계에 얽매인 사람이라면 애초에 중요한 상황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으며, 자신의 능력을 알고 그것을 사양하던지 하는 것이 올바른 처신으로 보입니다.
블루 위시
05/05/08 23:29
수정 아이콘
칠천량에서 수군 말아먹었을때 원균의 책임이 컸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정의 명령에 대한 충무공과 원균이 대응방식은 상당히 달랐죠..
비난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___-;;

맨손에서 그런 함대를 만들고..
전임자가 말아먹은 함대를 비슷한 규모로 재건한 충무공..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이점이 의외로 묻혀져 있더군요..)
자급자족하면서 싸우는 장수가 몇명이나 있었는지..-_-;;
intothestars
05/05/08 23:30
수정 아이콘
제가 요즘 3차대전, 데프콘, 동해 등을 쓴 김경진씨의 임진왜란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요.. 이 책은 소설 중간중간 실록, 징비록 등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근데 그 역사적인 자료들을 놓고 본다면 원균이라는 장수는 정말 찌질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듯 하네요.. 개전 초기에 경상우수군 전선을 모두 좌침시킨것 부터해서 칠천량해전도 실록의 내용을 보면 정말 어이없더군요.

그리고 원균은 당시 서인의 거두 윤두수, 윤근수 형제들과 사돈지간이라고 합니다. 연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요.
05/05/08 23:33
수정 아이콘
지상전투에서는 제법 맹장소리를 들었다고 하던데... 수상전을 할만한 재목은 아니었나봅니다.(쩝)
물탄푹설
05/05/08 23:34
수정 아이콘
수양제의 대병력을 을지문덕장군이 막은게 왜 대단한지 아실겁니다. 그전쟁이 일국 그당시 초강대국인 수나라의 사실상 명운을 갈라논 대참패였기에 단순히 백만대군이 대단해서가 아닌것 처럼 칠천량전투가 절대 원균과 나뉘어질수 없는것도 그전투가 사실상 일국의 명운을 가를 대전투였기 때문입니다. 일국의 명을 가를! 한국가의 기반을 이루는 그것도 국운을 걸고 벌이는 전쟁의 와중 그기반중의 기반이 하루아침에 사라진겁니다. 말그대로 하루아침에 칠천량이 조일전쟁에서 얼마나한 전투인지를 안다면, 원균이라는 무장으로 그것으로 나라의 녹을 먹는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출세의 정점까지 오른 자라면 자손만대가 지나도 하늘을 볼면목이 없어야 당연하고 거기에 희생양따위의 말은 원균이라는 역사상인물을 더 비참하게 떨어트리는 변명일겁니다.
저그ZerG
05/05/08 23:39
수정 아이콘
시커.R님//
글 말미에 '사회적 한계에 얽매인 사람이라면 애초에 중요한 상황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으며, 자신의 능력을 알고 그것을 사양하던지 하는 것이 올바른 처신으로 보입니다.' 라는 말씀을 붙이셨는데요, 그럼 원균이 사양하면 누가 삼도수군통제사를 맡아야 했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반역죄란 누명으로 '절대' 다시 복권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역죄라는 누명을 쓰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이전의 장군의 절대적 무위때문이었지, 원래대로라는 죽는게 당연한 죄가 반역죄입니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은 일단 패스.
그럼 누가해야 할까요? 바다위에서 한번도 싸워본 적 없는 권율장군? 아니면 대규모 정규군(게다가 수군을 지휘해 본 적 없는)을 단 한번도 지휘해본 적 없는 곽재우 장군같은 의병장들?
원균은 이순신을 제외한다면 조선 최고의 명장이었습니다. 그는 장군이 된 것 자체가 무과 급제를 통해서였구요(수능 1등으로 패스해서 대학가서 사법고시 1등으로 패스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북방에서 전공을 쌓아서 당시 그 누구보다 전공이 높았구요, 남쪽 해전에서 단독 출전에서는 졌지만 이순신 장군과 호흡을 맞춰가면서 승리해 본 경험도 있는 장군이었습니다.
대체 원균이 아니면 누가 해야한단 말입니까? 자신의 능력을 알고 그것을 사양해야한다고 하셨는데요, 그가 사양해봤자 그보다 더 좋은 카드가 나올수가 없었습니다.
happyend
05/05/08 23:41
수정 아이콘
이순신과 원균의 대립을 필요로 했던 것은 정치적 이유였습니다.두 사람이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유명한 일이므로...(조선왕조실록에 아주 많이 나오죠.그 두 사람 말고도 사이가 안 좋아 조정회의에 입방아가 오른 두 명의 장수가 있었습니다만....일본에도 가토와 고니시가 라이벌 그 이상의 견제와 시기와 질투가 있었고...그런건 조직사회에서 흔한 일일지도...)
1.선조...역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민중적 영웅인 김덕령을 역모죄로 죽였고,그 연장선에서 이순신을 폄하하였죠.전쟁이 소강상태일 때 있었던 일들 중 하나이죠...선조를 따라 의주로 피난간 사람들을 호종공신이라 하는데 그 숫자는 외적을 맞서 싸운 공신의 5배에 육박하며 김덕령을 비롯한 의병장을 죽인 공신들을 난을 진압한 공신이라 하는데 역시 만만치 않은 숫자임을 보았을 때 전쟁을 통해 커진 세력에 대해 견제하려고 하면서 이순신을 이용했지요.
2.인조...오랑캐 만주족에게 무릎을 꿇었으니 반대급부가 필요했죠.그래서 원균을 싹 죽이고 이순신을 높이는 최초의 일을 시작하였죠.역시 인조는 정치적 입지를 위해 자기 아들인 소현세자도 죽일 정도였으니...그가 한 원균죽이기야 말다했죠.
3.정조...역시 이순신을 통해 왕권강화를 계획했죠.그래서 이순신의 일대기는 이때 정비되었죠.충성스런 신하 효심이 지극한 아들...유교적 이데올로기의 대변자로...유교적 제왕을 꿈꿨던 정조의 요구에 의해 이순신은 영웅중의 영웅으로 원균은 졸장부 중의 졸장부가 되었죠.
4.박정희...군출신으로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장수이자 민중의 영웅이었던 이순신이 필요했죠.이순신은 성웅의 자리에 오르고....

냉정하게 원균은 당시 수많은 장수 중 하나죠.많은 장수가 패했고,많은 장수가 승리했듯이...
다만 이순신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그가 자주 거론되는 것은 어쩌면 조선왕조실록에 라이벌로 거론되었던 이유로 받는 불이익일지도 모르죠.심지어 묘가 파헤쳐질 정도로 그가 패륜을 범한 것은 없지만....이순신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낀 죄가 죄라면 죄이죠...

그런 면에서 원균을 평가하자면 그냥 장수...이순신에 비할 바 없이 평범한 장수...
그에 비해 너무 높게 평가되는 것도 옳지 않을 듯하며...이순신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이유때문에 너무 낮게 평가되는 것도 옳지 못할 듯....
이런 말이 있어요.쇠가 오른 쪽으로 너무 구부러지면 왼쪽으로 많이 당겨줘야 한다는....
원균에 대해 재평가하려는 사람들은 그런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지....

