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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16 11:06:41
Name 두괴즐
Subject [일반] [감상문] 폭스캐처: 존 듀폰에게서 나(기독교인)를 보다 (스포有)
*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너그러이 봐주세요.



+++++++


[감상문] 폭스캐처 (Foxcatcher, 2014), 베넷 밀러.
: 존 듀폰에게서 나를 보다 (고립된 인정욕이 향하는 곳)


<1>

친구와 함께 베넷 밀러 감독의 <폭스캐처>를 보았습니다. 훌륭한 영화였고, 탁월한 연기, 걸출한 연출, 영리한 각본 등에 대해 썰을 푸는 친구의 견해에 공감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고 친구는 뿌듯해했고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후련해 보였던 친구와 달리 저는 시간이 갈수록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보았던 무언가가 자꾸만 마음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폭스캐처>는 레슬링 선수인 마크 슐츠가 형 대신 초등교육 기관에 특강을 하러 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마크 슐츠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대단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심드렁하고 학교의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그에게 미국 굴지 재벌가의 상속인인 존 듀폰이 손을 내밉니다. 듀폰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만든 자신의 레슬링 팀, 즉 ‘폭스캐처’에 합류해 달라고 제안합니다.

마크 슐츠에게는 형이 있습니다. 마크도 대단한 레슬러이지만 형인 데이브 슐츠는 전설의 레전드입니다. 국민적 영웅의 반열에 올라있죠. 데이브는 일찍이 이혼을 한 부모님 때문에 동생의 보호자가 되었고 마크와 함께 힘겨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는 각별합니다. 마크 슐츠는 존 듀폰의 매력적인 제안을 형에게 알리지만, 형은 거절합니다. 그에겐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마크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응원해줍니다. 이렇게 그들은 떨어지게 됩니다.

듀폰은 독립전쟁의 전장 위에 자신의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미국이 애국심도 존경심도 스승도 없어 망조가 든 나라가 되었다고 개탄합니다. 금메달리스트임에도 그에 합당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던 마크 슐츠는 이에 공감합니다. 듀폰은 마크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마크는 듀폰을 자신의 코치이자 아버지로 따르며 열심히 훈련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선수권에서 결과물을 얻습니다. 그 대회에서 마크가 세계 챔피언에 오르지요.

하지만 듀폰과 마크의 아름다운 추억은 거기까지입니다. 이후 이들은 극단적으로 멀어집니다. 듀폰은 마크가 기대했던 아버지,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재벌가의 상속인일 뿐입니다. 자긍심은 높지만 주위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저 상속인으로서의 대우를 누릴 따름입니다. 자신이 개최한 레슬링 대회에서 상대방에게 돈을 쥐어준 덕분에 우승을 하고, 어머니의 인정을 받기 위해 레슬링 코치로서 연기하는 그를 위해 선수들은 적당히 맞춰줄 뿐입니다.

듀폰에게 마크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크는 팀을 이끌 리더로서 부족했고 듀폰은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어코 데이브를 영입해버립니다. 마크는 자신이 무시되었다고 느끼고, 형의 그늘에 다시 들어가게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마크는 방황하지만 인내하며 끝까지 사랑으로 품는 형을 통해 다시 재기하려 애씁니다. 데이브는 ‘폭스캐처’의 진정한 코치이자 롤모델이 됩니다. 그렇게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한 듀폰은 방송(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그 자리를 빼앗습니다. 데이브는 듀폰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성실히 하고 사랑의 자리에 머뭅니다. 듀폰은 완벽하게 연출된 방송을 관람한 뒤 데이브를 죽여 버립니다.




<2>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환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로크 루카치, <소설의 이론>


길이 되어 주던 하늘의 별은 땅으로 내려와 네온사인이 되었습니다. 네온사인이 된 빛은 도시를 서성이며 다양한 길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하늘의 별이 길의 지도가 되어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믿고 있다고, 그렇게 고백합니다.

