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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6/24 14:36:56
Name
Subject 저그를 믿으십니까
흔히들 저그를 두고
"고수되기 가장 어려운 종족"
"운영이 까다로운 종족"
"익숙해지려면 정말 오래 해야 하는 종족"

그래서, 가장 신예가 나오기 힘든 종족. 이라고들 한다.

필자 또한 4년차에 접어드는 저그 유저이건만
아직도 그렇게들 강조하는 "라바 관리"하나 익숙하지 못하다.

저그는. 약하다.
잠시만 , 아주 잠시만 당신의 커서가 그들의 머리 위를 떠난다면.
저글링들과 드론은 이미 붉은 칠리소스바다를 그리고 있을 것이며
텍사스 소떼같던 울트라리스크들은 쇠똥구리 굴리던 공마냥 누런 테두리를 하고는
사정없이 온몸을 아군에게 비벼댈 것이다.
"형이 애정이 있어서 존내 비벼주는 거다"

거칠고, 흉포하며, 혐오스러운 종족, 저그.
하지만 섬세하고, 혼자서는 연약하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발하는 열정으로 자신을 증거하는,
뜨겁고 붉은 열혈의 종족, 저그.

저그유저들이 말하는 이 오묘한 "운영"이라는 것은
바로 이 광폭한 에너지를 게임 내내 휘어잡고 자신의 방향대로 컨트롤하는
숙련된 기수의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옐로우의 폭풍에서도, 줄라이의 질풍노도에서도
외람되지만 나는 저그의 극의를 보지 못했노라고 말하겠다.
걷잡을 수 없는 돌개바람으로 불어닥치는 저그의 광풍 안에서,
저그의 두 화신들은 가끔 자신마저 휩쓸려나가곤 했다.

나는 박태민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꾹 다문 입술과 칼날같은 눈을 부릅뜨고
그는 야생마처럼 날뛰는 저그를 몰아 적진으로 달려나갔다.
몰아 붙이고, 한번 웅크려 모으고, 다시 사방에서 포위해 들어가는,
그리고 혼란에 빠진 적의 후방에서 기나긴 촉수를 뻗어대는
그는 미친듯이 울부짖는 저그의 힘을 한손에 틀어쥐고
한순간도 자신의 의지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MSL에서, 지난 팀리그에서, 나는 그의 제자를 보았다.
IPXZERG, 마재윤.
그에게서는 스승의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어린 , 그리고 선한 눈빛의 소년이
과연 들끓는 저그의 용광로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의아스러웠지만, 그는 묵묵히 이겨나갔다.
메이저리그에서의 8강 진출, 드림팀 KTF상대로의 올킬.

박태민의 저그는, 언제나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사납게 울부짖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나갔다.
그들의 주인은 항상 정확한 명령을 내렸고, 그들의 머리 위를 떠나지 않았다.
GO.RUSH.

마재윤은 달랐다. 이 어린 소주인은 이 사나운 저그들을
나직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강직한 목소리로 어루만졌다.
강물처럼 유연하게, 아주 작은 틈이라도 조용히 스며들어가는,
마침내 해일처럼 거대하게 일어나도록,
놀랍게도, 그는 저그의 주인이자, 처음으로 저그의 친구가 되려 하는 듯했다.
그의 명령은
그의 스승처럼 강력한 GO RUSH의 명령이 아닌
전 종족이 참여하는 IPX네트워크처럼, 한치의 틈도 없는, 부드러운 물의 그물이었다.

나는 이 기묘한 사제지간을, 주목하고 있겠다.
아직도 그 끝을 보여주지 않은 야생마, 저그.
고삐를 틀어쥐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스승의 뒤를 따라
갈기를 쓰다듬으며 목을 끌어안아 이제 마악 올라탄 제자.
그들이 보여줄 저그의 또한번의 진화를. 기대하고 있겠다.







