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점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스무살. 파릇파릇 빛나는 대학교 신입생 시절 모 대학교 학과 소모임에서 대성리로 엠티를 갔었습니다. 엠티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여있는 우리 일행에게 한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께서 이름점을 봐주겠다며 슬쩍 말을 거시더군요. 제 이름을 한자로 적어서 두번째인가 세번째로 이름점을 봤습니다. 그 의문의 할아버지께서는 제 이름을 보자마자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점괘를 술술 읇어 대십니다. 십년도 더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논픽션입니다. 100%)
"전체적으로 잘 지은 좋은 이름인데. 20대에 힘들겄네. 20전에는 100점, 20대때는 0점, 20대 지나서 30되면 그때부터 차츰 좋아져서 50넘으면 잘 살겨."
왜 10년도 더 지난 일을 어제일 처럼 생생히 기억하느냐 하면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이름점을 꼭 세번을 보았고 그 내용이 거짓말처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그 점괘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고 별스러운 신경을 쓴 적은 없습니다. 그저 머리속에 신기한 경험으로 남아있을 뿐이죠.
그리고 만으로 딱 30년을 지난 지금와서 지난 20대를 돌아보면 굴곡있게 살기는 했지만 정말 거짓말처럼 실패로 점철된 10년 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남에게 알리기 싫은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합니다.
막 20살이 되었을 때 저는 좋은 대학교 좋은 학과에 입학해서 부모님의 심적, 물적 지원을 받으며 대학교를 다녔고. 취미에 맞는 동아리를 찾아 좋은 사람을 만나며 재밌는 운동을 배우며 동아리에 심취해 있었고. 가슴아픈 짝사랑에 가슴앓이도 하다가 소중한 사람을 만나서 진심어린 사랑도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적응 못해 수능을 3번이나 보았고 결국 다니던 학교에서는 학점미달로 제적.. 진로문제로 방황하다가 부모님과 (어머니와) 겨우 의견을 좁혀 마음에 차지 않는 학교에 마지못해 입학수속을 하고 도망치듯 군대를 갔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무경찰에 지원을 했지요. 경찰학교에서 본 시험에서는 꼴지중에 꼴지를 해서 모두 기피하는 서울경찰 1기동대로 배치받아 나름 만족하며 고생도 하며 갖가지 데모속에서 전역을 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새로운 학교에서 아웃사이더 대학생활을 시작합니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새롭게 시작한 대학도 졸업하고 1년에 한번 응시하는 취직시험에 1, 2, 3, 4번 떨어지고 지금 5번 째 도전중입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10년 가까이 사랑했던 소중한 사람은 지난해에 좋은사람 만나서 시집을 갔지요.
지금와서 20대를 돌아보면 뜻대로 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실패한 기억이네요.
부끄럽지만 작년 재작년에 제 모습은.. 습관처럼 영화보고 게임하다가 아침 8시에 잠들어 오후 4시가 넘어 일어납니다. 그리고 습관처럼 아프리카 tv 게임방송을 보고 핸드폰 게임을 하고 피시방을 갑니다. 하루에 피는 담배는 2갑이 넘은지 오래였죠..군대 있을 때만 해도 5자로 시작하던 몸무게는 순식간에 7을 넘어 8도 훌쩍 넘어갔지요. 의욕과 희망도 없고 헛된 기대, 헛된 망상만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1년동안 순수하게 시험을 위해 공부한 시간은 20시간이 넘지 않았지요. 어찌나 건강관리를 안했던지 50전에는 잘 생기지도 않는다는 담석이 20대에 생기지를 않나.. (거의 상해서 터지기 직전이라 복막염으로 발전하기 직전이었다는 의사선생님의 후일담이 기억납니다.)
계속된 실패가 사람을 변화시킨 것인지 내가 변해서 계속 실패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고등학교 시절 1%를 유지하며 사고한번 안친 모범생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정말 실패와 실패와 실패로 반복된 20대에 너무 질려있었지요. 정말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연처럼 만으로 30살+하루가 되던 날(나중에 알았는게 헬스장 등록일이 제 생일 다음날 이었더라고요) 집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어머니에게 등떠밀려 헬스장에 갔습니다. 운동할 줄도 몰라 1시간넘게 무릎이 시리도록 런닝머신만 달리며 남몰래 땀과함께 눈물을 삼켰습니다.
