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근거 전혀 없는 뻘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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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린은 넓직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제갈민이 열어보니 바스러질 것 같은 죽간이 잘 추려져 있었다. 가죽끈이 삭아버려 상자에 담은 모양이었다.
ㅡ 육국고문六國古文이군요.
ㅡ 그렇네. 우선 첫째, 세째, 네째 줄의 말馬자를 보게. 위衞나라의 글자가 틀림없네. 그리고 죽 읽어보면 첫줄에서 위무공과 위선공, 다섯째 줄에서 위문공을 피휘避諱한 게 보이지? 그런데 세째 줄과 일곱째 줄을 보면, 단목숙보다 후대인 위성후와 위평후에 대해서는 피휘하지 않았네. 이 죽간이 아주 허황된 건 아닌 모양이야.
ㅡ 정말 그럴듯 하군요. 하지만 이걸 믿는다해도, 구정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ㅡ 그렇네. 구정은 없어졌지. 이것도 수수께끼야.
전해지는 말은 여러가지가 있네. 오죽하면 구정을 녹여서 돈으로 만들어 썼다는 헛소리까지 있을까. 진 무왕이 정을 들다가 죽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정은 장사라면 간신히 들 수도 있는 무게였네. 그걸 9개 녹이면 돈 얼마가 나왔을까? 꽤 나오긴 했겠지.
헌데 진 소왕이 화씨지벽을 성 열다섯과 바꾸자고 했던 거 알지? 그 때 화씨벽은 전국새도 아닌 그냥 귀한 구슬이었네. 그런 화씨벽도 성 열다섯의 값으로 쳤는데 구정을 녹여 돈으로 만들어? 말도 안되지.
진 소왕 때 구정이 진으로 넘어갔다는 기록은 있네. 그런데 그 뒤에 어찌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이 없네.
진시황이 금인金人을 만들 때 썼다는 소리도 있는데, 만약 그랬다면 전국새가 아닌 금인을 제국의 상징으로 삼았겠지. 전국새와 구정을 비교해보게. 지금이야 둘 다 사라진 먼 옛날의 보물이니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시절 구정은 우라는 성인이 만들어 하은주 이천년을 거쳐내려온 중화주권의 상징이었고, 전국새는 화씨벽으로 깎은 도장일 뿐이었네. 화씨벽도 귀했지만 거슬러 올라가봤자 초려왕 때로 구정에 비할 게 못되지.
무엇보다도, 금인은 육국六國의 무기를 거둬들여 만든 상징이네. 거기 구정을 넣는 건 의미에 맞지 않지. 그렇다고 금인을 만들 때 구리가 모자라서 구정까지 넣어야 했을까? 모르긴해도 진시황이 마음만 먹었으면 황금으로도 금인을 만들 수 있었을 걸? 구정을 금인을 만들 때 썼다는 소리는 준신遵信할 게 못되네.
구정을 항우가 한손으로 들고 갔다는 것도 할머니들이 손주에게 옛날 얘기 들려줄 때나 할 소리고.
그런데 재미있는 기록이 있네. 진 소왕 때 구정을 진으로 옮기다 하나가 사수에 빠지고 나머지도 사라졌는데, 나중에 진시황이 찾으려 했으나 못 찾았다는. 그러면 앞뒤가 맞지.
자, 구정의 임자인 주 입장에서 생각해보세.
주의 시대가 끝났다는 건 수백년 전부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네. 원숭이가 갓 쓴 거나 다름없이 여기던 초 장왕이 구정을 노릴 때도 망신이었지만 어찌어찌 언변으로 간신히 넘겼지. 진 무왕은 안하무인으로 구정 들다가 피까지 봤고. 구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네.
아니 지키기는 고사하고, 구정 가지고 있다가 벼락맞게 생겼지. 필부무죄 회벽기죄匹夫無罪 懷壁基罪 - 힘없는 놈이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없던 죄도 만들어지는 법.
어떻게 해야하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진에 항복하며 구정을 바치는 것이겠지. 진의 천하일통으로 가닥이 잡히던 시대였으니까. 헌데 진에 항복하면 어찌되는지는 백기가 장평에서 잘 보여줬네.
뭐 싸움없이 구정을 들고 가면 일단은 좋은 대접을 받겠지만, 진왕들의 의심과 변덕이 좀 유명했어야지. 나중에 하지도 않은 일로 괜한 의심사서 자다가 벼락 맞는 일이 없을 리가. 그리 공이 많던 백기도 어이없이 갔네. 앞으로 쓸모가 무궁무진했을텐데도. 뒷날 왕전이 대군을 이끌게 되자, 진시황에게 의심사지 않으려고 땅 달라 졸라댄 일은 유명하지. 우리야 사서로 읽고 짐작할 뿐이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보고 듣고 겪는데 느끼는 게 다르지.
무엇보다도, 어느 날 진이 천명天命을 받았다고 하기 마련. 그런데 천명이 둘일 수 있나? 기杞나 송宋을 세워 하은夏殷의 제사는 끊기지 않게 해주던 시대는 옛날에 끝났네. 구정의 옛 주인은 새 주인을 위해 사라져줘야지.
