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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1/12 01:47:30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우맹이 골계(滑稽)로 초장왕을 꾸짖다




잘못을 범한 군주 앞에서 옳은 것을 위해 정직한 말을 하는 행위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의 황제였던 태종에겐 위징이라는 대단히 성가신 신하가 있었는데, 위징은 태종이 무슨 일을 벌이려고만 하면 나서서 반대를 했다. 거듭된 직언에 시달린 황제는 불쌍하게도 살까지 빠졌고 볼은 홀쭉해졌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태종은 급기야 위징을 죽이려고 까지 하였으나, 결국은 다 그만 두었다. 



그 모든 직언이 나라를 위한 충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렇게 항복하듯 말했다.



"짐은 위징으로 인해 살이 빠지지만, 천하는 위징으로 인해 살이 찔것이다."



허나 모든 황제가 태종처럼 관대한것은 아니다. 존귀한 군주와 모시는 신하 사이라 해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듣기 싫은 말은 아무리 그것이 좋은 말이라 해도 소용 없는 법이다.



  이러한 때에 실로 필요한것이 바로 풍자와 재치다. 때때로 이런 말재주들은 차라리 예술의 경지에 가깝기도 하는데, 몇몇 농신(弄臣)들은 우스갯소리를 통해 어려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여 다른 사람들을 탄복하게 만들었다. 제나라의 학자 순우 곤(淳于髡), 진나라의 광대 우전, 후당의 배우 경신마(敬新磨) 등이 그러한 사람들이었다. 지금 소개할 이야기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멀고도 먼 옛날, 보통 춘추전국이라고 이야기 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초(楚)나라는 강한 나라였지만 그 왕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어떤 사람들은 무엄하게도 껄껄 소리높여 웃기까지 하였는데, 그 하는 모양새라는게 참고 보기엔 너무 재미있었던 탓이다.



  초나라의 왕 장왕(莊王)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것은 바로 말이었다. 기골이 장대한 사나이들은 전쟁터에서 말을 타고 무용을 뽐내는 시기니, 말을 사랑하는것 정도는 기이한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 정도에 있었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말을 사랑한다고 비단 옷을 입히지는 않는다. 그런데 초장왕은 그렇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오색찬란한 장식이 된 방에서 말을 키웠으며, 음식은 항상 깨끗한 대추를 먹게 하였다. 하루에도 말을 들여다보며 아프지는 않은지, 어디 긁힌곳은 없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자연히 나라의 일은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가 군주의 유일한 취미를 반대할 수 있겠는가? 유일한것은 자신들의 목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말이 죽어버렸다. 애시당초 말이라는것은 넒은 들판은 시원스레 달리며 싱싱한 풀을 뜯어먹어야 제 힘을 발휘하는 녀석이다. 호사스런 비단 옷 따위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보다도 심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초장왕의 슬픔은 대단했는데,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도 않으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실로 중증이라 할만했다. 초장왕에게는 딱한 일이었음엔 분명하나, 며칠동안 심사숙고해서 나온 이야기는 모두들 또다시 포복절도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이야기였다.



"장례를 준비하라. 하늘에 제사를 지낼 것이다."



군왕의 말을 들은 신하들은 모두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고대에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것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다. 하지만 이미 얼마전에 경건하게 의식을 치뤘고 다음 제사날까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돌아가신 선왕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날짜는 너무 뜬금 없는 때. 결국 신하 중에 한명이 조심스레 연유를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전하. 실로 외람되오나……무슨 제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무슨 제사라니, 얼마전에 죽은 말을 위해 제사를 올리려는 것이다. 모두들 장례를 준비하라."



신하들은 이 군왕이 무슨 재미있는 농담을 하나 싶어서 무엄하게도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지만,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어보였다. 잠시 후에야 늙은 대신이 "어……" 하는 기묘한 신음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하오나 전하. 신들은 짐승을 위해 장례를 올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전례가 없다면 지금 만들면 되질 않은가?"



"그동안 마땅한 전례가 없던것은, 그러한 일이 합당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데 갑자기 금수에게 장례를 치르게 하는 법을 마련한다면 백성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 말은 과인의 가족과 같았네. 가족이 죽었는데 장례를 치르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단 말인가?"



