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7/01/24 13:30:17
Name 네로울프
Subject 실수 또는 약해짐에 대한 보고서...



그건 단지 실수였다.
담배를 꼬나물고 옹색한 자세를 최대한 가다듬으며
신문을 쫙 펼치는 순간 부스럭 거리는 그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제길...휴지를 안가지고 오다니....'


이미 직장으로 보내진 신호는 다시 회수하기엔 너무 늦었다.
어쨌든 때로 쾌의 절정이라 생각되는 한 지점을 통과할 땐
여타의 것은 중요치 않다. 일단 적절히 수축과 이완을 조절
하는데 전념한다. 한 순간 섬전같은 무의식의 누수를 즐기며
무아경을 자처하는것 까지는 좋았다.
괄약근의 긴장도가 급속히 감소하는 것을 반쯤 감은 눈으로
흡족해 하며 깊은 탄성을 토해낸다.




허나 문제는 지금 부터다. 스멀스멀 불안이 기어올라 온다.
막막한 다차원 방정식의 해법을 두고 제어되지 않는 수많은
수열이 머리를 종횡한다. 저려오는 다리를 (반수세식이다.)
새삼 확인하며 수만가지의 고차원적 해결책을 외면하고 땅에
발을 딛기로 한다. 다른 부위보다 몇결은 연약한 내 은밀한
살갗에 도포된 반점액성의 물질을 두고 물아일체를 상정하여
그 또한 나의 일부로 흡수해내는 일은 솔직히 몇십 갑자의
공력을 요하는 것이라 혹여 있을 주화입마를 경계해 차마
시전치 못함을 스스로에게 납득 시키며 현실적 대안을 모색해
본다.


목소리를 높여 우리 사무실에 구원을 요청하기란 그 녹녹치
않은 거리와 그 사이에 지뢰처럼 놓인 다른 사무실의 이목을
염려치 않을 수 없으므로 일찌감치 경우의 수에서 제거한다.
전음입밀을 수행하지 않았음을 가슴 깊이 통탄한다.
거기에 더해 자연의 은근한 풍화작용에 몸을 맡기는 것도
이미 견딜 수 없을 만큼 팽창하기 시작한 허벅지의 근육을
고려해 재빨리 해법의 수에서 제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아주 과다한 시간을 요하므로 해서 신체적 한계성을 제쳐
두더라도 여타 대기자들의 수많은 원성을 감내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중에 온도와 습도 조건에 따른 수분 증발의 시간을
계량화 해봐야겠다는 학구적 호기심을 습득한 것으로 마음을
달래기로 한다.


결국 아주 현실적 대안에 내 의식은 접안한다. 의복의 기능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래로 부터
방한, 방서 및 외부의 물리적 충격과 치부의 은폐 등의 기본적
기능외에도 아주 다양하고 유용한 부수 기능들이 이용돼 왔던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가끔 난 공원 벤치 등에서 그 것을
걸레로 사용하기도 한다.)

더구나 지금 사용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는 의복은 평소에는

노출되지 않는 은밀한 곳에 위치 하므로 잠시간의 면피로는

아주 적당한 도구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가능성을

접고 말았다.. 밀린 빨래들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자...이제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오직 한가지 가능한 경우의
수를 받아들이자. 그 것은 사실 아주 오래 전 내가 강호에
출두하기 전엔 상용하던 방법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십여년 전
가난하고 작은 어촌 마을에서 보드라운 종이란 기실 흔한 것이
아니었음을... 더구나 우리는 적절하게 그 것의 경도를 감소시
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우리의 피부 또한 잘 단련돼
있었었다.

......신문을 치켜들었다.

'한장을 세등분 하고 다시 각각 이등분을 하세요.
그 다음 섬세하고 치밀하게 구겨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고르게
잘 비벼주세요.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죠. 때때로 접힌 부분등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적당할 정도로 경도가 감소되어졌다 싶으면 그
때 필요한 정도의 너비와 두깨로 접어 나가세요. 그리고 필요한 부위에
조심스럽게 사용하시면 됩니다.'(오늘의 요리? 인가???)