이상...사견^^
세리비
05/05/08 23:42
수정 아이콘
불멸의 이순신, 원균 그리고 원균부터
난중일기 정본, 징비록에 더해서 선조실록, 수정실록 관련 논문
그리고 최근에 출판되고 있는 김경진, 안병도, 윤민혁 공저 임진왜란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건 하나... 사람은 많이 알아야 속지 않습니다.
기다림...그리
05/05/08 23:43
수정 아이콘
수군의 장수가 육지에서 전사했습니다.....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요?수군의 계속된 승리는 이순신장군의 역량만큼 조선 판옥선의 우수성에도 기인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뇨... 적어도 육군이 아닌 수군은 질만한 상황이 아니였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원균은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저그ZerG
05/05/08 23:44
수정 아이콘
물탄푹설님//
저도 원균이 영웅이라고 주장하고 싶은건 아닙니다. 단지 지금은 너무 매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린 글입니다.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 진 장군은 물론 패전지장으로서 어느 정도의 불명예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그 패전이 원균만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등청정의 계략에 속은 조정의 잘못도 있고, 원균을 그 정도 인물로 밖에 키워내지 못한 조선사회의 책임도 있습니다. 전 단지 원균이 패전지장으로서의 불명예만 갖기를 바라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겁니다. 요즘 원균에 대한 글들을 보면 마치 원균이 성웅인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든지 흠집내고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처럼 호도되는 모습들이 보여서 그런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던겁니다.
05/05/08 23:46
수정 아이콘
저기요;;딴지입니다만.. 영국의 어느장군이 이순신 장군이 최고라고했나요?;;
lilkim80
05/05/08 23:46
수정 아이콘
원균에 대해서 재평가를 하자 뭐 이런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시대에 관해 혹은 그시대의 전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서 관련 자료를 많이 보고 느낀 바로는 원균이 명장이라는 건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특히 수전에서는 더 그렇죠..'당파전술'이니 뭐니 하지만 그거 조금만 알아보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린지 알 수 있죠.. 그 밖에도 여러가지 자료를 읽다보면 참 한숨 나오죠.. 물론 조일전쟁(단순 난리로 푠현하는 것보다는 국가간의 전쟁이었죠..)의 대표적인 졸장으로 원균을 들긴 하지만
뭐 그분 말고도 문제가 많긴 했죠.. 아마도 이순신 장군 옆에서 제일 잘 비교대상이 될 수 밖에 없던 위치가 지금에 와서도 좋지않은 유명세를 만들에 냇죠.. 사실 알고보면 더 찌질한 장수도 많았죠..ㅡ.ㅡ;;;
05/05/08 23:50
수정 아이콘
부루// 아무래도 이야기 중간 과정에 하나가 생략되어 올라온 글
같습니다. 왜 그거 있잖아요. 러일전쟁 당시 일본에서 전신이라
추앙받던 장군이 했다던 말.('이순신 그가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세계의 바다를 제패할 것이다'였던가..)
lilkim80
05/05/08 23:50
수정 아이콘
부루님// 영국의 장수가 아니라 일본의 도고장군이었죠.. 자신을 넬슨과 비교할 순 있어도 이순신과 비교할 수 없다 자신은 이순신에 비하면 하사관 정도다.. 뭐 이런 말을 러일 전쟁 직후 했다고 합니다.
저그ZerG
05/05/08 23:52
수정 아이콘
부루님//
영국은 잘 모르겠고요, 일본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1907년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 해군 총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나의 공로를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순신 제독의 업적에는 따라갈 수 없다" 고 하였습니다.
05/05/08 23:53
수정 아이콘
lilkim80 // 그렇군요.. 나폴레옹 무찌른 넬슨 보다 이순신을 높게 평가하다니 대단하군요;; 저는 지식이 얕아서 논쟁에 끼어들수가없군요 ㅠㅠ 댓글들이나 열심히 볼랍니다,,
05/05/09 00:01
수정 아이콘
왜 그런 이야기도 있죠. 세계 4대 해전이라고 해서 여러나라의
사관학교 학생들이 배우는데 거기에 트라팔가 해전과
한산도 대첩등이 포함되어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높게 쳐주는게 한산도 대첩이라고 하더라구요. 들은 이야기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세계 4대 해전 중 한산도 대첩이 포함되는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콜록)
블루 위시
05/05/09 00:02
수정 아이콘
원균말고 이억기가 지휘했으면 그 정도의 참패는 면하지 않았을까요??


왜란 초기에 충무공의 협조요청을 거절했다가 충무공이 몇차례의 승리를 거둔 뒤에야 충무공에게 협조한 점(약간 기회주의자 성형이 있었는지.. 아니면 충무공처럼 단시일내에 병력소집을 못한건지 잘 모르겠음).. 왜란내내 눈을 확 끌만한 경력을 거두진 못했고.. 충무공이 아닌 원균의 휘하에 있을때 너무 무참히 패배했다는 점에선 마이너스평가를 받겠지만..

왜란내내 전라 좌수사란 제자리를 지켰다는 점.. 초기 몇몇 전투를 제외하곤 항상 별 트러블없이 충무공과 탄탄히 콤비를 이뤘던 점.. 충무공의 투옥후에도 당당히 그를 변호한 점은 플러스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북방에서 세운 전공으로 젊은 나이에 전라우수사가 되었고(원균의 전공과는 달리 객관적 증거들이 상당함), 임진왜란 내내 수전에서 수많은 왜적을 격파했구... 그의 함대 규모는 원균과 달리 상당히 실했죠..

칠천량때도 대패했지만 원균의 무리한 진격에 대해 반론을 폈고.. 전투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결로 생을 마무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란시 자결로 생을 마친 우리나라관군지휘관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높이 사야할 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원균과 달리 쟁공도 없었죠
저그ZerG
05/05/09 00:05
수정 아이콘
블루 위시님//
칠천량에서의 진격명령은 원균이 내린게 아니라 조정에서 하달된겁니다. 당시 전쟁터에서의 최고 군권은 장군이 아니라 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명령을 어기면 원균도 이순신과 같은 죄(반역죄)를 뒤집어 썼어야 합니다.
물론, '그 명령을 듣고 패배할 수는 없다! 반역죄를 지을지언정 부하를 사지로 몰아넣을수는 없다!' 는 마음가짐으로 물러나신(?) 이순신 장군에 비해서는 나쁜 행동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그 책임을 원균에게 물린다는건 좀...
눈시울
05/05/09 00:05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도고가 자신을 넬슨과 비교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도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_-;;;;
저그ZerG
05/05/09 00:07
수정 아이콘
양정민님//
그 하사관 얘기는 lilkim80님께서 하신거에요 ^_^ ;;
05/05/09 00:08
수정 아이콘
원균은 자신의 능력이상의 직책에 있었고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몰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또 자신의 능력이상으로 욕심을 가졌던것이 무모함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뭐 통솔 10 무력 10 따위의 능력이 전무한 찌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느정도 능력이 있던 장수라고 생각합니다만 자신의 능력보다 이상가는 직책에 있었기에 그것이 자신과 또 조선 수군의 파멸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양정민
05/05/09 00:09
수정 아이콘
부루님// 저그ZerG님의 말씀데로, 일본 총사령관 도고 헤이하치 제독이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라는 말을 했었습니다.이 이외에도 백야님 말씀처럼 "이순신 장군이 일본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전 세계를 제패했을 것이다" 도 있구요.

