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01/13 09:18:28
Name 박정우
Subject [일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문득

작년 10월31일 전역후 한달정도 신나게 스타도 하고 밀린 잠도 자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꽤 오랜시간 군대에 있었으니 이정도 사치는 부려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순간 몸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불규칙하게 살다보니 그런듯했고 뭐라도 규칙적으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매일매일 저를 부셔버린 피시서버 고수들 때문에 스타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운동을 할까?아님 면허를 딸까? 고민을 하던 중 엉뚱하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됬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돈을 쓰기보다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입니다...복학하기까지는 약 3~4달 남았으니 그 정도 기간에
일을 하면 돈도 꽤 벌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입대전 일을 했던 편의점에서는 일자리를 못 구하고 방황하던 중 집에서 30분거리의 편의점에서 운 좋게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사장님이 좋은 분이라 일도 금방 적응되었지요.
이제 일한지 한달 반정도 되었는데 그 동안 이일을 하면서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 몇가지를 글로 옮겨보려 합니다.

첫째. 어르신들은 대화에 목 마르시다.
저희 가게에는 어르신 세분이 고정적인 시간에 항상 방문하셔서 각자 본인의 용무를 보고 가십니다.
한분은 아파트 경비일을 하시는데 교대시간 20분전에 가게에서 커피를 한잔 드시고, 한분은 새벽 3시에 소주한병을 항상 "원샷" 하시고 -
언제 봐도 전율입니다...- 한분은 새벽기도를 마치시고 가게에 오셔서 현급지급기에서 돈을 찾아달라 하십니다. - 허리가 너무 굽으셔서
현금지급기에 손이 닿지 않으십니다.-
먼저 말을 걸었더니 3분모두 처음에는 떨떠름한 표정이셨다가 시간이 지나자 본인이 먼저 당신 살았던 이야기, 사는 이야기, 개인사등등 작은 것부터 큰이야기 까지 해주십니다. 소주 원샷하는 어르신과는 두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적도 있습니다.
세 분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도, 이야기를 해주는 이도 주위에 얼마 없으시다보니 그렇시는 듯합니다.
어찌나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는지 모릅니다. 듣다보면 배울점도 많고 정말 유익한 시간입니다.
어찌보면 세분모두 점점 잊혀져가는 자신의 흔적을 이 조그마한 편의점에라도 새기고 싶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둘째, 손님들이 인사에 인색하다
"어서 오세요, ~~원입니다. 잔액 200원입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모든 손님들에게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은 방침에 의한 기계적인 멘트라 생각하시고 그냥 흘리시는지, 아니면 꼭 대답할 의무가 없기에 그러시는지, 아니면
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글거리는 멘트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으로 잠시 말문이 막히신건지...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대꾸를 해주시는
분이 없습니다. 굳이 대답을 바라고 하는 멘트는 아니라도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라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니 열심히 하자는
마인드로 한 멘트에 아무 대꾸가 없으니 서운한 감정이 많이 생깁니다ㅠㅠ
이런 모습을 퇴근할 때 타는 버스에서도 자주 보는데 기사님이 손님들에게 "어서오세요"라고 하셨을 때 여기서도 대꾸해주는 이가 거의 없음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말로 "케바케"인걸가요?

셋째. 한국사람들 성격 진짜 급하다.
저희가게에는 조그마한 커피자판기가 있습니다. 한잔에 천원인데 그 커피를 사는 손님들이 거의 열이면 열 하는 행동은 바로 자판기에서 물이 나오자마자 컵에 손을 대고있습니다. 또 40대이상 중년남성분들은 거의 대부분 가게에 들어오시자마자 돈을 "던지시면서" 담배를 달라고
하시고 손을 벌써 잔돈을 요구하시면서 눈과 다리는 4교시 끝나기 5분전 상태처럼 가게입구를 향하고 계십니다.
앞에 손님이 있다치면 다리를 계속 떠시면서 내 차례는 언제오나하는 표정을 지으십니다. 바코드찍고 계산까지 30초도 안걸리는데...
누가 이들을 이렇게 바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저도 군대에서 분단위로 쪼개 살면서 1분,2분늦은거에도 버럭 소리를 지르시던
대대장님과 작전과장님 밑에서 오래 일을하여 시간의 소중함을 많이 배웠지요...현대사회에서 시간이 곧 능력이며 돈이긴 한가봅니다.

