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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18 17:54:10
Name likeade
Subject [일반] 내가 스타2를 사겠다는건, 게임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토요일 아침...아이들의 예방접종을 맞추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습니다.
소아과에 간김에 우리 부부도 신종플루 백신이 포함되어있다는 독감 예방접종도 맞고...장을 보러 롯데마트로 향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슬그머니 와이프에게 운을 띄웁니다.

"나 마트에 가서 꼭 사야하는게 있어."
"뭔데?"
"스타크래프트2"

와이프는 뜬금없는지 별말이 없습니다.
대학 동기이기도한 와이프는 제가 얼마나 스타크래프트로 인생을 소모했는지 익히 아는지라...제가 게임을 하는건 고사하고 중계만 봐도 매우 싫어합니다.
와이프의 부정적인 말이 나오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냅니다.

"내가 스타2를 사겠다는건, 게임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와이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밑밥을 까는것이기도 하지만, 이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육아에도 제법 적극 참여하고 있는 저로써는 집에서는 게임은 커녕 제 컴퓨터를 켤 시간도 없습니다. 아마 스타2를 산다고 하더라도 주말에 아이 둘이 동시에 낮잠을 자는 행운이 따라야만이 한두시간 할수 있을 겁니다.

"내가 스타크래프트로 10년을 즐겁게 게임을 했는데...블리자드에게 이런거로라도 보답을 해줘야 할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와이프가 피식 웃습니다.

"얼만데?"
"68,000원인가....그정도일꺼야..."

차마 많이 줄이지는 못하고...천원이라도 깍아 이야기 해봅니다.
가격을 듣고도 별말을 않는거 보니 제가 스타2를 질러도 별로 터치를 하지 않으려나 봅니다.

서울역 롯데마트 3층에 들어서니 바로 스타2 판매 매대가 저 멀리 보입니다.
매대 앞에 가보니 저보다 약간 나이가 윗줄일듯한 아저씨가 관심깊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저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매대의 패키지를 집어듭니다. 너무 가벼워서 보니 전시된건 다 빈 박스뿐입니다.
직원에게 이야기 하니 잠겨있는 보관함에서 열쇠로 열어 꺼내줍니다. 그리고 먼저 계산을 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옆의 와이프에게 조금 면목이 서는것 같습니다.
이건 카트에 아무렇게나 던져넣고 쉽게 살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자비로우신 마눌님께서 직접 계산해주시겠다며 계산대까지 행차해 주십니다.

스타2 매대에서 가장 가까운 계산대에서 계산대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와이프에게 물어봅니다.

"이게 뭐길래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서가면서 이렇게 사가요?"
"새로나온 게임이에요."
"9시반부터 지금까지 이것만 계산하고 있었어요."

허허...이미 아침 일찍 부지런한 게이머들이 휩쓸고 간 모양입니다.
줄서서 기다려 사가고...제가 갔을떄가 오전 11시인데...지금까지 스타2만 계산 하고 있었다니...그러고 보니 보관함에 스타2도 3~4개 밖에 없던데...하마터면 그나마도 못살뻔 했나 봅니다.

"이게 롯데마트에서만 판데요."

와이프가 저에게 슬쩍들은 이야기로 계산대 아주머니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줍니다.

"아~ 그러면 그렇지~"

대단한건 아니지만...수만가지의 물건을 파는 마트에서 미미하지만 이러한 작은 에피소드가 스타크래프트2 패키지에 특별함을 부여해주는것 같아서 왠지모를 자부심(?)이 느껴지고 와이프에게 괜한 면목도 서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속에서...

저를 12년간 파멸로 몰고갔던....지옥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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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사랑해요
10/09/18 18:06
수정 아이콘
크크크 처음엔 누구나 다 그렇게 사지요
그러나 현실은.....
저도 매장가서 살려다가 시간이 안나와서 황급히 디지털 구매를 했습이다 크크크
이게 바로 블리자드의 노예겠죠~ [m]
10/09/18 18:00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장에서 심금을 울리는군요.. 저도 오리지날때부터 구입해서 십대 시절을 이 녀석과 함께 보냈기에... 눈물이 납니다.
환영합니다. 웰컴 투 더 헬 ~
10/09/18 18:12
수정 아이콘
패키지 판매에대해서 조금 부정적인 생각을가지고 있었는데 이런분들도 계실거라곤 생각을 못했네요..