이번에는 꽤 여러명이 신음소리를 냈다. 내용도 "으어……" 하는 식으로 조금 더 늘어났고 말이다. 다른 대신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전하의 마음이 정 그러하시다면, 적당한 자리를 찾아 묻어주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장례는 불가하옵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오(吳)나라나 월(越)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는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마 크게 비웃을 것입니다."



"그 말이 지극히 옳사옵니다. 전하."



지극히 옳은 말임에야 두 번 확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해도 군주가 다르게 생각하면 실로 다르게 되는 법. 말이 죽자 눈물까지 흘렸던 초장왕이다. 그런데 이 대신들은 자신의 마음을 헤하려 주기는 커녕 시덥잖은 이야기나 하면서 반대만 하고 있다. 갑자기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른 초장왕은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렀다.



"시끄럽다! 그대들은 오나라와 월나라에서 짐을 비웃을것을 걱정하는데, 그들의 비웃음은 두렵고 과인의 말은 두렵지 않는다는 것인가?"



물론 그럴 리는 없다. 조정 대신들이란 본래 눈칫밥은 기가 막힌 족속들이므로, 모두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짜기라도 한것처럼 똑같이 말하였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러하면 되었다. 과인은 말을 대부(大夫)의 예의로 장례를 치를 것이다. 말을 염하여 입관할 관곽을 만들고, 장례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그 목소리가 하도 엄한지라 모든 신하들은 '예, 예' 하고 고개만 숙이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물론 이 희대의 장례식 이야기는 금세 소문이 퍼져 얼마 안가 모든 초나라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고대 중국에 연극과 음악, 춤에 능한 예능인을 일컫는 말로 "우(優)" 라는 것이 있다. 곧 '우맹'은 맹씨 성을 가진 재주꾼이라는 소리다. 이 맹씨는 이 소식을 듣더니 곧바로 달려서 초장왕을 만나러 왔다. 마침 초장왕은 한참 장례 준비에 여념이 없던 상황이었다. 대전 앞에 도착한 우맹은 다짜고짜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큰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괴이하고 이상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초장왕은 무슨 곡절인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대는 어찌하여 우는가?"



우맹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죽은 말을 위해서 우는 것입니다."



"말을 위하여? 어째서?"



"우리 초나라로 말할것 같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 모두가 두려워 하는 강대국일진데, 무슨 일인들 못한단 말입니까? 그 말은 대왕께서 가장 아끼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선 말을 대부의 예의로 장례를 치르려 하시니, 이는 너무 가볍사옵니다. 저는 군주의 예의로 장례하시기를 주청 드립니다."



초장왕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기분이 좋아졌다. 저 조정의 대신들은 자기의 말에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데, 이 맹가는 눈치빠르게도 제 말을 순순히 따르려고 하질 않은가.



"그대는 과인을 잘 아는구만. 군주의 예로 장례를 치른다면 짐이 어찌해야 하겠는가?"



자리에서 일어난 우맹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전하께선 말을 곽관에 넣으려고 하시는데, 이는 도리가 아닌 일로 마땅히 문양을 새겨 넣은 옥관을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묘혈을 파는 일은 전쟁터에서 사지를 넘나들며 적과 싸우느라 고생스러웠던 병사들에게 시켜야 격이 맞겠지요. 흙을 져 나르게 하는 일은 늙은 노인과 약한 아이들에게 시키면 제격이겠군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일을 알리고 사람을 데려오십시오. 제나라와 조나라의 사자가 앞에서 길을 이끌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사자는 뒤에서 호위케 하면 그 모습이 실로 장관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웃으면서 듣고 있던 초장왕은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입이 떡 벌어졌다. 초장왕도 바보가 아닌데, 자신이 말을 높이 여겨서 장례를 치르려고는 하였지만 이러한 조치는 너무 과한 것이었다. 이건 좀 아닌것 같다고 초장왕이 말을 꺼내려 할떄, 우맹은 그 말을 자르듯이 계속 이어 말하였다.



"아니, 아무래도 그 정도는……"



"이러한 격은 있어야지요. 사직에서는 평소 저희가 하늘과 땅, 조상에게 제사 드릴 때 쓰는 소와 양을 옮겨와 재물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만호 크기의 땅을 그 말에게 내려주어 식읍으로 삼으시는것또한 잊지 말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모든 제후들인 대왕께서 사람은 가벼이 여기고 말은 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될테니 말입니다."



