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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02 19:59:31
Name The Special One
Subject [일반] 내가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된 이유
14년 정도 전의 일입니다. 이제 갓 20대 초중반으로 접어들었던 무렵 오랬동안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여자아이는 제 친한친구와 사귀었었고 빠르게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인연은 유지되어 셋이 만나
커피솦에서 시간죽이며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공연도 보고 하는 사이가 되었었죠.

저는 그 친구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지만 이미 그 순간부터 제 친구와 그 여자아이는 사귀고 있었기에 마음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고, 친구가 그애와
헤어진 이후에도 친구를 배신하는것만 같아서 애써 제 마음을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지났고, 제 친구는 더이상 그 여자아이와 만나지 않게 되었어요. 그때는 세상이 다 아름다웠고
할일은 매일 넘쳤으며 썸탈일도 많았던 시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끊어지지 않은 미련의 실을 붙잡고 계속 끈질기게
그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애에 어설펐던 저는 아마도 '널 좋아해'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던것이
분명 했을 것 입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저는 좋은말로 '로멘티스트'이자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자아도취형 진상'이 틀림 없었을것입니다.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자 마음을 먹고 리처드 막스의 나우엔 포레버의 기타연주를 연습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더듬더듬 치던
기타로는 시간이 걸렸지만 한두달정도 뒤에는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노래가사도 다 외웠고 노래연습도
했었죠.

그녀와 만나기로 한 어느날 저녁 기타를 매고 나온 저를 보고 흠칫 놀라던 그녀의 표정이 기억납니다.
미리봐둔 인적 드문 공원으로 그녀를 안내하고 긴장한 손으로 기타를 연주합니다. 네 저도 알고있어요. 지금도 가끔 이생각이 나면
이불킥까진 아니더라도 얼굴이 화끈거리는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절대 이 얘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듣고있던 그녀는 곡이 다 끝나자 "이러려고 기타매고 온거야? 멋있다~"라고 인사치레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연습한
고백을 하려던 순간 갑자기 "집에 가야겠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거죠. 아마도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줄이기 위한
그녀의 배려였을지도, 혹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둘수 있는 효율좋은 거절이었을수도 있었겠죠.

여하튼 저는 "그래.. 늦었네"라고 말하며 주섬주섬 기타를 케이스에 집어넣고 짐을 챙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일이 없었습니다.

같이 걸어가는길에 화제를 돌리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그녀는 시큰둥 했고, 버스정류장 근처에 도착하자 저 멀리서 그녀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정차해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순간 그녀가 달렸습니다. 들릴들 말듯 "나 갈게~"라고 말하고서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치마입은 여자아이가 마이클 존슨과도
같은 폼으로 본격적인 달리기를 하는것을 저는 태어나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순간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싫었을까?'
'나랑 있는것이 그렇게나 불편했나?' 하는 서운한 마음과

'내가 저 얌전한 아이를 저렇게 뛰게만들었구나. 스토커짓을 한건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어요.

어느쪽이든 저에게 큰 상처가 되었던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후로 지지부진 하던 그녀에 대한 마음은 완전히 정리되었습니다.
더이상 그녀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녀가 그립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녀를 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저와 헤어질때 뛰어가는 여자가 싫습니다. 그 뒤부터인지 그 전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건 중요한게 아닙니다. 특히 맹렬한 속도로
체면도 차리지 않은채 뛰어간다면 더더욱 싫습니다.

