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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6/25 11:21:02
Name 총알이 모자라.
Subject [퍼옴]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서도…

[기자의 눈/이승재]‘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서도…

[동아일보 2005-06-25 09:59]  

[동아일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철동 시네코아 극장에선 영화 ‘에로스’의 시사회가 열렸다.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만든 중국의 왕자웨이(王家衛), ‘오션스 일레븐’을 연출한 미국의 스티븐 소더버그, 이 시대의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연출한 이 화제작을 보기 위해 250여 명의 영화평론가와 영화담당 기자가 모여들었다.


세 번째 옴니버스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위험한 관계’(소제목)가 상영될 때였다. 권태기에 접어든 중년 남자가 한 외간 여자를 집적대는 장면이 나오다 시추에이션이 갑자기 바뀌었다. 이 외간 여자와 중년 남자의 아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것도 화면의 위아래가 뒤집힌 채. 나체의 두 여자는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스크린 위쪽의 땅을 딛고 스크린 아래쪽의 하늘을 향해 펄쩍펄쩍 뛰었다.


장내엔 고요가 흘렀다. 기자의 머릿속에는 순간 이런 해석이 스쳤다. ‘역시 거장은 다르구나. 93세의 노장 감독이 여인의 나체를 거꾸로 세움으로써 몸이 자유를 획득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구나.’


이렇게 10분이 흘렀다.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지며 안내방송이 나왔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영사기에 (영화) 프린트를 거꾸로 걸어 위아래가 뒤집힌 채 상영됐습니다.”


잠시 후 영화는 ‘제대로’ 다시 상영되기 시작했다. 문제의 나체 장면은 위아래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영화의 결말 부분이 순서마저 뒤바뀌어 미리 상영된 것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평론가들과 기자들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졸다가 문득 눈을 떠 보니 벌거벗은 여자들이 거꾸로 뛰어다니는 거 아니겠어요? 거장이니까 또 이런 실험을 했나 보다 하고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었죠.”(예술영화 전용관 관계자)




“감독이 위아래를 뒤집음으로써 인간 육체에 대한 매혹적인 시선을 드러내려는 줄 알았어. 사고인 줄 까맣게 몰랐지, 뭐(웃음).”(익명을 요구한 영화평론가)


기자는 부끄러웠다. 거장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역시’ 하고 대단한 듯 받아들이는 영화계의 우스꽝스러운 자화상을 본 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예술은 사기다”라고 했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말이 떠올랐다.




이승재 문화부 sjda@donga.com


........................................

살다보면 한두번 위와 같은 일을 겪게 됩니다.

조금은 이상하다 생각이 들지만 너무 자연스러우니까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되죠.

특히나 위와 같은 경우처럼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면 알도리가 없을 수도 있을겁니

다.

만일 평론가들이 거꾸로 편집된 영화를 보고 평을 썼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을까 궁금

해지기도 하네요.

극장 관계자가 정확한 사실을 말해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극장측에서 늦었지만 정확한 사실을 알려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된 필름을 걸고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비판과 비난이 두려워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잘못은 실수보다 더 큰 잘못이겠지요.

실수는 실수로 잘못은 잘못으로 인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간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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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protoss
05/06/25 11:46
수정 아이콘
평가에 선입견이라는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군요. 언제나 생각할만한 거리를 제공하시는 총알이 모자라 님 감사합니다.
Daviforever
05/06/25 11:51
수정 아이콘
아마추어가 두면 "대악수"라 꾸중들을 수도
이창호 사범이 두면 모두들 고민에 빠지게 되죠.
해설 당시에는 "스타급 센스죠, 스타급 센스!!!"하던 플레이가
"사실은 실수한건데..."이런 경우도 왕왕 있고...
반대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선수의 참신한 전략에 대해서는
그게 사실은 상당히 좋은 것이었음에도
"저건 도박적으로 보이는데요. 될까요?" 하는 경우도 있고...

임요환 선수가 전략을 내놓으면 해설진은 감탄하고,
조정현 선수가 전략을 내놓으면 해설진은 반신반의하고,
이운재 선수가 전략을 내놓으면 해설진은 의문을 표시하는...