참고로 적이었던 러시아 함대의 3/1 규모 밖에 안되는 함대로 이겼던 분이 도고 헤이하치 제독이죠.영국의 넬슨 장군보다도 높게 평가 됬던걸로 기억합니다.

저그ZerG님//앗...댓글 수정한다고 잠깐 지운사이에...^^:::
양정민
05/05/09 00:11
수정 아이콘
눈시울님// 그런가요? 저도 어디선가 봤던거 같기는한데... 자신이 직접 비유했던건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
05/05/09 00:11
수정 아이콘
저그ZerG 님 말대로 진격명령은 조정에서 하달된겁니다만 그러한 진격을 주장하며 이순신을 음해했던게 또한 원균이었죠. 조정의 진격명령에 이순신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거절했지만 원균은 자신은 삼군 수군통제사에 오르면 왜군에게 진격하여 박살을 낼수있다고 말했죠. 그래서 조정이 이순신을 내쫒고 원균을 그자리에 앉히니까 갑자기 말을 바꾸어 진격할수없다라고 하고 어이가없는 조정은 권율에게 시켜 원균을 곤장을 때립니다. 결국은 칠천량해전의 패배는 원균이 자초한 패배였다라는거죠.
눈시울
05/05/09 00:13
수정 아이콘
정민님 // 음. 그 말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얘기는 아니었고요() 그냥 저로서는 넬슨을 더 높게 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회였습니다. ^^;;
블루 위시
05/05/09 00:14
수정 아이콘
충무공이 불가능하다고 한일을..
(부산에 있는 왜군 격파인걸로 기억.. 틀리면 지적해주세요..)
원균이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 지휘관 교체사유중 하나가 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원균은 지휘관 임명후 말을 바꿨죠..
칠천량으로의 진격은.. 원균에겐 공약실천과 같은 일이었는데..
애당초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죠..
그리고 칠천량에서의 작전수행도 상당히 부적절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군에게 완전히 놀아난 걸로 아는데.. 그렇다고 이억기처럼 투지를 불사른 것도 아니구요..

원균이 동정을 받기엔.. 그가 저지른 일이 너무 컸죠.. 정상적이라면 그 상황에서 수군도 종친 겁니다..-_-;; 그 상황에서 수군이 부활한 게 희한한 일이죠..
저그ZerG
05/05/09 00:18
수정 아이콘
SEIJI님, 블루 위시님//
그건 선조수정실록의 내용이고요, 선조실록의 경우에는 오히려 원균이 출진을 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걸 권율장군이 진격해야한다고 주장해서 나가서 싸우다가 졌다고 기술되어있습니다.
두 쪽 다 당시 집권당의 색이 진하게 베어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봐서는 안 될것 같구요, 둘을 잘 섞어서 보는 혜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lilkim80
05/05/0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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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원균은 전쟁 발발 직후에 자기 휘하에 수많은 전함을 아무런 저항 한번 없이 모두 수장시키고 도망쳤습니다.. ㅡ.ㅡ;;;
그리고 위에 어느 님이 말씁하신대로 칠전량 해전때 육지에서 죽었죠..
수군 장수가 배와 군사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쳤다 적군에게 포위되서...
만약에 전쟁 발발 직후 그 많은 전함을 침몰시키지 않고 재해권을 잃지 않았다면 전쟁의 향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르는 거죠..
아.. 전쟁 발발 직후 원균과 함께 또 한명의 장수도 전함을 수장시키고 도망쳤다고 하는데 지금 바로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질럿과뮤탈이
05/05/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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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세리비님의 많이 알아야 속지 않는다는 댓글에 일단 공감하구요.

저그님은 원균명장론쪽에서 기술된 책한권만을 읽고 자기 주장을 펼치시는것 같은데요. KBS"불멸~"게시판에 가시면 이에 대한 많은 토론들이 진행되었더군요. 내용이 굉장히 많지만 쭈욱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블루 위시
05/05/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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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관군들이 깨졌어도..
최후의 보루로 남은 게 수군이었죠..
충무공이 백의종군과 교환하면서 지켰던 수군을
말아드신 분은 원균입니다.. 불운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네요..
05/05/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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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역시 원균이 출진을 해선 안된다라고 주장했다라고 알고있습니다. 근데 조정에서 명령받은 권율장군이 진격해야한다고 주장해서 나가서 싸우게 되었는데요. 문제는 원균은 이순신이 삼군수군통제사에 있기전에는 나가서 싸우자라고 주장했다라는겁니다. 그래서 조정이 이순신 쫒고 원균을 그자리에 앉혀두니 원균이 갑자기 말을 쏵 바꾼것이지요.
저그ZerG
05/05/0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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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럿과뮤탈이사랑할때님//
책 한권만 읽고 주장을 펼치는 건 아니구요, 이전부터 신문이나 다른 소책자 및 자잘한 글들을 읽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옛날에 어디선가 봤는데요 원균이 안나쁜 놈이래요~' 라고 하면 신빙성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 책 본김에 쓴겁니다.
세리비
05/05/0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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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ZerG님 댓글들을 보니 손이 근질근질한데 SEIJI님이 적절한 반론을 펼처 주셨군요. 맞습니다. 당시 전라좌병사이던 원균이 윤두수를 통해 선조에게 장계를 올리죠. 이순신은 못하고 자기는 할 수 있다고. 이전부터 권율에게 미움을 받고 있던 원균을 이런 월권행위를 더더욱 미운 털이 박히고 나중엔 곤장까지 맞게 됩니다. 아니 수군전투 못한다고 인이 박혀서 육지로 좌천된 장수에게 통제사를 제수하는 것을 쌍방 간의 정치적 거래말고 무슨 수로 설명한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억기가 아쉽긴 하지만, 종친배제 논리 때문에 통제사에 오를 순 없었죠.

