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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0/28 00:45:37
Name unipolar
Subject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14~17편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14편  

원문 최초 게시일: 2005. 8. 17.


#1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어 보니 용호였다.

"형 아직도 안 일어났네? 주장이 나보다 늦으면 어떡해."

"니가 빠른거야. 컨디션 조절하게 푹 자고 일어나지 그랬어. 박지호한테 또 질거냐."

"부정타게 그런 소릴 왜해, 안그래도 815맵 엽기라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오늘 조용호 박정석 둘다 이길 거니까 응원이나 해."

"그런데 무슨 일로 너 일찍 세수까지 하고 와서는...... 할말 있어?"

"문자로 할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형이 실망이 클 것 같아서 직접 전해주려고. 경찰에서 대답이 왔거든."

"그러면 못 찾았다는 거야?"

"응. 억, 얼, 엌으로 폴더랑 파일명 모두 검색해 봤지만 성과가 없었대."

"성과가 있는지 없는지 자기들이 어떻게 알어. 암호 걸린 파일이라든가, 비전문가가 보면 모르는 것도 있을 거 아냐. 컴퓨터 보게 해줄 수 없대?"

"진호형. 정말 없었대. 동수형이 불과 며칠 전에 하드디스크를 새로 달은 거라 거의 백지상태래. 처음 컴터 입수했을 때 전문가들이랑 다 열어 봤는데 뭔가 있어보이는 파일은 하나도 없었대. 그리고 억, 얼, 엌 중 한 글자로 시작하는 폴더는 딱 세 개 나왔대."

진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용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얼짱 김동수1> <얼짱 김동수2> <얼짱 김동수3>......형 셀카 사진 폴더였대. 아아, 진호형, 제발 그런 벌레 씹은 표정 하지 말아줘. 나도 지금 엄청 실망스럽단 말이야."


#2
용호와 정석 둘 다 패배한 날이라 밴 안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게다가 다잉메시지는 비밀 폴더 이름일 거라고 자신 있게 추리했던 장본인인 강민은 계속 어처구니없어하는 중이었다. 진호는 그를 놀리고픈 마음이 생겼다.

"용호야. 얼짱 김동수 폴더 검색됐단 소리 듣고 민이가 진짜 좋아했겠다. 그치?"

"조용히 해라, 애들 지금 심각하다."

"민이 추리는 꼭 민이 전략처럼 꿈 같고 놀라울 뿐이야. 특히 듀얼 한승엽전의 캐논러쉬처럼......"

"진호형, 너무 그러지 마라. 그때 민이형이 뭐에 홀렸을거야. 전혀 민이형 같지 않았잖아."

"그래, 용호말이 맞아. 그때 내가 키보드만 손으로 하고, 마우스는 오른발로 했어."

"무슨 소리야, 그건 오른발에 대한 모욕이야. 왼발로 했겠지."

"그만 좀 놀려! 진짜 발로 했다니까!"

"발로 한 게 자랑이냐?"


듣다 못한 정수영 감독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노랑 깡만 둘다 서로 그만 갈궈라!"

같이 가겠다고 바득바득 따라나선 정감독이었지만, 결국 분위기를 더 가라앉히는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밴 안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 채로 조용히 경찰서까지 달렸다. 한동안의 침묵 끝에 도착하고 나서야 용호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도착하면 리콜하겠다던 민이형의 비밀 무기는 뭐야?"

"저기 밖에 와 있네."


경향우주의 선중모 기자가 밴의 창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3
"그,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사진기자라고 우긴다, 이거지?"

"그래. 너희는 나를 따라온 사진기자들이야. 우리는 지금 취재하러 들어가는 거야."

"경찰이 참 잘도 속겠다."

"그래도 현장을 보려면 취재하러 왔다고 하는 수밖에 없어. 그래도 한국에서 할 일 못할 일 다 해가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기자들뿐이란 거 아니냐."

"난 만약에 스타가 없었으면 형이 뭐 하고 있었을지 정말 궁금해."

"그래서 내가 스타판을 진짜 사랑하잖냐. 내가 기자를 계속할 수 있으니까. 진짜 나만큼 이 스타판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거야. 잔말 말고 카메라나 받아."

선기자는 왜 이렇게 많이 왔냐고 투덜대며 그들과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기자같아 보이지는 않는 그들을 줄줄이 데리고. 중모는 경찰들에게 현장에 들어가게 해줄 것을 부탁했다.