여기까지 말을 듣던 초장왕은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이렇게도 황당한 잘못을 벌였단 말인가? 그는 급기야 조금 휘청거렸다.



"아니, 전하!"



주위에 있던 시종이 놀라서 장왕을 부축했지만 그는 그 손을 뿌리쳤다. 이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초장왕은 조금 더듬거리면서 우맹에게 물었다.



"그, 그렇다면 과인이 어찌해야 하겠소?"



우맹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은 사람의 법도로, 짐승은 짐승의 법도로 처리하시면 됩니다. 왕께서는 이리 하십시오. 우선 땅을 팝니다. 그 후엔 부뚜막을 만들고, 다시 그 위에 커다란 솥을 관으로 삼으십시오. 그 곳을 관으로 삼아 말을 염하시고 생강, 대추, 맵쌀을 재물로 삼아 넣고 큰 불에 끓이며 푹 삶으시도록 하십시다. 시간이 길어질테니 그 기회에 말의 명복을 빌어주는것도 좋겠지요. 마지막으로 사람의 뱃속에 매장하면 모든 장례의 절차는 끝날 것입니다."



장왕은 우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주방장! 주방장을 불러라!"



그날 밤 왕실에서 일하는 궁녀들과 호위병들은 뜻하지 않게 푹 고인 말 요리를 먹게 되어 간만에 호강을 누렸다. 장례 이야기가 두번 다시 나오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초나라의 재상은 손숙오(孫叔敖)라는 사람이었는데, 정치를 잘해 왕과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재물을 탐하지 않아 그의 집안은 명망에도 불구하고 넉넉하진 못했다. 나이가 들어 죽게 된 손숙오는 아들을 불러 말했다.



"청렴결백한 것은 나에게는 자랑이나, 그 때문에 너에게 줄 재물은 하나도 없구나. 아마도 내가 죽으면 너는 어렵게 살아갈 것 같다. 만약 그런다면 우맹을 찾아가거라. 손숙오의 아들이 왔다고 말한다면 그가 일을 해결해줄 것이다."



몇년 뒤 손숙오의 아들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아들은 땔깜을 팔아서 하루하루를 먹고 살았는데, 우연히 길에서 우맹을 만나게 되었다. 우맹은 깜짝 놀랐다.



"자네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겐가?"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가세가 기울었습니다. 참, 아버지께서는 일이 이렇게 되고 나면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사는게 바빠 잊고 말았습니다."



"그 분에게는 모든 초나라 사람들이 빚을 지고 있네. 당연히 도와야지."



손숙오가 죽은지 몇년이 지났다. 지금 손숙오의 아들이 곤란하게 되었다고 말을 해도, 초장왕의 입장에선 "그래? 그런 일도 있었군." 하고 넘어갈 공산이 컸다. 그래도 어느정도 도와주긴 하겠지만, 우맹은 아주 크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잠시 생각하던 우맹은 그 아들의 두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분간 자네와 내가 같이 살아야겠으니, 불편해도 참도록 하게나."



그 말을 꺼낸 우맹은 진짜로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다 쓰러져가는 손숙오의 집에 오더니,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떠나려고 하지를 않았다. 손숙오의 아들은 영문은 몰랐지만 심심하던 차에 이야기 상대가 생겼다고 여기면서 좋아했다. 둘이 나누는 이야기는 대게 살아생전 손숙오의 행실과 동작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보통 느릿느릿하면서도 여유롭게 걸으셨지요. 그 걸음걸이가 그립습니다."



"그 분은 소리높여서 웃으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제가 재밌는 말을 해도 즐거운 표정을 지으시기만 했지요."



우맹은 이런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렇게 일년이 지나자, 우맹은 생전의 손숙오가 어떻게 걸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행동은 어떻게 하였는지 일거수일투족 기억을 더듬어 완전히 흉내낼수가 있게 되었다. 그는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말했다.



"당분간 자네를 떠나 며칠동안 일을 좀 봐야겠네. 하지만 그 사이에 멀리 떠나지는 말고! 아마도 금세 왕께서 그대를 부르실 테니 말이야."