또 도고가 쓰시마해전 전승축하연에서 이순신과 넬슨을 비교했다는 것은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지만(아마 이건 과장일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도고라도 당시 일본육군은 독일을, 해군은 영국을 모델링하고 있고 지원도 받던터라, 영국의 영웅 넬슨을 깎아 내리는 발언을 했을리는 없죠.) 당시 일본 해군사관학교 교육과정 중 이순신에 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며, 전쟁 이전부터 공공연히 자신이 이순신을 존경한다라는 발언을 한 것도 맞습니다.
블루 위시
05/05/0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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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리고 이억기는 35살 먹은 '왕족'이었죠..
수군통제사.. 절대 안 시켜줬겠네요..
(정말.. 원균밖에 할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이..-___-;;)
세리비
05/05/0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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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ZerG// 아직도 읽으셔야 할 책들이 쌓여 있답니다.
lilkim80
05/05/0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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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ZerG님//
원균이 출진을 해서는 안되다는 건 권율이 출진을 강행한 것은 맞는데 그것은 자신이 삼도수군절제사가 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원균은 출진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권율에게 곤장까지 맞고 등떠밀려 출진을 강행하다 칠전량에서 대패했죠..
하지만 그전에 원균이 이순신이 출진을 거부한다 자신을 지휘관으로 삼으면 부산으로 진격해 적들을 섬멸하겠다고 조정에 말한것도 사실입니다.
두가지 일이 모두 일어났던 일입니다.
아마 원균도 지휘관이 되기 전에는 지휘고나이 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지만 지휘관이 되고 나서는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짓인가를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진퇴양난 이었겠죠..
저그ZerG
05/05/0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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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비님//
물론 제가 모든걸 다 알고있는건 아닙니다.
위에 제가 댓글로 단 것은 갑자기 오늘 책 한권 읽고 '이거 알았네? 써먹어야지' 라고 해서 이 글은 쓴 것은 아니라는걸 말하고 싶었던 것 뿐입니다.
블루 위시
05/05/0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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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인신공격으로 비칠 수 있는 댓글들은 서로 조심..^-^;;
저그ZerG
05/05/0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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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JI님//
원균이 자기는 이길 수 있다라는 장계를 올린게 언제죠?
제가 알기로는 스토리가 '가등청정이 조선조정에 거짓 정보를 흘림 -> 조선 조정에서 진격명령을 하달 -> 이순신 장군이 안 속음 -> 국왕의 명령을 어긴 죄로 반역죄에 처해짐 -> 백의종군 하게되고 그 빈 자리를 원균이 채움'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언제 장계를 올린거죠?
05/05/0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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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세계 4대해전이란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싸운 '살라미스해전, 유럽과 오스만 투르크가 싸운 레판토해전, 영국의 넬슨과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싸운 트라팔가 해전, 그리고 이 한산도대첩을 듭니다. 전적을 따지자면야 명량해전이 더 엄청나겠지만, 그건 특수한 상황에서나 볼수 있는 예이기때문에, 사관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표준적인 해전이라면 학익진을 이용한 이 한산도 대첩이 들어갈 겁니다.
05/05/0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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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ZerG님세리비님의 답글을 참고하세요
디씨 역사 갤러리에서 원균으로 검색하면 더많은 지식을 얻으실수있을겁니다. 저역시 원균을 찌질이라고는 생각하지않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위치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장수였습니다.
블루 위시
05/05/0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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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이전인 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가등청정건이전에도 부산에 주둔한 왜군을 격파하라는 조정의 압력이 계속 하달됐으나.. 충무공이 거부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시대가 시대니만큼.. 정면으로 개기진 않았겠죠..-___-;;) 당시 수군의 전력은 왜군의 서해진출은 막을 수 있으나.. 본거지 함락에는 역부족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왜군의 서해진출을 막은 것은 전력이 우세했다기보단 남해의 수로들을 적절히 봉쇄한 결과로 알고 있습니다.. 원균이 가능하다고 한 일은 부산에 위치한 왜군본거지 분쇄로 알고 있습니다..
저그ZerG
05/05/0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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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JI님//
저도 딱히 원균을 영웅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_- ;;
되게 과열됐네요. 물론 과열될걸 예상은 했지만 ~_~
저는 원균이 잘했다는 얘기를 하고싶은게 아니라 나라팔아먹은 매국노수준으로 폄하되는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싶었을 뿐입니다.
위에 하단부에 글을 덧붙였는데 그거 좀 봐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저그ZerG
05/05/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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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위시님//
답변 감사합니다 ^^
블루 위시
05/05/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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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가?? 아님 누가 토 좀 다시구요..^^
원균이 약자라면 약자지만.. 동정받을 약자란 생각은 안 드네요..
05/05/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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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그렇군요.(확실히 본게 아니라 확신이 않섰더랬죠.ㅡㅡ)
어쨌든 이순신 장군은 아무래도 제 5의 종족이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ㅡㅡ)
저그ZerG
05/05/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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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리플을 보다가 happyend님이 좋을 말씀을 해주셔서 본문 하단부에 붙여넣었습니다.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
전 이만 밤이 늦어서 자러가야겠네요. 불질러놓고 도망가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_^ ;; 1시간 넘게 이 글 앞에 붙어앉아있었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_^ ;;
05/05/09 00:48
수정 아이콘
네. 그냥 장수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능력이 부족했지요. `도덕적으로 해이한` 장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05/05/09 00:52
수정 아이콘
원균은;;; 맹장이조 임진왜란의 1등공신 3명중 한명이므로;;;;
사실 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은, 막연하게 나쁘게만 생각되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무인으로써의 기백과 용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에게 과가 있다면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今臣戰船 尙有
05/05/09 00:54
수정 아이콘
원균을 재조명하자는 글같은데,하루밤사이에 조선수군을 궤멸시킨 장수를 재조명하고 재조명,,십수년을 해봐야,별로 나올껀 없습니다,
조정을 탓할수도 있지만,그보다 더 원균의 잘못도 크기때문이죠.
05/05/09 00:56
수정 아이콘
육지에서 잘 싸우는 장수를 수군을 이끄는 장수로 임명한 것이 잘못인 것 같습니다. 조조는 육지에서 정말 잘 싸우는 자신들의 장수를 놔두고 채모와 장윤을 수군도독으로 삼았었죠. 조조도 그 싸움에서 지긴 했지만;
어쨌든, 전적으로 원균의 잘못은 아니죠. 칠천량 전투의 패배도요. 물론 책임은 있긴 하지만, 원균의 탓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Sulla-Felix
05/05/09 01:01
수정 아이콘
《선조수정실록》은 인조 때 편찬되어서 당시 집권세력인 서인, 남인의 영향이 많이 반영되어 북인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있었던 원균이 폄하된 부분이 없지않다.<-누군지는 몰라도 참 심하네요.
당시 이순신은 류성룡 직계.
원균은 '서인'인 윤두수 직계.
이렇게 백그라운드가 있었습니다. 뜬금없는 북인이라니... 아무리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해석한다지만 이런 '개소리'를 듣고 잊자면
괴롭습니다.
Sulla-Felix
05/05/0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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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에 이순신 함대는 갑자기 16점 회두(해군용어:180도 회전)를 하였는데 이러한 기동은 일반인들이 종이(책)으로 보면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나 오직 해군 장교들만이 잘 훈련된 함대의 표준으로 받아들일 것이다.(즉 잘 훈련된 함대만이 할 수 있는 기동이다라는 뜻이겠죠)

