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일은 잘되고?"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 목소리였다. 가만...결혼한지 두달 반
며느리 힘들다며 그간 얼굴 한번 본게 다구나...
"그렇죠.뭐 열심히 해야죠..."
당당할수가 없었다...
"손주 소식은 없고?"
연애를 7년이나 해서인지 손주도 빨리 보고 싶으신가 보다.
" 아직 잘모르겠어요. 그나저나 내일 집에 갈깨요."
" 아니다. 내일 해남에 등산 가기로 했다. 다음주에 와라."
짧은 대화였다.
어차피 길게 통화 해본적은 없었다.
-20살 때인가...졸업하고 취업했을때 아버지 다이어리엔
"아들이 졸업을 했다, 이젠 성인이다. 잘됐으면 좋겠다"
이런 비슷한 문구를 본기억이있다.
보고 참 느끼는게 많았는데... 느끼는것만 있었다.
군입대 시절 상병 7개월차에 자이툰 파병이 결정됐다. 우리 중대는 자이툰 파병부대 모중대였다.
별다른 테스트없이 원하는 사람은 파병갈수 있었고 부모님 허락만 있으면 된다 했다.
"아빠 나 자이툰 갈라고요."
"그래라. 가고 싶으면 가야지."
그게 다였다.그때도 통화시간은 길지 않았다.
중대장에게 부모님 허락 받았다 전달했지만 전역 8개월 미만인 자들은 갈수 없다하였다.-
전역후 지금까지 아버지랑 둘이 술한잔 해본기억이 없다.
다음주엔 가서 소주나 한잔해야겠다.
-아버지는 소주도 좋아 하시고 등산도 좋아 하셨다.
난 소주는 별로 좋아 하지 않고 등산은 몇년에 한번씩 행사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고,
나는 만나는 친구들만 만났지만, 아버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것 때문에 우리집 저녁 시간은 참 많이 시끄러웠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아버지의 술에 취한 목소리도 듣기 싫었다.
어머니는 자존감이 너무 낮아 친구들도 많이 없었다.
그래도 요 몇년간 아버지 따라 산에 다니시면서 참많이 좋아지긴 하셨다.-
7년을 연애 했지만 오늘은 금요일이니 신혼놀이좀 해야겠다.
지난 달인가 와이프가
"우리 이번달 노력 해보고 안생기면 일,이년 있다가 갖자"
"그래"
난 아이를 별로 좋아 하지 않았다. 둘째 삼촌 조카를 봤을때도, 먼저 결혼한 친구딸을 봤을때도
한번도 안아준적이 없었다.
금요일,토요일 신혼놀이는 즐거웠고, 2세를 향한 노력도 빼먹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부터 와이프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번호를 보니 어머니다.
어머니는 귀가 잘 안들리지 않아 평소에도 목소리가 많이크다.
내 핸드폰을 보니 벌써 부재중 전화가 3통이다.
또 어떤 잔소리를 할까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목소리가 이상하다...짜증내고 화를 내야되는데 짜증도 안내고 화도 안낸다.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하신다...이상하다고만 하신다...숨을 안쉰다고 하신다...
나도 이상했다. 아닐꺼라고 했다. 왜그랬냐고 했다.
전화를 끊으셨다.
5분쯤 후 전화가 왔다.
처음보는 번호다.
어머니 친구분이시다.
물었다. 아버지 많이 다치셨냐고.
들었다. 아니라고...돌아가셨다고.
난 분명 이틀전에 아버지랑 통화를 했고 다음주에 소주한잔할 계획을 했는데
소주한잔할 기회는 없어졌다.
뭘해야될지 몰랐다.무슨생각을 해야될지도 몰랐다.
그냥 그렇게 가셨다.
-아버지 장례 준비 하면서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기억나는건 아버지 형이란 사람이 부고 보내야 한다고 전화번호부 찾아 오라고 했던말이다.
나도 어릴적 기억나는 외삼촌이 있는데 그분 번호를 모른다고 전화번호부를 찾아오란다.
해남에서 미아리까지 엠블런스로 오셨는데 엠블런스 도착할때쯤 전화가 왔다.
현금으로 80만원 준비해 놓으라고 아버지 형제들은 다들었다. 내가 "네, 80만원이요" 하는소리를...듣기만했다.
10분후쯤 큰 외삼촌이 부른다. 봉투하나 주면서 일단 장례 경비로 쓰라고.
그이후엔 별 기억이 없다.
아! 장지는 파주로 모시기로 했다 내가 가까워야 자주 가니깐
이틀째 되는날 아버지 동생이 날부른다.
"꼭 파주로 모셔야겠나?", 우리 본적은 전라도 무주다.
아버지 동생은 부산에서 자랐다.
참멀다.
뭐라고 많이 말했는데 하나도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선산이 있는것도 아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도 잘 못찾으시는 분들이 그런소리를 하니 듣눈둥 마는둥 했다.
파주에 모시겠다고 그냥 결정했다.
그냥 삼일동안 정말 많이 절하고 별로 안좋아 하던 소주도 마시고,
눈물도 흘리고,혼자서욕도하고, 그렇게 지나갔다.
아버지 보내드리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니 아버지 형이 부른다.
봉투 하나 챙겨오란다. 멀리서 오신분들 차비드려야 한다고,
그게 맞는거란다.-
한달정도는 소주를 많이 마셨다. 별로 좋아 하지도 않고 맛도 없는데,
처음으로 흔히 말하는 혼술이란것도 해봤다.
별로 나랑은 맞지 않았다.
한달쯤 지났다. 와이프가 병원에 가잔다.
8주쯤 된듯 하단다. 다음주에 다시 오라한다.
모르겠다.좋은데...많이 좋은데...좋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버지가 없어졌는데...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됐다.
아직도 난 소주를 좋아하지않고, 등산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날 소주한잔 하잔 말 하고 끊을껄...
아쉽다. 왜그렇게 술을 좋아하시고 산을 좋아 하셨는지 물어나 봤으면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1-05 17:24)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