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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좋아서 병원 침상에 앉아 식사용 판떼기 위에 서피스를 올려놓고 피지알에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사고가 난 다음날,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몸이 많이 안 좋다는 걸 느꼈습니다. 병원 예약 시간이 되어서 일단 진료를 보았죠.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하네요. 하지만 목, 어깨, 허리, 엉치 등등이 여전히 쑤시고 결리더라고요. 그래서 의사선생님 아파요(ㅠㅠ)를 시전했는데 어찌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하더군요. 아플 수도 있고, 필요하면 입원을 할 수도 있고, 물리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고...... 묘하게 모든 문장에 조동사 may를 넣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튼 그 병원은 회사 근처에 있어서 다니기가 별로 안 좋았기에 집 근처 병원으로 옮기기로 합니다.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마침 집 인근에 무슨 자동차사고 전문 한방병원이라는 게 있다고 나오더라고요. 버스를 타고 그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 뭐랄까.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건물 두 개 층을 다 쓰는데 불을 꺼 놓아서 을씨년스럽고, 그 너른 공간에 접수보는 간호사 한 사람만 앉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 외에는 간호사가 아예 없더군요. 간호사가 원장을 찾아 한참을 헤매더니 어디선가 발견해서 데려왔습니다. 원장실로 들어갔는데 어둑한 방 안에 구식 가스난로 하나가 불타고 있는 음침한 공간이었습니다. 목 어깨 등 옆구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별다른 설명도 없이 치료 들어간다며 물리치료실로 안내합니다.
물리치료실도 침상이 열 개쯤 되는데 물론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기 누워 있다가 잠들면 누가 장기 떼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으스스하더라고요. 한쪽 구석, 유일하게 형광등이 켜진 곳으로 안내받아 잠깐의 추나요법+물리치료+부황+침 세트를 시전받습니다. 치료를 받고 나오는데 어혈을 풀어준다는 이상한 한약을 한아름 안겨줍니다. 이미 내심 내렸던 결론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여긴 아무래도 너무 수상쩍어서 안되겠다고요.
괜히 이상한 곳을 갔었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인근의 제대로 된 큰 병원으로 왔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응급실 접수하고 대충 병세를 설명하니 입원해서 며칠 경과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알겠다고 하고, 수속을 밟은 후 병실로 올라왔습니다. 아내에게 연락하니 퇴근하고 와서 속옷이랑 세면도구 같은 걸 가져다 주었습니다. 귀한 주말인데 같이 놀러가지는 못할망정 혼자 병원에서 죽치고 앉아 육아를 아내에게 떠넘긴 셈이라, 마음이 영 불편하더군요. 하지만 아내 역시 환자복 입고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저를 보니 영 마음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다 아내는 딸아이를 보러 집으로 돌아갔고 저는 홀로 남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는 아니네요. 4인 병실인데 저까지 포함해서 환자 두 명이 쓰는지라 상당히 아늑한 편입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아저씨는 저와 마찬가지로 교통사고 환자인데, 간호사가 들어올 때마다 꼭 한마디씩 던지면서 작업을 거는 근성 넘치는 사람입니다. 가끔씩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상대 보험사 직원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죽치고 있는 거다, 수틀리면 한방병원 가서 추나요법 3개월 끊을 거다, 뭐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안 아프다니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첫날에는 스르륵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잠들기 직전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군요.
글 쓸 거리가 생겨서 잘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