이상이 위대한 한국의 제독이 이룩한 놀라운 위업이었다. 6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순신은 일본의 함대를 파괴하여 본국과의 통신 연락망을 끊고, 호위 선단을 전멸시켜 육지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을 위험에 빠트림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찬 계획을 철저한 파멸로 이끄는, 해전사에서 비길 데 없는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 심지어 넬슨도, 블레이크도, Jean Bart도 무자비한 압제 하에 있는 작은 나라(1921년에 쓴 책이면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겠죠?)의, 이 거의 알려진 바 없는 대표자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이 그의 본국을 벗어난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편견 없고 공평한 재판관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가 타고난 지도자 가운데 한명으로 인정받아야 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미국 국회 도서관에 있는 영국 발라드 제독의 저서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증거를 제시해도 못믿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Sulla-Felix
05/05/09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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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헤이아찌로의 증언은 공식 기록이 아니라 종군 기자가 "장군은
이렇게 말씀하셨다."식의 증언이라 들었습니다. 저도 자료는 가지고
있지 않아 이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눈시울
05/05/0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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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la-Felix / 이순신이 대단하다는 데 이의를 둔 사람은 없는데요. ;;;;
기다림...그리
05/05/0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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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이 나라를 팔아먹은건 아니지만 말아먹을뻔 하기는 했죠.... 칠천량해전이후 이순신장군이 명량과 노량에서 승리하지 않으셨다면 전쟁의 어찌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당시 정황상 조일전쟁 초기처럼 완전히 밀리진 않았을지 몰라도 수군을 정리한 일본이 다시 재진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명군도 알려진바와 달리 그리 잘 싸운것도 아니고 권율장군이 이끌던 육군도 과대평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눈시울
05/05/0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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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전쟁이 끝난 후 풍신수길이 죽고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를 통해 정권을 잡는데만 몇 년이 걸리죠.. 그리고 사망, 곧이어 조선통신사입니다. 노량에서 일본이 졌지만 그걸로 수군 전력이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고요. 명량은 중요한 전투였지만 노량은 우리의 복수가 중요했던 전투였지 그다지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싸움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명나라도 왠만해서는 싸움을 미루고 그냥 수급 받고 좋게좋게 끝내자.. 고 했던 것이었죠. 그리고 저로서는 이순신 장군의 생환과 노량해전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전자를 택하겠습니다. 노량해전이 없었더라면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로 건너가셔서 중용받다가 편히 인생을 마감하셨는지도 모를 일이죠. 후대에 멋지게 충성하다 죽은 사람으로 남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ㅠ_ㅠ
05/05/0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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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님// ㅠㅠ 이순신장군님 이었기에 노량해전을 선택한거고 이순신장군이었기에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더 살아계셨다면 또 어떤 일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intothestars
05/05/0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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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초기에 조선 수영 중 가장 크다는 경상우수영의 전선을 모두 좌침시키고 도망쳐 부산포의 왜군을 전혀 견제하지 못한점, 칠천량해전에서 수군을 모두 말아먹은 점 2가지만 놓고 봐도 원균은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칠천량해전 같은 경우는 실록의 기록을 보면 싸우지도 않고 도망치다가 패했다고 하는군요..ㅡㅡ; 거기다가 그는 남의 전공까지 훔쳐서 보고하는 찌질이였구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선무1등공신으로 원균의 공적은 '왜선130척격파, 수급237급'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저 기록은 원균의 장계를 기초로 이루어진것이구요. 연합함대의 일원이었다고는 하나 겨우 전선 4척을 운영한 원균이 130척을 격파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130척을 격파할때도 12척, 그것도 울둘목의 지형을 이용해서 거둔 승리였는데요(명량해전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ㅡㅡ)

중국에서 삼국지에 대한 재평가가 일면서 조조에 대한 복권이 이뤄졌으나 그에 비해 유비나 제갈량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어섰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촉한정통론때문에 조조가 억울한 비난을 많이 받기도 했었지요.

원균명장론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찬란한 이순신 장군의 신화를 냉정하게 바라보자는 시각에서 엉뚱하게 원균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의 칠천량해전의 찌질스러운 행동의 결과는 경상도와 전라도 민중들의 엄청난 고통이었을뿐입니다.
05/05/0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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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순신제독께서 임란 후에도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셔서 조선을 한 번 뒤엎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시운도 나쁘지 않았지요. 이웃은 명,청 교체기에, 막부시대에... 한반도에 신경쓸 겨를 없고...

이순신제독을 비롯한 전라도지역에서 새 나라가 서고, 조선을 뒤엎은 후에 새 나라를 세우고 후금과 겨뤘다면 최소한 병자호란 따위는 안당했을텐데요...
05/05/0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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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기록되어있는 것들만 봐도 원균은 "갈아마셔야 할 작자"입니다.

임란 초기, 상대적으로 우수한 함선인 조선 수군의 함대를 "스스로 침몰시키고" 도망(만약 싸웠다면 왜군은 상륙 이전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듯...)친 점, 이것은 마치 핵사일로 다섯개에 핵 채워놓고 디파일러 없는 울링과 대치중인 상태에서 러쉬 들어오니 냅다 자기 마메탱크 위에 핵 떨군 꼴이고...
갓 10살도 안된 자기 핏줄이 왜군을 무찔렀다는 허위보고를 올렸으며(이 일로 인해 이순신은 원균이 공을 탐한다는 장계까지 올렸었음), 결정적으로 칠천량 해전에서 말 그래도 "꼬라박은" 다음에 수군이 육지에서 죽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건 전사도 아닌 도망가다 잡혀죽은거라고 밖엔...)이 나오는데...

당파니 뭐니 하는 "돌격전술"? 아무리 판옥선이 튼튼해도 그렇게 꼬라박으면 판옥선은 안뽀개지나요. 아무리 차가 튼튼해도 사람 치면 범퍼 우그러지고 하는게 당연한 이치인데...

뭐, 최대한 좋게 봐줘서 원균이 졸장이 아니었다고 칩시다. 만약 이순신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렇게만 생각해봐도 원균은 역사의 죄인입니다.
눈시울
05/05/09 11:27
수정 아이콘
이순신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면 제주도까지는 점령할 수 있겠군요. 그럼 탐라국 부활인가-_-;;;;
테페리안
05/05/09 12:23
수정 아이콘
원균 졸장 맞습니다. 그가 힘도 못 쓰고 말아먹은 수군...
그러니까 이순신이 내쳐지고 원균이 수군을 맡았을 때 부산까지 간 적이있더랬죠... 거기서 대패를 당합니다. 거의 전멸 수준이지요. 잘 따져보면 세계 3대해전에도 들어갈만한 엄청난 꼬라박기를 보여줬답니다.
4그레이
05/05/09 12:56
수정 아이콘
원균이 말아논일 이순신장군이 뒤쳐리 해놓으니 원균도 괜찮은 장수였다라고 글이 적히는군요.. 솔직히 이순신장군없었으면 임진왜란이 아니라 조선정벌록이 되었을겁니다.
묵향지기
05/05/09 13:40
수정 아이콘
휴..처음부터 다읽었습니다. 결론을 내면
역시 이순신은 위대한 장군이다.
원균은 찌질이급 졸장이다. 이거네요..

