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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15 11:58:41
Name Neanderthal
Subject [일반] 메이웨더, 파퀴아오, 골로프킨님들 감사합니다...
저는 현재 영어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제 두 학기 째고요. 학교에서 영어회화 같은 교양과목들을 강의하고 있기에 아무래도 이론적으로 영어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기도 하고 아무튼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학생들에 대한 예의이지 않을까 싶어서 지난 학기부터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아는 게 없는 상태입니다. 학부는 공대출신이고 영어는 통번역과 테솔쪽으로 석사까지는 공부 했지만 본격적인 학문으로서 영어를 공부한 적은 없었기에 모든 것이 다 난관이고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 교수님이 학회에서 한번 발표를 해 보라고 (강)권하시더군요. 아니, 아는 게 있어야 발표를 하지 말이 좋아 박사과정이지 학부생들만큼이나 아는 게 있을까 싶은 제 입장에서 무슨 발표인가 싶었지만 차마 교수님께 그렇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아무 주제나 좋으니까 한번 논문들도 찾아보고 해서 발표 자료도 준비해서 발표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여기 저기 논문들도 찾아서 읽어보고 나름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도 돌리고 해서 대학생들의 영어에 관한 태도를 주제로 발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발표 자료를 만들면서도 정말 이런 허접한 내용으로 발표를 해도 될까? 싶었지만 이제 와서 그만 둘 수도 없고 정말 발표 당일에 감기몸살이라도 걸려서 부득이하게 못나왔다고 하고 어디 숨고만 싶었습니다.

분과 발표순서도 공교롭게 제가 제일 먼저더군요. 스크린에 ppt 띄우고 여러 대학에서 오신 교수님들 앞에서 발표를 하려니 정말...죽을 맛이더군요...말은 또 왜 그렇게 버벅거리게 되는지...--;; 발표가 코로 진행이 되는 지, 입으로 진행이 되는지도 모르고 끝이 나고 드디어 각오하고 있던 토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말 신랄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것으로 보고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있는데 의외(?)로 여러 교수님들이 여러 가지 사항들을 부드럽게 지적해 주셨습니다. 솔직히 "이런 걸 발표 자료라고 만들었어요?"라는 소리까지 들을 각오였는데 오히려 처음 하는 거라 힘들 수 있다면서 앞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거나 논문을 위한 기초 자료를 수집할 때 이런 저런 식으로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까지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무사히 발표가 끝나고 가만 생각해 보니 복싱으로 치자면 교수님들은 메이웨더, 파퀴아오, 골로프킨들이었고 저는 이제 겨우 복싱 체육관 한 달 다닌 초짜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상황을 비유해 보자면 그분들 앞에서 제가 링위에 올라가서 "자! 원투 스트레이트는 이렇게 치는 겁니다. 어깨에 힘 빼고 가볍게..하나! 둘! 하나! 둘!..."이런 식으로 시연을 한 거 아니겠습니까? 링 밖에서 볼 때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그나마 폼이라도 정확했다면 모르겠는데 엉덩이는 뒤로 빼고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팔만 앞으로 뻗어댄 것이겠지요...--;; 당장 링위로 올라와서 묵직한 훅으로 한 방에 저를 KO시킬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제가 하는 게 가여워서 가볍게 봐주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날의 메이웨더, 파퀴아오, 골로프킨 선생님들 감사합니다...다음엔 정말 깝치더라도 뭘 조금이라도 알고 깝치겠습니다...거듭 죄송합니다...ㅠㅠ...



자네, 제대로 된 원,투를 맛보고 싶나?...아니, 됐네...뭘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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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야기
16/06/15 12:16
수정 아이콘
음.. 그러니까 결론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근데 저기 세명 중 한 명한테 먼저 맞으면..;;;
아무쪼록 박사 과정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16/06/15 12:47
수정 아이콘
[중복으로 추천하실 수 없습니다]

음 제가 지나치게 감동했었나보네요.