그 날은 초장왕이 성대하게 연회를 열었던 날이었다. 수많은 빈객들이 초대되었고, 분위기는 고조되어 모두들 웃고 마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이러한 때, 손숙오의 옷을 입은 우맹은 천천히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응?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듯 싶은데……"



"손숙오! 손숙오 대인이 아닌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거의 소스라치게 놀란 초장왕은 입을 떡 하고 벌리더니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으로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아, 아니… 공이 어떻게 이 자리에 있단 말이오?"



"일단 술 한잔 올리겠나이다, 전하."



우맹은 가까이 다가와서 초장왕에게 술을 올렸다. 그때서야 초장왕은 이 사람이 손숙오가 아니라 우맹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연회는 다시 시작됬다.



"이것 참, 깜짝 놀랐소이다."



이제 두려움이 사라지고 보니, 우맹은 생전의 손숙오와 정말 똑같았다. 그의 걸음걸이, 그의 말투, 그의 얼굴에서 모두 손숙오가 연상되었다. 술잔을 기울이던 초장왕은 문득 예전의 생각이 나 아련해졌다.



'짐이 어리석어 정사를 잘 다루질 못할때, 이 나라를 이끌어간 사람이 손숙오다. 그러면서도 욕심은 적어 사사로운 문제를 전혀 잃으키질 않았지. 그러한 신하가 더 있으면 좋으련만! 손숙오가 진실로 그립구나.'



초장왕은 우맹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대의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손숙오 경이 생각나는구려. 경이 그와 이토록 닮았으니, 어떻소. 경께서 재상이 되어 주시겠소?"



물론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 우맹 역시 그것을 알고 싱긋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글쎄요, 전하. 일단 제 아내와 의논해 보고 사흘 쯤 뒤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좋소이다. 그럼 사흘 뒤에 대답해 주는 것이오?"



그렇게 연회는 즐겁게 막을 내렸다. 사흘 뒤 우맹은 궁정에 찾아오자 초장왕은 농담이 생각나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경의 아내는 뭐라고 대답하였소?"



"소신은 꽤 끌리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반대 때문에 안될 듯 합니다. 소신의 아내는 초나라의 재상 따윈 도저히 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아니, 어째서 그렇소이까?"



"손숙오는 초나라의 재상으로 지내는동안 누구보다 충성스럽고 누구보다 청렴했으며 누구보다 광명정대 하였으니 그보다 재상 일을 잘한 사람은 없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손숙오가 죽자, 그의 아들은 발붙일 곳도 없고 가난하여 날마다 땔감을 떼어다가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처량하고 비참한 일입니다. 손숙오같은 그런 재상이 되느니, 차라리 남의 앞에서 재주나 부리는 일이 더 낫다고 부인은 말하더군요."



초장왕은 그때서야 손숙오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이 한 번도 그의 생활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도 떠올랐다.



'이 얼마나 큰 실수인가? 지금 우맹은 나를 꾸짖고 있는 것이다.'



벌떡 일어난 장왕은 황급히 우맹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였다.



"과인이 어리석었소이다. 실로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소인이었소."



"과분하옵니다. 정녕 전하께서 사죄를 하시려거든, 그것은 저같은 하찮은 재주꾼이 아니라 손숙오 같은 대인에게 하시는것이 맞을 것입니다."



"물론이오."



손숙오의 아들은 곧바로 궁중으로 불려왔다. 그 아들의 손을 맞잡은 초장왕은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넒은 땅을 봉지로 내려주고 제사에 필요한 물품도 모두 나라에서 공급해주록 조치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왕의 은혜를 칭송하였다.



혼란스러운 시대, 모든 군웅들은 저마다 패권을 손에 넣기 위하여 사투를 거듭하였지만 잠시나마 그 자리에 다다른것은 오직 다섯명 뿐이었다. 제나라의 환공, 진나라의 문공, 오나라의 왕 합려, 월나라의 군주 구천. 이러한 패자들을 사람들은 춘추오패라고 부르며 찬탄하였다.



즉위한 후에 3년간이나 주색을 즐기며 말을 제사지내는 일이나 걱정하던 초장왕은 어느새 당당한 영웅 중 한명이 되어 수많은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 위엄과 관대함에 모든 나라의 칭송을 받아 당당한 춘추오패의 일원 중 한명이 될 수 있었다.



