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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1/03 13:53:44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고대 중국 문화와 사상의 중심지,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수도 임치


춘추전국시대 제나라는 당대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국가였다고 할만 합니다. 주나라가 건국할 당시부터 그 유명한 '태공망' 강자아가 이 곳에 봉해져 나라를 만들었고, 전국시대에 들어서 반역으로 성씨가 바뀌기는 했으나, 국가 자체가 찢어진 '삼진' 과는 달리 기본적인 골격은 쭉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제나라의 수도 임치는 소위 '중화' 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주요 영역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으로써, 지도를 보면 동쪽에 치우쳐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래서 중원 지역의 피비린내 나는 전란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가까운 바다 등에서 소금을 비교적 풍부하게 공급 받을 수 있고, 교역에도 유리합니다. '춘추오패' 중 첫번째로 꼽히는 '제환공' 이 '관중' 과 함께 일찍부터 세력을 떨치는 등 중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지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오래된걸로 따지자면 연나라나 초나라 같은 나라도 오래 되었고, 특히 초나라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아주 강력한 나라로 군림했긴 하지만, 여러모로 변방의 강자 느낌이 강하다면 제나라는 그 힘이 융성했을때나 혹은 내부 사정으로 어지로웠을때나 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항상 포커스를 받는 '메이저' 같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되고, 유서깊고,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있고, 많이 왕래하는...



그런 최첨단 선진지역, 중화의 중심지인 임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因東說齊宣王曰

(소진이) 동쪽 제(齊) 선왕(宣王)에게 이렇게 유세했다.


齊南有泰山,東有琅邪,西有淸河,北有勃海, 此所謂四塞之國也

“제나라는 남쪽으로 태산(泰山)이, 동쪽으로 낭야산(琅琊山)이, 서쪽으로 청하(淸河)가, 북쪽으로 발해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사방이 요새인 나라입니다.


齊地方二千餘裏,帶甲數十萬,粟如丘山, 三軍之良,五家之兵, 進如鋒矢, 戰如雷霆,解如風雨

제의 땅은 사방 2천 리가 넘고 갑옷을 입은 병사가 수십 만에 식량은 산더미입니다. 삼군(三軍)의 정예병과 오도(五都)의 병사는 진격할 때는 화살 같고, 전투에서는 우레와도 같고, 물러날 때는 비바람 같습니다.


卽有軍役,未嘗倍泰山,絶淸河,涉勃海也.

전쟁이 터지더라도 (적이) 태산을 넘거나 청하를 끊어버리거나 발해를 건넌 적이 없습니다.


臨菑之中七萬戶, 臣竊度, 不下戶三男子

임치(臨菑)에 7만 호가 있는데, 제가 가만히 헤아려보니, 하호(下戶)에만도 남자가 세 명은 됩니다


三七二十一萬 不待發於遠縣, 而臨菑之卒固已二十一萬矣

삼칠은 이십일만이니, 먼 현에서 징발하지 않아도 임치의 병사만 아마 21만인 셈입니다.










사기 소진 열전에서 소진이 제나라의 왕을 만나 유세 하는 부분 입니다. 소진은 여기서 제나라의 수도 임치의 인구가 총 7만호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戶에는 상호上戶와 하호下戶가 있는데 하호에만도 남자가 3명은 된다고 말합니다. 요즘이야 거진 분가를 하니 아버지, 아들 정도면 대부분은 끝이지만 당시는 대가족제이기 때문에 한 집에 남자 3명 정도는 그렇게 많이 잡은 수치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삼칠이 이십일이기 때문에, 제나라는 지방의 병력을 동원할 것도 없이 수도 임치만으로도 21만 대군은 동워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가 아무리 농업인구를 전력으로 총동원 하던 전국시대라고 해도 수도의 남자를 한명도 빠짐없이 군사로 전환 시킨다는건 무리이기 때문에 이건 변설가의 말장난과 비슷하다고 봐야겠지만, 아무튼 병력에 관한 부분은 그렇다쳐도 남자만 21만에 달한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남자 숫자만 21만이라면 여자 숫자를 그냥 비슷하게 또이또이로만 계산해도 40~50만은 되고, 저기서 말하는 '병사가 될 수 있는 남자 3명' 이 노약자를 포함시킨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빼놓았다고 하면 60~70만까지도 되는 셈입니다.




소진은 임치의 평상시 임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 합니다.








臨菑甚富而實, 其民 無不吹竽 鼓瑟彈琴, 鬥雞走狗,六博蹋鞠者, 

임치는 매우 부유하여 피리를 불고 비파와 거문고를 타며 축을 두드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닭싸움과 개 경주를 즐기고, 육박과 축국을 즐깁니다. 


