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출처:
https://www.theplayerstribune.com/en-us/articles/roberto-carlos-good-life-covid-19-real-madrid
번역 출처:
https://www.fmkorea.com/2873339465 에펨코리아 토니8
The Good Life
내가 절대 잊지 못할 특별한 날에 찍은 사진 하나가 집에 있다.
1996년의 여름이였는데, 레알 마드리드가 나를 인테르로부터 영입한 바로 그날이다. 그 전까진 마드리드에 가본 적도 없었다. 나는 23살이였다. 공항에 착륙하고 제일 먼저 한건 내가 살 집을 확인한 게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웅장한 경기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간 것도 아니다.
그렇다. 나는 스페인 신문사 사람 몇명과 시벨레스 광장으로 갔다.
나는 시벨레스를 사진으로 밖에 본 적 없지만 특별한 곳인 것은 알았다. 광장 중앙에는 시벨레 여신의 대리석 조각상과 분수가 있다. 근처에는 스페인 은행이나 시벨레스 궁전 같은 거대한 건물들이 있다. 조금만 걸으면 도시의 중심지나, 레티로 공원이나, 프라도 박물관 혹은 카스테야나 거리를 따라서 베르나베우까지도 갈 수 있다. 마드리드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벨레스는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축구 팬들에게는 더욱더 의미있는 곳이다. 시벨레스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이 우승을 축하하러 가는 곳이니깐.
그러니까 공항에서 내려 바로 시벨레스로 가는 것은 리우 데 자네이루에 처음으로 내려서 바로 거대 예수상으로 직진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흥분됐다. 바로 그순간 신문사의 사진사가 나의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한 이 미친 여행의 시작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난 아직도 그 사진을 집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마드리드에 살면서 이제 레알 마드리드의 기관관계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지난 달 동안 나는 집을 두번 비웠는데 둘 다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서였다. 집에 하루 종일 있는 건 날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맞는 것이다.
두번 밖으로 나갔을 때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게 내가 알던 도시가 맞나 싶었다. 평상시에는 마드리드에 오면 노인들이 햇빛을 쬐며 걷고 아이들이 뛰어 놀고 가족과 친구들이 바와 레스토랑의 야외석에 앉아서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너가 원하는 인생에서의 모든 것은 마드리드에 있다. 햇빛, 스포츠, 문화, 밤생활, 음식... 특히 음식! 완전 다른 세상이다.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은 이 모든걸 즐길 줄 안다. 좋은 인생을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거리는 텅 비워졌다.
한번도 이런 마드리드를 본 적이 없다.
이 바이러스는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다. 내 가족과 나는 건강하니깐. 하지만 이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 많은 유족들에 대해서는 슬프다. 몇명은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다. 뉴스에서 봤겠듯이, 지난 달 레알 마드리드의 전 회장인 로렌초 산즈도 코로나로 의해 작고했다. 그가 코로나에 확진됐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가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난 그의 지병들에 대해 알고 있었고, 코로나가 합세해 그는 떠나게 되었다.
로렌초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는 회장이였으나 그보다도 마드리드의 팬이였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 인생을 걸었다. 그는 항상 적극적이였고 우리 선수들과 드레싱룸에서 교류했다. 우리가 무승부를 거두거나 졌을 때 그는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우승을 하면 그가 가장 먼저 우리를 안아주었다. 우리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들, 긍정심, 그리고 마드리디스모를 위해 그가 하는 모든 것으로 인해 그를 사랑했다. 그는 우리에게 아버지와 같았다.
나는 꾸준히 그와 연락했다. 그는 항상 나에게 조언을 줬다. 나는 그를 로렌초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절대 그러지 못했다! 왜냐면 나에게 그는 항상 회장님, 혹은 Prezi였으니깐.
나는 "Prezi, 어떻게 지내?"라고 하곤했고 그는 크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마드리드에 도착했을 때 로렌초는 회장이 된지 약 반년정도 되었었다. 내가 구단과 계약을 맺은 뒤론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갔지만, 나는 데포르티보와의 원정에서 데뷔전을 치르며 득점을 한 것을 기억한다. 또한 나는 8만명의 관중 앞에서 베르나베우에서 처음 뛴 날도 기억난다.
나는 그러니깐 음...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지? 내가 이제 실수하면 어떡하지? 이랬다.
진짜로 무서웠다니까!
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날들 중 하나기도 했다.
조금 지나서 나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중압감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프로 선수들도 떨리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도착하고 2년 가까이 지나고, 유벤투스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만났다. 우리 모두 알듯이 레알 마드리드는 그때도 지금도 챔피언스 리그 최다우승팀이였지만, 당시에 우리는 빅이어를 들어올린지 32년이나 됐었다. 우리는 그 시즌 라리가에서도 고전했다. 반면 유베는 3년 연속으로 결승전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쉽게 예상치 않았다.
결승전 전날에는 우리 중 누구도 잘 수 없었다. 보통이면 우린 10시에 침대에 눕겠지만 그날 밤 우리는 새벽 4시에 호텔 로비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무섭진 않았고 그저 유베에 대해 많은 존경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빨리 경기가 시작하길 바라고 있었다.
우리는 결승전에서 매우 훌륭했다. 유베는 찬스가 많았지만 우리가 1-0으로 이겼다. 우리는 우리의 퀄리티 뿐만 아니라 동기부여로 그 경기를 이긴 것이다. 우리는 이 우승을 그들보다 더 간절히 원했다.