<폭스캐처>에는 주요 인물이 셋 등장합니다. 그 중 우리는 누구를 닮았나요? 저에게 이 영화가 밟혔던 이유는 존 듀폰에게서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이 시대의 대안이자 진리를 품고 있는 존재로 여깁니다. 손쉽게 세계를 재단하고 평가하면서 자신의 믿음은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영광이 사라진 자리에서 의욕적으로 남 탓을 하고,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무언가를 부러워하면서, 여전히 하늘의 별을 믿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얼마 전 한 친구와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신앙이 있진 않지만 제가 믿는 예수님을 궁금해 하던 친구였습니다. 집회는 존 듀폰의 그것을 닮아 있었습니다. 이슬람을 대적하고, 성소수자(이들의 인권에 동조하는 정치인)를 대적하고, 북한(지도부)을, 이단을 대적하는데 몰두했습니다.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말했습니다. “기독교가 가진 훌륭한 가치가 많은 것 같은데, 왜 남 욕하는데 그렇게 목숨을 거는 거니?” 저는 악과 대결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이라며 열심히 변명했지만, 그럴수록 못난이가 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고 생명인데, 계속 엉뚱한데 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네온사인을 쫓아다니며 욕을 하는데 몰두하고, 막상 하늘의 별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어렸을 적엔 예수님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게 의아했습니다. 자신이 곧 신인데 뭐 저럴 필요까지 했던 것이죠.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 그만큼 힘겹게 다가왔던 것 아닐까요. 우리가 그럴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 신앙의 모델이 되어 준 것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이 증언하신 하나님의 의지, 진리에의 추구가 너무 어렵기에, 우리는 자꾸만 네온사인을 쫓아다니며 거기에 욕을 하는 것에서 자신의 신앙을 확인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저는 자꾸 엉뚱한 곳에 가서 믿음을 구제받으려 합니다. 존 듀폰을 애잔하게 쳐다보는 폭스캐처 선수들의 눈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세상의 시선을 느낍니다.

듀폰은 세상을 개탄하며 스스로 세계의 스승이자 길이 되고자 애썼습니다. 막대한 돈을 쓰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책을 출판하고, 탱크를 사고, 인재들을 영입하고, 방송을 찍습니다. 그 애씀은 완벽하게 연출된 자기 세계 속의 정신승리로 마쳐집니다. 영상화면에서 그는 길이요 생명입니다. 안락한 듀폰의 의자 밖에 현실이 있고, 거기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데이브 슐츠입니다. 데이브도 부조리한 세상을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고투하지만, 무엇보다 사랑의 자리에 있고자 합니다. 리더가 되고자 애쓰지 않았지만, 자신의 재능을 나눔으로써 리더가 됩니다. 데이브의 관심은 거창하고 추상적인 세계가 아닌, 내 곁의 바로 그 사람 자체입니다.

영화는 존 듀폰이 데이브를 살해하고 감옥에 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얼핏 보면 듀폰은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사이코같이 보입니다. 미친놈으로 규정하고 시원하게 욕을 하고 돌아서고 싶죠. 하지만 저는 그가 자꾸만 밟혔고 그래서 그의 파멸에 측은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듀폰이 뒤틀려가는 과정이 남 얘기 같지 않았던 것이죠. 존 듀폰이 나라면 그가 죽인, 내가 죽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데이브는 누구일까요. 네온사인의 곁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사랑의 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

“고립된 인정욕이 향하는 곳”

★★★★ (85)  
- 작품성: 39/40
- 대중성: 6/10
- 개인취향: 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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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시아
16/02/16 11:17
수정 아이콘
보는 내내 존듀폰도 굉장히 불쌍하고 마크 슐츠또한..
두 인물 모두 영화 내에서 정말 초라한 모습이 보이는데 마크슐츠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어대는 모습,
존듀폰은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혼자 보고 있는 모습.
체닝 테이텀, 스키브 카렐 두 배우가 연기해서 더 의외였고 굉장했던 것 같습니다.

두괴즐 님처럼 자신의 삶과 결부지어서 이야기하는 영화평 너무나 좋습니다 ^^
잘읽었습니다.
두괴즐
16/02/16 20:10
수정 아이콘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저의 글에서 슐츠가 많이 다뤄지진 않았지만, 그의 모습에서도 의미심장한 자극을 받게 하더군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라고나
16/02/16 12:21
수정 아이콘
뭔가 생각은 많은데 당장은 정말 잘 읽었다는 말 말고는 드릴 게 없습니다
두괴즐
16/02/16 20:12
수정 아이콘
넵. 감사합니다.
마스터충달
16/02/16 12:23
수정 아이콘
예수님이 신이 아니라 철학자로 취급받았다면 지금보다 이미지가 더 좋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비신앙인에게도 좋은 말씀이니까요. 전 신앙은 없지만 예수님 말씀은 정말 좋아합니다.

