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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04 14:40:18
Name ohfree
Subject [일반] 길을 가다 뒤에 누가 오는거 같아 돌아 보았다.
길을 가다 뒤에 누가 오는거 같아 돌아 보았다.

뒤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순간 움찔했는데...그 사람이었다.



새로운 곳에 이사오고 나서 오락장을 탐방했었는데, 그때에는 내 친구가 철권을 제일 잘했었다. 일명 XX동 천마신군 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서열이 첫번째 제자, 두번째 제자...... 순으로 6명의 실력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제자라고 해서 진짜 제자는 아니고 그냥 실력순을 매기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공부는 안하고 철권과 열혈강호를 탐닉한 내 친구'가 말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나타났다.

퇴근길에 손 한번 풀어볼까 하고 들어선 오락장. 셋째 제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스틱을 잡고 있는게 보였다.

'새퀴. 더위를 많이 타나?' 라고 승수를 보는데 Wins:8 이라고 쓰여 있었다. 역시 잘하는군. 생각하고 있는데...자세히 보니 8번을 이긴게 아니라 8번을 지고 있었다.

어? 뭐지? 첫번째 제자랑 하나? 하고 맞은편을 보는데 쌩판 처음 보는 사람 이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스티브를 조종하고 있었다. 경쾌한 스텝과 날카로운 잽. 딱 봐도 플레이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조용히 세번째 제자의 브라이언을 어퍼로 쳐 올리더니 벽으로 몰고 가서 디지게 패버렸다. 세번째 제자는 9번째 지자 이내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한번 봤는데 '넌 빨리 도망가라' 라고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난 피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상대도 안될걸 알았지만...그래도 녀석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어서 200원을 기계에 흘러 넣었다.

녀석은 내가 니나를 고르자 약간 고민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하던대로 스티브를 선택하였다.
나는 고수답게 맵 따위는 따로 고르지 않고 랜덤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게임은 시작하였고 난 1분동안 레버를 뒤로 잡고만 있다가 일어났다.

당황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나의 모든 잽은 그의 현란한 위빙에 흘려졌으며 그의 공격 하나하나가 나에게 카운터로 적중했다. 실제 내가 맞은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구타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니나는 맵 구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디지게 쳐 맞았고 어쩌다 일어났다 싶으면 누워있을 때보다 더 심하게 맞았다.

공포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게임 하면서 식은땀이 났던 적은 중학교 2학년때 문을 열었는데 눈깔괴물이 달라 들었던 둠2 때를 제외하곤 2번째 였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놀랍고도 두려운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허공답보를 하며 오락장으로 달려온 내 친구. 위풍당당하게 오락장의 문을 열어 제꼈다. 어느샌가 오락장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동네에서 철권으로 껌좀 씹었다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있었다. 친구가 도착하자 그들은 예를 표하며 철권 기계까지 길을 터 주었다. 내 친구는 천원을 동전으로 바꿔 그에게 이었다.

딱 5분이었다. 내 친구이자 XX동 천마신군이 그에게 버틴 시간은 딱 5분이었다.

처음 친구가 지자 뒤에서 약간 술렁이기 시작했고 두번째 지자 천마신군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번째 지자 몇몇 이들은 낙담하기 시작했고 네번째 패배를 기록하자 몇명은 눈물을 흘렸다. 다섯번째까지 구타당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XX동 천마신군. 그의 얼굴에는 이미 혼이 나간듯 했다. 그는 더 이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과 상대했던 그의 모습을 한번 본 후 오락장을 나섰다.

친구는 분한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침묵으로 일관하다 더위 사냥을 두개로 쪼개 나눠먹고 나서야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열받는게 뭔지 알아?
다섯판 진거?
그것도 그렇고.
그럼 뭐 또 있어? 아는 애야?
아니.
그럼 왜?
서울대 잠바 입고 있더라고. 시바. 철권도 잘하는게 공부도 나보다 잘해.