다행히 지금의 제 아내는 뛰는것을 죽는것만큼 싫어하고, 혹시 신호가 바뀐다거나 해서 불가피하게 뛰어야 할때는 제 손을 먼저 잡고 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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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모굴리스
16/02/02 20:09
수정 아이콘
아아 죄송한 말씀이지만 뛸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크으..
젊은날 오그라드는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은 청춘 헛보낸 겁니다 후흣
The Special One
16/02/02 20:15
수정 아이콘
저도 공원에서 그 노래를 오글거림을 참고 주위 눈치보며 들어야 했을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프로아갤러
16/02/02 20:15
수정 아이콘
로맨티스트셨네요
The Special One
16/02/02 20:21
수정 아이콘
ㅠㅠ
16/02/02 20:18
수정 아이콘
반대로 절 보며 뛰어오던 여자의 모습도 잊을 수 없죠. 지금은 딴 남자의 여자가 되었지만
The Special One
16/02/02 20:21
수정 아이콘
패닉의 정류장이 생각나네요. 절보고 뛰어오던 여자가 있었다면 저도 오래 기억했을것 같습니다.
16/02/02 21:34
수정 아이콘
모르는 노래인데 찾아 들어봐야겠네요. 저는 이승훈의 비오는거리 들을때마다 그때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그 언젠가 늦은 듯 뛰어와 미소 짓던 모습으로~
花樣年華
16/02/02 20:36
수정 아이콘
이거 정말 치명적입니다...
세츠나
16/02/02 20:18
수정 아이콘
이렇게 표현하면 실례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녀 입장에서는 '도망간' 것에 가까울 것 같아요. 도망갈 때는 전력으로 달려야죠.
The Special One
16/02/02 20:20
수정 아이콘
흐흐 다행히 이 뒤로는 이컨셉을 완전히 버리고 몇번의 연애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세츠나
16/02/03 09:56
수정 아이콘
자기 감정에 취하지 않는 법을 빨리 배우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첫사랑에는 심란한 기억이 많네요.
블랙엔젤
16/02/02 20:21
수정 아이콘
아무한테 얘기 안 한건 잘하셨네요
고딩 친구중 하나가 대차게 까인 걸 안 후... 제 친구들은 기념일로 지정해서 100일,200일,300일,1주년,2주년,3주년 이렇게 기념 해줬거든요??!
13년째 이어지고 있는 행사입니다??
The Special One
16/02/02 20:27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분들이네요 크크 저도 그때의 친구들이 지금도 연락하는 유일한 절친들이기에 말 안한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王天君
16/02/02 20:59
수정 아이콘
괜춘해요. 저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슈퍼 미친 짓을 한 적이 있거든요.
김난도 선생님의 명언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쪽파니까 청춘이다!
The Special One
16/02/02 21:23
수정 아이콘
크크 부끄럽네요.
16/02/02 21:07
수정 아이콘
웃으면 안되는데 막 웃음이~
전국의 저런 경험을 한 그녀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길~~
The Special One
16/02/02 21:24
수정 아이콘
그녀에게도 좋은 추억이길 바랍니다 ㅠㅠ
엠마스톤
16/02/02 22:19
수정 아이콘
고백까진아니고 관심이가던 후배한테 살짝 호의를 배풀며 호감을 표현했던적이 있는데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보일정도로 당황해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그 때 저도 '내가 그 정도로 싫나' '내가 그렇게 못난놈인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좋아하는 마음도 눈녹듯 사라져버리고 결국엔 연락도 안하게되었고 길에서 마주쳐도 피하게 되더군요....
참 경험이란게 중요한데, 고백이라는 경험을 몇번 해보지도 못했던 저에게 저런 쓰라린 일을 겪으니 그 다음부터 여성에게 뭔가 호의를 베푸는게 겁이나더군요.
이 글을 읽으니 남얘기같지않고 약간 센치해지네요 그때 생각도 나고 ㅠㅠ
갈매기
16/02/03 00:33
수정 아이콘
아래 제가 내용을 썼었는데 아랫 내용의 링크는 여기에 답니다. 너무 두려워마시고 도전해보세요
http://www.namrodang.com/bbs/board.php?bo_table=paper&wr_id=628&sca=%EB%AC%B4%EB%B9%84+%EC%8A%A4%ED%86%A0%EB%A6%AC
김여유
16/02/02 23:25
수정 아이콘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추억 중 하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전 읽으면서 느끼는 건 그녀의 태도가 지금 이렇게 씁쓸하게 웃으면서 글을 쓸 수 있게 된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하는 점입니다.
그렇게 단칼로, 심리적 혼란도 못 느낄 정도로 거절 메시지를 주다는 건 거절 당할 시나리오에서 가장 최선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냉면과열무
16/02/02 23:41
수정 아이콘
아아아 오늘밤 이불킥 열번하고 자겠구나.. 안좋은 기억.. 추억 꺼내주신 님 미워요.. 흐엉
하우두유두
16/02/02 23:46
수정 아이콘
예전에 고백을 했을때 그친구가 저에게 왜 나를 나쁜사람으로 만들어 라면서 난감해 하던모습이 기억나네요.
ㅠㅠ
곧미남
16/02/03 00:28
수정 아이콘
캬~ 멋지네요 저도 그녀에게 고백했던곡이 Now and Forever였었는데.. 저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자아도취형 진상이었던거 같네요
갈매기
16/02/03 00:31
수정 아이콘
누군가 썼던 글이 생각나네요 그 분은 여성이셨는데 큰 맘먹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했대요
긍정과 부정의 대답 모두 준비하며 있었는데
그 남자의 대답은 "누가 듣겠어요".

