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써 봤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아무런 관련도 없습니다. 심심풀이로 읽으시고, 괜히 봤다는 생각만 안 드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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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요기妖氣가 자미紫微를 범하니....
푸르스름한 달빛.
사내는 어딘지 모를 숲속을 헤매고 있다.
후원에 이런 곳도 있었던가...
환관과 궁녀도 따르지 않는다. 소리쳐 부르고 싶지만, 웬지 소리내서는 안될 것 같아 숨 죽인다. 그런데 그 때!
우드득 ㅡ 목 뼈 부러지는 소리.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내는 알 수 있었다. 숨어있던 흰 범이 목덜미를 물었다는 것을.
헉!
사내는 깨어났다.
ㅡ 폐하, 감로수이옵나이다.
밤 새 잠든 황상을 지키고 앉아있던 지밀至密나인이 자리끼를 올린다. 물 한사발 들이켜고 나서야 사내는 천자로 돌아왔다.
ㅡ 폐하, 옥체 미령하신 듯 하옵니다. 태의를 부르리이까?
ㅡ 아니, 되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했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ㅡ 흰 범이 뒷 목을 물어? 숨어있다가?
ㅡ 예, 그리 말씀하셨사옵니다.
전달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몇해 전 병부의 동향을 보고받으며 '백호가...'라고 낮게 뇌까리던 황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천자에게 문신이 좌청룡이면 무신은 우백호였다. 병부에서 도독들이 모이는 전각 이름도 백호절당.
이제 그물을 당길 때인가!
지금까지 전달은 천자 앞에서 절대 문무관료들을 헐뜯지 않았다. 천자가 그들에 대해 역정을 내도 결코 동조하지 않았다. 대소신료의 문제점을 보고할 때도 증거가 있는 사실만을 올렸고, 객관적인 추측만 내놓을 뿐 의견을 말한 적은 없었다. 그마저도 되도록이면 부하들에게 미루었다.
천자가 문무관들과 자신을 견주기라도 하면, 원앙과 조동의 고사를 들어 천자의 수레에 참승驂乘할 주제도 못되는 비천한 환관이라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문무관료들의 약점은 끝까지 물고 늘어져 파헤쳤고, 천자의 기분이 좋지 못할 때를 골라 보고했다 - 자신이 나서지 않았을 뿐. 황상 앞에 설 기회를 주는 척 부하에게 일을 미루면, 모두가 달려들었다. 은근슬쩍 한두마디 추켜세우면, 인생을 걸고 자신이 하기 어려웠던 말을 해줬다.
문신이나 무신이나 전달을 죽이려 안달난 놈들이었다. 문신들은 자신을 처형하려들었고, 무신은 단칼에 자신의 목을 베고 싶어했다. 하지만 전달은 결코 내색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그들을 증오하면서도 웃으며 대했다. 다만 천자의 마음에 거미줄을 드리울 뿐. 만약 침윤지참浸潤之譖에 대해 책을 써야 한다면, 전달은 그 책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문득 상념에서 깨어난 전달 ㅡ 혹시 나인이 속 마음을 읽었을까 싶어 저도 모르게 엄해졌다.
ㅡ 지밀至密이 왜 지밀인지는 알고 있겠지? 절대 황상의 일을 발설해서는 안될 것이야. 진시황의 고사는 잘 알고 있겠지?
양산궁에 있던 진시황이 산에 올랐다. 마침 내려보게 된 승상의 행차 - 으리으리 했다. 진시황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자, 누군가 승상에게 알렸다. 기겁을 한 승상이 수행을 줄였는데, 그걸 진시황이 알아버렸다.
자신의 말이 새나갔다는 것에 격노한 시황제, 누구 짓인지 다그쳤지만 아무도 불지 않았다. 그러자 그 때 따랐던 사람은 모두 죽여버렸다.
