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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
2007/01/21 18:05:22 |
Name |
연아짱 |
Subject |
As good as it gets |
편의상 존댓말과 선수, 감독 호칭을 생략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언젠가부터 스타는 내 생활의 일부였다
도서관에서 해부학과 씨름해도 모자를 시간에 나는 게임큐의 업데이트를 기다리고 있었고,
토요일마다 시험보는 블럭강의는 시험보고 온 날 스타리그를 결제해서 보는 낙으로 버텨나갔다
나는 임성춘의 한방 러쉬와 치밀한 전략의 가림토스에 매료되었고 프로토스에게서 남자의 로망을 느꼈다
그 후 생활은 점점 바빠져 가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은퇴하면서 스타에게 쏠렸던 관심은 조금 헐거워졌다
잠도 제대로 못잔 어느날, 며칠 간의 당직으로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TV를 켰다
최연성 vs 박성준
'스타리그 4강이네? 맞어.. 박성준이 서지훈을 잡았지..'
박성준이 서지훈을 잡았지만,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프로토스 유저이자 프로토스를 응원하는 사람은 웬만해선 저그를 좋아하지 못한다
그가 서지훈을 꽤나 멋지게 잡았지만, 나에게 응어리진 저그에 대한 적대감을 어찌하진 못했다
다만, 서지훈 같이 단단한 테란을 저그가 다전제에서 잡았다는게 놀라웠다
상대는 당대 최강의 괴물 최연성..
'당연히 최연성이 이기겠지? 그래도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이거나 보자...'
졸리긴 했지만, 치킨과 맥주를 시키고 TV를 지켜보았다
'이건 천하의 최연성이라고 해도....'
잠이 싹 달아나고 몸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맵은 박성준의 것입니다'
전율이었다
최연성의 지지가 외쳐질 무렵 치킨은 이미 식어 굳었고, 맥주는 탄산가스를 날려버린채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경기에 몰입한 나머지 치킨에도, 맥주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프로토스가 남자의 로망이라고들 하지만, 박성준이야말로 순도 100%의 진짜 로망이었다
미칠 듯한 공격성, 뒤도 돌아보지 않는 과감함, 최연성의 수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 어느 누구보다 마초적인, 아드레날린 팍팍 분비시키는 그런 선수였다
나의 흥분 속에 저그에 대한 적대감이 비로소 무너졌다
스타리그 결승전
항상 나의 응원을 받던 프로토스 유저 영웅을 뒤로한 채 박성준을 응원했다
나는 그렇게 투신의 팬이 되었다
나는 박성준의 경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프로리그까지 뒤지기 시작했고, POS란 팀을 알게 되었는데...
OTL
세상에 원맨팀도 이런 원맨팀이 없었다
박성준이 2~3경기 나오는 건 기본이었고, 박성준은 그 와중에 양대리그까지 뛰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뎌야 했다
테란과 프로토스로는 어지간히 잡기 힘든 그를 상대팀은 저그 스나이핑으로 상대했고 그의 저그 승률을 떯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박성준의 인터뷰에서 경기를 많이 뛰어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을 보였고, 프리미어 리그 통합 챔피언쉽과 에버 스타리그 왕좌를 연달아 차지하며 랭킹1위에 등극한다
POS가 유망한 프로토스 유저를 영입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프로토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왕이면 POS 팀을 위해서 테란 유저를 영입하기를 바랬는데..
그래도 팀사정이 적지 않이 어려울텐데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다는 것이 조금은 신기했다
박지호가 엄청난 물량을 생산해 내어 꼬라박는다는 소문은 익히들어 알고 있었다
테란의 탱크 부대에, 저그의 럴커밭에 엄청난 질럿을 만들고 쏟아부어 산화시키는 것도 몇번 보았었다
그걸 뚫어낼 때는 멋있긴 했지만...
그렇게 지켜보던 선수는 꼬라박에서 spirit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질럿을 산화시키는 날보다 질럿이 끝까지 달리는 날이 더 많아졌다
때로는 비수같은 전략적 플레이를 시행하고, 그 플레이를 뒤이어 이어나가는 유연함도 갖추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게 매료된 건 그역시 언제나 꿈틀대는 공격 본능을 가진 선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공격적인 마인드의 프로토스 유저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의 spirit이 발동하던 So1스타리그와 신한은행스타리그 때 당시의 최강 포스는 박지호였다고 나는 믿는다
상복이 없는 듯, 우승운이 없어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그 당시 박지호는 정말 강했다
(당시 wp랭킹을 뒤져보시라~~)
박성준, 박지호라는 극강의 원투펀치를 가진 POS는 이제 어느정도 강팀의 면모를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이 전혀 뒷받쳐주질 못했고, 고정 멤버로 꽤나 자주 나오던 팀플은 신뢰를 주지 못하였다
어떤 날은 박성준, 박지호가 각각 개인전 1승을 챙기고, 팀플까지 책임져 승리를 거둔 날마저 있었다
워낙 강한 두 선수 때문에 고춧가루를 뿌릴 순 있을지언정 프로리그의 중심이 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POS를 지켜 보는데 조금씩 지쳐갈 때 쯤 Kespa컵이 열렸다
SKT1과의 8강전, 지지리도 복도 없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팀 중 하필 T1일게 뭐람
뭐긴 뭐야.. 염보성의 화려한 등장을 위한 무대였지
그의 메카닉에 특별한 감흥을 얻지는 못했지만, 박용욱이라는 거물 프로토스 유저를 긴장없이 잡아내는 그의 마인드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POS에도 테란 카드 하나가 생기는구나!!