그렇다고 진에 망할 게 뻔히 보이는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없고, 구정을 내 손으로 없앨 수도 없네. 구정의 가치는 그렇다치고, 정말로 없앤들 누가 그걸 믿겠나? 숨겨둔 구정을 내놓으라며 고문하겠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없애더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군민이 짰다고 생각하겠지.
방법은 하나 있네 - 진이 구정을 받은 다음, 진이 구정을 잃어버리는 것. 그러면 주 왕실 사람들은 조용히 잊혀지면서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지. 빼돌려서 숨길 수만 있다면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무가지보無價之寶를 지킬 수도 있고.
그러려면 구정이 진의 손에 들어간 다음 함양으로 들어가기 전 해치워야겠지. 뭍보다는 물 건널 때가 딱 좋겠군.
일단 방심한 진을 속여 빼돌렸다면, 구정을 어디에 숨겨야 할까? 아무리 청동은 녹이 덜 슨다지만 물은 좀 그렇지. 진시황이 사수에서 못 찾은 걸 보면 거긴 아니네. 땅에 묻는 게 상책인데, 티 안나게 묻으려면?
ㅡ 무덤에 배장陪葬하는 게 좋겠지요.
ㅡ 좋은 생각이네.
헌데 주 왕가의 무덤에는 아니 숨기는 것만 못하지. 언제 진에서 의심하고 파헤칠지 모르거니와, 그게 아니라도 왕릉은 도굴되기 마련이네.
ㅡ 가짜 무덤을 만들거나 비밀리에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ㅡ 후대의 성길사한은 릉을 만든 일꾼은 물론 장례 치르러 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도 다 죽이고, 그렇게 일꾼과 마주친 사람들을 죽인 군사들도 죽이고, 그 군사들을 죽인 군사들도 또 죽여서 입을 막았다지? 성길사한은 아마 무인지경에 묻혔을테니 그럴 수 있었지만, 낙양에서 그러긴 쉽지 않지. 가짜 무덤도 그래. 도굴꾼이야 얼마동안 막겠지만 진을? 어림없네.
평민의 무덤은 구정을 숨기기엔 너무 작지.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묻혔다면? 사수 근처에 역병이나 전쟁으로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묻은 곳, 특히 진 소왕 즈음에. 그러면 몇 안되네.
강의 흐름이야 변했을 수도 있지만 지세地勢야 크게 변했을 리 없으니 접전이 벌어졌을 만한 곳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고, 거기에서 성이나 나루, 큰 길처럼 사람 눈에 쉽게 띄는 곳을 빼면 더 줄어들지.
ㅡ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 막막한 일도 아니군요?
ㅡ 구정이야 내 짐작일 뿐이니 대뜸 뛰어들긴 그렇고, 일단 백어와 안회의 무덤을 찾아보세. 봉분이야 없어졌겠지만, 단목숙이 워낙 자세하게 써놔서 몇 무畝만 파헤치면 될 법도 하네. 일꾼 열과 혹시 모르니 고수 몇을 달포 쯤 붙여주게. 고수들에게 무슨 일인지 말해주지는 말고.
ㅡ 그 쯤이라면 얼마든지 해드리죠.
제갈민은 큰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큰 돈 드는 일도 아니었고, 자신은 지시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머리 허연 오촌당숙이 찾아와 열심히 설명까지 했는데, 별로 어렵지도 않은 청을 무시하기도 부담스러웠다. 그랬다가는 집안 어른과 한림원을 개콧구멍으로 보더라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고, 가뜩이나 밀리는 후계경쟁에 도움될 것 없었다.
혹시 누가 아는가? 연산이라도 찾아내면 어찌되었든 자신의 업적이 될 것이었다. 일반 무가라면 '연산이 뭐냐, 그걸 어디에 쓰는데?' 하겠지만, 제갈세가는 그럴 곳이 아니었다.
한림원으로 돌아오는 제갈린은 기분이 언짢았다. 요청이 받아들여지기는 했지만, 자신이 제갈민을 불러 가르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새파란 녀석을 찾아가 설명해야 했다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젊은 시절부터 제갈민의 아비에게 밀려 겉돌다가, 나이 든 뒤에야 실권도 없는 한림원이나 맡고 있는 그로서는 제갈민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제갈민이 선심이라도 쓰듯 허락해주는 게 눈꼴 시렸다.
ㅡ 싸가지 없는 눔...
중얼거리다 쓰레질을 하는 종과 눈이 마주쳤다. 왜소한 체격에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비질을 하는 게 웬지 딱해보이지만, 그 종을 본 제갈린은 더 짜증이 났다.
카~악, 퉤!
제갈린이 가래침을 길 옆으로 뱉었다.
그러자 종은 괜한 화풀이라도 받을까 두려운 듯 움찔하더니, 가뜩이나 작은 키를 더 움츠리고 슬그머니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