조금만더 블리자드가 신경써주면 좋겠습니당~
prettygreen
10/09/18 18:22
수정 아이콘
12시쯤 주문했더니 4시에 배달해 주더군요.
돈내고 하니까 갑자기 더 재밌네요.
맥주귀신
10/09/18 18:33
수정 아이콘
으악.. 크크크크..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애증이 느껴졌던 수필 같은 글에서 마지막 문장 덕분에 갑자기 분위기 확 바뀌었네요. 크크
쉬엄쉬엄하셔요~
디비시스
10/09/18 18:37
수정 아이콘
"이건 카트에 아무렇게나 던져넣고 쉽게 살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이 문장 너무 재밌고 인상깊네요
10/09/18 19:17
수정 아이콘
하하하, 정말 글이 재미있네요.
그리고 조금 부럽기도 하고요.
내려올
10/09/18 19:43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읽으면서 엄청 웃었습니다.

"나 마트에 가서 꼭 사야하는게 있어."
"뭔데?"
"스타크래프트2"
이거는 거의 슬램덩크의 단호한 결의급 포스 군요.

덧붙여 저 같은 경우에는
내가 스타2를 사겠다는건, 게임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단지 다른 일을 조금 소홀히 하겠다는 뜻이지. 읍;;;
구름을벗어난달
10/09/18 20:11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저도 좀 참았다가 마트가서 살 걸 그랬어요. 배송비가 3000원이라니......
자유의지
10/09/18 21:52
수정 아이콘
하하하 많이 깎지는 못하고 1000원 깎았습니다

너무 재밌습니다...크크

에구 부럽다..
가만히 손을 잡으
10/09/18 22:08
수정 아이콘
와이프에게 지난 생일선물로 당당히 요구해, 지금 가져 왔습니다.
한정판이 아니라 아쉽지만, 뭐 이거라도...
몇 번이나 할지 몰라도 일단 즐거운 추석이 될거 같군요.
603DragoN2
10/09/19 01:13
수정 아이콘
저랑 너무 비슷하시네요 크크
블리자드에 대한 보답 ..... 스타크래프트로 소모한 시간들... 쩝...
결혼하신거 보니 스타 열심히 안하셨네요 크크
몽정가
10/09/19 02:25
수정 아이콘
고도의 염장글인가요....
패키지 샀다 자랑글인가요......
우리 마눌님 자랑글인가요...........
여하튼 다 부럽습니다!!!
M Powered
10/09/19 10:21
수정 아이콘
완전 공감하면서 글을 읽었네요. 저도 출시하는날 밤 12시에 란치파티가 있다길래 가고싶었으나 와이프한테 눈치보여서 못가고
그다음날 아침에 가서 받아왔습니다... (아이폰4 출시때 6시간 기다린 아픔도 있고 해서...)

"내가 스타크래프트로 10년을 즐겁게 게임을 했는데...블리자드에게 이런거로라도 보답을 해줘야 할것 같은 기분이 들어."

바로 이거죠. 저도 동감입니다. 재미있는글 잘 읽고 갑니다. ^^
the hive
10/09/19 12:44
수정 아이콘
헬게이트가 열리는소리가 들려옵니다 후덜덜--;;
문성은
10/09/20 10:43
수정 아이콘
저랑 너무 상황이 비슷하셔서 덧글 남기게 되네요~하하~ 저도 마눌님이 스타2는 인정해 주네요~^_^ 전 17일날 밤에 마눌님이랑 아기들 2명이랑 같이 가서 샀습니다. 역시 고객센터에서 구매했네요~ 매장은 빈박스뿐..ㅡ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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