Kespa컵 4강대진을 보고 나는 POS가 우승하길 바랬다
다른 팀들도 강하긴 하지만, POS가 충분히 이길만한 전력이 되었고 이 우승이 그들을 더 강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했다
염보성이 4강전 에결에서 김준영에게 패하고 정말 안타까웠다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Kespa컵을 우승한 삼성이 후기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더 안타까웠다
반면, POS는 박-지-성 이라는 별칭을 얻은 라인이 활약했지만, 또다시 한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염보성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프로리그에서 나름 쓸만한 카드를 넘어서서 누구도 이기기 어려운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챌린지리그에서 홍진호, 조용호, 강민을 제압하고 스타리그 4번시드를 획득했다
그는 정말 무섭고도 노련한 신예였다
스타리그 2, 3, 4번 시드가 모두 POS라니, 박성준 원맨팀 시절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발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MBCgame HERO로의 창단, 그 어렵던 시절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6 전기리그는 HERO의 돌풍으로 시작했다
새로운 에이스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 염보성
개인전 팀플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박성준
위기의 순간마다 해결사 역할을 독톡히 해준 박지호
위기를 넘기고 플옵에 진출한 그들은 KTF, CJ같은 기존의 강호들을 제압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2005년을 제패한 SKT1
난 결승전을 직접 보질 못했다
T1과의 싸움은 곧 테란과의 싸움..
나는 테란전이 가장 자신있었던 투신이 테란전 양민이라는 비웃음을 보란듯이 날려버러길 원했다
그랬던 내 바람이 T1의 신예 테란에 의해 좌절됨과 동시에 HERO의 돌풍도 막을 내렸다
전기리그 준우승이라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HERO가 진정으로 얻은 수확은 신예들이었다
서경종은 스나이핑에 능하고 일회성 전략을 잘 만들고 잘 수행하는 선수였다
그 진가는 플레이오프에서 잘 발휘되었고, 원해처리 히드라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은 일회성 전략 플레이의 함정에 갇혀 조금 부진하긴 하지만...
전기리그에 경험을 쌓으러 나오는 듯한 선수가 있었다
팀내에서는 슈퍼테란이라고 불린다지만 그 별명에 비해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플레이도 후반 분전이 돋보이고 가능성은 보였지만, 별명이 준 기대감에 비하면 의문부호가 달렸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그 별명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무관심한 이미지와는 달리 단단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갖춘 인간의 한계를 넘은듯한 멀티태스킹을 가진 선수로 성장했다
이미 양대리거에, MSL에서는 4강을 목전에 두고 있다
POS 시절 나를 정말 속터지게 만들었던 건 팀플레이였다
몇몇 조합은 꾸준히 나오는데도 성적이 들쑥날쑥했다
팀플레이만 받쳐주면 성적이 확 오를 수 있는데, 그것이 안 되었다
김택용도 나를 속터지게 한 선수중에 하나였다
팀플레이에 자주 나오는, 그래서인지 뽑는 거는 잘하는, 얼굴 반반한 선수에 불과했는데
전기리그 팀플에서 나름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후부턴 개인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저그전은 박지호를 능가하는 스피릿을 보여주었다
(난 김택용 대 마재윤이 보고 싶고, 이 대전이 끝나야 플토의 최후 혹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역시 어느덧 MSL의 4강을 목전에 두고 있다
팀플레이로 자주 뛰면 개인전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구열, 김동현 때문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강구열은 프로리그 개인전에서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PC방 리그를 통과하더니
서바이버리그에서 탄탄한 기본기, 신선한 전략, 그리고 공방유저들에 대한 배려심을 보여주며 MSL에 진출했다
김동현은 서바이버리그에서 운영의 요술사적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MSL 진출전을 남겨두고 있다
무엇보다 이 신예들은 POS시절부터 간직해온 공격적인 칼라의 적자였다
그들 역시 꿈틀대는 공격본능, spirit으로 무장된 것이었다
HERO는 정말 매력적인 팀으로 변해있었다
2006 후기리그는 기대감이 충만한채로 출발하였다
기존의 박지성 라인에, 뒷받치는 신예들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었던 박지성 라인이 살짝 배신을 때린다
염보성은 전기리그 때의 강력한 모습을 잃었고, 박성준은 부진의 늪에 허우적댔으며, 박지호는 도망간 여친을 그리워하고 있었다-_-
중간 순위 8위
나는 다시 한 번 절망하지 않았다
두터워진 팀의 저력을 믿었고, 순위는 아래였지만 중위권은 혼전양상이었다
내 예상이 맞은 부분은 성적이었고, 내 예상이 틀린 부분은 중심 선수들
박지성이 부진한 동안 신예들이 팀을 이끌었고, 그것을 계기로 염보성과 박지호가 다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적의 포스트시즌 진출!