"경향우주? 처음 듣는 이름인데? 새로 나온 스포츠신문이우?"

"아, 네. 요즘엔 게임도 스포츠의 일종으로 취급하거든요. 전직 게이머의 살인사건이라고 해서 취재 나온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관계자 외에 현장 출입하는 것은 위에다 허락도 받아야 되고 영 곤란해서......"

"아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제가 박지성하고 박주영 싸인도 받아 드리겠습니다. 내일 취재가거든요. 허허허!"

그 말을 들으며 다섯명의 KTF 사람들은 뒤에서 혀를 내둘렀다. 설득이 보통 능수능란한 게 아니었다. 안그래도 미해결 사건인데다 발생한지도 시간이 꽤 지났으므로 경찰들은 부탁을 들어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이 정수영 감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분도 기자신가? 꼭 어디 수배전단에서 본 것 같은데?"

"허, 허허, 이분이 지금 선글라스를 끼셔서 범죄형으로 보이는거지, 마음씨는 아주 순둥이예요 순둥이......허허허!"

선기자가 식은땀만 흘리는 정감독을 위해 변명을 늘어놓자 이번에는 다른 경찰이 의혹을 표시했다. 잔뜩 긴장해서 꼿꼿이 줄서 있는 게이머들 중 맨 끝을 가리키며.

"설마 얘도 기자?"


이번에는 선기자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하하하, 얘는 제 조칸데 삼촌이 취재하는거 보고 싶다고 해서...... 용호야 경찰아저씨한테 인사드려. 아직 중학생밖에 안 됐어요."


......결국 용호는 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15편

원문 최초 게시일: 2005. 8. 17.


#1
"자, 20분만 있다가 가는거다."

"무신,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기고!"

"취재하러 왔다고 하고 들어온 건데 오래 있을 수는 없어. 적당히 보고 돌아가자."

"이봐 선기자, 그러지 말고 경찰서 가서 얘기 잘 하면서 시간 좀 끌어봐. 우리도 최대한 빨리 돌아갈께. 응?"

결국 선기자는 경찰들을 구워삶으러 돌아가야 했고, 4명의 KTF 사람들만 현장에 남았다. 정석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 곳에 온다는 것이 괴로우리라는 것은 예상했었다. 그렇지만 그는, 대다수의 평범한 한국 청년들처럼, 살인 사건을 본 경험이 없다. 설령 본 사람이라 한들 그저 서 있기도 끔찍할 것을, 정석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조사하기까지 해야만 한다.

"이거 정말 곡괭이를 가져올 걸 그랬네. 파보기라도 해야겠는데."

"농담하지 마라 깡만. 지금 우리 다 신경 곤두섰다."

"하긴 경찰이 한번 싹 쓸었는데 남아 있는 단서가 있겠어요?"

정감독과 강민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진호는 의문의 핏자국이 남아 있는 가스레인지를 들어다보고 있었고, 정석은 요환이 있었다는 방을 둘러봤다. 바닥에 혈흔이 너무 선명해서 정석은 그 쪽을 돌아보지도 않으려고 했다. 진호는 그런 정석 때문에 마음이 아파왔다. 친구, 선배, 그 모든 것을 떠나서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도 진정 중요했던 사람을 그가 잃지 않았는가.

"진호야! 거기 피는 뭐 하다 묻은 것 같냐? 보니까 좀 알겠니?"

진호는 사진기사 행세를 하느라 메고 들어온 카메라를 들어올려 진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두꺼운 섬유의 결을 따라 묻은 흔적이다.

"이걸 직접 보니 면장갑을 낀 채로 가스레인지를 만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은 경찰이 증거품으로 수거해 갔지만, 원래는 그 옆에 볼펜이 놓여 있었다고 사건 관련 기사에 씌여 있었더랬지. 진호는 그 의미를 곰곰히 궁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팀원들도 수색을 차례차례 포기하고 진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범인이 소세지 먹으러 가스레인지까지 온 게 아닌 이상, 굳이 여기에 손을 댄 이유는 한가지밖에 없다고 봐요. 이 위에 놓여져 있던 무언가를 집어든 거지."

"오, 진호! 계속해 봐."

"더구나 옆에 볼펜이 있는 걸로 봐서, 놓여져 있었던 물건은 종이 같은데요? 범인은 그게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집어간 거고."