뱀다리:  마재윤 선수. 이젠 IPXZERG대신 다른 아이디를 쓰지만.
그 아이디를 쓰던 시절 적은 글이네요.
너무나 오래 그를 주목해왔습니다.
이 글을 쓴 직후,
김정민. 이병민선수의 초반 벙커링과 메카닉 플레이에 패퇴하고 만 그를 보면서.
어제 저는 사실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어제의 그는.
영웅의 강력한 하드코어와, 예상치 못한 전진 게이트에
단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처하는 그는
이제 당당히 스승에게 하산을 묻고 있는 듯했습니다.

앞으로 아직 그가 겪어보지 못했던
결승무대로 가는 로열 로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혹시 긴장하고, 떨고, 망설임에 전투를 그르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는 이제 불안하지 않습니다.
모든 데이터를 뛰어넘어, 나는 그를 믿으니까요.

그가 헤쳐나온 전투를 기억하는 이는 관중입니다.
그가 헤쳐나갈 전투를 믿고 있는 이는 팬입니다.

나는 그의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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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4 14:38
수정 아이콘
저그 .. 케케케케켁 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가끔 합니다만, 프로토스 유저로서 별로 안좋아합니다..
포르티
05/06/24 14:39
수정 아이콘
마재 선수 너무 좋아합니다 >_< 작년부터 보여준 테란 상대로의 그 유연하고 여유넘치는 플레이.
방귀뿡똥뿌직
05/06/24 14:43
수정 아이콘
어제 한줄로 좌르르 서있던 [대략 1부대0마린위로 러커 촉수 2방이~~캬..그동안은 무의미하게..그냥. 국민겜이니까. 하고 승리에만 연연하고 지면 열받앗는데 처음으로 게임의 진정한 로망을 느꼈습니다
05/06/24 14:48
수정 아이콘
스프리스배때 김정민,이병민 테란 선수들의 벙커링에 무너지지만 않았다면.. 스프리스때 일을 낼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아마 그때보다 더 강해진거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주목됩니다.
여담으로 제목이.. 도를 믿으십니까.. 랑 좀 매치가 되는거 같네요..;
수시아
05/06/24 15:10
수정 아이콘
마재윤 선수를 관심있고 재밌게 보는데 반갑네요. 그동안 저그와 게임 푸는 방식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05/06/24 15:15
수정 아이콘
글잘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로토스를 잡는 저그는 좋아하지않습니다.^^; 단 테란을 잡는 저그는 좋아합니다.
마음속의빛
05/06/24 15:53
수정 아이콘
저도 희주님과 동감..
05/06/24 16:09
수정 아이콘
갑자기 ipx하구 rush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Peppermint
05/06/24 16:55
수정 아이콘
저그라는 종족의 이미지와 선수의 이미지를 정말 생생하게 묘사하셨네요. 마치 멋진 애니메이션 한 편이 머리속에 그려지는듯..
마재윤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 아닐까 싶네요. 아직 어린 선수임에도 정말 놀라울 정도..
스트라포트경
05/06/24 17:03
수정 아이콘
저그만5년째 하고 있지만... 진짜 힘든종족입니다... 그런 저그란 종족을 능숙하게 다루는 프로게이머들을 보면 진짜 놀라움 밖에 안나오더군요....
마리아
05/06/24 17:17
수정 아이콘
저그한지 2년째..
저그를 사랑하기에 다른 종족은 하지 않습니다.
아케미
05/06/24 17:4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마재윤 선수, 예사롭지 않지요. 파이팅!
05/06/24 21:08
수정 아이콘
처음에 플토로 시작하여, 테란으로 전향...지금은 저그를 몇 년째 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할 수록 어려운 종족이라는 느낌이 팍팍듭니다.-_-;;;
새벽오빠
05/06/25 12:31
수정 아이콘
박성준 선수 스타리그 진출 전부터 박성준,마재윤 양대 신예를 주목하고 있었는데요, 박성준 선수는 명실공히 최강저그 중 한명이지만 마재윤 선수는 아직 달리는 중이네요. 마재윤 선수 MSL에서 대박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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