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7/03 03:46:53
Name 손금불산입
Subject [일반]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지알이니까 (수정됨)
PGR21은 태생이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랭킹 사이트였고, 이제 운영진분들의 표현을 빌어보면 게임 기반 커뮤니티가 되었습니다. 따져보면 이미 게임보다도 커뮤니티에 더 무게가 실린 곳이 되었죠. 가입 유예 기간, 글자 수 제한, 초성어 금지, 비교적 높은 연령대 등의 특색은 이 커뮤니티만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20돌이 된 PGR21이고 저도 이 중 10년 정도는 이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살아온 것 같네요. 가입 및 활동과는 별개로 말이죠. 사족일지도 모르지만 떠올려보니 가입일 자체는 피지알보다 홍차넷이 더 빨랐더라구요. 물론 그 한참 이전부터 피지알 게시글들을 눈팅하며 소비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이트가 좋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양의 게시글이 빠르게 지나가는 인터넷의 홍수 속에서 최신 유머글들을 적당하고 적절한 양으로 저에게 제공해주는 유머게시판이 있고요,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것이더라도 조언을 구하면 무엇이든지 답변을 받을 수 있는 질문게시판이 있습니다. 오버워치를 플레이하거나 리그를 시청했을 때는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던 게임게시판이 있고, 적당한 이슈거리에 대해 적당하게 정제된 언어와 사고로 의견이 교환되는 자유게시판이 있습니다.

피지알은 다양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곳입니다. 물론 공통점을 찾아내면 스타크래프트(최근에는 롤)로 귀결이 되겠지만 라떼 세대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안하는 사람이 있기나 했었습니까. 다른 취미나 주제로 엮이는 것보다 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댓글들을 유심히 읽다보면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나 그에 준하는 식견을 가지신 분들의 의견을 접할 수 있습니다. 피지알의 환경이 그런 의견들을 좀 더 수월하게 끄집어 내는 점도 있겠죠. 이제는 정말 오래된 이야기지만 동물 관련 게시글에서 매번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들을 전달해주시던 판님이 생각나네요. 정말 오랜만에 외쳐봅니다. 판렐루야!

스연게는 저에게 취미 생활 중 하나라고 칭할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스연게가 생기기 전부터 저는 스포츠 관련 게시글들에서 회원들이 나누는 대화나 의견에 흥미가 많았고, 비록 스연게의 신설 배경은 유배지에 가까웠을지라도 스포츠에 한해서 만큼은 유머게시판 시절에 비해 더 자유로운 주제를 다양하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특징은 스포츠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고 관심있게 글과 댓글들을 들여다보면 분명 게임 커뮤니티임에도 해당 스포츠 커뮤니티에서 보기 힘든 양질의 글과 댓글들을 접할 수 있더군요. 제가 스연게에 포스팅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 이유도 이러한 의견들을 많이 접하고 싶었기 때문에... 제가 가진 의견과 다른 의견을 접하거나 교환할 때라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회 현상이 대부분 그렇다지만 스포츠에도 답은 없지 않습니까? 제가 프로도 아니고 프로 수준의 안목을 가진 것도 아니니 나는 틀리고 나와 다른 의견이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해보면 굳이 싸울 이유가 없죠. 물론 이게 말은 쉽습니다만... 그래도 계속해서 지키려고 매번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사이트에 좋아하는 것만이 있지는 않습니다. 관심이 없는 것들도 있고,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소들도 있어요. 요즘은 이 사이트가 오래 전에 왜 정치글과 종교글(은 맞는지 아닌지 정확히 기억도 안나네요)을 금지했었는지 다시 떠올리게 할 때가 잦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피지알이 내 입맛에 맞게 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피지알이 제 개인사이트였더라도 말이죠. 그동안 피지알의 운영 정책과 방향성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피지알이 변했다, 예전같지 않다는 말에도 동감을 합니다. 게시판 간의 거리감이 멀어지거나, 몇몇 특정 주제에 대해 아예 외면하는 유저들이 많아진다거나(저도 평소에 정치탭은 꺼두고 얼씬거리지 않고 있습니다.), 피지알을 하면서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것들은 여전히 많은데, 반대로 보기 싫거나 거부감이 드는 것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그런게 보기 싫어서 주로 피지알만 보는데 그런 것들을 피지알에서도 마주하게 되면 유쾌하지만은 않더군요.

