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1/07/22 15:27:06
Name The xian
Subject [스타2 협의회 칼럼] 프로의 가치가 위협받는 시대
* 이 칼럼은 2011년 6월 24일에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칼럼이며,
게재 당시 특정 대상에 대한 이야기가 PGR에서 일시적으로 금지된 상태였으므로 지금 옮기게 되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보면 종목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혼돈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혼돈이라고 하니 혹시 지금 진행되는 프로야구나 중위권 싸움이 치열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그리고 GSTL 개막전의 풀세트 접전처럼 프로스포츠 각 종목마다 순위다툼 때문에 혼돈에 휩싸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부분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정말로 혼돈에 휩싸이고, 나아가 위협받고 있다고 보는 것은 경기 내용이나 순위 다툼이라기보다는 바로 스포츠에서 필수 불가결한 ‘프로의 가치’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몇 년간에 걸쳐 프로스포츠가 추구하는 가치는 종목을 초월한 지속적인 위협을 받아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의 위협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프로스포츠에 대한 ‘불법 베팅’이지요. 공식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불법 베팅이 각 종목에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e스포츠 분야에서는 작년에 <스타크래프트>종목의 승부조작 및 불법 베팅 사건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 K리그는 몇 년 전 K3리그에서의 조작행위가 발생한 이후 이번 해에는 K리그 자체에 승부조작 및 불법 베팅 사건이 드러나며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보다 정도는 조금 덜할지 모르겠지만, 과거 프로농구에서는 선수가 구입할 수 없는 스포츠토토를 대리인을 통해 구입했다가 현역 선수가 징계를 당하는 일도 있었지요.

이렇듯, 뼈아픈 경험과 좋지 않은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베팅이라는 수단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프로의 가치를 위협하려는 시도에서 100% 안전한 스포츠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법 베팅이라는 수단과 그것이 가하는 위협. 그것만이 문제의 전부일까요? 당연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스포츠의 가치에 위협을 주는 수단이나, 그 수단이 주는 위협 정도가 아니라. 프로의 가치에 어긋나는 무언가가 어디에서든 자랄 수 있고 어떤 수단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근래의 상황 자체에 있습니다.

K리그 승부조작에 대해, 대한민국 축구계의 전설인 차범근씨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승부조작, 큰일 날 일입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 모두가 이런 일들이 비교적 용납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몫이 아닌 돈을 먹기 위해 승부를 조작하는 어린 선수들과
자기들이 가진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남의 돈을 먹는 것이 과연 다른 것일까요?"

정말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나타난 위험요소나 수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규칙을 무시하고, 도덕을 무시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를 어기는 등의 언행을 통해 스포츠의 가치를 위협하는 일들이 용납되는 분위기 자체가 더욱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 어뷰즈 문제에 대한 빠른 대처와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만. 계속 이런 부분에 대한 계도와 경계가 이루어져야 진정 좋은 대처가 되겠지요.)


제가 이런 분위기를 우려하는 것은, e스포츠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프로의 가치를 위협받기 매우 쉬운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게임을 매개체로 만들어진 e스포츠는 그 특성상 프로와 아마추어의, 프로와 관중의 간극이 다른 스포츠에 비해 좁습니다. 그리고 막 탄생한 종목일수록, 오픈 리그의 성격을 띠고 있는 종목일수록 프로와 아마추어의 간극은 더더욱 좁지요. 물론 그렇다고 엄격하게 자격을 제한한다고 해서 프로와 아마추어, 프로와 관중의 간극이 넓어지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다른 스포츠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한두 겹 차이일 뿐이지요.

더불어, e스포츠에서 프로의 가치가 위협받기 쉬운 이유는 대한민국 e스포츠의 방향이 전체적으로 잘못 설정된 데에도 있습니다. 그 동안의 흐름들을 보면 기존 스포츠와 외형적으로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는 것을 우선시하다 보니 내부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프로다운 생각을 가지도록 구성원 모두를 육성하는 것보다 이미 프로로서 완성되었거나 두각을 나타내는 소수에만 집중했고, 방송에 많이 노출되기 위해 힘 있는 기업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다 보니 기업이 과도하게 개입해 특정 종목의 힘을 비정상적으로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위기에 빠지면 시스템을 개선하기보다 일단 팬들의 성원에 기대어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였지요.

물론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 이슈, 그리고 프로로서 필요한 방송 노출. 그런 것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프로의 가치가 위협받는 일이 줄어들려면, 어떤 개인, 어떤 소수만이 프로다워야 하는 게 아니라, 게임단이 생기고 방송에 노출되는 겉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이 판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 속에서 활동하는 이들, 그리고 그 시스템을 향유하는 이들이 모두 프로다움을 갖춰야 합니다. 선수가 팬을 대하는 자세, 팬이 선수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선수가 관계자나 다른 선수를 대하는 자세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프로다워야 진정한 e스포츠의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참으로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e스포츠에서 필수 불가결한 권리가 무시되며 불평등한 계약이 이루어지거나, 힘겨루기로 아까운 시간이 소비되기도 했습니다. 팬들이 존중되지 못하고 이용당하는 분위기도 발생했습니다. 그런 행위가 장시간 반복되다 보니 다양한 종목의 e스포츠가 고루 사랑 받는 환경과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고 심지어는 몇 개 없는 종목의 팬 무리가 서로 으르렁거립니다. 조작행위로 영구제명을 당한 자가 과거의 죽은 영광에 취한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스포츠에서는 당연함에도, 일부 e스포츠 팬을 자처하는 이들 중에는 오히려 그에 대해 비난과 욕설을 가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발생합니다.


