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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1/03/15 23:19:45
Name 라울리스타
Link #1 https://brunch.co.kr/@133897d08e2c4a3
Subject [일반] [책이야기] 스무 살, 도쿄 - (2) (수정됨)


4. 젊은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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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라는 유행어가 탄생했을 정도로, 작년은 '꼰대'에 대한 젊은 층들의 반발이 극에 달했던 한 해 였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는 저도 요즘은 선배 직원들이 '혹시나 꼰대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후배들에게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것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러다가 선배와 후배 간의 진심어린 조언과 같은 긍정적인 교류도 아예 단절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최근들어서는 '꼰대'를 뛰어 넘는 '젊은 꼰대'라는 단어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만 '꼰대질'을 할 것이라는 기존의 편견과는 달리, 비교적 나이가 젊음에도 본인보다 어리거나 경력이 적은 사람들에게 '꼰대질'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지요. 사실 우리 주변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이쯤되면 '꼰대'는 나이나 세대에 관계없는 사람의 개인적인 특성인가 봅니다.


히사오가 신광사에 근무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였으면, 이제서야 막 신입의 티를 벗은 정도겠지만, 이제는 히사오가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죠. 히사오가 직접 면접을 통해 선발한 두 명의 후배 하라다와 스즈키는 도무지 히사오의 성에 차지 않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에 대한 짜증과 트러블이 늘어갈 무렵,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히사오는 모든 사람들이 '본인'같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 당시 히사오에게 회사 일이란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불안한 집안 경제사정 때문에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게다가 히사오는 대학 생활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채 바로 사회로 뛰어 들었습니다. 책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업무를 통해 인정받는 것은 '대학 중퇴자'라는 콤플렉스가 있는 히사오의 자존감 형성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업무에 임하는 태도가 히사오와 같아야 하거나, 혹은 히사오가 해온 방식 그대로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인생의 중요도는 각기 다르기 마련이며, 자신만의 장단점과 개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두 명의 후배를 직접 선발한 것도 히사오였습니다. 자신보다 경험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부담스러워서 그 두 사람을 최종적으로 선택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업무성과에 대해 나무라는 것은 결국 누워서 침 뱉기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의 배경이 되는 서울-나고야 간 88 올림픽 유치 경쟁 부분이 꽤나 흥미롭게 묘사됩니다. 도쿄 사람들은 나고야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든지, 말든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유독 히사오만 계속 신경을 쓰다가 결국 서울에 패했다는 소식에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애향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올림픽이 개최되면 나고야에서 운영 중인 아버지의 사업이 호전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통해서, 히사오가 왜 그렇게 강박적으로 회사 업무에 임해왔는지를 더욱 공감할 수 있습니다.


5.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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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한국의 페미니즘 열풍이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상륙했다고 하지만, 당시 80년대엔 일본에서도 페미니즘이 열풍이었나 봅니다. 이 소설에도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상의도 없이 어머니의 급작스러운 소개로, 도쿄에서 같은 나고야 출신의 '요코'라는 여성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부모님에 의해 억지로 끌려왔다는 생각에 의무적인 자세로 소개팅에 임합니다. 도회적인 미인인 요코는 키가 170cm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나왔습니다. 키 큰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남자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자리가 불편하면 일부러 높은 하이힐을 신습니다. 히사오와의 하루 동안의 만남에도 기분 변화에 따라 하이힐 신기와 벗기를 반복하게 되죠.


재미있는 점은 바로 앞의 에피소드에서 요코와 대조적인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히사오는 후배 사원인 아쓰코에게 귀엽다는 이유로 '공주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또한 커피 심부름을 곧잘 시키기도 하며, 이성적으로 발전한 사이가 아님에도 히사오가 가벼운 터치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 시대의 대한민국에서는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기 충분한 일들이죠. 그만큼 당시의 일본 사회의 보편적인 여성관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요코 보다는 아쓰코가 아닐까 합니다.