이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뜻은 아니고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20년이 된 피지알이 변하지 않는다는게 더 이상한 거겠죠. 변하지 않았으면 진작에 사장되었을 겁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게 변화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다만 최근들어 인터넷 그리고 사회 전체에 스며들고 있는 긍정적이지 못한 분위기나 가치관들이 피지알의 정체성을 해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할 수 있을겁니다. 이곳이 규정을 빡빡하게 지키는 사이트라지만 규정의 선을 타면서도 사이트 전체에 해가 되거나 회원들에게 강한 불쾌감을 주는 행동 역시 종종 연출되기도 하니까요.

사실 보기 싫으면 제가 안보면 됩니다. 그게 정답이죠. 여기는 제 공간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최근 수년간 피지알의 해결책도 이 방향성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돌 영업글이 보기 싫다는 의견들이 많아져서 스연게가 유게에서 분리되었고, 정치글이 보기 싫다는 의견들이 많아져서 정치탭이 신설되어 분리되었습니다. 그것도 눈에 띄는게 불편하다는 의견이 나와서 정치탭을 자동으로 숨길 수 있는 개인 기능까지 제공이 되고 있고요.

피지알이 무슨 회원을 검증하거나 가려받는 사이트도 아니고 남녀노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별다를 바 없는 곳입니다. 디시니 펨코니 루리웹이니 뽐뿌니 엠팍이니 인벤이니 여기 피지알 사람들이라고 뭐 다른가요? 라는 말도 맞습니다. 피지알에서만 활동하는 사람이 더 드물겠죠. 피지알만 보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거고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여기서는 달라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다 똑같을 거라면 더더욱 이 사이트의 존재가치는 사라질테니까요. 다른 곳에서 쌍욕을 하든 혐오를 하든 뭘 하더라도 상관없지만 피지알에서는 피지알의 규정과 문화를 존중하며 활동을 해야 합니다.

물론 생각해보면 피지알에서 표출되고 있는 글과 댓글이 이 사이트의 전부인 것은 아닐겁니다. 최근 피지알의 어떤 게시글의 댓글에서도 언급이 되긴 했지만 침묵이 동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죠. 이건 피지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일겁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경향성이 더 강한 곳이 이곳일지도 모릅니다. 어설프게 달려들었다가는 할 말 없이 반박당하고 GG 쳐야하는 살벌한 곳이니까요. 다른 대형 커뮤니티들처럼 게시글이 수없이 빠르게 올라오는 그런 사이트도 아니고요.

따져보면 글과 댓글은 피지알 이용층의 극 소수이기도 합니다. 피지알은 게시글의 최소 조회수가 1,000뷰 가까이 되는 편이고 그러면서도 댓글은 10개 남짓 달리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댓글을 안달면서 게시글을 보는 회원들이 더 많고요. 게시글과 댓글을 최대한 아껴가며 피지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또한 과거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가입조차 하지 않고 비회원 상태에서 게시글을 읽으며 피지알을 이용하는 분들도 많이 있겠죠.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조용히 읽는 사람이나 동등한 이용자 1명이니까요.

댓글 100개가 넘는 급발진이나 파이어 글도 사실 한두명의 열일로 불타오르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에 이것들로 피지알이 이렇네 저렇네 어땠네 하는 것도 편견이나 오류에 가까울 지도 모릅니다. 피지알에서 다른 커뮤니티들이 이렇네 저렇네 품평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아무튼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많아진다고 해서 제가 피지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깝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않는 점도 생기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에게 있어 지인보다는 친구의 단점이, 친구보다는 가족의 단점이 더 많이 보이는 법이죠. 아빠 엄마 아내 형제자매와 말다툼을 했다고 다음날 말을 끊어버리는 사람은 없듯이, 가끔은 피지알에 대해서도 유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오늘도 기대를 가지고 피지알을 클릭하면서 글을 읽고 쓰고 댓글을 달고 의견을 교환하게 되는 거겠죠.