누가 들을까봐 걱정하는 그 말 듣고 글쓰신 분은 완전히 멘탈이 나가셨다는.
야릇한아이
16/02/03 01:12
수정 아이콘
잔인한 사람.. ㅠㅠ
16/02/03 03:07
수정 아이콘
차라리 칼 거절이 나은거죠...
아니라고 해서 떠날려고 하면 다시 곁에 있어달라고 생각할 시간동안 이런식으로 질질끌고 가다가
자신이 먼가 비난 당할 여지가 생기는 걱정이 되니깐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잘라버리는 여자도 있더군요.
그리곤 바로 대체자 찾아서 똑같이 이용하는거 보면 참 멘탈력 상승에 도움이 됩니다. 크크
그러지말자
16/02/03 06:18
수정 아이콘
고백은 복근이 좀더 선명해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더니 이 나이 먹도록 고백이란걸 못해봤습니다.
때문에 저 안타까운 고백마저도 부럽습니다.
고백하는 사람의 서정적자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저에게 향했던 고백마저도 제때 캐치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나는 오빠를 좋아함. 오빠는 어떠함? 이렇게 명료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여자는 적어도 저한테는 없었습니다.
장난형식을 빌리거나, 작위적으로 접점을 만들거나, 뜬금없이 소개팅을 제의하며 내 취향을 묻거나, 여친없는거 알면서 오빠 여친은 좋겠다고 하거나 뭐 이런 '내 마음은 열려있으니 고백 두루와 두루와'하는 신호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주말이면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죠.
어쩌면 제가 고백을 못한건, 복근이 아니라 게임때문이었는지도..
파라돌
16/02/03 07:30
수정 아이콘
지금의 아내에게도 그러한 고백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아내는 저의 연애사를 어느정고 알기 때문에
자기한텐 그러지 않았다는것에 대해 연애때부터 지금까지 울궈먹고있습니다 크크..
16/02/03 07:31
수정 아이콘
차가운 너의 안녕,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쥴레이
16/02/03 08:52
수정 아이콘
아내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크크크

뛰었을 그녀의 심정이 여기까지 느껴지네요.
저는 그 눈물이나는걸 보여주기 싫어서 뛰었을거 같네요.
루카쿠
16/02/03 09:47
수정 아이콘
하긴.. 그애라는 분이 얄밉긴 해도 희망고문을 시전하는게 더 나빠요.

근데 저도 소개팅했던 여자가 자기 집 가는 버스왔다고 달려갔던 경험이 있는데 진짜 유쾌하지가 않더라고요.

친구한테 말하니까 하나같이 그 여자욕을;;;;

아무튼 좋은 추억이네요. 잘 읽었어요.
도언아빠
16/02/03 10:11
수정 아이콘
크크 멋지기도 하고 그녀의 뜀박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저도 제 아내에게 비슷한 걸 시도했다가 개쪽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다행히 결혼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끔찍하고 오그라듭니다...난 왜 그랬을까...크크...당시 리차드막스면 먹어줬죠...나우앤포에버 아윌비 유어맨...우왕 가사 보세요...식은 땀이 흐릅니다
갓설현
16/02/03 12:52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장이 너무 좋네요~ 부럽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16/02/03 13:17
수정 아이콘
키야.. 마지막문장.. 너무 좋아요.
*alchemist*
16/02/03 15:45
수정 아이콘
트라우마 비스무레하게 생기면 싫어질수밖엔요...
비슷한 맥락으로 저는 삼성을 무지 싫어합니다...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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