아마 존 듀폰은 누구에게나 슬프게 다가올겁니다. 누구나 존 듀폰에게서 자신을 볼거고요.(마크 빼고) 전 인정욕은 식욕이나 성욕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인정욕이 채워지지 않는 듀폰을 보며 인정욕을 채우지 못하는 자신이 보여 많이 씁쓸했습니다. 그나마 듀폰처럼 막나가지 않도록 마음의 브레이크가 되어주는 친구와 연인이 있어 다행입니다.
두괴즐
16/02/16 20:11
수정 아이콘
맞아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인정욕이 있고, 그건 인간 본연의 욕구겠죠.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또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 이런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smalltalk
16/02/16 13:12
수정 아이콘
영화 아직 못봤는데 글 읽고 나니 보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두괴즐
16/02/16 20:13
수정 아이콘
조금 지루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긴 하던데, 극에 몰입이 된다면 많은 걸 느끼게 하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추천해봅니다.
16/02/16 14:24
수정 아이콘
때때로 어느 한 장면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머리 속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저는 마굿간에서 말을 풀어 준 후의 듀폰의 뒷모습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네요.
두괴즐
16/02/16 20:14
수정 아이콘
맞아요.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었죠.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발라모굴리스
16/02/16 15:06
수정 아이콘
저는 듀폰의 세계가 완벽히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가 제공하는 빵 집 직장을 포기하기 싫어서 데이브를 일부러 배척하고 화풀이나 헤데다가 결국 그의 품에 주저 앉아 찔찔 거릴수밖에 없었던 마크에게 빙의가 되더군요
과거 내 모습 보는것 같아서 혼자 쪽팔려하며 영화 본 기억입니다
묵직한 바위가 가슴에 내려앉는 것 같았던 영화, 그에 걸맞는 훌륭한 리뷰 잘 봤습니다
두괴즐
16/02/16 20:15
수정 아이콘
그러셨군요.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라면, 지금은 그 때를 조금은 객관적 거리에서 관조할 수 있으신가 보군요. 멋집니다. 저는 저의 현재를 보게 되었는데. ㅠ.ㅠ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6/02/16 20:35
수정 아이콘
듀폰의 심리상태, 대체 왜? 에 관해서는 영화에 나오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어요.
그럼에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평도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두괴즐
16/02/16 21:49
수정 아이콘
친절한 영화는 아니니까요. 그 '왜?' 때문에 풍성해지는 지점도 있고.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6/02/17 00:47
수정 아이콘
저는 기독교인들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꺼려하고 배척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이런 내 속마음을 공개적인 게시판에서
표현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몰상식 한지 알지만 그만큼 두괴즐님이 쓰신 글에 느끼는 봐가 있어서..
무례함을 용서하세요.

그런데 예수님이 참 좋습니다. 아마 오지 않을 기회지만 기회가 된다면 예수님의 삶을 더 알고 싶습니다.
일생을 가난하고 핍박 받는 민중의 편에 계신 사랑의 모습,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고 말씀하신 현명한 모습,
아닌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용기의 모습, 거기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말씀하셨다고 알려진 마지막 말씀은
제 삶에 많은 생각을 더해 주십니다. 전 그 마지막 말씀에서 고뇌를 그리고 결국에 충만해진 믿음을 봤습니다.

듀폰의 비극은 인정 받고자 하는 인정욕구가 오롯히 어머니을 향한 것이고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러듯이 결국
어머니에게서는 완벽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지 못한 것에서 비극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어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라라라~
16/02/17 02:09
수정 아이콘
가장 궁금했던 건 그는 왜 레슬링을 택했을까 하는 겁니다. 승마나 골프같이 자신의 계급에 걸맞는 스포츠도 아니고 어머니가 상스럽다고 여긴 레슬링을 계속 했던 이유가 뭘까요. 강한 육체에 대한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 해소하려고 한걸까요. 어쨌든 거대한 부로 둘러싸인 허구의 세계.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 어린 아이의 세계속에서 사는 존 듀폰에게 레슬링은, 어른들의 그것을 흉내낼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어른들의 세계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지요. 자신이 바뀌는 것보단 자신이 성장하는 것보단 그게 훨씬 더 쉬운 방법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도 비슷한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성속에 살고, 거기서 나오는걸 두려워하니까요. 잊고 있었던 좋은 영화를 다시 기억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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