이름값만으로 무언가를 재는 것도 때로는 위험하다고 봅니다.
재미있는 일이네요^^
05/06/25 11:59
수정 아이콘
예술은 사기다..명료한 정의이네요.
흔히들 무지하게 예술이 높은걸로 착각하고,멋있는 걸로 오해하지요.
높이에 대한 열망이나 멋에 대한 열망을 탓할건 못되나, 결과적으로 쓰레기 통을 뒤지는 멋인듯 합니다.삶의 모든 잔해는 쓰레기 통에 있으니...-출처불명-
아케미
05/06/25 12:01
수정 아이콘
…반성해야겠습니다^^;
저그ZerG
05/06/25 12:16
수정 아이콘
이런글이 정말로 '퍼와야' 할 글인것 같네요.
정말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군요.

...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_^ ;;
pgr눈팅경력20년
05/06/25 13:01
수정 아이콘
많은게 느껴지는 글이네요..으음
Connection Out
05/06/25 13:05
수정 아이콘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었는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는지... 영화 중간에 공원 벤치 위에 신문지가 깔려져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평론가들은 별별 해석을 다하더군요. 현대인의 감정 어쩌구 저쩌구...하면서요. 후에 우연히 그 영화의 스태프를 만날 자리가 있어서 물어봤더니 벤치를 칠한 페인트가 덜 말라서 신문지를 덮고 찍은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정말 예술은 사기인가 봅니다.
카이레스
05/06/25 13:21
수정 아이콘
옛날에 언어영역 공부할 때 문학파트에서 별의 별 해석을 다 달아논 것이 생각나네요. 그런 해설들 보면서 가끔씩 작가가 정말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이 글을 보니 그런게 역시 있었을 것 같네요^^
총알님 좋은 글 보고 갑니다.(--)(__)
정테란
05/06/25 14:44
수정 아이콘
예술이 사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영화예술이 사기죠.
17~18세기 음악들과 그림들을 보고 사기라고 할 수 없죠.
다만 영화는 솔직히 예술이라고 부르기는 뭔가 부족합니다.
맛있는빵
05/06/25 15:02
수정 아이콘
음...전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테란
05/06/25 15:16
수정 아이콘
보통 종합예술하면 오페라를 떠올리죠.
Baby_BoxeR
05/06/25 15:59
수정 아이콘
꿈보다 해몽이죠...

게임도 종합예술이라고 한답니다..
벨리어스
05/06/25 16:58
수정 아이콘
게임중에서 종합예술이라 부를 만큼 뛰어난 작품이 몇 있긴 하죠.
(그만큼 여러모로 뛰어난..) 음...그리고 카소의 그림중에 피카소 실제
얼굴이 있고 거기에 빵이 몇개 있는 거에 대한 한가닥 글을 보고서
정말 예술작품에 대해서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느꼈는데...이글을 보고나니 동시에 왠지 게 떠오르면서 $*%($해지는..;
그리고 음..사기라......
벨리어스
05/06/25 18:37
수정 아이콘
후....아이구......==
05/06/25 19:21
수정 아이콘
피지알에서는 예술에 대해서도 명료한 정의들이 금방금방 나오는군요. 전지전능한 코멘트의 힘-_- 에구...
진리탐구자
05/06/25 21:06
수정 아이콘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술이 반드시 '창조자에 의해 의도된 것'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사고에 의해서 오히려 예술적 의미가 확대되고 그에 대한 해석이 풍요로워졌다면, 문제될 것이 있을까요?
진리탐구자
05/06/25 21:12
수정 아이콘
그런 점에서, 평론가들에게 비난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만약 비난을 할 부분이 있다면, 그 것은 그들은 작품에 그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기보다는 단지 작품을 해석하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탐구자
05/06/25 21:15
수정 아이콘
하나 사족을 덧붙이자면, 여기있는 이 글도 위 사례의 영화처럼 또 하나의 눈속임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물론 정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Ms. Anscombe
05/06/25 21:30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 님의 말처럼 "예술이 반드시 '창조자에 의해 의도된 것'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죠. 물론 전통적 견해를 고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견해입니다. 다만, 의도에 국한되지 않는 해석을 '의도라고' 설명하지만 않는다면 문제 없습니다.(많은 평론가들이 의미와 의도를 혼동하죠)
My name is J
05/06/25 21:35
수정 아이콘
사실 저런게 싫어서 미술이 어렵죠.
다른 예술은 그나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해석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지만 미술(특히 회화부분)은 그런면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저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그 작자가 붙인 제목-일뿐이거든요..으하하하-
예술이 창조자에게 국한된 것일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이해와 감동의 바탕은 창조자의 감성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미술이라 하면 붓터치 하나도 모르는 문외한의 건방짐이었습니다.^^/(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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