"말 된다. 동수는 소세지를 볶으면서 볼펜으로 뭘 메모하고 있었고, 그때 범인이 가스 점검원이랍시고 벨을 눌렀고, 아무것도 모르는 요환이가 문을 열어 줬겠고, 범인은 기습하고......그리고 종이를 본거지."

"그런데 지노햄, 그 사실이 뭐 좀 도움이 되나? 범인이 종이를 가져가 버렸으면 우린 내용을 볼 수도 없고......"

정감독, 정석, 강민, 모두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동안 진호는 가스레인지 위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불 올라오는 곳에 갑자기 손을 대고 부볐다.

"뭐꼬?"

"범인은 종이를 가져가지 않았어."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손가락에 뭍은 검댕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부석거렸다. 옆에서 강민이 알겠다는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가져가지 않고 태웠구나! 진호야, 빙고다!"

"경황이 없던가 아니면 범인이 보기에 종이 내용이 별거 아니었던가 했겠지. 그때 여기 위엔 소세지 프라이팬이 있었고. 마침 레인지에 불이 올라오고 있으니 던져 넣어버린 거야."

"재 중에 덜 탄 조각이 있으면 좋겠다!"

"그걸 찾을 수만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뒤에서 나머지 세 명이 침을 삼키고 지켜보는 동안 진호가 조심스럽게 종이 재를 뒤졌다. 마침내 그는 손톱만한 종이 조각 두 개를 찾았다. 하늘이 도운 것인지, 두 개 모두 글자가 남아 있는 부분이었다.

"좀 알아볼 수 있나?"

"영어 소문자로 쭉 써있고.... 영어는 테두리가 타들어갔어도 대충 꼬부라지는 거 보고 글자는 알 수 있잖아.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눈이 좋지?"

정수영 감독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정석이 못 들은 체 하고 진호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냥 햄이 계속 봐바라."

"음...... m인지 n인지 왼쪽이 타서 첫 글자는 잘 모르겠어. 그 다음에 t, o, 그리고 반 짤린 동그라미."

"진호야, 다른 조각은?"

"이건 왼쪽에 곡선이 조금 남아 있고 옆에는...h 같아. 이건 글자 부분이 정말 조금밖에 안 남고 다 그을렸어. 가만, 이거 아까 그 조각이랑 이어지는 것 같은데?"

"햄, 동그라미 부분 맞춰바라. 동그라미가 이어지는 것 같다."

"어, 정말인데? 이건 연속된 문자야. 진짜 행운이다. m또는 n, t, o, 이상한 동그라미, h. 이게 도대체 뭘까?"

갑자기 네 사람 모두가 침묵 속에 빠졌다. 마치 누가 먼저 맞추나 내기하는 것처럼, 각자 머릿속에서 열심히 그 알파벳들을 나열하며 어떤 영어 문장의 일부분이었는지를 추측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그 침묵을 깨지 못한 지 5분이 지났다. 갑자기 진호가 피식 웃었다. 강민과 정석이 거의 동시에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짓자, 진호가 말하지 말라고 손짓을 했다.

"깡만 조용히 해라. 나 거의 생각났단 말야. 동그라미 앞까지는 가림토, Garimto야. 어때?"


그는 정석과 민이가 받아서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재빨리 마무리지었다.


"Garimto@h******.***이야. 그 동그라미는 골뱅이라고."

"그렇구나!"

"이건 이메일 주소야. 좀 디지털 세대답게 단서를 찾자고 민이가 그러더니 정말 그 말이 맞네. 이젠 동수형이 남긴 글자 뜻도 뻔해졌어, 그 이메일 계정의 패스워드로 사용하던 단어 첫글자겠지!"


#2
사건이 다 해결됐다고 기뻐하며 숙소로 돌아온 것도 잠시. 그들은 새로운 난제에 부딪쳤다. h로 시작하는 메일 포털은 뻔했지만, 억, 얼, 엌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아무리 패스워드 창에 쳐 넣어 봐도 로그인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차피 한글로 쳐도 영문으로 입력되기 때문에 한/영은 상관없었다. 그러나 특별히 정감독이 가져다 준 한글사전을 놓고 단어 순서대로 하나씩 넣는데도 로그인은 실패였다. 억대연봉, 얼힌이부터 시작해서 동수가 생각했을 법한 단어들은 다 넣어 보았는데도 실패였다. 팀원들은 일단 GG를 치고 야식을 먹으러 갔다. 컴퓨터 앞에는 강민만 남았다.

