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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25 11:55:49
Name 설탕가루인형
Subject [일반] 필드게임과 멀티깍두기
필드게임이라 함은, 실외에서 돈을 들이지 않고 2인 이상이 즐길 수 있는 놀이를 뜻하며

얼음 땡, 나이먹기, 깡통 차기, 다방구, 돈까스, 개뼉다구같은 정통 필드게임과

야구, 축구, 살인 배구, 4인 족구, 와리가리, 짬뽕 등 구기종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는 광역의 의미에서의 필드게임을 논하기로 한다.



사실, 필드게임의 세계에서는 제법 규율이 엄격하다.


고학년 형들이 오면 저학년들은 비켜나야 하고, 고학년 형들에 의해서 규정이 종종 바뀌기도 했다.

또한, 고학년 형들은 저학년 애들을 잘 끼워주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인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혈연/학연/지연 덕분에
  
나는 늘 형들과 필드게임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필드게임 플레이어로 전성기를 누리는 나이인 10~13세에 접어든 친척 형과 친형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가뜩이나 작은 체구에, 순발력과 균형감은 좋았지만 필드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치인

완력, 주력, 체력이 형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던 나는 깍두기로 게임에 참여하곤 했다.

거의 모든 필드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던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나는 모든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른바 멀티깍두기다.



야구를 하면, 배트를 휘두를 힘이 없으니 항상 벤치에서는 번트 싸인만 나왔고 내가 하는 일은 새색시처럼 번트를

다소곳하게 대고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것뿐이었다.



축구를 하면 측면수비수(라고 쓰고 쩌리라 읽는다)로 뛰었고, 깡통차기를 할 땐

명예로운 키커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정통필드게임에서야 편을 나눠 하는 게임일 경우 깍두기가 있으면 좋지만, 구기종목은

엔트리에 깍두기가 있으면 인원수만 까먹는 사태가 벌어진다.

또한 그날의 전체적인 필드게임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이래저래 깍두기는 타박을 받을 일이 잦다.



그런데도 내가 과거를 돌아봤을 때 6~9세 때가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걸 보면,

형들이 알게 모르게 어지간히 나를 배려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형들은 내가 번트를 댈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우왕좌왕하면서 번트타구를 놓치기 일쑤였다.

또 내가 술래가 되면 최고의 필드플레이어들이 잡히곤 했으며

내가 판정시비에 휘말리면 어김없이 너그러운 판정을 내리곤 했다.

또 내가 공을 잘 던지거나 가뭄에 콩나듯 골을 넣거나

좋은 플레이를 하면 내가 한 행동 이상의 칭찬과 격려를 받곤 했다.




그러니까 이미 애들은 필드에서 놀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격려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규율과 예절을 배우게 된다.





요즘 애들 버릇이 없다 버릇이 없어 하는 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에 다니며 닌텐도 DS와 온라인 게임을 하느라

필드게임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 가까운 놀이터에 가보면, 대한민국 유딩과 초딩들의 사회화 과정의 수준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비어 있는 놀이터에 깍두기도 아닌데 혼자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은퇴한 필드플레이어의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 필드게임계에 대한 걱정이 크다.




필드가 모자라서 옆 동네까지 원정을 가고,  정 모자라면 좁은 필드에서도 할 수 있는 게임을 고안해내는,

늘 흙투성이에 장난기 어린 아이들로 가득찬 대한민국의 필드를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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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25 12:08
수정 아이콘
아 그립네요 진짜 으앜...............
필드게임 하고싶다........
최종병기캐리어
10/09/25 12:24
수정 아이콘
'우선 소리부터 지르고 봐라', '법보다 주먹', '강한 자에게 붙으면 편해', '능력보단 핏줄', '맞아야 정신차리지' 등 살아있는 지혜를 체험할 수 있는 필드 게임...
마나부족
10/09/25 12:28
수정 아이콘
요즘 아무리 컴퓨터/비디오 게임들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방과후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보면 애들이 시끄러울 정도로 축구와 야구를 하고 있기에 아직까진 큰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
헥스밤
10/09/25 14:15
수정 아이콘
어릴때 자란 동네가 좀 험한 동네여서인지, 필드플레이는 제게 묘한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런저런 즐거운 필드플레이들은 좋지요. 하하, 번트를 치며 양준혁이 되던 그 추억. 저도 공유하는 추억이네요.
맥주귀신
10/09/25 16:59
수정 아이콘
크크 진짜 추억돋네요. 필드게임이란 재미있는 표현도 처음 들어보네요. 크크크.
저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오기 전, 정릉동 꼭대기에서 살았었는데 학교 끝나고 집에 오기만 하면 동네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동네 휘젓고 다니면서 계절별로 별별 필드게임 안해본 게 없네요.
음.... 어렸을 때 했던 놀이들 생각해볼까나.... 팽이치기, 망까기, 나이먹기, 다방구, 꽁거미, 오징어, 땅따먹기. 또 머있나......
검은창트롤
10/09/25 22:03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주제로 참 재미있게 쓰셨네요.
아련히 옛날 생각이 납니다.
9th_Avenue
10/09/25 22:41
수정 아이콘
또래끼리 몸을 부딪혀가며 어울리는 것만큼 좋은 사회화 교육방법은 없는것 같아요 ^^;
라고 하지만.. 아;; 얼음땡하고 싶다는 욕구가 막!!! 생깁니다.
뱃살토스
10/09/27 17:19
수정 아이콘
정말 갖가지 종류의 '필드게임'을 하고 자랐는데요.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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