  그 모두가 우맹의 몇마디 익살 때문이었다고 하면, 물론 너무나도 지나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군주의 충성스런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신하들은 많다. 군주의 허물을 지적하는 강하게 신하들도 적지가 않았다. 



허나 군주에게 깨달음을 주어, 그 스스로 발전하게 만드는 신하들은 결코 많지 않다. 골계(滑稽)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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優孟者, 故楚之樂人也. 長八尺, 多辯, 常以談笑諷諫. 楚荘王之時, 有所愛馬, 衣以文繍, 置之華屋之下, 席以露床, 啗以棗脯. 馬病肥死, 使群臣喪之, 欲以棺槨大夫禮葬之. 左右爭之, 以為不可. 王下令曰:「有敢以馬諫者, 罪至死.」優孟聞之, 入殿門. 仰天大哭. 王驚而問其故. 優孟曰:「馬者王之所愛也, 以楚國堂堂之大, 何求不得, 而以大夫禮葬之, 薄, 請以人君禮葬之.」王曰:「何如?」対曰:「臣請以彫玉為棺, 文梓為槨, 楩楓予章為題湊, 発甲卒為穿壙, 老弱負土, 斉趙陪位於前, 韓魏翼衛其後, 廟食太牢, 奉以萬戸之邑. 諸侯聞之, 皆知大王賎人而貴馬也.」王曰:「寡人之過一至此乎! 為之柰何?」優孟曰:「請為大王六畜葬之. 以壟灶為槨, 銅歴為棺, 齎以薑棗, 薦以木蘭, 祭以糧稲, 衣以火光, 葬之於人腹腸.」於是王乃使以馬屬太官, 無令天下久聞也.


楚相孫叔敖知其賢人也, 善待之. 病且死, 屬其子曰:「我死, 汝必貧困. 若往見優孟, 言我孫叔敖之子也.」居數年, 其子窮困負薪, 逢優孟, 與言曰:「我, 孫叔敖子也. 父且死時, 屬我貧困往見優孟.」優孟曰:「若無遠有所之.」即為孫叔敖衣冠, 抵掌談語. 歳餘, 像孫叔敖, 楚王及左右不能別也. 荘王置酒, 優孟前為壽. 荘王大驚, 以為孫叔敖複生也, 欲以為相. 優孟曰:「請帰與婦計之, 三日而為相.」荘王許之. 三日後, 優孟複來. 王曰:「婦言謂何?」孟曰:「婦言慎無為, 楚相不足為也. 如孫叔敖之為楚相, 盡忠為廉以治楚, 楚王得以霸. 今死, 其子無立錐之地, 貧困負薪以自飲食. 必如孫叔敖, 不如自殺.」因歌曰:「山居耕田苦, 難以得食. 起而為吏, 身貪鄙者餘財, 不顧恥辱. 身死家室富, 又恐受賕枉法, 為姦觸大罪, 身死而家滅. 貪吏安可為也! 念為廉吏, 奉法守職, 竟死不敢為非. 廉吏安可為也! 楚相孫叔敖持廉至死, 方今妻子窮困負薪而食, 不足為也!」於是荘王謝優孟, 乃召孫叔敖子, 封之寢丘四百戸, 以奉其祀. 後十世不絶. 此知可以言時矣.




우맹(優孟)은 원래 초나라의 악인(樂人)으로8척의 키에 언변이 좋았다. 항상 미소를 머금으며 왕에게 풍간했다. 초장왕 때의 일이다. 장왕이 사랑하는 말에게 무늬가 있는 비단 옷을 입히고 화려하게 장식한 집에 키우면서 장막이 없는 침대에서 쉬게 하고 대추와 말린 육포를 먹였다.


이윽고 말이 지나치게 살이 쪄 병으로 죽자 장왕은 군신들에게 복상(服喪)을 하라 명하고 속널과 겉널을 만들어 대부에 해당하는 예로써 장례를 치르려고 했다. 왕의 측근에서 모시던 신하들이 서로 다투어 불가하다고 간하자 왕이 칙령을 내려 말했다.


「감히 말로 인해 간한 자가 있다면 죄를 물어 죽이겠다.」


우맹이 듣고 궁궐의 문으로 들어가 하늘을 쳐다보며 크게 통곡했다. 왕이 놀라 그 연유를 묻자 우맹이 대답했다.


