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출을 가장 많이 한 나이는 아마 4~5세시기였을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때외엔 가출을 시도해본 적조차 없다는게 옳은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도 슈퍼집돌이인 내가 집에서 뛰쳐나가 자유를 갈구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기에 대개는 혼자서 장난감 2개만 가지고 놀아도 괜찮은 소위 '보기 쉬운 편'에 속하는 아이었다.
그러나 동네에서 놀면서 보호자의 방심을 유발 시켜놓은 상태에서 뜬금없이 조용하게 골목을 뛰쳐나가 어른 걸음으로도 20분은 걸리는 곳에서 발견된다던가, 매번 할머니와 함께 가던 누나의 통학길을 기억한 것 마냥 누나를 데리러 가겠다며 용감하게 집을 나서 초등학교와는 정반대인 엉뚱한데로 가서 대충 학교 같아 보이는 곳에 냅다 앞에 죽치고 있다가 착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경찰에게 인계되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평소의 태도를 바탕으로 쌓인 신뢰를 이용해 도주를 시도하는 그런 가출 스타일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다.
딴에는 이런 것도 경험이 쌓인다고 나중에는 태연하게 제 발로 주변 파출소를 찾아가 길을 잃었다라고 신고하고는 파출소에서 경찰아저씨가 주신 요구르트를 빨며 혼비백산하여 오신 부모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여러번 보셨더랬다.
그런 내가 가장 자주 가출하던, 아니 길을 잃어버리던 곳을 꼽자면 용산 가족공원이었다.
당시 맞벌이를 하시던 어머니는 주말이 되면 주중에 못놀아준 것을 풀어주시려는 듯 나와 누나를 데리고 용산 가족공원에 피크닉을 자주 가곤했다.
내 기억 속 용산가족공원은 푸른 잔디가 뒤덮인 공터가 엄청나게 많은 곳으로 그 때문에 개미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있던 곳이 어디인지 헷갈리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어릴 때의 나는 위치를 풍경으로 기억하곤 했는데 단지 조그마한 언덕 하나를 넘으면 여기도 다 푸른 잔디밭이라 저기에 엄마가 있겠지 하면서 당당하게 온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엄마를 찾으러 뛰어가곤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퍽이나 이상한 것이 그렇게나 많이 길을 잃어버렸으면서 단 한번도 엄마가 있던 방향으로는 돌아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용산가족공원에서 길을 잃는 것도 슬슬 익숙해질 때쯤 다시 한번 길을 잃었을 때의 이야기다.
이미 충분한 경험이 쌓인 당시의 나는 울면서 엄마를 찾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선택하지 않고 당당하게 주변 어른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젊은 커플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 커플에게 다가가 당당히 말했다.
"제가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핸드폰 있으세요?"
나는 여러번의 경험으로 울고불고 하기보다 핸드폰으로 전화해 내가 없어졌으니까 찾으러 오라고 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울지도 않고 말하는 내 태도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친절했던 그 커플분들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플립폰을 꺼내 주셨다
플립폰을 건내받은 나는 당당하게
2번을 길게 꾹 눌렀다.
당시의 나는 아버지 핸드폰으로 2번을 꾹누르면 어머니한테, 어머니 폰으로 2번을 꾹 누르면 아버지한테 전화가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의 폰에서 2번은 아무리 꾹눌러도 우리 가족에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몰랐던 것이다.
너무나도 당황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커플을 쳐다보면서 다시 물었다
"혹시 우리엄마 번호 아세요?"
너무나도 나이스했던 그 아름다운 커플은 이런 나를 울지않게 어르고 달래주면서 미아보호소에 데려다주신 후 그대로 감사인사도 받지 않고 가셨고, 나는 다시 한번 혼비백산한 어머니에게 해맑게 웃으면서 반가워했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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