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공개에 앞서 어제 막 제한 개봉된 나이브스 아웃 2 글래스 어니언을 보고 왔습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이여서 그런지 관객들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그럭저럭 여유롭게 보고 올 수 있었네요.
1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나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탐정 블랑이 등장하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데, 이전 작에 흘렸던 떡밥을 회수한다거나 1편의 사건을 아주 일부라도 다루는 부분이 없으니 1편을 안본 분도 부담 없이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나이브스 아웃 1편을 아주 재밌게 보았고 또 고평가 하는 편이라 꽤나 기대하고 갔는데 아쉽게도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기만의 색이 있는 좋은 미스테리 영화이긴 합니다. 강렬한 재미가 있지는 않지만 보는 내내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고 고전적인 추리물 클리셰들이 1편 못지 않게 잘 배치되어 활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1편의 인상깊었던 부분들이 대부분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었는데 좋은 쪽으로만 작용한 것 같지는 않아요.
1편의 경우 표면적인 가해자를 미리 공개하고, 그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또 다른 주인공인 탐정으로부터 범행을 숨겨나가는, 고전적인 추리물을 뒤틀어 놓은 플롯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죠.
2편은 백만장자가 소유한 절해고도에서 펼쳐지는 살인 미스테리 파티에 친구들과 탐정이 초대 받아 간다는 굉장히 고전적인 추리물 시놉시스가 바탕이 됩니다.
이 부분이야 어느 정도는 취향에 따르는 것이고 1편도 추리물의 클리셰들을 잘 활용한 작품이었죠.
그런데 1편의 경우 주동 인물이 가해자고,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탐정 블랑이 사실상 반동 인물처럼 묘사되어서 주동 인물의 범행이 들킬까?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스릴러 성향이 강해 추리물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빠르게 몰입시키고 서스펜스 물로서의 긴장감을 잘 끌어낸 반면
2편의 경우 그러한 서스펜스를 완전히 배제하고 영화 내내 코믹 릴리프와 유머 코드를 삽입해서 코미디로서의 성격을 강화한 모양새입니다. 과장 섞어 거의 모든 장면에 농담이 나오고 중요 시퀀스나 클라이막스에서도 조크가 빠지지 않습니다.
1편도 블랙코미디로서 기능하는 작품인 만큼 위트가 모자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만, 2편은 거의 코미디 미스테리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많은 유머가 통하고 작품에도 어울리긴 하지만 펀치라인이 항상 먹히는 것도 아닌데 조금 남발되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유머가 과하게 삽입되었다는 점에서 (유머의 질을 떠나) 토르 러브 앤 썬더가 떠오르더라구요.
1편이 서스펜스와 진상에 도달하고자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강렬한 호기심이 원동력이었다면 2편은 유머를 즐기면서 이야기 매듭이 풀어져나가는 과정을 느긋하게 지켜보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캐릭터의 경우 1편만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1편의 경우 주인공인 마르타가 보는 이의 호감을 끌어내는 매력적이고 능동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희생자 할런 트롬비를 비롯해 조연/악당 연할을 하는 트롬비 일가의 캐릭터들도 명암이 있는 좋은 캐릭터들이었습니다. 마르타의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구토를 한다는 설정을 캐릭터를 살리는데도, 추리 기믹으로 쓰이는데도 효과적이었습니다.
한편 2편의 등장인물들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나오긴 하지만 모두 기능적으로만 존재하고 서사가 없어 얄팍한 느낌을 줍니다. 일론 머스크를 패러디한 백만장자와 흥행 스트리머, 과학자, 패션 인플루언서 등등...해당 캐릭터 전형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나마 탐정 블랑이 주연으로 나서서 1편보다도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좋은 포인트가 되어주기는 합니다.
그런데 탐정 블랑도 장르가 미스테리/서스펜스에서 미스테리/코미디물로 바뀐 탓인가 1편의 그 빈틈없고 카리스마 넘치던 인물이 얼빠지고 허
당끼 강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번뜩이는 추리력은 뛰어나게 묘사됩니다만...그 인간미가 나쁘게만 느껴지진 않지만 1편과의 갭이 좀 심해서 동일 인물이 맞나 싶기도 할 정도예요. 어느 정도는 복선으로 작용되기도 하죠.
여러모로 캐릭터 빌드가 아쉬워요.
또 2편은 1편만큼 추리물로서 기능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여기서부터는 플롯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2시간 20분 정도 되는 러닝타임에서 1시간이 꼬박 지난 뒤에야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살인 사건 직후 영화가 바로 문제 풀이에 들어갑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주어지는 단서나 복선은 정말 단편적이라 문제풀이 없이는 범인을 확정 짓기가 어려운데 1편의 그 화려한 반전이나 기발한 발상에 훨씬 못미쳐요. 심지어 그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던건 결말 부분인데...
범인을 몰아넣고 결말을 짓는 피날레가 굉장히 실망스럽습니다. 치열한 두뇌 싸움 끝에 승리를 쟁취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보장할만큼 극적이거나 통쾌한 결말도 아니고, 감동적인 연설이나 날카로운 위트가 작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억지로 판을 뒤엎는 느낌인데 여태까지 기능적으로만 행동해왔던 인물들이 더욱더 기능적으로 작용해서 이게 2시간 동안 기대한 결말이라고?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요.
(플롯 스포일러 끝)
여러모로 안좋은 소리를 많이 늘어놓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자기만의 매력을 갖추고 기능하는 영화입니다.
모든 미스테리 영화가 고전 추리 매니아를 만족시키는 클래시컬 후더닛 장르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야기의 진상을 풀어나가는 '문제풀이' 장면이 흥미롭고 완급도 나쁘지 않거든요. 고전 추리 클리셰를 적절히 현대적으로 배치한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1편의 경우 완전히 극장 영화로 기획 되었고, 2편의 경우 OTT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집에서 보기에 좀 더 편하게 일부러 더 팝콘 영화 느낌을 강하게 주지 않았나는 생각도 듭니다.
탐정 블랑의 캐릭터 조형도 다듬어졌고 아마 감독 라이언 존슨은 계속해서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를 이어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007보다 더 좋네요.
굳이 평점을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7점을 주고 싶습니다. (1편은 9점입니다.)
알맹이 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