그는 예전에 자신이 추리했던 "억...은 폴더 이름일 것"이라는 가설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사전에 나오는 낱말들이 계속 실패하고 있는 지금, 민이의 머릿속에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어제 용호가 알려준 폴더 이름대로...... 얼짱 김동수 뭐 이런 건 아니겠지?'

민이는 중얼거렸다. 아닐거야. 동수형한테 왕자병 같은 건 없었어. 아닐거야. 정말 패스워드가 얼짱인 거면 나 정말 실망할거야. 그렇게 어이없는 단어를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서 썼을 리 없어. 그러나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강민은 패스워드 창에 '얼짱'이라고 써 넣었다.


[로그인 되었습니다.]


"젠장! 세상에! 맙소사! 이, 이게 패스워드였단 말이야?"


#3
무슨 불이라도 난 줄 알았다. 정수영 감독은 문을 미친듯이 두들기는 소리에 얼른 뛰어나왔다.

"이봐, 대체 무슨 일인......"

"이고시스 하태기 감독님께 전화 넣어 주세요!"

문 따위 부숴버리겠다는 듯이 두들긴 사람은 다름아닌 강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민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POS팀에 전화 넣어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사람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16편

원문 최초 게시일: 2005. 8. 19.


#1
"KTF감독님이 민이형 지금 보낸다고 전화하셨대서 정말 놀랐어요. 밖에서 얘기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우리 숙소까지......"

그러나 강민은 성준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연신 방문을 당기고 두들기며 잘 잠겼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내 생각엔 너희 숙소 안이 제일 안전했어. 지금쯤이면 너 돌아다닐 땐 미행이 붙고도 남아. 이제부터 조용히 얘기해. 밖에서 들리지 않게."

성준이 고개를 돌리며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 성준을 강민이 다짜고짜 몰아쳤다.

"동수형이 다 알고 있었다고 나한테는 왜 말 안했어?"

"대체 무슨 말인지......"

"정말 너밖에 모르는 줄 알았는데! 성준이 네가 진작 말해줬다면 동수형 사건 있었을 때 바로 누가 사주했는지 알 수 있었을 거야. 숙소에 들어앉아 편한 세월 보내고 있지도 않았겠지."

"전 정말 몰라요. 갑자기 이러지 마세요!"

"나한테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그때라도 말 하지 그랬어, 그러면 적어도 연성이는 살릴 수 있었어!"

그때 성준이 비로소 고개롤 돌려 강민을 쳐다보았다. 양쪽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있었지만 떨리는 것을 감출 수 없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때의 그는 또래들처럼 아직 소년 티가 나는 청년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 그가 마주해야 하는 사실은 이 탁월한 승부사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여, 연성이형도 알고 있었어요?"

"연성이가 출국하기 전에 나한테 얘기했었어. 난 널 말렸듯이 연성이도 말렸지. 하지만 동수형이 왜 그렇게 됐는지를 진작 알았다면 연성이를 말린 정도가 아니라 수갑을 채워서라도 KTF 숙소에 주저앉혔을 거야! 그랬어야 했어, 박성준 니가 나한테 알려 줬어야 했어!"

그 말을 듣자 성준이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쩔 수 없었어요, 동수형이 자료를 주면서 출처는 절대 비밀로 하라고 했어요."

"그래, 날 못 믿었다? 다 알게 되자마자 당장 달려와서 너 몸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건 강민이 아니고 누구냐?"

"정말 어쩔 수가......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사건 전까지는 말 못한 거고, 사건 있고 나서는 너무 무서워서 입술도 못 뗐고,"

"너랑 연성이 둘 다 날 지금 미치게 만들고 있어. 어쩜 셋이 얘기했으면서 셋 다 따로 놀아서 상황을 이렇게! 지금은 아무도 말릴 수 없게 됐어."

"민이형은 어떻게 안 거예요? 동수형도 안 계신데,"

"형의 이메일 패스워드를 풀었어."

성준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젠 비밀로 해봤자 소용 없는 일이 되었다.