저도 이순이없으면 임진왜란이 아닌 조선정벌록이 됬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재현
05/05/09 13:52
수정 아이콘
이미 나온지 좀 된 주제고...수많은 전문가, 비 전문가들이 거의 결론을 냈죠...원균은 졸장이다..라고.
사실 능력만 보면 보통 장수..라고 할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시에 보통장수가 그런 위치까지 올라간게 죄라고 할수있죠.
∵Keeper®∵
05/05/09 13:54
수정 아이콘
칠천량패전에 원균자체의 책임을 뒤로하고 조정이나 기타 주변여건에 비중을 두는건 합당치 않습니다. 불리할줄 알고 출전했으면 패전을 각오하고 전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후퇴하는게 훌륭한 장수의 기본 책무입니다. 뭐 나중에 패전에 책임을 져야 겠지만 그건 나중일이고 일단은 전력을 유지한후 후일을 대비하는게 기본... 원균이 훌륭한 장수였다면 임난전체에 걸쳐 이순신급 장수들이 득시글 거렸다고 봐야합니다. 날고기는 의병장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깐요. 원균을 치켜세울 시간에 그들의 공적을 재평가하는게 어떨까요?
모모시로 타케
05/05/09 14:08
수정 아이콘
어떠한 이유로든 칠천량패전의 책임을 피할수도 줄일수도 없습니다..자신의 능력이 되지않는다면 나서지말아야했고(자기가 나서서 맡겠다고 했으니 말 다했죠) 나서서 맡았다면 승리해야했고 승리할 수 없었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마무리지어야했습니다..하지만 그는 나서서 맡았고 졌고 최대한의 피해로 마무리지었습니다..무슨 옹호가 필요할까요
모모시로 타케
05/05/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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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Keeper®∵님 말씀처럼 훌륭한 의병장들을 재평가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고 봅니다..솔직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반감으로 이순신을 폄하하고 반대급부로 원균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보여서 싫었습니다(글쓴분이 그렇다는건 아니구요) 그리고 조일전쟁이란 표현도 그렇네요..임진'왜란'이 맞죠..그럼 병자호란이라고 하지말고 조청전쟁이라고 해야죠;;
05/05/09 14:39
수정 아이콘
저도 곽재우장군이나 김덕령장군을 이순신장군 급으로 재조명해주는 역사드라마가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하긴 의병장들을 전면적으로 재조명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 진다면 선조는 더욱 더 찌질이 역활을 하게 되겠지만요. ㅡ.ㅡ;;
눈시울
05/05/09 14:44
수정 아이콘
예. 임진왜란 대신 조일전쟁(혹은 임진년 조일전쟁), 병자호란 대신 조청전쟁이 맞다고 생각합니다(혹은 병자년 조청전쟁).
왜란이나 호란은 마치 중국이 동이서융남만북적하면서 주변 민족들을 폄하하는 선상에 놓여져 있는 것 같고,
위에 거야 우리가 잘났다는 식으로 그렇게 말하더라도 그정도 큰 규모의 전쟁을 '란'이 아닌 전쟁으로 보는 게 이상할 건 없죠.
모모시로 타케
05/05/09 16:19
수정 아이콘
'난'이 이처럼 정당성의 소재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개념이라면, '전쟁'은 당사자 간의 명분의 우열을 인정하지 않는 가치중립적 개념이다라고 하더라구요..

물론 제 3자의 입장에서보면 조일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거 같고 또 임진왜란이라 하면 누구랑 누구랑 싸웠는지 알기 힘들지만 우리 입장에서보면 그들에게 우리가 일방적으로 아무 이유없이 침략당했기때문에 난이라고 써야하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눈시울
05/05/09 16:25
수정 아이콘
그 주장의 근거도 궁금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선 그런 주장이 적용되기도 어렵습니다.
'전쟁'이 당사자 간의 명분의 우열을 인정하지 않는 가치중립적 개념이면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도 수난으로 불러야 할테니 말이죠.
거란과 여진의 침입은? 몽고의 고려 침입은? 6.25는?? 이런 것들도 다 '난'이라고 부르지는 않죠.

무엇보다 민란, 변란, 홍경래의 난 등을 생각해보면.. 저 주장 자체가 공감이 안 갑니다. -_-;;
05/05/0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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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뭐 굳이 개념분리를 해서 조일전쟁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당시 표현법을 그대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 아닌가요? 그당시 관리들의 품계도 요즘 형식에 맞추어 변형 시키지 않고 그때 당시의 호칭을 그대로 쓰듯이 그당시 그 전쟁을 임진왜란이라고 불렀다면 그대로 쓰더라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만.
(예가 좀 이상하겠지만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전시일기 이라고 쓰지 않는 것 처럼 말이죠. ㅡ.ㅡ;;)
05/05/09 18:03
수정 아이콘
임진왜란으로 부르는것도 맞고 조일전쟁이라고도 부르는것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일전쟁이라고 부르는게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만은요. 임진왜란이라면 그저 왜군이 난을 일으킨걸 진압한정도에 불과하지만 조일전쟁이라면 우리 조선이 일본을 전쟁에서 이겼다라는 느낌이 들기때문에..... 조일전쟁은 물론 조선이 큰 피해를 입긴했지만 승전국은 엄연히 조선이었죠.
킬리란셀로
05/05/0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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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좋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원균을 옹호하는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합니다. 이순신을 위한 희생양이라고 한다고 하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균은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를 하는 장수였습니다. 권력에는 그에 걸맞은 댓가가 따른다고 봅니다. 만약에 원균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그는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장이자 민족의 영웅이 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한 위치에서 실패했기에 그는 욕을 먹는것입니다.
happyend
05/05/0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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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하고 싶어지는 군요.역사를 사랑하는 그대들을 위해....

이순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말하기 위해 꼭 원균을 역적으로 만들어서 비교해야 되는 것일까요?
원균만이 무참한 패배를 당했을까요?
이일은 성주전투에서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적진을 탐색하지 않는 우를 범했습니다.그리고 왜적들이 불가항력적인 힘(조총부대)으로 밀려들어오자 부하들을 버리고 한양으로 꽁무니를 뺐습니다.제1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그가 시간을 조금 끌었더라면 전쟁은 그렇게 처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기선제압을 당했으니까요.

신립은 탄금대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하지 않고 여진족과 싸우던 향수에 빠져 전면전을 벌이다 조총부대에 당해 몰살했습니다.제2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아마 탄금대에서 잘만 버텼더라면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광은 용인에서 5만 군사로 불과 수천군사에 불과한 와키자카에게 패했습니다.그가 거기서 와키자카를 몰살시켰다면 한산대첩은 없었겠죠.한산대첩은 와키자카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자 오만했던것도 원인이었죠.사실 일본은 수군부대가 주력이 아니어서 전면전을 피한다는 것이 방침이었죠.수군은 수송부대일 뿐이었으니까요.

제승방략체계(지금으로 치면 정규군은 없고,장교만 있고 나머지 군인은 예비군인....)의 희생물들인 그 장수들에게 돌을 던질 수만은 없겠지만 원균은 그들 보다 더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은 아니었죠.그만한 패배일 뿐....