(이 시점에서 팬택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포스트시즌에서 신구의 조화된 모습, 극적인 승부, 위기에서의 강력함을 보여주며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고,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CJ였다
난 CJ가 무서웠다
오랜 세월 동안 강호의 자리를 지켜온 전통이 무서웠고,
HERO 못지 않게 두터운 선수층이 무서웠고,
그들의 모범생적인 면모가 무서웠고,
슈퍼 에이스 마본좌가 무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안심'시키지 못하게 만든 것은 박성준의 부진이었다
나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슈퍼 에이스, 언제나 본좌인 그가 플옵에서마저 이렇게 부진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나의 페르소나였다
나는 그의 부활을 믿고 갈망했다
경기결과에 일희일비하게 만드는 건 그가 유일했다
부진의 늪 속에서도 간간히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나오지 말라는 소리까지도 들렸다
투신의 부활을 알리는 승전보가 울리는 순간, 나는 우승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마 나보다도 더 그의 부활을 원했을 그의 팀원들이 그의 승리를 발판삼아 노게이트 더블넥의 '미션'을 수행해냈고
HERO는 진정한 영웅에 등극했다
만세~~ 만세~~ 만세~~
매우 감격스러웠다
이전까지 유일하게 응원하던 프로스포츠팀 롯데가 92년 우승했을 때보다, 99년 기적의 결승진출을 이뤄냈을 때보다 감격스러웠다
김연아가 이 땅의 척박함을 딛고 그랑프리 파이널을 거머쥐었을 때보다 감격스러웠다
내가 이 감격에 만족해 하던 때에,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고 역사상 최강팀 T1을 이기고 그파까지 거머쥐었다
지금쯤이면 하태기 감독도 믿지 못하면서도 실감하면서 감격에 겨워 있을 것 같다
나는 강팀의 공은 선수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HERO에게만은 예외를 두고 싶다
지금의 강팀 HERO는 하감독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박성준이 우승하던 날 이렇게 좋은 선수에게 스폰서가 붙었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할 때 시쳇말로 안습이었다
박성준, 박지호란 극강의 선수들이 있음에도 팀성적이 중위권을 넘지 못할 때 한계를 느꼈고,
Kespa컵 4강에서 멈췄을 때는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박지성을 키워낸 건 코치의 능력이라는 오해까지도 했다
하지만,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보지 못한 백수앞의 '신의한수'까지도 그는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냥 쓸만한 선수 좀 있는 약팀에서, 원맨팀, 투맨팀, 쓰리맨-_-팀을 거쳐 이렇게 강력한 라인업의 팀을 만들어냈다
정말 그의 혜안이 아니었으면 이룰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나는 일찍이 이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와 강팀으로 성장하는 리얼스토리를 본 적이 없다
이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접했다면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스토리의 비현실성을 비웃었을 것이다
밑바닥부터 응원하여 조금씩 발전하는 팀의 성장과 그들이 최고의 자리에 우뚝서는 그 모습까지 팬으로써 관심있게 지켜보게 해준 것이 고맙다
이 스토리의 마무리로써 이번 그랜드 파이널은 최고의 무대였다
상대는 전기리그 복수의 상대이자 역대 최강팀 SKT1
스나이핑스러웠던 CJ 전의 엔트리와는 달리, 해볼테면 해보자는 정면승부의 엔트리 속에서의 승리
후기리그와 플옵을 이끌었던 신예들이 부진했지만..
해적시절부터 그 어려운 팀을 꿋꿋이 지켜왔던 박성준, 박지호, 염보성, 강구열/정영철 들의 승리로 거머쥔 그랜드 파이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
나의 마지막 바람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스토리가 이제 시작이길~~
"히어로는 이제 시작입니다"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1-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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