그리고 오늘 난 집에 오는길에 철권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 사람을 보고, 실제 골목길 구석으로 몰고가 때릴것만 같아서 움찔했다.
(서울대 까는글 아니고 실제 그 사람의 위압감이 대단했음을 표현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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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혈질
11/08/04 14:48
수정 아이콘
잼있는 글입니다. 오래도록 철권을 해오고 전국순회를 많이 다녔던 창원의 철권유저로서 대단히 공감가는 일화네요. 하하하
우리동네엔 공부도,철권도 잘하는 유저는 거의(?)없는것 같지만 말입니다.
11/08/04 14:52
수정 아이콘
그러니 강호에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이 있는 겁니다.
"여자와 어린애, 중과 도사, 유학자와 거지를 우습게 보지 말라"
문무겸전의 신진고수의 등장으로 xx동에 풍운이 일겠군요.
재밌게 읽었네요.
Go_TheMarine
11/08/04 15:01
수정 아이콘
아. 전 버츄어스트라이커로 인천과 서울몇몇 지역 순회를 많이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콜롬비아 하면 저였는데..크...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사악군
11/08/04 15:16
수정 아이콘
전 대학 잠바 입고 다니는 사람 보면 되게 기분이 이상하더라구요..-_- 대학 행사같은 데서는 그러려니 하는데.. 평소에 뭐하러 그걸 입는지. 더군다나 품질에 비해 비싼 값에 돈주고 사야 하는데-_-;; 대학 들어가기 전엔 입학하면 하나씩 주는 건 줄 알았음..
녹용젤리
11/08/04 15:27
수정 아이콘
하하하...
저도 예전 버파3때 일산에는 더이상 적수가 없어서 그 유명하다는 아키라키드(신의욱씨)에게 도전하기 위해 대방동을 찾았었죠.
결과는 저도 뭐.... 레버만 잡고있었습니다. 그뒤로 절치부심 와신상담하여 두세달후 재도전... 10번의 연패후에 첨으로 승리해봤지요.
그때 기분이란.. 으흐흐흐 [m]
Aisiteita
11/08/04 15:35
수정 아이콘
어릴땐 저보다 스타도 잘하면서 공부도 잘하는 녀석들이 왜 그렇게 얄밉던지....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ARX08레바테인
11/08/04 15:54
수정 아이콘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은 법입니다.
낭만토스
11/08/04 15:56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전 저보다 공부 잘하는 놈에겐 게임이라도 이기겠다며 항상 승리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저의 완패.....
Darwin4078
11/08/04 16:30
수정 아이콘
사무라이쇼다운1이 한창 인기였던 그 시절..
고2였던 저는 전대의대 앞 오락실에서 공포를 보았습니다.

게다리와 제자리쯔바로 동네에서 짱먹었던 나으 우쿄짱이..
한조한테 칼한번 못날려보고 당했습니다.

그 한조가 당시 전대의대 다니시다 게임제작자로 나서서 그녀의 기사단을 만드신 별바람님이셨다능..
공부도 잘하면서 게임도 잘해..ㅠㅠ
11/08/04 17:02
수정 아이콘
신림동 고시촌이 오락 수준이 높더군요

서울대 잠바에 버프라도 들어있는건가
603DragoN2
11/08/04 17:55
수정 아이콘
전 노량진에서 달심이 좋은 캐릭터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the hive
11/08/04 19:16
수정 아이콘
양민인 저에게는 너무 높은곳의 이야기로군요
11/08/04 21:42
수정 아이콘
녹용젤리 님// 10번의 연패후에 한번이라도 이기셨다니.. 신의욱님한테,, 저는 그냥 바라만 볼뿐이었습니다.
버파2까지는 라우 사상장p콤보로 나름 여기저기 양민학살하고 다녔었는데, 3부터는 약간 열기도 식고 적응도 안되고..
그저 그런 양민수준이 되버렸었네요. 스파투대쉬도 동네에서는 갑이었는데.. 노량진을 가보니 승률 50%넘기도 힘들었었던
기억이 있네요.
호떡집
11/08/04 23:56
수정 아이콘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집중력이 높다는 것이고, 집중력이 높으면 게임도 잘하지 않을까요?

그 은거고수는 게임을 즐긴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분석하며 두뇌를 혹사시킨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22/03/17 02:57
수정 아이콘
철권러들 웅성웅성거리는 오락실 현장에 소환된 것 같은 느낌이네요 크크크크
필력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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