사실 원균이 칠천량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나가면 안된다는 것을 그도 알았지만 권율은 통제사인 원균을 매질하며 나가라고 했죠.임금의 명령을 어기지도 따르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황.이순신은 명령을 따르지 않고 패배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그 뒤를 이은 원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선조가 졸장부로 그려지는 것도,원균이 매국노로 그려지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역사를 보는 바른 눈은 무엇이 최선이었고,무엇이 한계였는가를 보는 것이 아닐까요?

원균을 매국노로 몰아서 임진왜란의 한풀이가 될지는 모르나 교훈은 아니죠.원균의 패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시 우리나라 수군은 초보적 수준이었고,그것은 왜구가 40년간 잠잠한 대신 북방의 여진족이 골치거리가 되면서 장수를 키울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습니다.수군장수가 이순신 말고 누가 있었을까요?바로 그런 점에서 원균은 당시 국제정세의 희생양이죠.국제정세에 둔감한 이유...그것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외교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한 '사대교린'때문입니다.사대는 아실테고...교린은 중국을 제외한 미개한 주변국(일본포함)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죠.
원균이 수군장수로서 무능했던 것은 그런 외교정책의 결과입니다.마치 나비효과처럼.....

반대로 이순신만은 왜 위대한가는 따로 생각해야 합니다.그가 가진 합리성은 무엇인가...그는 임진왜란의 성격을 알았습니다.화약전쟁이 될것이란 걸 말이죠.또한 그는 전쟁은 힘의 과학이란 것도 알았습니다.어릴적부터 진법을 연구하면서 말이죠.또한 그는 사람을 절대로 겉으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권준은 이순신이 별볼일 없는 현감시절 순천부사로 있으면서 거들먹거렸지만 곧바로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그의 능력만을 존중해주었죠.

역사에서 분노보다 합리적 교훈을 배웠으면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와 역사를 너무나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좋습니다.

꾸벅
05/05/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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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end//님,, 말씀은 구구절절 옳으시지만 지금까지 여기서 논쟁이 되어 온 것은 원균을 재조명한답시고 상당히 논거가 희박한 원균명장론으로 이끌고 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대부분의 분들은 원균은 그냥 패전지장일 뿐 이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리고 원균이 다른 패전지장 보다 조금 더 욕먹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겠지요.

첫째는 이순신 장군이 출전을 거부할때 자신은 출전 할 수 있다는 식의 장계를 올린 점.
둘째는 비록 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그당시 패전지장들이 조선의 취약한 군사체계의 희생양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원균이 칠천량에서 말아먹은 군사들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당시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강군인 이순신장군의 조선수군 이었다는 점.

사실 두가지만 보아도 사실 원균은 그냥 패전지장보다는 좀 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happyend
05/05/0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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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님//
논쟁을 원하는 글은 아닙니다만...
1.첫째근거...는 그것이 수군통제사가 된 근거가 아닙니다.선조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피해가기 위해 당파싸움을 이용했던 정치가입니다.선조시대는 당쟁이 시작된 시대이니까요.그런 정략적 목적에서 전쟁이 소강상태라고 보고 (끝났다고 봤을수도 있죠.)이순신을 파직시킬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선조의 마음에서 이순신은 이미 오래전에 떠나있었습니다.왕권과 신권의 대립의 본질이랄 수 있는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장수에 대한 경계심때문에....원균에 대한 선조의 대접도 그걸 염두에 두고 오래전에 바뀌고 있었죠.이순신의 후임으로 말입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원균이라면 통제사가 될 수 있는데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이순신이 나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둘째 근거는...조선수군이 강군이었기 때문에 원균이 아니라면 말아먹히지 않았을거라는 것도 그다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원균이 아닌 다른 장수였어도...어쩌면 이순신이었어도 처참한 패배를 당했을지도 모릅니다.왜적은 조선수군의 움직임을 손바닥에 놓고 있었습니다.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경상도 지역사령관 격인 김...장군이 왜적 스파이의 말을 여과없이 조정에 보고하고,조정은 권율을 다그치고 권율은 통제사를 다그치고 있었습니다.신임 통제사 원균도 장수인지라 패배를 직감하여 나가지 않고 한산도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게다가 환갑의 장수를 곤장을 쳤으니....권율의 전략적 실패입니다.
물론 이순신이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죠...하지만 원균은 이순신이 아니었죠.그것이 그가 다른 패장보다 더 욕을 먹을 이유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 얘기의 요점은 비판의 핵심이 나약한 한인간을 패대기쳐서 얻을 게 뭔가입니다.이순신같은 사람만 있기를 바라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역사를 통해 영웅만이 필요하다고 배울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것은 원균이 수군장수로서의 결함이 당시 조선의 외교정책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과 선조와 신하들 사이의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능력보다 정파적 이해관계가 우선시되었다는것....그런 것이란 점이죠....
사실 원균은 불쌍하기도 합니다.능력이 없는 그에게 위에서 말한 이유로 나라를 지켜내야할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으니 말입니다.원균이 그자리에 오르기 싫다고 말하지 못한 점이 죄라면 죄겠지만...인간은 나약합니다....
그렇게 나약한 인간들이 한 나라를 강하게 만들기도하고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국제정세에 민감하고...정치적 입장에서 독립된 능력위주의 관리조직을 만들고...이런 걸 하지 못한게 원균이나 다른 패장들이 나온 거죠....

원균을 매도해서 마음이 후련하다면야 뭐랄 수 없지만...나는 좀 더 역사를 냉정하게 보았으면 한다...뭐..그런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꾸벅
happyend
05/05/0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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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제 얘기의 핵심은 네거티브하게 역사를 보지말고 포지티브하게 보자...원균이 잘못을 이용해 이순신을 찬양하지 말고 이순신이 왜 위대한가를 설명해보자...그런겁니다.
05/05/09 23:51
수정 아이콘
저도 원균을 아주 졸장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이순신은 왜란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었지만 원균은 그럴만한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임진왜란 발발 2달 전쯤 부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왜란 초기의 패배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정에서 무리한 명령이 떨어졌을 경우 그것을 시정하려는 노력은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훌륭한 지휘관의 자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은 휴전회담이 오고가던 시기에 전염병으로 수군이 병사 보충이 힘들어 질 때 자신의 상관격인 육상지휘관에게 문제를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수군전력유지에 만전을 기했고 정유재란시의 모략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왕명을 거역했었습니다. 그러나 원균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출진, 풍랑을 피해서 자주 기항했다던 칠천량에서 야습을 받아 전멸합니다. 당시 출 진후 함대의 이동경로도 목적이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대충 적선 몇 척 분쇄해서 체면을 살리려고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플래티넘
05/05/10 00:14
수정 아이콘
상관없는 말이지만...
선조가 진짜 샵세이입니다 -_-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가만 두질 않으니
05/05/10 00:46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 싶군요. 앞에서 미리 님의 말씀에 그다지 부정하지 않는 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논쟁 하는 것이 원균을 싸잡아 매도하자는 것은 아니라는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지요. 패전지장에게 그대로 패전지장임을 이야기 하는 것이 매도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원균이 다른 패전지장보다 조금 더 욕을 먹는 두가지 이유도 역시 그런 의미에서 내세운 것입니다.