臨菑之塗,車轂擊,人肩摩,連衽成帷,舉袂成幕

임치의 거리는, 수레바퀴가 서로 부딪치고 사람들의 어깨가 서로 부대끼며, 옷을 벗어 펼치거나 소매를 들어올리면 장막이 될 정도입니다. 



揮汗成雨, 家殷人足, 志高氣揚

(그 거리에 모인 사람들의) 흘리는 땀을 뿌린다면 비가 될 정도일 겁니다. 집집마다 풍족하고 넉넉하니 (다들) 의지와 기세가 대단합니다.








거리의 사람들의 땀을 모아서 뿌린다면 비가 된다, 운운은 역시 야부리를 잘 털어서 천하를 흔드는 변설가들 특유의 과장이 심하게 들어갔다고 봐야겠지만, 여러모로 번화하고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문화 생활 역시 융성했다는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발언은 <안자춘추晏子春秋> 에서는 소진이 아니라 안영이 한 말로 나오는데 안자춘추는 안영이 죽고 한참 뒤에야 나왔기 때문에... 



저기서 보여지는 임치에서의 여러 유흥거리에 관한 부분을 읽고 다시 보면 꽤 인상적인 다른 구절들이 사기에서 보여지는데,









吾聞楚之鉄剣利而倡優拙. 

(진의 소왕이 말하기를) "내가 듣기로, 초나라의 철검은 실로 날카롭고, 창우(倡優)는 서툴다고 한다.



夫鉄剣利則士勇, 倡優拙則思慮遠

"검이 날카롭다면 그 병사들은 용감할 것이고, 창우가 서툴다면 그만큼 생각이 깊지 않겠는가?"







소왕은 초나라가 검을 만드는 기술이 아주 발달해있고 반대로 창우, 즉 무대를 펼치는 배우는 반대로 실력이 서툴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군사 문제에 집중하고 이런 유흥거리가 덜 발달한 초나라는 여러모로 실질강건한 성향이 있을테니 위험하지 않겠는가, 걱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초나라의 배우들이 서툴다면, 반대로 "이 나라의 배우들은 여러모로 솜씨가 좋지." 라는 평을 받는 나라가 있을테고, 그 나라 배우들의 실력이 여러모로 뛰어나다면 자연스레 그런 배우들이 실력을 펼칠 무대가 많은, 즉 이런 유흥이 발달한 나라가 있을 겁니다. 유흥이 발달했다고 하면 아무래도 여러모로 번화했기 때문일 것이구요. 아마도 제나라 임치의 경우가 여기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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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구수, 경제와 유흥으로도 번화한 임치는 동시에 '학문의 성지' 이기도 했습니다. 온갖 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 지독한 난세에 직면해 내놓은 해답들, 그런 사상들이 가장 사람이 많고 번화한 임치로 흘러들어왔고, 제나라에서도 국가 차원으로 이를 지원 했습니다.



당시에는 춘추전국 시대의 수 많은 명장, 유세객, 기인들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각국이 인재를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펼치던 시기였는데, 제나라에서는 한술 더 떠 아예 미리 저택을 잔뜩 만들어놓고 사방의 인재들을 초빙했습니다. 그 숫자가 최소 수백에서 수천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모인 곳이 임치 성에 있는 13개의 성문 중 서문 방향에 위치하는 '직문' 에 있었기에, '직하(稷下)의 학사들' 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실무에 종사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로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국가에서의 지원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모여서 토론하고 논의할 뿐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경' 에 버금가는 '상대부', 지금으로 치면 '정부 차관급 대우' 를 받았습니다. 실무에 종사하지 않았기에 무책임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실무에 얾매이지 않았기에 학문의 자유를 담보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것은 유례가 없는 광경이었을 겁니다. 어느 특정 학파의 학궁이 아니었기 때문에, 온갖 사상가들이 여기에 몰려들어왔습니다. 제나라에서 학자를 대우한다는 말을 듣고 중국 전역의 온갖 지식인들은 이 직하에 모여 급여를 받으며 자유로이 토론을 했습니다.