정말 제 100%주관적인 생각이었구요...
위에 적었듯이 여러가지 불만 아닌 불만이 있기 있으나, 또 늦은 나이에 하는 이 일이 창피할 수 도 있으나 저는 나름 보람되고 재밌습니다.
역시나 제일 좋은것은 이 곳에 예쁜 여성분들이 정......
역시나 제일 좋은것은 제가 사람만나는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보다 팔고 팔리는 물건이 더 많은 이 15평짜리 편의점에서 오늘은 어떤 사람을 만날까 기대하면서 오늘도 버스에 올라탑니다.

추신. 시적늑대님...사...사랑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쎌라비
12/01/13 10:16
수정 아이콘
늦은 나이에 하는 일은 아니죠. 뭐든지 긍정적으로 하는게 좋죠.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ChojjAReacH
12/01/13 10:19
수정 아이콘
아.. 편의점에서 나올 때는 인사를 꼭 해도, 들어갈 때는 인사를 안하는데 들어갈 때도 (저도 상황에 따라) 인사를 해야겠군요.
모르는 이들에게 인사를 하다보면 언젠가 마음 따뜻한 일이 돌아올거에요.^^
고생하십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작은마음
12/01/13 10:41
수정 아이콘
글을 읽다 보니 저도 인사해본 기억이 별로 없네요 ;;;
보통 나오면서 수고하세요 정도는 했던거 같은데
인사말에 대답은 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이제라도 직원분의 인사에 "네 안녕하세요"라고 답을 해야 할듯 하네요.
PoeticWolf
12/01/13 10:58
수정 아이콘
1. 말 좀 걸어드리면 A4 넉장 분량 쏟아내시는 분들 보면 되게 안쓰러워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요즘 아주 가끔 뵙는 저희 어머니가 그러시네요;;
2. 저희 마누라는 버스 탈 때마다 기사님들께, 편의점 들어가면서 카운터 계신분께 정말 깍듯이 큰 목소리로 인사해요. 총각 때 그 모습에 홀딱 반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참 보기 좋아요. 그래서 차를 안 삽니.... 무튼, 저도 덩달아 인사를 하게 되는데, 혼자 버스탈땐 영 쑥스러워서 스킵합니다.ㅜㅜ 인사 잘 하는 거 보기에는 참 좋긴 해요. 잘 했으면 좋겠어요 저부터도..
3. 전 성격 좀 급해라, 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아서;;;
추신 : 아아.. 설레였으나.. 다시 처음으로 올라가보니 예비역...

일 한다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싸이유니
12/01/13 11:16
수정 아이콘
이런 소소한 글이 더욱 값진것같아요..
잘읽고 갑니다.
편의점가서 인사잘해야겟네요.흐흐
12/01/13 12:03
수정 아이콘
저도 전역하고나서 세 달 동안 새벽 편의점 알바를 했었는데..
딴 건 몰라도 손님 나갈때 "감사합니다" 내지는 "안녕히 가세요" 라고 제가 인사하면
"수고하세요" 라고 하는 손님들 정말 좋더군요. 별거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거 알바생들한테는 정말 힘이 됩니다.
그 이후로 저도 편의점에서 뭐 사고 나올때는 수고하세요란 말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걔삽질
12/01/13 12:28
수정 아이콘
저도 작년에 동대문 평화시장 건너편 닭강정 파는 노점에서 1달정도 근처 시장에 배달하고 파는일 했었는데요
닭강정 사들고 가는 손님들이 짧게라도 수고하세요란 말 해주시면 기분이 좋더라구요 저도 그래서 꼬박꼬박 인사드렸구요