첫째, 이순신 실각에 원균의 장계가 전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저는 어디에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이순신 장군을 더욱 압박한 결과가 되었으니 역사적으로 봤을때 분명 허물은 된다는 것이지요.
둘째, 다른 누가 조선수군을 맡았다고 하더라도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일견 일리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분명 강군을 몰살 시킨 그 책임 자체는 지울 수 없는 것이며, 분명 출전을 하는 것이 무리임을 뒤늦게 깨달았음에도 자신의 목을 걸고 출전불가를 내세우지 못한 점.(하긴 예전에 자신이 올린 장계가 있으니 그런 행동을 할 염치도 없었겠지만요.)또 패전을 실감 했을때 최대한 병력을 유지하지도 못하고 병력을 몰살 시킨 점, 수군 장수가 바다에서 결사항전하지 못해 육지까지 쫓겨와서 전사당한 점,등은 능력을 떠나서 장수라는 자리에 있는 자가 응당 보여주어야 할 책임감 마저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음은 분명한 사실 입니다.

물론 역사를 볼때 사회전체적인 문제점을 보지 못하고 한 인물에게 잘못을 덮어쒸어 매도하려 하는 것은 차후에 그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워야 하는 현대인으로서 옳지 못한 사고방식임에 분명 합니다. 하지만 지금 논란이 되는 것은 역사를 냉정하게 본답시고 패전지장에 불과한 장수를 용장론이니 명장론이니 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치켜세우는 경향이 있으니 그의 과를 내세워 그런 시선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그리고 또한 사회전체적인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도 옳으나 인물 하나하나의 공과 과를 제대로 아는 것 역시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우는 한가지 방식이라고 봅니다. 역사를 통해서 공이 있는 인물은 공을 분명히 부각시켜주고 과가 있는 인물은 그 과를 냉정히 살피는 것이 후세 사람들에게 더욱 쉽게 귀감을 주는 한 방법이 아닐런지요?
05/05/10 01:00
수정 아이콘
그리고 임진왜란을 새롭게 재조명 하려 한다면 원균논쟁 보다는 윗글에도 있지만 의병장들을 재조명 하거나 의병들의 결성과정, 전투방식, 생활상 등을 제대로 보여 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더욱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intothestars
05/05/10 01:23
수정 아이콘
happend님// 오해하시는게 있는데 원균을 한없이 깔아뭉갠다고 해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더욱더 빛나는 것은 아닙니다. 원균이 있던 없던간에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길이 빛날 것입니다. 역사적 기록 자체를 봤을때 원균은 비난받아 마땅한 장수입니다. 그리구 님이 근거로 든 것 중에 잘못 알고 계신것이 있네요

첫번째 근거/ 선조가 이순신의 후임으로 원균을 생각해서 그를 대접해준적이 없습니다. 불멸같은 소설을 보면 선조가 원균을 두둔하는 적은 있으나 다 허구구요. 원균은 경상우수사로 있다가 나중에 충청병사로 쫓겨났을뿐이지요. 육지의 병사는 종2품이지만 직책은 수사와 달리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얼마없습니다. 거의 좌천된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원균이 통제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정이 요시라의 반간계에 걸려서 이순신을 체포할려고 할 때 문제의 장계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통제사가 되면 당장 부산포로 진격하여 왜군을 섬멸할 것이라고말이지요. (물론 이 장계가 이순신을 모함한 장계는 아닙니다) 기막힌 타이밍에 올라온 장계 덕분에, 또한 당시 윤두수 등의 서인을 등에 업고 통제사가 된 것 뿐입니다. 물론 그 전에 이순신이 백의종군한 것은 선조의 정치적 목적이 있었기도 했구요.

둘째 근거/ 칠천량 패전은 왕의 책임도 있고 도원수 권율의 책임도 있으나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원균입니다. 왕이나 도원수가 원균을 부산포로 몬 것은 그 전에 원균이 한 말을 믿어서였구요. 원균은 전에는 큰 소리쳐놓고는 나중에 가덕도로 육군을 보내 미리 공격하라고 합니다. 가덕도는 섬인데 육군으로 공격하라고 하네요. 당시에 해병대가 있었나?ㅡㅡ? 또한 칠천량 패전이 있었던 16일에 원균은 술먹고 대취한 상태였습니다. 전날 권율에게 곤장맞고 화가나서 술을 먹었던 모양인데 그 급박한 전선에서 최고책임자가 술먹고 정신못차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리고 아마 원균이 아닌 이억기나 최호 같은 수사들이 지휘를 했다면 그렇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 21:0이었습니다. 아무리 왜선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일방적인 싸움이었는데 그렇게 쉽게 무너졌다는게, 그것도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춘원포에 내려 도망쳤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비난받아야 합니다

애초에 능력이 안되면 그런 장계를 올리지 말던가 했어야했죠. 원균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능력이 안되면 높은 지휘는 사양하자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원균 옹호론자들의 말도 안되는 근거들을 물리치고, 나약한 인간이라고 동정하지말고, 수군 전체를 말아먹은 원균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냉정하게 보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koel2님/ 많은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조정의 출격명령에 거역한 적이 없습니다. 요시라가 거짓정보를 흘렸을때도 이순신 장군은 분명 출격했구요. 부산포 갔다가 돌아온 다음에 한산도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그 전에도 몇번 부산포와 웅포 등을 공격했었구요. 실록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구 원균이 부임한지 얼마안되서 개전초기에 실패했다구 하는데, 개전 3개월전에 부임했구요. 수사의 임기가 2년인데 3개월이면 어느정도 기반은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구 솔직히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70여척의 판옥선을(경상우수영은 전라좌수영의 4배정도입니다) 좌침시키고 도망친 것에 대한 변명은 안됩니다.
六道熱火
05/05/10 15:00
수정 아이콘
이순신 장군이 좌천되고 원균이 통제사로 임명될 시 상황은 평온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좌천시킨 결정적인 왜의 반간계가 바로 '가토 기요마사가 150여척을 이끌고 서생포에 도착했다' 라는 소식입니다. 적 해군 병력이 150여척이 본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전쟁이 거의 소강상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선조는 이 사실을 듣고 "기요마사가 바다를 건넜으니 국사가 이미 결단났다" 라고 말할 정도니 선조만 놓고 봐도 이때의 조정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균은 분명 말을 바꾸었습니다. 통제사 부임 후 3월 29일에 올린 장계내용은 안골포와 가덕도 등의 일본 세력이 약하므로 '육군이 먼저 이 지역을 공격하면 수군이 일본군을 섬멸할 수 있다' 라고 수륙병진을 주장하였습니다. 반대로 권율은 '통제사의 의견은 타당성은 있으나 두 곳이 해안 깊숙히 위치하여 함부로 공격할 수 없다' 라는 좀 회의적인 의견을 올렸습니다. 다시 원균은 5월 말에 장계를 올려 수륙병진을 재차 주장하였습니다. 이 장계로 인해 선조와 조정이 해로 차단 전술을 선택하였습니다만, 원균은 체찰사와 도원수의 출전 명령에도 불구하고 해상 출동을 거부하였습니다. (아마 곤장은 이때 맞은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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