<스타크래프트 2> 종목에서도 GSL July를 앞두고 선수 자신이 기본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대회의 참여, 불참에 대한 것을 제대로 맺고 끊지 못해 구설수에 오르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먼저 경험하였기에 충고합니다만. 문자 메시지는 긴급한 상황의 임시조치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식 조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미숙한 모습이 자신의 장래는 물론 프로의 가치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자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사실 프로의 가치와 덕목 등등을 많이들 거창하게 이야기합니다만, 잘 살펴보면 프로로서 지켜야 할 가치와 덕목들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덕목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지키거나 약간 응용한 수준에 불과하며, 그런 기본적 수준의 덕목만 지켜도 프로 생활 내내 욕먹거나 구설수에 오를 일이 별로 없을 정도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의 가치와 덕목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프로가 지켜야 할 가치와 덕목 그 자체가 이룰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지키면서 프로로써 살아가고 끝맺음을 하는 것이 그만큼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단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e스포츠는 현존하는 다른 스포츠들 중에 팬과 프로게이머,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간극이 가장 적을 수밖에 없는 스포츠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부분에 대한 구분이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간극이 아무리 좁고, 때로는 구분이 무의미할 수 있다 해도 e스포츠 역시 엄연한 스포츠인 이상 프로로서의 가치는 반드시 존재하며, 선수와 관계자 개개인이 지켜 나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경계하되 그에 얽매이지 말고, 프로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항상 조심하여 GSL을 위시한 대한민국의 <스타크래프트 2> 종목과 리그들이 건강한 스포츠 종목으로 변화되고, 발전되며, 지속되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 스타크래프트 2 협의회 자문위원 The xian

* 이 칼럼 이후 밀렸던 다른 칼럼은 오늘 중에 연재게시판에 모두 게시하였으며, 앞으로는 순차적으로 칼럼이 업데이트될 것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21 VKRKO의 오늘의 괴담 - [실화괴담][한국괴담]같이 가자 [1] VKRKO 8029 11/08/05 8029
220 VKRKO의 오늘의 괴담 - [번역괴담][2ch괴담]미소 [5] VKRKO 7119 11/08/04 7119
218 VKRKO의 오늘의 괴담 - [번역괴담][2ch괴담]사신님 [8] VKRKO 7844 11/08/03 7844
217 VKRKO의 오늘의 괴담 - [실화괴담][한국괴담]자살한 자의 영혼 [2] VKRKO 8346 11/08/02 8346
216 VKRKO의 오늘의 괴담 - [번역괴담][2ch괴담]오스트레일리아 [8] VKRKO 9473 11/07/30 9473
214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Shame on you [12] The xian7601 11/07/22 7601
213 [스타2 협의회 칼럼] 건강이 최고의 재산입니다 The xian5590 11/07/22 5590
212 [스타2 협의회 칼럼] 프로의 가치가 위협받는 시대 The xian4750 11/07/22 4750
211 GSL 후기 만화 - July. 32강 4일차 [3] 코코슈7716 11/07/08 7716
210 GSL 후기 만화 - July. 조 지명식 <사랑의 스튜디오♡> [8] 코코슈9085 11/06/22 9085
209 백수의 배낭여행 #3-2 [7] T7666 11/06/20 7666
208 백수의 배낭여행 #3-1 [5] T6960 11/06/17 6960
207 백수의 배낭여행 #2 [10] T8327 11/06/14 8327
206 [스타2 협의회 칼럼] 리그 브레이커(League Breaker)가 되십시오. [5] The xian6803 11/06/13 6803
205 백수의 배낭여행 #1 [12] T8272 11/06/10 8272
204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Good, The Bad, The Weird The xian5920 11/05/30 5920
203 [스타2 협의회 칼럼] Next Brand, New Brand [3] The xian5868 11/05/24 5868
202 [스타2 협의회 칼럼] 30시간의 Battle.net 점검 [9] The xian7724 11/05/13 7724
201 [스타2 협의회 칼럼] 안고 갈 것, 떨쳐 낼 것(하) The xian5934 11/05/13 5934
200 [스타2 협의회 칼럼] 안고 갈 것, 떨쳐 낼 것(상) The xian6139 11/05/12 6139
199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그들만의 조지명식 The xian6230 11/05/12 6230
198 [스타2 협의회 칼럼] GSTL의 성장을 기원합니다. The xian5594 11/05/11 5594
197 [스타2 협의회 칼럼] 낮은 경쟁률이 주는 두려움과 가혹한 긴장감. 승격강등전 The xian5011 11/05/11 501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