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가시지 않는 어느 여름날, 나는 32개월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귀가 따갑도록 아이랑 놀아주라는 장모님말과
집안 화장실 고쳐야 된다는 아내에 부탁과 지친 잔소리에 도망 아닌 도망을 나왔다.
아이는 요즘와서 말문이 팍팍 터져서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기시작한 아이지만
지금이 한참 귀여울때라고 하지 않는가..
기저귀와 이제 작별하기 위해 배변훈련을 하지만 그게 참 쉬운 일은 아니다.
쉬마렵거나 응가마려우면 아빠한테 꼭 말해야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아이손을 붙잡고 나는 버스를 기다렸다.
무더위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건 참 고역이었고 나와 함께 아이는 땀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다.
아이는 나에게 지나가는 택시들을 보며 택시! 택시타자! 했지만 아빠는 돈이 없어 버스를 탄다고 이해 시켜 주었다.
아니 근데 니가 버스도 아니고 어디서 부르조아 같은 택시를 타자고 하는거냐?
다시 엄마차 타자고 하는 아이에게 아빠는 차가무서워서 운전을 못해라고
이해시켜주었다.그래서 엄마가 항상 운전하고 있는거란다. 장거리나 술먹고 놀때
운전 보조석에서 편히 가고 싶은 마음때문만은 아냐
그렇게 기다린 버스를 타고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와 신호등, 표지판
가리키며 저게 모야? 저게모야? 하고 질문한다.
단답형으로 차 사람 개 신호등이라고 말하는 내 대답에 아이는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고는
요즘배운 반짝반짝 작은별 노래를 부른다. 32개월된 아이가 버스안에서 귀엽게 노래부르고 있으면
시끄럽다고 하지 않는다. 벨을 누르고 하차할때도 기사 아저씨는 아이아빠인 나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신다.
평소 난폭운전이라면 둘째가는 이 아저씨들이 이상하게 애랑 타고 있으면 넉넉하게 하차 시간과 함께 천천히 이동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온 시내 커다란 대형마트는....휴일이었다.
아.. 에어컨 노래부르며 간단히 집 화장실 수리할 부품이나 사야지 했던 내마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아내에게 일주일을 더 화장실을 고칠수 없는 이유를 만들수 있었다.
하지만 무더운 오후 2시 거리는 너무 고역이었다.
나보다 더 땀을 뻘뻘흘리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애가 이러다가 쓰러지면
난 등짝 스매쉬가 아니라 아동학대로 잡혀갈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PGR에서 얼마전 보았던 마이펫 이중생활이 생각났다.
그래 플랜2다. 하면서 바로 근처 영화관으로 이동하였다.
적당한 시간대가 보여 팜플렛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이거 만화 볼거야, 그러니 너도 아빠랑 같이 봐야되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런게 아냐"
하지만 아들은 영화관이 어두워서 싫다고 했다.
"아니 뽀로로라고 했으면 어두워도 볼거 아냐?"
"뽀로로는 크릉하고 있어서 무섭지 않아요"
아들에 강력한 친구 설파 논리와 의지를 확인한 나는 설득을 포기하고 그냥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영화관 옆에 있는 오락실을 갔다.
요란하게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아이는 겁을 먹고 주춤거리며
날 따라왔지만 신기하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마리오 카트에서 눈길을 빼앗겨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마리오 카트만 계속 지켜보았다.
그래..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옛날같으면 아빠는 어릴때 어머니한테 머리를 휘어잡혀
끌려나올텐데 넌 아빠 손잡고 오락실을 오는거니..
옆에서 내가 해볼래? 라고 이야기 해니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내가 시범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카트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들이 여전히
말없이 나와 게임 화면만 쳐다본다.
옆을 보니 보글보글부터 테트리스도 있었다.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도형 맞추기 풍선
터트리기라고 알려줘도 아들은 가만히 아빠가 플레이하는거 구경만 할뿐이었다.
나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게임하나하나 플레이하면서 아들에게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하였다.
아빠가 이건 국민학교때 하던거, 이거는 아빠가 중학교때, 이건 고등학교때 말야..등등
마지막으로 KOF 98을 하면서 아빠가 옛날에는 이걸로 좀 날렸어
하고 이야기를 하지만 아들은 말없이 쳐다만 볼뿐이었다. 열심히 약발 짤짤이를 하면서
마지막 보스인 오메가 루갈까지 클리어하고 나자 역시나 아빠 실력은 죽지 않았어라며
흡족해하는 나에게 아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웬지 모르게 머쑥해져서 나갈까하니 아이는 "응" 하고 명량하게 대답한다.
나만 너무 신나게 논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때 커다란 서점이 눈앞에 보였다.
"아빠가 책 읽어줄까?" 라는 말에 아들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좋아하였다.
대형서점에서 이것저것 아들이 가져오는 책들을 읽어 주며 놀아 주었다.
마지막에 기차모형들이 동본된 2만원짜리 책을 가져와서 사달라고 하였지만 나는 능숙하게
3900원짜리 모빌 종이접기 책을 주고는 아들에게 딜을 하였다.
"이게 더 큰거야"
"응"
서점을 나와 손을 붙잡고 다시 버스를 타러 가는길에서 아들에게 편의점 쥬스와 카라멜봉지를 쥐어주며
만약을 대비해 엄마가 물어보면 서점에서 아빠랑 재미있게 놀았다고 자랑스럽게 업적을 이야기 하라고 하였다.
대답 잘하던 아들은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나와 함께 오락실 갔다고 이야기 했다.
이게 그래서 자식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거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9-26 18:19)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