'내가 이십대일 때 나를위해 투자했던, 무엇을 이루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던 시간은 1분도 없었구나.'
밀려오는 후회를 억누르며 80킬로가 넘는 무거운 몸을 끌고 미친 것 처럼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헬스장에 가는걸 거르지 않았지요.
매일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것 처럼 힘들고 무릎 관절이 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시리고 아프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걸 멈추면 내 인생도 여기서 멈춰버릴 것 같았어요. - 여담: 런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할 때는 밖에서 걷고 뛰는 것 보다 3~4배정도 무릎에 체중에 많이 실린다고 하니 여러분은 이렇게 무식하게 놀지 마세요. 달리기는 실외에서. 런닝머신으로는 워킹만 ㅜㅜ
마지못해 등록한 헬스장, 뭘 해야 할지 몰라 시작한 런닝머신. 그날 이후로 하나하나 바뀌기 시작합니다.
우선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끊어야 겠다는 생각도 딱히 없었는데 달리는데 방해가 될 것 같다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안피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10년동안 함께했던 니코틴과 잠시 이별했습니다.
게임을 끊게되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롤과 핸드폰게임은 하루 24시간 중에서 자는 시간 빼고 제 일상의 거의 전부였어요. 그런데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게 되니 컴퓨터와 핸드폰에 매여있는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아지니 생각과 행동에 여유가 생겨 긍정적이고 밝아졌습니다. 열등감과 자존심 때문에 만나기 싫었던 친구들도 먼저 연락해서 만나고 스스럼 없이 말하고 웃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동안 웃었던 것 만큼을 지난 한달 동안 벌써 다 웃어버렸어요.
운동을 계속하니 자주 씻게됩니다. (원래 잘 안씻어요) 그리고 남는 시간에 정리정돈을 하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빨래는 한달에 한번 했고 그 빨래가 빨래줄에 1달정도 걸려있기도 했죠.)
몸이 가벼워지고 스스로 보기에도 흉했던 몸이 점점 나아집니다. 배가 3m는 나왔었는데.. 거울을 보면 저게 사람몸인지 ET인지 햇갈렸는데.. 지금은 그래도 ET보다는 사람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식습관도 바뀝니다. 운동을 하니 평소에 좋아하지도 않던 두부, 우유 같은 식품이 땡기고 마트에 가도 과자를 사는게 아니라 오이나 당근을 사서 아그작 씹어먹습니다.
잠도 제시간에 자게 되었어요. 10년동안 망가졌던 생활리듬도 피곤한 몸 앞에서는 못버티고 잠이 들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늦은 시간인데 예전같으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죠. (오늘은 오랫만에 술한잔 해서 술발로! ^^; 그런데 살짝 졸려요. )
사람들도 되찾았지요. 누군가와 말하는 것도 불편하고 싫었는데 지금은 처음보는 사람과도 웃으며 대화를 나눕니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반갑게 맞아주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저에게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가져다 주었던 20대의 실패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것들이 실패였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술한잔 함께한 동생이 여자문제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길래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니가 그 일이 크게 느껴지는건 아직 마음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아서야. 지금 고생하고 나면 껍질을 깨고 훨씬 성장하게 될 거고 그때 가면 똑같은 일을 겪더라도 사실은 별일 아니었구나 하게되는 날이 올 거야. 성장통 같은거라고 생각해. 다만 니가 극복하려고 노력하면 더 빨리 껍질을 깰 기회가 올 거고 그게 아니면 언제 깨질지 모르겠지.'
그건 저에게 하는 조언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20대에 겪었던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그저 성장하는 과정이었지 실패가 아니었다고요.
그리고 습관처럼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올해 30이 되면서 느꼈던 이 성취감과 따뜻한 자기성찰을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실패도 계속하면 점점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지요.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는 순간 거기가 끝인 것 같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 스트레스 갖고 계신 분들 굉장히 많으실 텐데 .. 변화는 정말 작은 것에서 시작되더라고요.
작은 것 부터 차근차근 바꿔보세요. 어떤게 여러분의 작은 나비가 될 지 모르니까요.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4-04 06:18)
* 관리사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