요코는 이와 전혀 반대의 성향의 여자입니다. 남자에게 결코 리드당하는 타입이 아닌, 좋음과 싫음을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결혼이 여성에게 손해라는 회의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어머니'나 '부인' 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히사오는 앞서 아쓰코와의 관계가 더욱 익숙한 그 시절의 사람입니다. 맞장구는 쳐주지만, 결코 마음 속 깊은 공감을 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페미니즘이 일본에서는 80년대에 이미 유행했지만, 현재는 일본이 '선진국 중에서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로 분류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만큼 그 열풍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현재 페미니즘 열풍도 시간이 지날수록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지 궁금해집니다.



6. 버블경제 - 재테크,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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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에피소드에는 버블경제가 정점에 달한 당시 일본의 사회상이 나옵니다. '플래너'라는 그럴듯한 직함을 달은 히사오의 주 거래처 사장인 '고다'는 일반 샐러리맨이었지만, 도쿄 곳곳의 부동산을 매입해서 기업체에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기는 부동산 회사를 운영해 막대한 부를 쌓습니다. 이 사람을 거래처로 놓은 덕분에 히사오도 버블의 단꿀을 충분히 맛보게 되지요. 고다가 매입한 건물의 활용방안을 아이디어로 제출한 것만으로 몇 십만엔이 입금됩니다. 도쿄 어느 노인으로 부터 80평의 단독주택을 구입하려는 고다의 옆에서 '8억엔은 그렇고, 6억엔이면 적당하겠네요' 한 마디만 했기로서니 수고비로 몇 십만엔을 받는 식입니다. 아무리 도쿄라 할지라도 무려 30년 전에 노인이 사는 허름한 단독주택이 한화 80억을 호가했다는 것도 놀라운 점이겠네요.


이 외에도 버블경제 특유의 풍경들이 많이 묘사가 됩니다. 이러다가 거품이 확 터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히사오의 여친 리에코에게 히사오는 '정해진 월급만을 받는 사람들의 뒤틀린 심보'로 치부하게 됩니다. 샐러리 맨을 박차고 나온 고다 또한 '월급쟁이'를 바보로 생각하죠. 넘쳐나는 자본에 기술 발전도 눈이 부셔서 80년대 후반에 이미 사무 자동화를 이뤘다는 묘사가 나옵니다. 히사오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이러다가 똥도 남이 닦아주는 거 아냐?'라는 의심을 하는데, 이미 그 당시 일본에는 비데가 있었다고 하죠!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 몇 년 만큼이나 '노동소득'의 가치가 처참하게 인식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재테크 열풍이 엄청났습니다. 저금리시대에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주식을 샀으며, 은퇴한 고령층부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할 대학생들까지 재테크에 관심없는 사람이 없지요. 물론 당시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가 좋은 선생님이 되주었기 때문에, 조금만 버블의 기미가 보여도 대출을 꽉 부여잡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그렇게 쉽게 거품처럼 가라 앉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버블경제 일본과 현재 우리나라를 동일시 하는 것은 큰 의미있는 비교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월급쟁이는 바보'라는 묘사가 머리속에서 잊혀지지가 않네요. 지금도 주변 동료들을 보면 이러한 인식이 점차 강해지는 추세인데, 월급쟁이가 부자는 못 되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마저 깎아내리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특히나 고용 유연성이 거의 없다 시피한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인식이 확대 될수록, 경제적 위험성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회사에서는 승진은 못해도 해고될 가능성도 적은데, 과연 여기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옳은 가에 대한 사람들의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고용과 임금의 유연성 증대도 우리나라에서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Link에 있는 개인 브런치에서도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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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6 16:1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현대와 연결하니 또 다르게 읽히는군요
라울리스타
21/03/18 00:19
수정 아이콘
네~ 감사합니다.

저는 20대 때 두 번, 30대 때 한 번 총 세 번을 읽었는데 읽는 시기별로도 또 다르게 와닿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인 것 같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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