「왕께서 말을 평소에 사랑했고 초나라는 또한 당당한 대국이온데 어찌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대부의 예로 치르는 장례는 너무 박합니다. 청컨대 군주의 예로 장례를 치르게 하십시오.」


「어떻게 치르라는 말인가?」


「원컨대 옥에다 조각해서 속널을 만들고 화려한 무늬를 새긴 가래나무로 겉널을 짜십시오. 단풍나무 느릅나무, 녹나무로 횡대를 만드십시오. 또한 군사를 동원하여 묘혈을 파게 하고 노약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봉분을 쌓게 하십시오. 제(齊)와 조(趙)나라의 사신들을 열을 지어 앞에 세우고 한(韓)과 위(魏)의 사신들을 그 뒤에 세워 호위하게 하십시오. 사당을 지어 태뢰(太牢)로써 제사를 지내고 만호(萬戶)의 읍에 봉하십시오. 제후들이 들으면 모두 대왕께서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과인의 잘못이 이렇듯 크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청컨대 대왕을 위해 육축(六畜) 예로 장사지내십시오. 부뚜막을 바깥널로 삼고, 구리로 만든 솥을 속널로 삼아, 생강과 대추로 맛을 내고, 목란을 향료로 써서 비린내를 없앤 후에 쌀을 넣어 제사밥을 만들고 불을 떼서 의복으로 입혀 사람들의 내장 속에 장사지내십시오.」


그래서 왕은 그 즉시 말의 시체를 태관(太官)에 주고 천하 사람들이 그 일을 오래 동안 알지 못하게 했다. 우맹이 현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초나라의 재상 손숙오(孫叔敖)는 평소에 그를 잘 대해주었다. 노년에 병이 들어 죽게 된 손숙오가 그의 아들에게 당부했다.


「내가 죽으면 너는 틀림없이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맹이 찾아와 만나면 단지 손숙오의 아들이라고만 말하라.」


그리고 몇 년 후에 그의 아들은 곤공한 처지가 되어 땔나무를 짊어지고 가다가 우맹을 만나게 되었다. 아들이 우맹을 보고 말했다.


「나는 손숙오의 아들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내가 가난하게 되면 우맹을 찾아가라로 당부하셨습니다.」


「당신은 멀리가지 말고 기다리시오.」


그리고는 즉시 의관을 손숙오처럼 꾸미고 행동거지와 말투를 흉내 내는 연습을 했다. 이렇게 하기를 일 년 남짓하게 되자 우맹의 모습과 언행은 손숙오와 비슷해서 장왕과 측근들도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장왕이 주연을 베풀자 우맹이 앞으로 나가 축수했다. 우맹이 모습을 본 장왕이 크게 놀라 손숙오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고 여겨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고 했다. 우맹이 말했다.


「청컨대 집에 가서 부인에게 의견을 물어봐야 겠습니다. 3일만 말미를 주시면 돌아와 재상의 자리에 앉겠습니다.」


장왕이 허락하자 약속대로 3일 후에 돌아온 우맹을 보고 장왕이 물었다.


「부인이 뭐라고 말했는가?」


「부인이 삼가 재상 자시를 맡지 말라고 하면서 ‘초나라의 재상은 할 짓이 못됩니다. 손숙와같은 사람이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청렴결백하게 초나라를 다스려 초왕을 패자로 만들었으나 지금 죽고 없으니 그의 아들은 송곳하나 찌를 수 있는 한 뼘의 땅뙈기도 없을 정도로 가난하여 땔나무나 지고 다니며 팔아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기어코 손숙오처럼 된다면 내가 자살하고 말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산골에 살며 고생해서 밭을 갈아도 끼니를 때우기도 힘들어 몸을 일으켜 벼슬아치가 되었으나 탐욕스럽고 비루한 자는 재물을 남기고 부끄러운 줄 모른다. 몸은 죽어 집은 부유해지나 그래도 두려운건 뇌물을 받고 법을 굽혀 부정을 저질러 큰 죄를 범해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일이다.


