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차를 세우고 지하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합니다. 그런데 옆에 서 있던 캐쥬얼한 정장을 차려입은 한 신사가 갑자기 허둥지둥하더니 우리가 타지
않을 다른 엘리베이터의 호출 버튼을 일일이 눌러 끄고 달려옵니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가졌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저에게 그 광경은 좀 낯설었습니다. 분명 IT업체의 사장인 듯이 보이는그 신사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였는데,  나이보다 더 젊고 센스있게 차려입은 모양이 멋져 보였습니다.

인천 어머니 집에 방문할 때마다 경험하는 일인데, 어머니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항상 1층을 눌러 놓으십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1층에서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그 사람들 편의를 위해 1층을 눌러 놓는다고 하십니다.  
흔히들 어르신들이 젊은이들보다 기본적인 에티켓이나 준법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건 사실 배려심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규범에의 문화화가 덜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80 넘은 노모의 저런 배려는 누구
에게 듣거나 배운 게 아니라 그냥 당신 머리 속에서 나온 거니까요.

퇴근하면서 보니 차들이 전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 있네요. 꾸역꾸역 평행주차를 하고 보니 눈비를 맞은 차가
정말 지저분합니다. 뒷유리 와이퍼에 굴러다니는 비닐장갑 몇 개를 눌러 놓고 왔어요. 이 정도면 배려 초급 아닌가.

엘리베이터 신사의 사건 이후로 저는 미리 눌러 놓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될 수 있으면 끄도록 노력합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그 신사의 행동을 처음 보았을 때 제가 느꼈던 따스함을 누군가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물론  1층을 눌러 놓지는 않습니다. 닫힘 버튼을 누르면 전기가 더 소모되니 누르지 말라는
훈계를 듣고 자란 저는.... 구세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