통증이 느껴졌다. 아주 오랜만의 시전이라 준비에 있어서 몇가지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다. 몇 군데 접힌 부분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고르게 비벼지지도 않았던 게다. 허나 더 이상 이 한증막과 저려오는
다리를 견딜 수는 없었다. 대강 갈무리 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 곳을 탈출한다. 그리고 어기적거리며 사무실로 가서 뽀삐 화장지를
들고 재빨리 화장실로 돌아가 세심하게 뒷처리를 다시 했다.

그것은 단지 실수였을 뿐이다. 정신이 없다보면 가끔은 저지르게 되는
흔한 실수인 것이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난 어느새 아주 약해져버린 내 똥구멍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며
아주 깊은 비애에 젖어든다. 부드러운 화장지에 길들여져 무척이나
약해져 버린 내 똥구멍 처럼 나도 부드러운 여러 유혹에 속살 곳곳
깊이 약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

몇 년 전에 썼던 글인데...

문득 그 동안 써왔던 글들을 점검하다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 때의 반성들이 지금의 나에게서 구현되고 있는가?

여전한 의문부호들만을 되뇌일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하는 건

여지없이 입 안 깊숙히 쓴 맛을 돌게하는 일입니다.

무력감과 몰염치함을 떨쳐버리고 아득하게 띄웠던 나의 연들이

무색하지 않게 다시 나를 새워야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7/01/24 13:31
수정 아이콘
응? 본 적이 없는 글인데.. 혹시 애게에 바로 쓰신건가요? ;;; 운영진이 이동시켰다는 메시지도 없고;;
네로울프
07/01/24 13:36
수정 아이콘
엇..라이트 버튼이 있길래 그냥 썼는데요..
음 안되는 건가요?..운영진이 옮기는 건가요?..
자게로 옮겨야 되낭..-.-a
My name is J
07/01/24 13:38
수정 아이콘
레벨 7이상은 에게에 바로 글을 쓸수 있습니다.

어쨌든....각설하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지요.
그렇지 않기 위해서 단단한 인간을 꿈꿔보지만
다달이 나오는 월급 봉투에, 날 보호해주는 인간관계에, 당연한듯이 누리고 사는 모든것에
익숙해지고 없으면 안되는...그런 인간이 되어버리죠.

무력감과 무기력함이 손끝에서 방울져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걸 떨쳐내는데도 기운이 떨어진다는 비겁한 변명까지.(사실이어도 변명은 변명이죠.)

그렇지만 어쩌면 모든것은 자기혐오를 때려치우고 자기학대를 그만두는데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지요.

여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기특한 사람인겝니다. (응?)
네로울프
07/01/24 13:41
수정 아이콘
음냐..워낙 몇 달에 한 번씩 pgr에 글을 쓰는 편이라서
게시판 규칙을 명확히 알지 못했네요...지금 공지 사항을
다시 숙독 했습니다. 어쨌든 써도 된다니 걍 옮기기도 귀찮고
여기 놔둘께요...^^;;
스트라포트경
07/01/24 14:00
수정 아이콘
어차피이글은 에게로왔을운명인듯싶어요~
유혹을이기고
단단히살아가다는게 너무도어려워요ㅠ...
07/01/24 14:33
수정 아이콘
레벨 7이신 분들이 쓰신 글들은 기본적으로 에게에 올만하다는 저희의 믿음에 기인한 규정입니다. ( 좀 후진적이죠. ^^ )
글 좋은데요.
07/01/24 15:05
수정 아이콘
너무 흥분해서 글을 찬찬히 읽어보지 못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애게에 있어도 전혀 손색이 없군요 ^^; 괜한 딴지를 걸어서 맘 상하시지는 않으셨을까 걱정되네요. 사과드립니다.
07/01/24 15:19
수정 아이콘
아니 그런 규정이 있었나요?
제 글솜씨로는 써서는 안되겠군요. ㅜ.ㅜ
막강테란☆
07/01/24 15:25
수정 아이콘
난 언제 렙업 될까... 쩝..

