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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4/13 18:52:36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네 안에 나 있다...
여러분들 혹시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슬슬 잠이 오려고 할 때쯤
갑자기 몸이 움찔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아니면 피곤한 어느 오후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서
반복되는 객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면서 슬슬 졸다가 퍼뜩 잠에서 깨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차창 밖을
바라보신 적은요? 그때쯤이면 아마 여러분 맞은편에 앉아서 여러분의
조는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던 어떤 승객은 여러분이 민망해 할까 봐
이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후겠지만요.
아니면 점심시간 후 5교시 영어 시간에 머리가 반쯤 벗겨지신 영어 선생님께서
열심히 to 부정사의 부사적 용법을 설명하시는 동안 여러분은 "선생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십니다"하는 동의의 표현으로 부지런히 위 아래로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노트에는 적장 쓴 본인 자신도 알 수 없는 상형 문자들을 열심히 그리다가
퍼뜩 눈이 떠지면서 벌개진 눈으로 좌우를 살피고는 입술 아래로 조금 흘러내린
침을 소매로 쓱 닦아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이러한 현상들을 "hypnic jerk"이라고
부르는데요 왜 잠이 들려고 할 때 이러한 현상들이 발생하는 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학자가 이러한 현상을 인류의 진화 과정과 연관지어서 가설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 hypnic jerk는 인류가 진화를 하면서 적응시킨 반사작용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침팬지들이 밤에 어디서 잠을 자는지 아십니까?
우리 인류와는 약 8백 만 년 전에서 6백 만 년 전 사이에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알려진 침팬지들은 밤에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어 놓고 거기서
잠을 잡니다. 위험한 포식자들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지요. 우리 인류의 오랜
조상들도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류의 먼 조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도 틀립없이 나무 위에 둥지를 만들어 놓고 잠을
잤을 겁니다. 잠을 자고 있는 동안은 방어에 절대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별다른 대비책도 없이 포식자들이 우글거리는 땅위에서 잠을 잘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 짓이야말로 포식자들에게 "히잉~포식자님들 저를 가지세용~~"하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학자에 따르면 hypnic jerk는 나무 위 둥지에서 잠을 잤던 우리 먼 조상들이
깊은 잠이 들기 전에 자신들이 잠 자는 자세를 바꾸거나 살펴보도록 해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나타난 반사작용이라는 겁니다. 이 반사작용은 실제로 자다가
떨어지는 경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막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잠에서 깨게 되어
급하게 주변 나뭇가지라도 붙잡게 해주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얼마전 히트했던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들이 잠에서 께어나도록 만들기 위해
중력을 이용해서 떨어지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한 것은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에
바탕을 둔 장면이 되는 거지요.

우리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은 호모 에렉투스 때 부터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다름아닌 불의 사용이구요.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포식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마 잠을 자는 장소 주변으로
여러 곳에 불을 피워놓고 불침번들을 두어서 교대로 포식자들이 오는 지 감시하도록 했겠지요.
아무리 날고 기는 포식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불 만큼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바로 눈 앞에서 야식 거리들이 널브러져 자고 있는데 불 때문에 접근하지 못할 때의 그 짜증과
아쉬움은 과연 어땠을까요?

이 이론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증명된 바가 없지만 왠지 그럴듯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음에 여러분들이 지하철에서 졸다가 자기도 모르게 퍼뜩 깨어서 살펴보니
아직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한번쯤은
옛 조상들의 힘들었던 삶을 떠올려 보면서 2백 만 년 가까이 유지되어 오고있는
그 본능적인 진화의 산물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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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13 18:57
수정 아이콘
글에서 판님의 향기가....!!! 네..네렐루야!! [m]
Jamiroquai
12/04/13 19:30
수정 아이콘
그러고 보니. 침대같이 편안한 곳에서 잘 때는 말씀하신 'hypnic jerk'가 덜 한 것 같고, 힘든
자세로 잠을 자려고 하면 이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네요. 살기위한 몸부림이었어..... [m]
12/04/13 19:39
수정 아이콘
이런거였군요.
자는 사람이 움찔거리는 모습을 본 적도 있고 또 자다가 이유없이 화들짝 움직이는 내 행동에 잠을 깬 적이 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군요. 재미있습니다.
근육간대경련, 수면움찔...
12/04/13 19:53
수정 아이콘
군대에서 이등병시절에는 근무 시간 일어나야하기 10~20분전에 눈이 딱! 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상시간 전에 눈떠지는것도요. 몸속에 시계가 있는것도 아닌데 일어나야 하기 몇분전에 눈이 떠지는것도 위와같은
일과 비슷한건지 궁금하네요
Neandertal
12/04/13 20:18
수정 아이콘
Rosee 님//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저도 뭐 이 분야를 전공한 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서 이것 저것 읽어보는 처지라서요...
관심좀
12/04/13 21:57
수정 아이콘
글이 재밌네요. 재밌게 읽기 좋은 글이라 추천합니다.
12/04/13 22:34
수정 아이콘
일종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방어기재라는 건가요? 신기하네요 하긴 저도 수없이 도움 받았습지요 이것이 없었다면 선생님께 맞은 횟수가 10배는 되었을 듯요
12/04/13 23:2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어요.
사실 나도 모르는 무의식 중의 버릇 같은건 약간 동물적인 본능이라고 느끼고,
이게 인간이라는 종족이 몇년에 걸쳐 발전해온 증거구나 하고 생각할 떄가 있었거든요.
흥미롭네요.
근데 음 개인적으로 문단 정리를 조금만 더 깔끔하게 하시면 가독성이 훨씬 높은 것 같아요.
제가 감히 어찌 판단을 하겠습니까마는 단어의 선택과 연결이 엄청 매끄러우셔서 글이 술술 읽히거든요.
Neandertal
12/04/13 23:39
수정 아이콘
영혼 님// 넵...노력하겠습니다...그런데 피지알 게시판이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아서...흐흐...
유리별
12/04/14 00:40
수정 아이콘
오... 인간도 동물이다, 는걸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겸손해지게 하네요.^^
늘 잘 읽고 있습니다.
12/04/14 02:50
수정 아이콘
네안데르탈님 글은 마치 다큐멘터리 나레이션같아요, 읽고있으면 영상이 눈앞으로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
이노리노
12/04/14 13:0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역시 피지알엔 필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아요..
앞으로도 관심분야 편안한 글로 많이 써주세요!
12/04/14 14:59
수정 아이콘
인간은 동물 피지알은 동물원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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