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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01 04:33:07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그 많은 '리뷰'들이 정말 '리뷰'일까?
※ 이 글은 영화 <곡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쓰는 사람들은 독자를 갖게 되고, 불명확하게 쓰는 사람들은 평론가를 갖게 된다."

  영화 <곡성>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곡성>의 이야기는 불명확하다. 혹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곡성>은 떡밥을 씹고, 뜯고, 맛보는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리뷰'가 쏟아졌다. 5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지만, 천만 관객 영화보다 많은 리뷰를 볼 수 있었다. 역시 불명확하게 쓰는 글은 평론가를 갖는다.

  그런데 그 많은 '리뷰'들이 정말 '리뷰'일까? 리뷰(review)는 비평(critique)보다는 깊이가 얕고, 즉각적인 감상 위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엄연히 평(評)의 한 갈래다.1) 따라서 리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아야 한다. 작품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그 가치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작품의 좋은 점은 무엇인지, 나쁜 점은 무엇인지. 즉,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을 담아야 한다. 하지만 <곡성>을 다룬 '리뷰' 중에는 <곡성>에 대한 판단을 담지 않은 것이 많았다. 대신에 줄거리에 관한 해석을 담았다. "무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외지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살굿의 대상은 누구인가?", "좀비의 정체는 무엇인가?" 등등의 이야기를 한다. 이를 리뷰라고 할 수 있을까? 평(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리뷰가 아니라 줄거리 해석, 떡밥 놀이, 숨은그림찾기라고 생각한다.2)

  물론 떡밥 놀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작품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다. 그러나 떡밥 놀이를 통해 <곡성>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나는 <곡성>이 갖는 예술적 가치로 두 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맥거핀과 장르 변주를 통해 클리셰와 장르 파괴를 넘나드는 현혹술이다. 다른 하나는 현혹술을 바탕으로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신의 공포다. 이러한 가치는 <곡성>이 갖는 모호함에서 비롯된다. 작품의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모호함이 장르적 쾌감으로 다가왔고, 인물과 전개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모호함이 불신의 공포를 낳았다. 그런데 리뷰라 쓰인 많은 글이 리뷰가 아닌 '줄거리 해석'이 되면서 <곡성>에서 모호함을 제거해버렸다. 명쾌한 해석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해 모호함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관객의 떡밥 놀이는 분명 작품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곡성>을 관람하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비난한다면 오만이고 똥부심에 불과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한 명 있긴 하다. 바로 감독 나홍진이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나 인터뷰를 통해 작품을 설명했다. 등장 인물의 정체나 행동 나아가 상징에 관하여 정답을 알려주었다. 감독 스스로 모호함의 가치를 깎아버린 것이다. 게다가 해석의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떡밥 놀이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대중은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기보다, 무엇이 맞냐 틀리냐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홍진이 못 박아 버려 아쉬웠던 상징으로 3번 우는 닭이 있다. 나홍진은 이것이 예수를 3번 부인한 베드로를 상징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 생각은 달랐다. 3번 우는 닭은 우리 민담에서도 자주 나온다. 구미호나 도깨비에게 홀렸다가 닭이 3번 울 때까지 버텨 귀신을 쫓아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토속 신앙을 바탕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와 찾아본 인터뷰는 베드로 이외의 다른 해석을 허락지 않았다.

  작품은 감독과 독자 사이의 소통이다. 그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과 새로운 창작이 태어난다. 텍스트는 살아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줄거리 해석은 제2 창작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양하고 그럴듯한 해석은 분명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곡성>은 수만 가지 "나만의 <곡성>"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나홍진의 발언은 해석에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는 선언을 했고, 관객은 맞냐 틀리냐를 따지게 되었다. 모호한 지점에 대해 자기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물어보는 글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당당하게 자기 꼴리는 데로 해석하라고 말하고 싶다. 관객은 주체적으로 작품과 마주해야 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내 기분과 감성을 표현해야 한다. (여기에 적절한 근거가 더해지면 리뷰가 되고, 그를 통해 작품의 의미와 반향을 고찰하면 비평이 된다) 나홍진의 발언은 그 주체성을 억압했다. <곡성>의 과열된 떡밥 놀이와 관련하여 유일하게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홍진이다.

  상반기 가장 뜨거운 한국영화로 떠오른 <곡성>. 그 열기가 조금 식어가는 지금, 우리가 물고 뜯고 맛보며 열광하는 동안 지나쳐버린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곡성>의 떡밥 논쟁을 보며 감상이 무엇인지, 비평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의 결론은 항상 같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이다. 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작품과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 관객은 주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막말로 작품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영화가 불친절하다 말해도 좋다. (같은 내용이라면 쉽게 쓸수록 좋은 글이다) 주관적인 감상에 적당한 핑계 근거만 더할 수 있다면 누구나 좋은 리뷰어가 될 수 있다. 눈치 보지 말고, 물어보지 말자. 내 감상은 내가 쓰는 거니깐.
  