그리고 돈이 오가는 일이다보니 아무래도 돈 줄때 어떻게 주나 유심히 지켜보곤 했는데
그 공손하게 주는 모양있잖아요 어른한테 소주 따라드릴때처럼 팔에 다른손 붙여서 주는 그거
그렇게 주면 사람이 달라보이더라구요 별거 아니지만
반대로 그냥 휙 던지듯이 주는 사람들한텐 재수없어서 닭 몇개 뺐구요 크크크
그 이후로 가게에서 물건살때나 상대방한테 돈 줄일 있으면 의식적으로 공손하게 드리려고 합니다 상대가 누구든지간에요
12/01/13 12:33
수정 아이콘
1. 중년남자는 많이 외로운 존재입니다. 수다떨 친구들은 정해진 극소수고 아내나 자식과도 진솔하게 하루일과를 이야기하진 않은거 같아요.
특히 30대중반인 제기준으로 아버지세대부터 삼촌세대까지가 그런거 같습니다.
2. 버스운전사들한테 인사많이 하는편인데 한국에선 못해봤어요. 다음기회에 한번 해보겠습니다.
3. 아무래도 서비스업이 천직이신거 같은데 사람과사람을 대하는걸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서두르고 눈한번 제대로 마주치지않고 계산이
끝나는 손님이 많으면 스트레스 받을거 같긴하네요...

제일좋은 이쁜 여성분들에대한 글은 다음기회에 볼수있는건가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4677 [일반] 성곽 답사 다녀왔습니다. [4] 자이체프3687 12/01/14 3687 0
34676 [일반] 어떤 동영상 때문에 생각난 1999년의 낭만 [14] The xian4807 12/01/14 4807 0
34674 [일반] "안녕하세요 MBC 무한도전 팀입니다." [37] EZrock9823 12/01/13 9823 0
34672 [일반] 이적의 짧은 트위터 픽션 [7] nickyo6582 12/01/13 6582 0
34671 [일반] 가슴에 내려앉는 시 모음 3 [5] 김치찌개3420 12/01/13 3420 0
34670 [일반] 대몽항쟁 1부 - 1. 적은 또 다른 적을 부르고... [6] 눈시BBver.25932 12/01/13 5932 1
34669 [일반] 서울에서 느껴보는 소외감 [27] TheGirl5969 12/01/13 5969 0
34668 [일반] 아까운 내 돈~!! 세금 절약 어떻게 해야 할까요? [16] 고래밥4528 12/01/13 4528 0
34667 [일반] 대한민국 검사 다 족구하라 그래...! [34] 아우디 사라비아6085 12/01/13 6085 0
34666 [일반] 미국에선 영웅, 한국에선 초등학생들에게만 영웅..? [8] 김치찌개6901 12/01/13 6901 0
34665 [일반] 아버지가별세하셨습니다 [58] 감성적이지만감정적이지않은4793 12/01/13 4793 0
34663 [일반] 써니힐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습니다. [6] 효연짱팬세우실4048 12/01/13 4048 0
34662 [일반] 첫사랑 [8] Hon3900 12/01/13 3900 0
34661 [일반] 네덜란드 치즈 [6] 김치찌개4977 12/01/13 4977 0
34659 [일반] [잡설]이렇게 첫글을 쓰게되다니.. [7] 라디오헤드2715 12/01/13 2715 0
34658 [일반] 요즘 hook간다의 가정 생활. [32] Hook간다6100 12/01/13 6100 1
34655 [일반] 한복 훔친 중학생 [17] 학몽6227 12/01/13 6227 0
34654 [일반] [모임?] 오늘 용산에 LOL 경기 관람하러 가시는 분이 계신가요? [34] Nair3851 12/01/13 3851 1
34652 [일반] [야구] 두산 베어스 스캇 프록터 영입/삼성 라이온즈 브라이언 고든 영입 [26] giants4524 12/01/13 4524 0
34651 [일반] PGR의 남편분들 보세요... [17] k`5240 12/01/13 5240 1
34650 [일반] 간단히 살펴보는 겨울이적시장 이슈들 [17] KID A4687 12/01/13 4687 0
34648 [일반] 기준금리 연 3.25% 7개월째 동결 [31] 영혼의공원4253 12/01/13 4253 0
34646 [일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문득 [8] 박정우3880 12/01/13 3880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