여기에 신도, 전병(田騈), 접여(接予), 환연(環淵)과 같은 도가 사상가들이 있었으며, 타고난 익살꾼이었던 순우곤, 음양가였던 추연, 유가 중에서도 성악설로 이름이 높은 순자가 있었고, 송견(宋銒)과 윤문(尹文) 등 묵가, 명가(名家), 법가의 인물들까지 중국이 낳은 위대한 철학과 사상이 직하에 몰려들었다. 그들의 논쟁을 세상에서는 바로,
  


백가쟁명(百家爭鳴)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참 그것은 틀림없이 굉장한 광경이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자백가라 불리우는 수 많은 경향을 지닌 학자들이 한 곳에 몰려들어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주장하고, 논박하고, 논평을 합니다. 학궁의 한 편에서 거친 목소리로 법가의 술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인치를 내세우는 유가 사상가가 비유를 통해 이를 논박하러 나섭니다. 저마다 '옳다!' 라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 라고 내뱉는 수 많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젊은 학자가 목소리를 높이면, 지팡이를 하나 짊고 나선 늙은 노장 사상가가 이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러다가도 다른 3자가 끼어들며, 사람들은 저마다 찬성과 반대를 표시합니다.




중국에서 정립된 여러 사상이 곳곳에 전래되어 영향을 끼쳤고, 수천년에 걸쳐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매우 깊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직하에서의 논쟁은 여러모로 동아시아 문명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은, 그럼 이런 논쟁이 펼쳐지던 직하에서 가장 위세를 떨치던 학문이 무엇일까 하는 점인데, 바로 '도가' 였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도가가 주류였고 여기에 공격이 들어가는 형태였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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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荀子)




직하에 소속되었던 사상가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바로 순자 입니다. 순자는 그 자신만 따지더라도 대학자라 불릴 법하지만, <순자>를 통해 우리는 지금은 학통이 완전히 단절되어 전해지지 않는 여러 학문과 사상을 살필 수 있습니다. 비록 단편적이기는 해도 순자에는 그런 내용이 꽤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왜 순자가 그런 내용을 남겼냐면,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논평하고 비판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랬을텐데, 그런 순자가 자신의 사상과 충돌하는 여러 학문들을 접하고 그들과 논쟁했던 것도 직하에 있었던 경험이 컸을 겁니다. 이렇게 보면, 그런게 논의와 충돌로 인한 기록등이 없었다면 그런 사상의 파편마저도 접하기 더욱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여담으로, 직하가 실무와 상관이 없고 독립적인 자유를 가진다고 해도, 거대조직인 이상 이를 대표해서 관리하고 정부 조직과 상의, 논의해야할 일이 있었을텐데, 그런 직하의 대표인 좨주(祭酒)에 3번이나 임명 되었던 사람이 순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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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당시 제나라에 있던 수 많은 기라성 같은 학자, 사상가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인물은 직하의 학사들이 아닌, 바로 맹자 입니다. 맹자는 본래가 단호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왕의 스승을 자처하는 인물이었기에 직하의 학사들과 같이 엮이는 건 스스로도 불쾌하게 생각햇을테고, 무엇보다도 



'문지기부터 야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해진 직무가 있어 급여를 받는다. 직무도 없으면서도 위로부터 받는 것은 불공이다.'



라며, 일하지도 않고 직무도 없는 주제에 봉급은 꼬박꼬박 타먹는 것은 인생을 진지하게 여기는 태도가 아니라는 입장이었기에 그런 자리를 내준다고 해도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나라 선왕은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서 맹자의 사상 자체는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자를 스스로 내치거나 박대하지 않고 그를 훌륭한 지식인으로서 존중 했습니다. 맹자를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세출의 사상가로 이름 남게 한 그 유명한 말, 곧



"임금이 크게 잘못을 하면 간하고, 여러 번 간하여도 듣지 않는다면, 그 임금을 바꿉니다. (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則易位)"



이 말을 면전에서 듣고도, 즉 왕 앞에서 "왕이 형편 없으면 갈아치워버려도 된다." 는 말을 하는걸 듣고도, 노기가 올라 얼굴빛이 변하긴 했지만(王勃然變乎色) 그래도 화를 내며 욕을 하거나 물리적으로 제제하지 않았고, 때문에 왕 앞에서 왕을 갈아버려도 된다는 말을 해도 무방한 이러한 학문의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훗날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친 <맹자>라는 저서의 탄생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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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치가 아무튼 그렇게 당대에 사람이 많고 부유하고 학문도 발달했다는 건 알겠는데, 실제로는 어땠을까? 소진의 말을 따르면 인구수가 40~60만에 달하는 도시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진의 말일 뿐이지 제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인구조사 같은게 남아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변설가인 소진의 말 역시 외교적인 과장이 아예 없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따라서 저 말만 가지고 단정하는 것도 위험한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임치성의 경우는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존하는 임치성의 성벽은 7km 정도 입니다. 