"형이 남긴 게 패스워드의 첫글자였던 걸 모르고 개고생하다가 풀었어. 너하고만 주고받을 작정으로 만든 이메일 계정 같더라. 너랑 주고받은 것만 해도 보낸 편지함과 받은 편지함 모두 가득이었어. 자료도 다 봤어. 너 외엔 누가 아는지 몰라. 중요한 건 이제 너랑 내 차례라는 거지."

그 차가운 마지막 말. 간담까지 서늘해진 성준은 그제서야 그동안 불안에 떨며 지내온 시간의 흔적을 드러냈다.

"꼭 그렇진 않아요. 난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요. 나만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 괜찮을 거예요."

마치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이 중얼거리는 그를 강민이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그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성준이는 지금 후회하고 있을까? 박성준을 최고로 만들었던 성실함과 완벽주의, 그리고 그의 정의감이 오히려 지금 그의 목을 조여오고 있다는 그 아이러니를......


#2
말도 안 된다고 학승이 중얼거렸다. 더욱 창백해진 피부에 방금 양치해서 붉어진 입술까지, 아주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지 않은가. 그 충격을 받고 초췌해져서 방금 외국에서 돌아온 사람이 말이다. 도대체 요환이형은......

학승이 그렇게 멍하니 서 있자 목에 수건을 걸고 나오던 요환이 괜히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지나갔다. 그제서야 그는 좀 정신이 들었다.

"형 좀 쉬시지 연습실엔 왜?"

"약 먹어서 괜찮아. 손도 굳었고, 연습하면서 잊어야지 이젠 방법도 없어."

"그 약 나도 좀 먹었으면 좋겠다. 지금 안 우울한 팀원이 어디 있다고......"

"탐내지 마라. 정신과에서 쓰는 약은 함부로 먹는 게 아니랬어."

요환이 애써 웃어 보이며 자신의 핸드폰 전원을 넣었다. 끄고 다녀온 동안 문자가 많이 와 있을까? 전부 연성이 소식 묻는 것들이겠지. 기분 좀 나아지게 약기운이나 빨리 받았으면 좋으련만.


#3
계단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태민과 상욱이 동시에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 누가 저렇게 요란하게 계단에서 뛰고 있는 것일까?

"말해봐! 연성이가 비행기 타기 전날 밤에 누구 만났는지 알아?"

T1의 어린 선수들은 움찔했다. 주장의 목소리는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화내는 소리 같았다. 아니, 화내는 거라고 하기엔 너무나 절박하다. 미친 듯이 뛰어온 요환은 아직도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러나 모여서 쉬고 있던 T1 선수들 중 누구도 그에게 답을 줄 수가 없었다. 다들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아무도 모르는 거야? 연성이가 누굴 만났는지 아무도 몰라?"

핸드폰을 쥔 요환의 오른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의 긴장한 얼굴은 경기석에 있을 때와 다름이 없다. 그제서야 태민은 자신이 몰래 요환의 폰을 보았던 일을 상기했다. 그때 연성에게서 온 마지막 문자는.....! 혹시......?



반드시, 반드시 복수하겠어.


요환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때의 연성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지금 혼자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지지 않겠다. 그의 결연한 얼굴에서 다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17편

원문 최초 게시일: 2005. 8. 20.


#1
"하품 좀 그만 해라. 입 찢어지겠다. 밤새 잠도 안 자고 뭘 한거냐?"

"오, 깡만 너 오버해서 연습했어?"

"연습한 게 아니니까 하는 말이다. 연습하는 놈이 왼손으론 턱을 괴고 그렇게 심각하게 화면만 볼 리가 있나. 뭘 그렇게 봤어?"

강민은 질책하는 정감독의 눈길을 애써 피하고 반찬만 뒤적였다. 아니나다를까 아침 식탁에서  그는 하품만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동수 이메일 패스워드 찾기는 좀 성과가 있냐?"

"전혀 없어요. 사전에 나오는 단어가 아닌 것 같아요. 쳐볼 만큼 쳐 봤는데 먹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용호도 정석이도 모르겠대고, 이것까지 실패하면 단서가 전혀 없는 건데...... 깡만 너도 로그인 못한 거야?"

그 소리에 강민이 움찔했다. 그는 어리버리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망한 정감독의 한숨 소리가 워낙 커서 어린 연습생들은 고개도 쳐들지 못하고 밥만 먹었다.

"이거 원, 그 한 글자 단서까지 해독해서 이젠 다 끝난 줄 알았구만, 결국 포기해야 하나보다. 동수한테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민이 말마따나 조폭한테 원한을 샀을 수도 있고, 젠장 그런 생각 따윈 하고 싶지 않았는데, 동수한테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감독님, 동수햄 욕하지 마이소!"