그 이후 우리는 시벨레스 광장으로 향했다. 거리는 수만명의 사람들로 넘쳐났고 모두가 하얀 셔츠에 스카프를 두르고 노래부르며 축하하고 있었다. 난 절대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레알 마드리드 시절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를 꼽겠다.
마드리드에 오래 머무를수록 이 구단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깨닫게 된다. 단지 마드리드의 시민들만이 아니라 스페인 전역과 세계에서 말이다. 우리가 어디서 경기를 하든간에 팬들이 있었다. 우리가 엘클라시코를 치르던 작은 컵 경기를 치르던 베르나베우는 항상 가득찼다. 사람들은 레알 마드리드를, 내가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기로 한 같은 이유로 사랑한다. 위신, 팬들,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영광스러운 성공. 그리고 역사를 써내려갈 기회.
분명히 말하는데, 2000년대 초반의 갈락티코스 시대는 팬들에게만 특별했던 것이 아니다. 그 일원으로서 한 부분이 되는 것도 엄청났다. 드레싱룸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면 저기는 발롱도르 수상자, 여기는 올해의 스패니쉬 축구선수, 또 저기는 라 리가 득점왕, 세계 최고의 골키퍼가 있었다. 그 환경의 일원이라는 것은 특별했다. 때때로 나는 거기 앉아서 생각했다. 너의 출신지를 생각해보고 이제 너가 있는 여기를 생각해봐. 나는 자랑스러웠다. 인생을 살면서 어디에 도달할 지 절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2000년과 2002년에 챔피언스리그를 두번 더 우승했다. 그렇지만 모든 디테일을 기억하는 것은 어렵다. 마드리드 같은 구단을 위해 뛰면 항상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왜냐면 스프린트, 헤더, 태클, 훈련세션, 어웨이 원정길, 호텔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떄문이다. 성공과 패배 모두.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경기날이 되서야 나는 내가 이룬 것들의 의미에 대해 완전히 깨달았다.
내 마지막 경기는 2007년 6월 17일에 열렸다. 우리는 시즌 마지막 경기로 베르나베우에서 마요르카를 맞이했고 힘나스틱과 경기 중인 바르셀로나와 승점 동률인 상태였다. 만약 두팀 모두 이기면, 바르셀로나와의 상대전적을 따져서 우리가 우승하게 될것을 알았다. 우리는 경기 초반 선제 실점했으나 후반전에 역전하여 3-1로 승리했다. 환상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그날 가장 잘 기억나는 건 사람들이 날 대한 방식이다. 모두가 나의 작별경기라는 것을 알았다. 데이비드 베컴의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우리가 호텔에서 나와 경기장으로 가는 모든 순간 사람들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사랑을 표현했다. 생일 같은 기분이었다. 모두가 우리의 행운을 바라고 포옹과 입맞춤을 보냈다. "행운을 빌어.", "우린 널 사랑해"와 같은 말들을 하면서.
"최대한 빨리 돌아와"
그 순간 나는 구단을 위한 나의 헌신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사람들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
내 인생 가장 감정적인 날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애정 어리고 삶에 열정적으로 충실한지에 대한 좋은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국은 날 너무나도 슬프게 한다.
나는 마드리드 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을 격려하고싶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라. 문제가 닥쳐오면 항상 미소짓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개 들고 앞을 봐라. 자신을 믿어. 인내해. 침착해. 그리고 타인을 도우려고 노력해.
이 판데믹 와중에 이미 긍정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제 모두가 같은 약점을 지닌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의 중요성에 더불어 모두가 서로를 필요로 함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영상통화로 몇마디 친절한 말을 해주는 것처럼 사소한 무언가가 누군가의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음을 깨닫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계속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 자가격리를 하면서 우리는 모두 이 바이러스에 맞서 모든 것이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되길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축구가 그립고 레알 마드리드가 또다른 타이틀과 함께 시벨레스로 복귀하는 날을 고대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거리의 사람들을 보고싶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치열하게 거두기 바라는 승리이다.
추가로 카를로스에 관한 몇가지 기사들이 있길래 첨부해봅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139&aid=0002131948
카를로스가 말하기를 인테르에서 본인을 4-4-2 윙어로 쓰려고 했고 본인은 풀백에서 뛰고 싶어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을 선택했다고 밝혔습니다. 근데 윙으로 뛰면서 7경기 7골을 넣었다는데, 클럽 입장에서는 그럴만도 했다는 생각이...
"인터밀란은 나를 윙에 세웠다. 마치 스트라이커처럼 활용했다. 큰 문제는 내가 첫 7경기에서 7골을 넣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올리려고 했고, 나는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마시모 모라티 회장에게 그곳에서 뛸 수 없다고 말했다. 코파 아메리카가 다가오기 때문에 풀백으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그즈음에 로렌조 산츠 레알 마드리드 회장을 만났다. 단 10분만 대화한 끝에 레알로 이적하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게 순식간에 진행됐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36&aid=0000036782
선수 시절 막기 힘들었던 선수에 대한 질문에는 "호아킨 산체스, 사무엘 에투, 루이스 피구. 특히 피구는 정말 강했다. 내가 막아본 상대 선수 중 가장 힘들었다"라고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