기밀 누설이나 정치 개입 등 화근을 없애기 위해 궁녀들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해서 이들은 사서를 읽지 못하지만, 진시황의 일화는 궁에 들어오자 마자 듣는 이야기였다. 가끔 벌을 주거나 을러댈 때도 꼭 나오는 말이었기에, 이들은 진시황이 언제적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이 일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세도가의 눈귀가 된 사람은 할 것 다 했지만.
세도가의 연줄도 없고, 전달의 말 한마디에 잘 익은 닭백숙처럼 다리뼈가 살에서 뽑힐 수도 있음을 아는 지밀나인은 방바닥에 이마를 찧어가며 사정했다.
ㅡ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꿈에서라도 그러지 않겠사옵니다. 믿어주시옵소서.
전달은 항상 웃으며 나인들을 대해 왔다.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낫다는 걸 알았거니와, 제독동창이 된 뒤에는 -아니 동창에 들어간 다음부터가 옳은 말이겠지만 - 아무리 부드럽게 대해도 자신을 두려워하는데 굳이 인상 쓸 일도 없었다. 특히 지밀나인들을 직접 만나 황상의 일상에 대해 들을 때는 더욱 부드러워지려 했다. 이들이 천자의 총애를 받을 가능성은 둘째치고, 나를 저어하면 내 앞에선 입이 무거워지기 마련. 그 때문에 황상의 작은 낌새라도 놓치는 것은 전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전달이 갑자기 무서워지자 나인은 기겁을 했던 것이다. 이를 본 전달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지나쳤구나 싶었다. 환관이라 할 지라도, 예순이 넘은 남자가 스물도 안된 고운 아가씨를 모질게 대할 이유는 없었다.
ㅡ 밤 새 황상을 모시느라 피곤하겠구나. 이만 물러가 쉬거라. 네 수고가 많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앞으로도 애써주고.
문갑에서 아이 손바닥만한 금거북이 하나를 꺼내 주자, 지밀나인의 마음 속에서 두려움은 흐뭇함과 임무교대를 했다.
채규는 무공이 부족했지만 눈치는 빨랐다. 전달은 채규의 무공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공을 열심히 익히라는 지시만 하고는 그냥 썼다. 전달이 채규를 보낸 곳은 관가를 담당하는 삼명각ㅡ 한마디로 칼 뽑을 일이 없는 곳이었다. 얼어붙은 상대를 과시하듯 구타할 일은 많아도, 내공을 끌어올려 진기살전을 벌일 일은 없었다.
채규는 자신이 무공도 약하고 지모방략智謀方略이 뛰어난 것도 아님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전달이 중히 쓰는 것은 자신의 눈치 때문임은 누가 봐도 뻔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알아서 기었다. 관가를 드나들며 위세 부리고 큰소리 치는 일을 정말 사랑하기도 했고.
하지만 전달이 채규를 쓰는 까닭을 알면 채규는 자살할 지도 몰랐다.
동창처럼 원한살 일 많은 곳이 또 있을까. 동창이라면 이를 가는 건 바보와 얼간이를 뺀 모두였고, 내각과 군 그리고 금의위는 그걸 충분히 이용해먹을 줄 아는 적들이었다. 황제 직할의 특무기관이야 영원하겠지만 그게 동창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동창이 잘 나간다고 해서 자신도 건재하리란 보장은 더더욱 없었다.
또한 책임추궁할 일은 많아도 책임질 건 거의 없는 동창이었지만, 그래도 책임질 일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 모든 위험과 책임, 내가 떠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채규는 전달이 고른 액받이 제웅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었으니, 그만큼 문제가 되면 꼬리자르기 좋았다. 그런 일이 없더라도, 때가 되면 지시에도 불구하고 무공 수련을 게을리 한 것을 구실로 자를 수도 있다. 무공이 약하니 살인멸구도 쉬웠고. 무엇보다도 나대기 좋아하는 성격이 남의 미움을 쉽게 사니, 그 뒤에 숨기 좋았다.
채규가 어깨 힘주고 다니면서 종종 말썽도 일으킨다는 건 세세히 보고받고 있었다. 그러나 채규에게 주의를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허허... 다가올 이별이 좀 더 아름다워지는군'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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