낮은 말소리였지만 안 말리면 한 대 칠것 같은 카리스마였다. 정민이 옆에서 부추겼다.

아무 성과가 없어서 안그래도 마치 동수에게 죄를 지은 기분이던 정석이었으니 정감독에게 화가 난 것도 이해할 만 했다. 놀란 팀원들이 다들 동작을 멈추었지만 정민은 조용히 김치를 집어왔다. 부추긴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김치그릇 좀 당겨달라고 정석을 팔꿈치로 건드린 것이었다.

그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강민은 조용히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발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떠나는 그를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다행이야. 아무도 모르는 게 확실해.

내가 패스워드를 푸는 데 성공한 것도, 어젯밤을 새워서 메일함을 다 읽은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


#2
GG후 잠깐 입술이 비뚤어졌다. 그리고 끝이었다. 누구나 승리만큼 많은 패배를 겪는다. 이것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상대가 아직 신인급이지만 경기는 아주 훌륭했다. 진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대와 눈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 그는 생각했다. 내가 영종이 때 쯤엔 하나뿐인 라면을 반으로 쪼개 먹어 가며 연습했었지. 지금은 좋은 숙소, 좋은 환경이지만 그때와 딱히 달라진 건 없어. 그때도 질 때는 지고, 이길 때는 이겼다.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그 때 내게 짊어진 짐은 라면 반 개 만큼이었고 지금은 억대로 불어났다는 것 때문이리라.

진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무대를 내려왔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저 아이가 부럽다고-

대기실에 진호는 두리번거리며 정석을 찾았다. 영종이 그를 보더니 딱히 인사를 꺼내지도 못하다가 머리만 긁적였다. 진호는 요환과 PD가 나누던 대화에 대해 영종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을 상기했다. 이럴 때 꼭 물어봐야 하나. 진호가 쓴웃음을 짓다가 말을 먼저 꺼냈다.

"Daily MVP감이다. 받아서 맛있는 거 사먹고. 잘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영종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민이형은 잘 계세요?"

"아. 너 민이 좋아한다고 했지. 민이도 경기 봤으면 감탄했을 거야."

"네? 헤헷."

"물어볼 게 좀 있는데, 전에 조지명식때 대기실에서 요환이형이 PD님이랑 하던 혹시 들었니? 워낙 목소리가 작아서 못 들었어."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는데, 요환형한테 직접 물어보시지 그러셨어요?"

"정말 기억 안 나니?"

말할 때 눈을 치켜뜨는 버릇이 있는 영종이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다가 드디어 생각났다는 듯 활짝 웃었다.

"아, 유료관중 입장시켜서 자선경기 하면 어떻겠냐고. 4대천왕을 부르던지, 잘 안 되면 요환형 혼자만이라도 나와 주면 안되겠냐고 하시던데요."


'뭐야? 요환형이 둘러대던 말과 똑같은데......전혀 비밀 얘기가 아니잖아!

왜, 왜 그런거야? 왜 그렇게 대단한 비밀 얘기를 들은 것처럼 페이크를 부린 거야?'


#3
연습중에 잠시 물을 마시며 쉬고 있는 요환에게 태민이 다가왔다.

"형, 결국 연성이형이 마지막으로 누굴 만났는지는 못 알아낸 거야?"

요환이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민은 잠시 망설이더니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말야, 연성이형 핸드폰을 한번 봐봐. 최근 발신번호랑 최근 수신번호가 남아 있잖아. 그거 보고, 형한테 '다 털어놓았어'라는 그 문자 보내기 전에 누구랑 통화했는지 한번 체크해봐."

"네가 그 문자 내용을 어떻게 알아?"

"미안해. 나 형 핸드폰 비밀번호 알아. 말레이시아 갔을 때 한개 봤어. 딱 그거 한개만 봤어."

요환이 태민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더니 재빨리 연성이 쓰던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태민이 따라 올라갔다.

"고맙다 박태민. 네 말대로 발신번호을 보면 연성이가 누구랑 통화하고 나갔는지 바로 알 수 있는걸 이제까지 고민만 했네...... 그런데 이거 잠겨 있는데?"

"폰 줘봐."

"무서운 놈, 너 연성이 폰 비번까지 알아?"

