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08/19 01:28:44
Name nickyo
Subject [일반] 이상을 마주하는 것이란.


자유로운 시대다. 적어도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시대를 꼽자면, 오늘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촘촘히 세워진 사회 때문에 가장 자유롭지 못한 시대같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유롭다고 느낄것이다. 적어도 누구에게든지 우리는 '존중'을 외치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훈련소를 약 열흘 앞두고, 일하는 카페의 직원을 새로 뽑게 되었다. 사람의 이기심이란 이다지도 잔혹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어차피 공익근무라 1달뒤면 허락하에 짬짬히 할 수 있는 일인데 1달만 일해줄 사람 없을까 하는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실컷 마시며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아르바이트 치고는 급여도 괜찮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강한 목소리로 '자본철폐'를 외치지는 않게 되었다. 친구 중 한명은 사업을 시작했다. 그 친구는 종종 내게 사업의 비전에 대해 묻는다. 나보다 뭐든 잘 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가 내게 무언가를 물으러 올 때마다 부끄럽고 무안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이미 자본주의에 강력히 속해있는 구성원이 되어있다. 노동의 가치나 빈곤의 원인 혹은 자본의 더러운 것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일한 입장에서 비슷한 분노를 느끼지만 그 너머의 이상과 지금은 조금 거리가 더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상 모든 일에도 천원짜리 한장이 아쉽다는걸 알게 된지는 벌써 수 년이 지났건만 나는 이제서야 정말 돈이 없는 상황이란 내 생각보다 훨씬 힘겨운 상황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 친구의 사업은 사회적 공익에 이바지 함과 동시에 대기업의 횡포 바깥에서 소득을 올리는 것들에 착안하여 사업 모델을 만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봐야 자본주의다 라며 비판했을 내가, 이제는 사업성이나 이윤창출, 소비동인이 모자라다며 더 벌기 위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토록 빠른 변질에 친구 앞에서 말문이 자주 막히고는 한다.


나는 많은 꿈과, 많은 이상이 있었다. 꼭 남기고 싶은 마음들을 글로 쓰고, 꼭 전하고 싶은 마음들을 노래한다. 세상에 벌어진 비겁하고 나쁜, 그러나 누구도 나쁘다고 하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 화내고 나를 깎아 남의 웃음에 기여하는 그런것을 바랬다. 돈은 돈대로, 그러나 삶은 삶대로 라며 내 삶에 가치있는 일을 하겠다던 내가 있다. 꺾이지 않은 마음이건만 조금씩 서랍안에 쟁여놔야 한다는 것을 느낄때마다 나도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다. 나는 그 동안 조금이나마 내가 가진 철학-이라고 거창히 말할것도 아니다만-에 일관성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 번번히 등장하는 갈등과 선택에서 그 일관성을 지키고자 했고, 얻은것과 잃은 것이 생겼다. 그러나 내 이상을 향한 갈망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못했는지, 혹은 그러지 않았는지. 점점 물렁물렁 해지고 이젠 물처럼 출렁거리는 내가 있다. 꿈이나 이상을 버린 적이 없다고 매일같이 말하지만, 꿈이나 이상을 위해 쓰는 시간보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쓰는 시간이 늘어남에 조금씩 절망이 붙는다. 이상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 꿈을 끝까지 믿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당연히 될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 '강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남들이 '믿으면 이루어진다' 는 말에 코웃음을 치지만, 사실은 정말 그것을 의심치 않기 위해 가지는 마음가짐은 얼마나 단단하단 말인가.



세상은 넓다. 자유롭다. 그렇기에 너무나 많은 정의가 도사리고 너무나 많은 혼란도 함께 있다. 나는 내가 바라볼 지평선이 흔들림을 느낀다. 사람을 이해할 때 마다 매번 성장을 핑계로 댄 무너짐을 느낀다. 언젠가는 이러한 것들을 꼭 소설로 써 보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언젠가는 이러한 시간을 꼭 노래하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렇지만 그것들 보다 하루라도 더 출근해서 몇 만원을 벌지 않으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는 공포가 내일 일어나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것이 싫다. 이상과 마주해가는 길에서 난 벌써 옆으로 새어나가나보다. 한심하게도..

대체 뭐가 자유롭다는 말인가.



"딩동"



이 시간에 치킨을 먹음으로써

난 자유로워지리라 믿는다.