1) 요즘에는 둘 사이에 별로 차이를 두지 않고 말한다. 굳이 차이를 두자면 리뷰는 독자 중심이고, 비평은 작가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리뷰가 감상 위주라면, 비평은 분석 위주다. 리뷰는 전체적인 판단, 예를 들면 별점 같은 평가를 한다. 하지만 비평은 별점이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그 안에서 추구할만한 가치를 뽑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가치가 있으면 별점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사실 둘을 엄밀하게 비교하는 것은 엄밀할 때만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2) https://pgr21.com./?b=8&n=65170 이 글을 '리뷰'가 아니라 '줄거리 해석'이라고 한 점에서 글쓴이의 내공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Written by 충달 http://headbomb.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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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형
16/06/01 08:58
수정 아이콘
에반게리온!!
마스터충달
16/06/01 09:02
수정 아이콘
에바에 흥분하는 걸 보니 아재가 맞으시군요. 역시 미사토가 짱이죠?
동네형
16/06/01 09:38
수정 아이콘
저 에바 안봤습니다. 대충의 스토리는 덕후들로부터 지겹게 세뇌되었지만...
오히려 에스카 플로네는 절반정도 본거 같네요
마스터충달
16/06/01 09:45
수정 아이콘
쳇. 동지인 줄 알았는데요(?)
[PS4]왕컵닭
16/06/01 15:41
수정 아이콘
미사토!!
Rorschach
16/06/01 09:08
수정 아이콘
곡성에 대해서 제가 느꼈던 부분이랑 상당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전 인터뷰 이전에 영화속의 결말부분에서도 나홍진 감독이 자신의 '정답'을 말하고있는 점이 참 아쉬웠습니다. 뒤집으면 다르게 보이는 정도를 넘어서 4방향 어디를 위로 해도 전부 다른 그림으로 보이도록 치밀하게 계산해서 잘 그린 그림을 2시간동안 관객들이 즐기면서 신기해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서는 마지막에 "사실 이 그림은 이 방향으로 놓고 보는게 맞아요." 라고 친절하게 알려준 것 같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본문에 말씀하신 것 처럼 인터뷰로 아예 명확하게 다시한번 말을 했고요.
마스터충달
16/06/01 09:10
수정 아이콘
그나마 결말에 나오는 악마라는 판타지 요소는 장르 속이기라는 분명한 성과가 있어서 봐줄만 한데, 인터뷰에서 여러 요소를 빼박처리 한 점은 정말 못내 아쉽습니다.
Rorschach
16/06/01 09:18
수정 아이콘
아 제가 말한 결말 부분은 일광이 자동차에서 사진상자를 떨어뜨린 부분을 말 한 것입니다. 완전한 스포라서 안썼었는데 본문에 이미 스포라고 쓰셨네요. 그 장면 하나가 수많은 갈래로 대단했던 굿 장면을 포함해서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만들어진 여러 장면들의 "정답"을 그냥 쉬운 방향으로 드러내버렸다고 보거든요.

이과감성(?)으로 설명을 하자면 미지수 5개에 방정식 네 개 던져줘서 해답을 고민하게 만들다가 후반부 와서 마지막 방정식 하나를 더 던져준게 아니라 그냥 "사실 내가 의도한 답은 이거였어요. 재밌죠?" 하는 느낌을 받아서 말이죠...
오히려 악마 나오는 장면은 그 장면 역시 생각할 수 있는 부부이 많아서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뭐 이러나 저러나 제일 큰 문제는 인터뷰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스터충달
16/06/01 09:22
수정 아이콘
아, 그 장면 함께 본 사람들 모두 "너무 노골적이었어..."라고 했었습니다. 방정식 하나 더 던져준 것도 저는 뭐 그럭저럭 괜찮은데 그 표현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라 촌스러웠던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세인트
16/06/01 09:21
수정 아이콘
좋은 '리뷰' 입니다. 저도 줄거리 해석과 숨은 그림 찾기에 너무 집중해서 정작 영화 자체의 재미를 놓고 있었네요.
새삼 다시 생각해보면 저런 줄거리 해석 같은 걸 차치하고서라도 저에게는 정말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낚시도, 연출도.

