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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30 20:02
원본을 몰라서 확답을 드리기는 조심스럽습니다만, 위치상 아라스 전투 (또는 1차 대전의 아라스 전투와 구분하기 위해서 '아라스 전차전')으로 보입니다.
19/12/30 20:31
원본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아래 댓글 참조) "Just South of Arras" 아라스 남쪽이라고 나레이션이 말하네요. 하하. 이런거 찾으면 기분이 좋다니까요!
19/12/30 20:14
그런데 이러한 반격은 당시 쾌속으로 진격하던 에르빈 롬멜의 7기갑사단에게 큰 공포심과 쇼크를 주었다. 보급선이 끊기고 적진에 고립된 전차부대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롬멜은 그 충격에서 금세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때의 위기감이 상급부대로 전파되면서 결국 영국군 및 프랑스군의 전면 반격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는 지나친 성공에 뒤늦게 긴장하고 있던 아돌프 히틀러에게 갑작스러운 역전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으며, [훗날 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을 섬멸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당시 독일 국방군 육군의 전력이 영프 연합군보다 열세였기도 했고.
출처 나무위키 위에서 제가 단 댓글에 Farce님이 아라스 전차전이라고 하셔서 검색해보니 이런 부분이 있네요.
19/12/30 23:13
넷플릭스 다큐 보면 육군은 참군인들 출신이 다수고 공군은 나치당 출신이 다수였고 이 둘이 힘싸움같은게 있었다고 하더군요 .
괴링이 공군으로 막타 칠려고 육군의 진격을 멈추게 했다고 나옴 . 그외 보급문제 등등 다른 요인들도 있겠죠 .
19/12/30 20:25
https://en.wikipedia.org/wiki/Why_We_Fight
Why We Fight이라는 미국 다큐멘터리 (참전 국책홍보용)입니다. CG가 아니라 그림 애니메이션입니다. https://youtu.be/e8ic4ca8fTg?t=2735 (45분 35초부터로 맞춰놨습니다)
19/12/30 21:00
역알못인데 저당시 독일의 기술력하고 진군속도가 사기적인 이유가 있나요?
오로지 기술력 뿐만이기엔 유럽쌈싸먹을 인간하고 자원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서요.
19/12/30 21:08
서부전선을 간략히 요약하면 기술력을 바탕으로한 독일의 새로운 교리 (통신, 전차부대 단독운용, 폭격기 활용 등)와 그에 대비되는 프랑스의 낡은 전쟁 교리(마지노선) 및 오만과 방심(+계속되는 삽질)이 부른 참사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19/12/30 21:14
전차나 항공기의 절대적인 수는 프랑스가 우위에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단지 프랑스는 그 전차를 흩어뜨려 보병부대에 묶어두었고, 독일은 단독운용을 통해 전차부대 활용을 극대화하였다는 내용을 읽었던 듯 합니다. 전투기의 활용에 있어서도, 슈투카의 낙하시 굉음을 활용해 거점 돌파전 적의 사기를 꺾어놓는 형태의 교리를 잘 활용했었다고 본 거 같습니다. 프랑스가 조금만 더 일찍 정신을 차렸으면 반격할만한 순간도 많이 있었는데, 계속되는 삽질이 아주 컸던 것도 맞습니다. 참고: 전격전의 전설
19/12/30 21:32
이미지와는 달리 기술력도 독일이 훨씬 열세였습니다. 당시 주력 전차인 1, 2호 전차는 명색이 전차인데도 주포가 기관총, 짜리몽땅한 주포여서 개별 전차끼리 붙으면 전혀 상대가 안 될 정도였어요. 그 유명한 슈투카 급폭기도 성능 자체는 구식에 가까웠고요. 사실 놀라울 건 없는 게 30년대 중반까지는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웬만한 중요 군사장비들은 자체 개발이 불가능했거든요. 트랙터 연구한답시고 전차를 개발하거나 이렇게 몰래몰래 해야 했었습니다. 독일이 물질적 측면에서는 철저히 열세였지만 양 진영의 첨단 장비에 대한 이해도, 이를 활용한 교리 수준 차이가 많이 났고 거기에서 승부가 결정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합군은 1차대전 교리에 머물러 있어서 전차를 보병의 보조 장비로만 봤고 전차 설계도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성능은 좋으나 속도가 매우 느렸죠. 반면에 독일군 전차는 성능은 많이 떨어져도 기동력이 좋아서 탄력적인 운용이 가능했고요. 각 전차마다 무전기가 필히 보급되어 서로 소통도 원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임무형 지휘체계라고 해서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전장에 있는 참모가 상황에 맞춰 독단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할 수도 있었고요.
19/12/31 00:21
1차 대전이후 주위국가들한테 꽤나 감시 당해왔을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때 그 사기적인 진군 속도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덕분에 여러가지로 의문이 풀렸습니다.
19/12/30 21:43
통일독일 근처까지간 오스트리아랑 프로이센도 유럽 1~2군을 왔다갔다 했죠. 독일 통일 이후로 영국에게 가장 많은 견제를 받은 국가가 독일이죠.
19/12/30 22:30
독일의 기술력이 월등하진 않았습니다만 운용 교리가 월등히 앞섰죠. 영프 특히나 프랑스는 아직도 1차대전때의 전술을 갖고 상대하려 했으니..
19/12/30 23:36
사기적인 진격 속도에는 약빨도 한 몫 했습니다. 메스암페타민을 지급하여 밤낮없는 행군을 가능케 했지요. (제품명 Pervitin)
물론 1차대전 교리로 싸웠으면 약이든 뭐든 무쓸모였겠습니다만, 무선교신을 적극 활용한 전차의 집단 운용 + 근접항공지원이라는 새로운 교리가 잘 먹혀들었고, 약빨로 얻어낸 속도는 빠른 포위섬멸을 가능케 했습니다. 여기에 연합군의 삽질과 방심이 (e.g. 아르덴 숲을 통과할 것이라는 첩보를 무시, 반격 타이밍을 수 차례 놓침) 어우러져 전격전의 전설을 만든 셈입니다. 전쟁 내내 독일이 개념상 앞선 것들은 자주 나타납니다만 (전격전 교리, V1 V2 로켓, 울프팩, 돌격소총 최초 채용 등) 기술력이나 공업생산량은 미국을 빼더라도 연합군에 비해 그리 낫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19/12/31 00:20
아무리 생각해도 독일이 그렇게 까지 미국을 제외한 다른 연합군들을 압도할만한? 자원은 아닐꺼 같았는데 여러 댓글들 보고 이해가 가네요.
19/12/30 21:20
소련침공시 독일군이 500만 이었다더군요. 승리를 확신했죠.
12년(1933 ~ 1945)만에 패망하는 역대급 제국. 광기로 성공한듯했으나 광기로 망함.
19/12/30 22:00
모스크바를 한 점 돌파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2차세계대전 나올때마다 하는데 3방향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던 것 같아요.스탈린이 자존심상 모스크바를 버리더라도 더 뒤로 갈 것 같지는 않거든요.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그랬다간 그동안 해온 숙청에 대한 반발로 본인 목부터 잘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9/12/30 22:30
모스크바 점령을 위해 남부전선을 버렸다면 키예프 전선의 소련군 70만 명도 자연스레 재배치되었을 거라 참 어려운 if이긴 합니다.. 그냥 애초에 국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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