으적 으적.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악마의유혹
11/08/19 01:40
수정 아이콘
잘읽고 갑니다~
ridewitme
11/08/19 01:51
수정 아이콘
으적으적. 고놈의 성장이 문제인가요. 철들기 싫은데. 럭스같은 조선펑크록 가사처럼 살고싶다.
DavidVilla
11/08/19 01:52
수정 아이콘
훈련소 다녀오시면 글의 퀄리티는 더욱 올라가겠군요.
이 시간에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그 여유가 부럽습니다. 열흘 남짓 남은 시간, 알차게 보내세요!

그리고 연애 이야기만 아니면 뭐.. 저는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입니다~
11/08/19 02:49
수정 아이콘
남자는 치킨을 먹음으로써 이상에 한발짝 더 다가간다 뭐 이런 내용입니까?
제가 지금 치킨 먹은지 이틀이나 지나서 이렇게 신경이 날카로운 건 아닙니다.

는 개드립이고 훈련소 잘 다녀오세요~
라니안
11/08/19 09:52
수정 아이콘
꿈이나 이상을 버린 적이 없다고 매일같이 말하지만, 꿈이나 이상을 위해 쓰는 시간보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쓰는 시간이 늘어남에 조금씩 절망이 붙는다

이말이 마음에 와닿네요
잘보고 갑니다
켈로그김
11/08/19 10:04
수정 아이콘
현실을 알고, 겪고도 이상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 때는 좋은 글이 나올겁니다.

대척점에 있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만 벗어내도 말이죠.
코리아범
11/08/19 13:53
수정 아이콘
언제까지 일하시나요? 아 한번 놀러가야하는데 크 [m]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1218 [일반] 신창원씨 자살 기도 기사를 보고 [16] saia5420 11/08/20 5420 1
31217 [일반] 무도 관계史 [27] 루미큐브9166 11/08/20 9166 0
31216 [일반] 나는 잘 될 수 있을까... [4] sad_tears3742 11/08/20 3742 3
31215 [일반] 2002년의 김성근 감독 인터뷰 [10] Neo6866 11/08/20 6866 0
31214 [일반] [프로야구] 올해만큼 다사다난한 해가 있었나 싶네요 [12] 케이윌4878 11/08/20 4878 0
31213 [일반] "LG전자를 떠나며 CEO에게 남긴 글" [19] 월산명박8442 11/08/19 8442 1
31212 [일반] 여인천하 - 발 뒤의 군주들 下 [12] 눈시BB6215 11/08/19 6215 3
31209 [일반] [야구]이만수 감독대행 대단하군요.(이틀동안 그에 관한 기사들) [44] 옹겜엠겜10337 11/08/19 10337 0
31208 [일반] 구청에서 일하는 친구와 주민투표 [33] 바람모리5511 11/08/19 5511 0
31207 [일반] 그린 그루브 페스티벌 후기<스크롤 압박 있음> [5] Zergman[yG]3896 11/08/19 3896 0
31205 [일반] 스마트폰 시장의 판세는 어떻게 될까요? [48] 낙타7069 11/08/19 7069 0
31204 [일반] 프로리그 결승을 위해 준비한 새우튀김40마리 [40] 제일앞선8061 11/08/19 8061 2
31203 [일반] (SK) 마지막 기회를 놓친 SK 와이번즈 구단 [27] 타츠야6775 11/08/19 6775 1
31202 [일반] pgr21.com/zboard4/zboard.php?id=discuss [6] 마네5928 11/08/19 5928 1
31198 [일반] 우울증 걸린 화가 [26] 성시경15809 11/08/19 15809 0
31197 [일반] 속보) 현재 광양제철소에 폭발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13] 개평3냥8056 11/08/19 8056 0
31196 [일반] '나는 가수다'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합니다. 누가 가장 기대되시나요? [24] 228319 11/08/19 8319 0
31195 [일반] 자우림과 나인뮤지스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습니다. [10] 세우실4095 11/08/19 4095 0
31194 [일반] 혹시 ufo를 목격하신 피지알러분들 있으신가요? [32] 은하수군단5324 11/08/19 5324 0
31193 [일반] 알파 피씨에서 구입하신 분들 주의하세요. [20] unluckyboy7444 11/08/19 7444 0
31192 [일반] 이럴 때일수록 성숙한 팬 의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61] Nimphet7106 11/08/19 7106 0
31190 [일반] 이상을 마주하는 것이란. [9] nickyo3537 11/08/19 3537 0
31189 [일반] 천안함 멍게? [72] TimeLord11340 11/08/18 11340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