그리고 줄거리 해석도 사실 이터니티님 글과 나홍진 감독 인터뷰 정도를 제외하면 많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감독 인터뷰가 답안지를 던져줘버렸다 라는 점에서 아쉽다는 부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충달님 글은 재밌게 그러면서 잘 읽혀지네요.
마스터충달
16/06/01 09:28
수정 아이콘
이터니티님 글이 2차 창작물로 손색없을 정도로 해석을 훌륭하게 하셔서, 좀 무서웠달까요? 읽는 순간 다른 가능성이 확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심지어 "어? 이건 좀 빈틈 아닌가?" 했던 것도 대댓글로 이야기 하면서 착착 맞아 떨어져 버려가지고...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 토론도 많이 했었어요. 토론할 때는 그런 숨은그림찾기를 급이 낮다고 봤는데, 혼자 생각해보니 그렇게 보는 건 오만이 아닌가 싶었고, 이런 결론을 쓰게 되었습니다. 모든 원흉을 나홍진에게 돌리기로... 크크크

글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안군-
16/06/01 09:22
수정 아이콘
아무래도 나홍진 감독은 불편하고 어려운 영화만 만드는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게 바람직했는지는...
마스터충달
16/06/01 09:32
수정 아이콘
저는 나홍진 감독 속내가 궁금해요. 관객이 '떡밥 찾기'에 집중할 것이란 예상을 했는지 안 했는지가 참 궁금합니다. 인터뷰에서 보이는 성격은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 같기는 한데, 또 그런 모습을 보면서 뒤에서 낄낄 거릴만한 사람 같기도 해서....
바밥밥바
16/06/01 10:18
수정 아이콘
사실 감독이 정답을 말해도 사람들의 해석은 다양하게 되어도 상관없겠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문학들이 대부분 생계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이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은 없듯이 말이죠)
그냥 정답을 좋아하고 토론을 배척하는 정서가 지금의 분위기를 만든거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의 곡성 리뷰들만 봐도 대부분은 떡밥 번역본이 차지하고 있는걸 보면 말이죠.
마스터충달
16/06/01 11:04
수정 아이콘
노답의 미덕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16/06/01 11:01
수정 아이콘
처음에는 영화 자체도 좋았지만 떡밥거리를 씹고 즐기는 맛까지 있어서 더 좋았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지금은 영화에 대한 포커스가 온전히 그쪽으로 쏠린 것 같아서 아쉽긴 합니다.

거기에 나홍진 감독 책임이 없을 수 없어보이네요. 의도적으로 논란을 줄이려고 너무 디테일하게 설명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에반게리온은 떡밥으로 예술이 된 작품이라고 봅니다. 저같이 설정 놀음 좋아하는 사람에겐 너무 좋은 작품이죠.
그리고 에바는 아스카 아닌가요? 크
마스터충달
16/06/01 11:07
수정 아이콘
<에바>와 <곡성>의 차이가 있다면, <에바>는 떡밥의 모호함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게 주제와 연결된다면, <곡성>은 모호함 자체가 주제와 연결됩니다. 그래서 떡밥 놀이로 쏠리는 게 더 아쉬워요.
페스티
16/06/01 11:22
수정 아이콘
안그래도 떡밥이 많아서 머리아픈데 결말까지 선악구분이 모호했다면 끔찍했을 것 같은데요
마스터충달
16/06/01 11:29
수정 아이콘
저는 결말의 선악구분은 별로 문제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도리어 장르로 뒤통수 치기를 제대로 구현한 게 명쾌한 결말의 역할이라 작품에 꼭 필요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를 끌어내기 위한 전개의 모호함마저 모두 해석하려 하는 것이죠.
신문안사요
16/06/01 11:28
수정 아이콘
평론가를 믿지마! 부X영화를 믿어! 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이 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평론이나 리뷰나 줄거리 해석이나 음악의 장르처럼 결국 글쓴이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감독도 이 영화는 코미디 가족영화에요 라고도 했지요.
그리고 이렇게 떡밥을 던져놓기만 하는 영화가 이외로 언급이 오래 되는걸 볼때 인터뷰에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야기 하는건 개개인의 속은 시원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별로 안좋을거 같단 생각이에요. 안노처럼 신비주의를 해야...
마스터충달
16/06/01 11:33
수정 아이콘
사실 나름 인지도 있는 평론가들은 줄거리 해석을 하진 않았습니다. 이름값에 걸맞게 작품의 가치를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죠. 기사등으로 나오는 리뷰나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리뷰들이 줄거리 해석이 많았습니다. 이름 있는 평론가는 이름값을 하긴 하는 것 같아요.
Samothrace
16/06/01 17:33
수정 아이콘
크리스토퍼 놀란도 인셉션을 두고 결말을 못박아버리는 듯한 인터뷰를 한 걸로 기억합니다. 그 때도 좀 실망스럽고 아쉬웠는데 말이죠.. 인셉션은 열린 결말이었으면 진짜로 좋았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스터충달
16/06/01 23:31
수정 아이콘
떡밥 놀이 좀 할까 했는데 "하지마!"라고 했죠 크크크크
바람숲
16/06/02 08:43
수정 아이콘
닭이 세번 우는 것과 베드로는 정말 불필요한 확답이었습니다.
저만해도 기독교와 거리가 멀다보니 민담이 먼저 떠올랐는데요. 무명의 영화 속 이미지와도 더 맞는 거 같고요. 우리나라민담이 3번 좋아하잖아요? 가위바위보도 세번은 해야죠.
마스터충달
16/06/02 09:11
수정 아이콘
그쵸? 저도 민담이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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