2010년의 저에게 가서 '2020년쯤 PGR을 보고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변했을까요. 그 때쯤까지 이 사이트가 굴러가긴 해? 굴러가도 내가 계속 보고 있을까? 그때쯤 되면 스타크래프트도 안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제 지금 2020년의 저에게 물어봅니다. 과연 2030년에도 PGR을 보고 있을까? 솔직히 이번에도 장담 못할 것 같아요. 특히나 운영진분들에게 주어지는 과부하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2030년에도 변함없이 글을 쓰고 있다면 그때 역시 좋은 감정을 가지고 피지알 화면을 보고 있을 것 같네요. 아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자그만한 소망을 가져봅니다.

PGR21의 20주년을 축하합니다. 그만큼 저도 나이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피지알에서 활동하시는 회원분들도 나이를 먹었겠군요. 지난 20년간 잘 부탁드린 것처럼 앞으로 10년, 20년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유료도로당
21/07/03 10:31
수정 아이콘
비슷한 생각이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크크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2380 [정치] 정치인과 애완동물 이야기 [32] 나주꿀12766 21/07/03 12766 0
92379 [일반] [14] pgr21 20주년 기념, 꼭 봐야할 만화책 추천 20선 [33] 로각좁15276 21/07/03 15276 20
92378 [일반] [14] 대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화염투척사10060 21/07/03 10060 2
92377 [일반] [14]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1] 유료도로당9548 21/07/03 9548 3
92376 [일반] "왜 바로 안 와"…교사에게 맞아 '뇌진탕' [74] 함바17753 21/07/03 17753 7
92375 [일반] [더빙] 예전에 했던 콘스탄틴 더빙 다시 해왔어요! [2] 유머게시판11308 21/07/03 11308 3
92374 [일반]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지알이니까 [1] 손금불산입9149 21/07/03 9149 18
92373 [일반] <인 더 하이츠> - 무난하디 무난한. [6] aDayInTheLife9785 21/07/03 9785 0
92372 [일반] [14] 나의 인터넷 본진 [3] 판을흔들어라10274 21/07/03 10274 3
92371 [일반] 다음 금융위기는 어떻게 올까요? [73] Thenn17792 21/07/02 17792 5
92058 [일반] PGR21 만 20돌 기념 14차 글쓰기 이벤트 공지 드립니다!(주제:PGR21) 7월 3일까지! [30] clover21314 21/05/27 21314 7
92370 [일반] 이런저런 이야기. [2] 공기청정기8879 21/07/02 8879 10
92369 [일반] [14] 솔로의 아이콘이었다가 PGR 덕분에 쌍둥이 아빠 된 썰 [76] jjohny=쿠마15055 21/07/02 15055 68
92368 [정치] 전혀 다른 두 공정함 : 조별과제의 공정함과 형제의 공정함 [34] 아루에14474 21/07/02 14474 0
92367 [일반] [14] ppt21.com [10] 오지키13142 21/07/02 13142 18
92366 [일반] 서울 성인 3명 중 1명, 지난 1년간 '이것' 안(못)했다. [90] 나주꿀18922 21/07/02 18922 8
92365 [일반] 대학 입시에 대한 단상 [7] Respublica9843 21/07/02 9843 3
92364 [일반] [14] 타인의 삶 [6] 거짓말쟁이10612 21/07/02 10612 10
92363 [일반] 영화 1600편을 보고 난 후, 추천하는 숨겨진 수작들 [126] 최적화18284 21/07/02 18284 40
92361 [일반] 한라산 국립공원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4) [44] 영혼의공원12423 21/07/02 12423 15
92360 [일반] [14] PGR21이 내 인생을 바꿔주었던 일 2가지 [14] 해바라기10771 21/07/02 10771 29
92358 [정치] 야권 대선주자들이 배워야하는 역사속 인물 [116] aurelius23624 21/07/01 23624 0
92357 [일반] 앞으로의 코로나 상황에 대한 의문 [101] 헝그르르18093 21/07/01 18093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