일본의 고고학자인 세키노 다케시(關野雄)는 이를 바탕으로 연구하여 당대의 임치성이 어느정도 였을지 보고를 내놓았는데, 이에 따르면 현재 남아있는 유적은 당대의 3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고, 원래의 전체 길이는 20km에 달한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큰 성벽인 중국 남경 성벽의 길이가 34km(현존 25km)이고,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길이가 18.6km 정도 입니다. 제나라가 있던 전국시대는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이라는 정믈 생각하면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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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아
18/11/03 14:13
수정 아이콘
창천항로에서 저 직하학사를 패러디 한 부분이 나오는데 진짜 여러모로 굉장 했을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환공 이래로 최강국의 반열에서 오래도록 있었던 국가이니 정말 중화의 중심지로 손색이 없었을 것 같네요.
18/11/03 14:29
수정 아이콘
악의장군 출똥!
18/11/03 14:43
수정 아이콘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몇년전에 쓰신 이븐바투타 여행기는 아직도 생각날때마다 보네요.
설탕가루인형형
18/11/03 15:0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모리건 앤슬랜드
18/11/03 15:02
수정 아이콘
변설가란 집단이 군주 마음을 딸랑딸랑하게 하는 스킬이 있어야 함은 자명하지만, 또한 세력의 흐름과 역학관계를 정확히 읽어내야 했지요. 되도않는 소리를 내뱉는 떠버리들이 내쳐지는 장면들도 많은만큼 소진씩이나 되는 인물이 운운하는 7만호 20만장정이 단순히 행복회로나 제나라 국뽕을 고취시리기 위함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세세적인 수치 관련해서는 동 시기를 기록한 다른 문헌들과의 교차검증또한 필요하겠지만요) 오히려 저는 저런 대화에서 가호당 3인씩이나 징발하는것을 지극히 당연히 여기는데서 오는 폭력성이라던가, 저 20만을 통솔할 부사관, 장교역할을 할 전업 군인들은 그것대로 상당한 숫자가 필요했을거라는 생각도 들구요(아마 공경대부계층의 사병들이 이런 역할을 했갰죠). 괜히 전국시대라는 말이 붙은게 아닌것같습니다.
18/11/03 15:22
수정 아이콘
전국 칠웅 가운데서도 춘추시대부터 변함없이 한 수도만을 계속 유지한 나라는 제가 유일하다시피 하죠. 그만큼 임치의 위치가 당시 기준으로는 도읍으로서 완벽했다고 봐야 할 테고요. 동시에 저런 부동의 왕도를 유지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는 재정을 확보하게 해 소금의 위대함도 새삼 느끼게 되네요.

그리고 그런 강대국을 한큐에 말아먹은 제민왕의 위엄이 참....
닉네임을바꾸다
18/11/03 15:45
수정 아이콘
어그로를 어떻게 끌었길래 5개국이 연합을 해서 박살내려 간거지...그 나중에 초강대국 진하고 싸울때도 잘 못합치던거 같았는데...
18/11/03 18:33
수정 아이콘
심지어 마지막 왕 제왕 건은 6국이 차례로 무너지면 본인 차례란거 인지도 안하고 가만히 냅두다가 망했..
심지어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싸움 한번 안하고 항복했고 그 결과 초갓집에서 굶어죽어버린..(..)
신불해
18/11/03 20:34
수정 아이콘
똑같이 진나라에 맞설 저력이 있는 전국시대 강대국인 초나라도 그렇고 제나라도 그렇고, 뭔가 자기들이 가진 저력의 반도 못 내보고 허망하게 망해버린 느낌이 강하죠. 진나라에서 가장 두려워 하던게 초-제 연합이었는데 장의에게 농락 당해서 초나라가 제나라와의 동맹을 끊어버리는 것도 그렇고..
조말론
18/11/03 15:44
수정 아이콘
임치에서 제자백가가 번성?했었군요 몰랐네요

머릿속에서 막연하게만 매칭이 되는 고대 그리스의 소플아 및 소피스트 시대와 춘추전국 중국의 공맹순 및 제자백가가 시대도 대강 비슷하고 양 세계의 철학의 뿌리를 만든게 신기하네요
18/11/03 16:46
수정 아이콘
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국가의 존망이 걸려있어 가혹할 정도의 제민지배가 오히려 후대보다 발달한 시대였죠. 그야말로 토탈워가 실현된 시대라 완전 허구의 뻥은 아닐 겁니다.
Lord Be Goja
18/11/03 20:21
수정 아이콘
실무에 종사하지 않고도 높은 대우를 받던 사람들은 위나라말-서진시대에도 있었죠.
연구하던 학문과 학풍이 상이했을뿐...
18/11/03 20:55
수정 아이콘
직하학파들 사상 자체가 다 영향 받은 부분이 있어요 도가가 주류라고 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가 느낌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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