글 잘 읽었습니다. 수능끝나고 나태해진 저의 반성을 보는듯.
07/01/24 16:39
수정 아이콘
킥킥.... 읽다보니 며칠전의 제 실수가 떠오르네요.

공중화장실 갈 때는 반드시 화장지부터 먼저 확인하는데 그 곳은, 너무도 당연히 화장지 있을거라 예상한 곳이라서...

목욕탕에 가자말자 화장실 들러서... 앉아서 볼일 봤는데...
있어야 할 그, 두루말이 화장지가... 통이 텅 비어 있지 뭡니까? 큭큭큭...
07/01/24 17:12
수정 아이콘
p.p 님 / 그래도 목욕탕에서라 다행이시네요.
바로 청결한 상태로 회복되실테니.. ^^
Lovely-OBJ
07/01/24 21:33
수정 아이콘
p.p님 //
바로 탕으로만 안 들어가셨길 바라겠습니다.
07/01/24 22:28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부드러운 여러 유혹에 속살 곳곳 깊이 약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가 와닿네요..
Den_Zang
07/02/09 17:27
수정 아이콘
푸하하 ;; 웃기면서도 심각한듯 마치 제가 젤 좋아하는 이영도 님의 글을 읽은 듯한 느낌입니다.. 너무 재밌네요 ㅎ 에게 인정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907 2007 W3 개막기념 크리티컬 스트라이크(수정) [28] 제니스6999 07/01/18 6999
906 회원님들은 아마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쓰셔야 할 겁니다 [23] CrystalCIDER9896 07/01/23 9896
905 실수 또는 약해짐에 대한 보고서... [14] 네로울프6254 07/01/24 6254
904 MBC게임 HERO, 발전된 팀모형을 제시하다. [24] 구름비8539 07/01/21 8539
903 As good as it gets [16] 연아짱7112 07/01/21 7112
902 7경기 박태민 vs 염보성 in 신백두대간 허접한 분석. [37] 초록나무그늘10957 07/01/20 10957
901 Best Highlight Of 2006 Starcraft [44] 램달았다아아8703 07/01/18 8703
900 담임선생님께 편지가 왔습니다.. [17] caroboo8461 07/01/17 8461
899 투신鬪神이 유일신唯一神을 증명하던 날 [26] 초록나무그늘10294 07/01/16 10294
898 The Captain Drake_The POS_MBC game Hero.. [42] kimera6723 07/01/09 6723
897 사랑합니다! 나의 스타리그! [17] NavraS7440 07/01/14 7440
896 이런저런 '최다' 이야기. [16] 백야7308 07/01/14 7308
895 [sylent의 B급칼럼] 강민, 빌어먹을. [31] sylent11215 07/01/13 11215
894 [설탕의 다른듯 닮은] 마본좌와 킹 앙리 [26] 설탕가루인형8386 07/01/13 8386
893 쇼트트랙과 스타, 그 혁명의 역사. [23] EndLEss_MAy6859 07/01/13 6859
892 편성표가 한 살이 되었어요 >_< [27] 발그레 아이네5991 07/01/13 5991
891 운영진과 회원 서로 감사하기 [13] Timeless5249 07/01/12 5249
890 GG를 누르는 그 순간까지.(프로리그 결승전을 보고) [14] 시퐁8396 07/01/11 8396
889 TL과의 인터뷰 TeamLiquid, meet PgR21.com [8] 항즐이7799 07/01/10 7799
888 [sylent의 B급칼럼] ‘마재윤’임에도 불구하고 [25] sylent12503 07/01/10 12503
887 히치하이커 제작노트 [31] Forgotten_14326 06/12/30 14326
886 흑마법사 이재호선수의 컨트롤 분석 (vs 윤용태 in 아카디아2) [42] 체념토스17670 06/12/22 17670
885 백일 축하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70] 터치터치10666 06/12/21 10666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