"미안하다고 했잖아. 덕분에 지금 간단히 열어보니까 용서해 달라구. 수신번호는 요환이형하고, 이건 여자친구 번호? 그거 외에는 없는데? 김성제, 전상욱, 고인규, 서코치님, 감독님......"

"발신번호 봐봐!"

"이 이상한 국번은 익산 집이겠지?"

"응, 맞아. 그 다음 껀 여자친구고. 세 개 연속으로 있는 건 내 번호야. 그 외엔 딱히 없는데......"

"이 번호 누구야?"

그 순간 요환과 태민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강민!"




※내용에 관한 주요 리플 정리
*ㅁㅈㄷㄻㅈㄷㄹ(220.80...): 지난 16편에서 강민이 다음차례는 너아니면 나라고 하는 대사가 있다. 범인이 그 비밀을 아는사람만 죽인다면, 자신이 타겟이라는 것은 범인이 강민도 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뜻인가?
  답변: 지난 16편 도입부에 보면 강민이 문 잠겼는지 확인하고, 밖에서 들리지 않게 하고, 성준에게 미행을 경고하는 등, 의문의 범인이 도청이나 미행을 할 가능성을 계속 암시하고 있습니다. 범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범인이 아는지 모르는지 역시 모르지만, 도청이나 미행을 통해 결국 알아낼거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있는 거지요.
*ㅁㅈㄷㄻㅈㄷㄹ(220.80...): 연성의 마지막 문자 '나 다 얘기하고 왔어'를 임 선수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환이 진상을 모른다면 연성이 도대체 뭘 얘기했는지, 그것때문에 당한 건지 아닌지 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답변: 제가 일부러 연성의 문자들 중에 마지막 하나만 공개(태민을 통해)했죠? 그 장면을 다시 읽으시면 여러 개 있는데 마지막 한 개만 읽었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17편에도 마지막 한 개만 봤다고 나옵니다. 연성이 문자 여러개를 보내는데 앞의 것들은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고, 태민이 본 마지막 한 개가 그 "다 얘기했어" 입니다. 명확한 답변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와이(211.61...): 강민은 요환도 알고 있다는것을 모르는 것인가? 그러면 요환도 강민과 성준이 알고 있다는것을 모르고?
  답변: 지금 현재까지는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 따로 놀고 있습니다. 서로 알면 부딪치기 시작하겠죠. 강민은 임 선수가 안다는 걸 모릅니다. 한편 임 선수도 강민과 성준이 안다는 걸 모릅니다. 지금까지 서로 다 알고 있었다면 미리미리 비극을 제때 막았을 텐데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지난 16편에서 강민이 성준한테 가서 따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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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05/10/28 00:55
수정 아이콘
헉. 리플다는순간 글이 올라왔네요. 재밌어요~~
노다메
05/10/28 00:56
수정 아이콘
얼짱 김동수에서 푸핫...
unipolar
05/10/28 01:14
수정 아이콘
이런, 아까만 해도 잘 보였는데 갑자기 사진이 엑박으로 보이네요? 다른 분들도 그러신지......-_- 14,15편은 '얼짱'을 비롯해서 코믹 분위기로 썼습니다. 저는 전체적으로 스릴러물임에도 중간중간 한번씩 개그를 써서 긴장을 탁 풀어 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Swedish_Boy
05/10/28 02:12
수정 아이콘
어라? 사진이 잘 보이다가 다시 안보이네요
엑박이아니라 느트(느낌표 트라이앵글;) 로 보여요!
05/10/28 07:38
수정 아이콘
음...범인은 혹시 강민.....???
치터테란
05/10/28 13:55
수정 아이콘
뭔가모를 긴장감...
unipolar
05/10/28 16:53
수정 아이콘
트래픽이 초과하기라도 한 것인지-_- 사진이 갑자기 안보이니까 정말 당황스럽네요. 나머지 내용도 정리해서 오늘밤 자정쯤에 올리겠습니다.
Peppermint
05/10/28 20:59
수정 아이콘
트래픽 초과인 것 같네요..^^ 피지알 글쓰기 권한 생기신 것 축하드려요~
05/10/28 21:00
수정 아이콘
빨리 올려주세요 보고 싶어요 ㅜ.ㅡ
바나나킥
06/04/30 05:20
수정 아이콘
아아 넘재밋어~자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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