탐관오리들이 무슨 일을 할 있겠는가! 청백리가 되어 법을 받들고 맡은 바 직책에 충실하며 죽을 때가지 감히 부정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청백리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초나라 재상 손숙오는 죽을 때까지 청렴했으나 이제는 처자가 굶주려 땔나무를 팔아 끼니를 때운다. 청렴한 벼슬아치 살아서 무엇하나!"




그래서 초장왕이 우맹에게 사과하고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 침구(寢丘의 민호4백 호에 봉해 그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그 후 손숙오의 후사는10세가 지나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실로 우맹이 말해야 할 시기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 사기 골계 열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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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건 앤슬랜드
16/11/12 02:57
수정 아이콘
장왕시절엔 삼진이 분리되고 전국시대가 되기 이전시기 아니던가요? 사기에서도 조위한의 사자를 언급하다니! (엄근진)
백순겸
16/11/12 04:19
수정 아이콘
그 당시는 진나라의 제후국으로써 존재했겠지요. 애초에 그 시작이 진나라의 유력한 귀족 집단이었으니까요.
cadenza79
16/11/13 16:33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진(晉)의 신하일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정작 진(晉) 자체가 언급이 안 되었다는 점, 그 때는 이른바 진(晉) 내부의 육경조차 발호하기 전이어서 공가의 권력이 신하들을 여전히 누르고 있었다는 점, 3진만 언급되고 나머지 3개 유력 가문은 언급도 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후대에 창작되거나, 실존인물이라 하더라도 윤색한 사람이 미처 교차검증을 못 해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는 게 더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cadenza79
16/11/13 16:29
수정 아이콘
이거 제대로 된 지적이네요. 우맹의 실존 여부가 의문이네요.
파핀폐인
16/11/12 03:56
수정 아이콘
굉장히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백순겸
16/11/12 04:24
수정 아이콘
춘추오패 중에서 장왕은 뭔가 남다른 귀여움?이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아니면 꼬x을 잘 부린다고 해야할까요. 하나같이 비범한 춘추오패의 일원이면서 이렇게 인간적인 일화가 적잖은 이도 드물죠.
아점화한틱
16/11/12 08:06
수정 아이콘
재밌는 글이군요. 덕분에 아침부터 통쾌한 글에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일은
16/11/12 08:25
수정 아이콘
그래서 최태민이 육영수 목소리를... 웁읍
강동원
16/11/12 09:57
수정 아이콘
!!!!!!!!!
저 신경쓰여요
16/11/12 08:39
수정 아이콘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종교계 인사들의 목소리를 듣겠답시고 자기 사람들을 불러다가 듣기 좋은 말만 듣는 모 꼭두각시가 이 글을 읽어야 하는데...
흰배딱따구리
16/11/12 08:5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Neanderthal
16/11/12 09:03
수정 아이콘
우병우, 문고리 삼인방에게 우맹이 되라는 건 택도 없는 미션이었던거군요...--;;
보통블빠
16/11/12 09:27
수정 아이콘
21세기 반도국의 무당과 선녀들의 추종세력은 말짱한 나라도 거덜낼 십상시 일당들이라서 참...
해피바스
16/11/12 09:45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습니다. 초장왕이 각성(?)한 계기가 큰 새가 어쩌고저쩌고~ 이 얘기로 기억하는데, 동일한 왕 맞나요?
옛날에도 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네요
보통블빠
16/11/12 11:44
수정 아이콘
그 새는 날지 않았으니 일단 날면 높은 하늘까지 이를 것이고(차조불비즉이 일비충천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울지 않았으니 일단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불명즉이 일명경인不鳴卽已 一鳴驚人)." 경의 뜻은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시오.
맞습니다.
칼라미티
16/11/12 12:25
수정 아이콘
이게 참 폭풍간지죠...크크
花樣年華
16/11/12 10:44
수정 아이콘
말하는 우맹도 대단하지만
들으면 깨닫고 행실을 고치는 초장왕도 대단하네요.
고치는 이가 있으니 말하는 이가 모이죠.
불량사용자
16/11/12 11:08
수정 아이콘
우리 대통령이랑은 관계가 없겠네요...
골계가 아니라 대놓고 말해도 못알아들으시니.
-안군-
16/11/12 18:38
수정 아이콘
이 시대에도 우맹과 같은 이들은 있었으나 권력자들이 그들의 입을 막고 무대에서 쫓아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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