근데 그거 아세요? 자비는 한 번 한정 판매입니다?
Neanderthal
16/06/15 13:32
수정 아이콘
다음 번엔 꼭 감기에 걸리도록...--;;;
당근은 실컷 먹었으니 저도 양심이란 게 있다면 다음 번엔 채찍을 맞아야죠...--;;
상자하나
16/06/15 12:52
수정 아이콘
학회에서 발표하면 교수님들이 다들 천사가 됩니다. 다른 집 자식이 발표하는데 거기에서 신랄하게 깔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긴 하죠. 하지만 발표 준비 할때 지도교수님이 진심 마이클타이슨 혹은 약먹은두더지가 됩니다. 저는 원래도 멘탈이 안좋았지만 그 때 발표 준비 미팅은 끝나고 눈물이 났던걸로 기억이 나요. 얼마나 디테일하게 까던지 45분짜리 발표 슬라이드에다가 2시간 반을 까더군요. 그래도 네안데르탈님은 준비를 잘하셨나봐요. 못하셨으면 아마 발표날 숨기도 전에 땅에 뭍여계셨을꺼에요 ㅠ
엘룬연금술사
16/06/15 13:14
수정 아이콘
상관없는 내용이기는 한데 타이슨은 'Mike' 타이슨...
상자하나
16/06/16 02:43
수정 아이콘
앗 감사합니다. 마이크 타이슨
Neanderthal
16/06/15 13:33
수정 아이콘
사실 이 학회는 제가 다니는 대학에서 주도하는 거라...좀 유리한 입장이긴 했습니다...교수님도 그냥 발표라는 걸 경험해 보란 취지여서 그렇게 내용을 자세히 봐 주신 건 아니구요...--;;
16/06/15 13:34
수정 아이콘
근데 교수들 사이에도 급이 있어서, 학계의 거두급 교수 입장에서는 대학원생이나 신출내기 교수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학부시절 젊은 교수님들 발표세션에 몇번 가본 적이 있는데, 노교수님들이 발표하던 신입 조교수를 정말 무섭게 구워버리더라구요.

가장 기억에 남는 평이 "A교수는 뭘 엄청나게 모르고 있는데 그 모르는 것이 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야."
Neanderthal
16/06/15 13:36
수정 아이콘
음...동물의 왕국이네요...--;;
세인트
16/06/15 13:59
수정 아이콘
저도 학계는 아니지만 학부생 시절 교수님 시다바리(?) 역할로 학회 갔던 적이 있어서 느꼈습니다.
저희 학교 저희 단과대와 과를 만드신 거나 마찬가지이신, 학회장을 진짜 오래하셨던 교수님이 계신데(그당시 갓 은퇴하신 때였습니다),
그 노교수님 오시면 다른 교수님들 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굽신굽신 하는 그런 분이셨는데
왜소하고 깡마른 분이셨는데 막상 입 여시기 시작하시니 롤랜드 고릴라로 변하는 걸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막심 콘체비치
16/06/15 15:20
수정 아이콘
위대한 수학자인 겔판트도 학회에서 동료 제자들을 비평할 때 아주 신랄한 학자였죠

겔판트: 이 주제에 대해서 몇년 연구 했지

카자코프: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6년 정도요

겔판트: 그러면 자네는 6년이나 걸려고 그는 6개월 걸렸군 그가 자네보다 얼마나 나은지 알겠나?
세인트
16/06/15 15:34
수정 아이콘
으어 실제로 면전에서 저렇게 들으면 덜덜덜
Around30
16/06/15 19:14
수정 아이콘
네덜란드님 평소 글쓰시는 클라스에 비추어볼때 아무리 경험부족이셨더라도 평타 이상은 치셨으리라 예상합니다.
Philologist
16/06/15 19:56
수정 아이콘
길 가다 조교한테 붙잡혀서 해야되는 발표 마감시간이 4시간 남았네요....으아아악...
Neanderthal
16/06/16 09:47
수정 아이콘
발표 잘 하셨죠?...:-)
Philologist
16/06/16 09:55
수정 아이콘
발표는 다음주입니다 흐흐. 이제 바야흐로 학회의 계절이네요. 당장 내일부터 언어학회 시작... 학회 많이 다니세요~ 재미있어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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