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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1/05 19:00:03
Name 아프로디지아
Subject [일반] 독일을 위한 변 – 그들은 왜 나치스가 되었는가 (수정됨)
저는 독일사 전공자가 아니고, 독일사를 잘 모르는 편에 속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제 글의 정보가 정확하다고 하기도 어렵고, 나무위키를 보시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그래도 글의 끝에 가서 말할 어떤 이유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의 제목부터가 어떤 “독일인”들에게는 무례하고 속상하고 심지어 기도 안 찰 제목입니다. 얼마 전 유럽에 가서 느낀 것은 ‘독일’이니 ‘프랑스’니 하고 민족 국가 단위로 말하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도 자명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유럽인들은 국가 정체성보다도 지역 정체성이 더 강합니다. 과거에는 더 그랬겠죠. 나는 웨일즈인이지 영국인은 아니고, 바이에른인이지 독일인은 아니고, 카탈루냐인이지 스페인인은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참 많았을 것이고, 아마 요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당신은 지금 독일의 국경선 안에 살고 있으니 당신은 독일인이지요. 그런데 독일은 나치가 되지 않았던가요. 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알자스 로렌 인근에 살던 어떤 농민은 프랑스인이었다가, 독일인이 되었다가, 프랑스인이 되었다가, 독일인이 되어 죽었을 수도 있지요. 그에게 “독일인을 위한 변 – 그들은 왜 나치가 되었는가”라는 제목은 얼마나 기가 막히지도 않은 헛웃음이 나올 제목일까. 독일을 과연 하나의 행위, 하나의 선택, 하나의 결정과 결부되는 주체나 실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 글을 시작합니다.

하나의 독일이 탄생한 것은 200년도 안 된 일입니다. 그 이전에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간판 아래에 수많은 제후국들이 병존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고 제2제국이 된 것은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와 전쟁해서 한 번 이기고, 프랑스와 전쟁해서 한 번 이기고,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먼저 북독일의 ‘국가들’이 북독일의 연방의 일원으로 ‘주’가 되고, 나중에는 남독일의 '국가들'도 독일 연방의 ‘주’가 됩니다. 독일 제2제국의 탄생은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선포됩니다. 비스마르크가 이 ‘통일전쟁’을 끝낸 이후에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어느 농민은 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인이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인이지, 독일인이라니, 저 재수없는 프러시아 놈들과 하나로 묶이라고?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독일은 이 시절부터 이미 “군국주의”와 “군사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멘탈리티였다고 합니다. 독일 통일을 주도한 프러시아부터가 강력한 군대를 중시하는 군사국가였지요. 후발 산업화 국가로서 신흥 강국이었던 독일에는 “팽창주의”와 “제국주의”의 기조도 나타납니다.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는 뭐 중세부터 천 년을 뿌리내려온 깊은 감정인데다가, 당대 유럽에서는 지성인들조차도 사람에 따라서는 끄덕거리며 받아들이던 통념이었어서, 심지어 영미에서도 우생학이 대학의 학문으로 취급되기도 했고, 당대 독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에 나치스라는 잡초가 필 토양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번의 전쟁으로 통일 독일을 만들어낸 철과 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팽창주의와 제국주의를 억눌렀다고 들었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반전주의자, 반제국주의자, 평화주의자여서가 아닙니다. 비스마르크는 상꼰대로, 군주주의자로 구체제의 수호자입니다. 그는 영국의 윈저 왕조,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 이런 구체제의 상징들과 연합해서 자유, 평등, 박애니 헛소리를 떠들어대는 프랑스를 억누르는 것을 독일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팽창주의, 제국주의를 하려면?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나가야 하고, 그러면 대영제국과 부딪히게 됩니다. 영국이 없으면 프랑스를 고립시킬 수 없고 구체제를 유지할 수 없어. 독일은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중재자로 남아야 한다. 비스마르크는 상꼰대였기 때문에 오히려 독일의 일차대전을 저지했습니다.

역사에는 이런 아이러니가 자주 등장합니다. 비스마르크는 상꼰대여서, 사회주의자들을 치가 떨리게 싫어했기에, 그들이 힘을 얻지 못하게 하고자, 미리 실업급여법이나 산재보상법과 같은 사회보장법안들을 통과시킵니다. 마르크시스트들이 극혐이라, 독일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넘어가지 못하게 하고자,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 것입니다. 좌파 대 우파라는 단순 이분법으로 볼 때는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 역사의 진행을 만든 것이 이 상꼰대 비스마르크였습니다.

비스마르크가 물러나자마자, 젊은 카이저(황제) 빌헬름은 팽창주의자와 제국주의자들의 기조를 받아들이고, 영국과 척지고,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과 척지고, 프랑스를 고립시키기는 커녕 독일이 고립되어 버립니다. 마침내 1차 대전이 터지고, 독일 제2제국은 참패하죠.

전쟁 후반에는 러시아의 볼셰비키들과 조약을 맺어 동부 전선에서의 전쟁을 매듭짓고 서부에 집중했음에도,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은 결국 백기를 듭니다. 독일 각 주에서 노동자와 병사들이 더 이상의 소모전을 거부하며 들고 일어나 노동자-병사 평의회 체제를 만들고, 독일 제2제국은 무너진 것입니다. 독일은 이제 사민당, 중앙당, 진보당을 비롯한 자유주의-민주주의 블록이 주도하는 바이마르 공화정으로 이행합니다.

그러나 1차 대전의 참전국 모두가 처음 전쟁을 시작할 때에는 예상치 못한 대규모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승전국들은 이 기대 이상의 피해를 독일을 탈탈 털어 배상받기로 작정했고,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합니다. 골자는 독일의 군비 축소와 대규모의 전쟁 배상금입니다. 정작 그 독일도 파산 상태인걸... 과연 베르사유 조약이 공평했는가.... 는 제가 평가할 능력이 전혀 없고, 다만 그 결과로 독일인들이 매우 자존심이 상했으며, 민족 수준의 열패감을 느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공평한 조약인데 왜 자존심이 상해? 자존심 상할 자격이나 있어?“ 그러나 세상에 자격이 없다고 자존심도 안 상합니까? 세상사가 그렇게 심플하게 굴러간다면 애초에 아무 갈등이 없겠지요. 독일은 일차대전의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을 계기로 매우 큰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는데, 이것이 독일 땅에서 나치스가 피어나기 딱 좋은 마음의 온도를 만들었습니다.

1차 대전을 수행하는 동안 독일 제2제국과 이해관계나 감정적으로 결부된 기득권층이 있었겠지요. 엘베강 동쪽의 프러시아 귀족들, 지주들, 전통적 지배층들. 국록을 먹고 사는 공무원들, 관료들, 교사들, 법조인들. 방임적 자유무역보다는 국가 주도 보호무역의 수혜를 입는 업종의 산업가들과 자본가들과 농민들. 퇴직 군인들. 참전 용사들. 이들은 독일 제2제국의 상대적 기득권층이었고, 독일 제2제국의 승리와 영광에 몸과 마음으로 배팅했던 이들입니다. 패전은 이들에게 더욱 큰 충격이었고, 베르사유 조약과 바이마르 의회민주주의 체제는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음속으로는 군주정인 제2제국에 충성하고 있었으며, 상당수는 제2제국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신보수주의의 지지세력이 됩니다.

바이마르 공화정은 바로 무너지지는 않았고 상당 기간 지속되었습니다. 가장 자유민주주의적인 헌법을 가지고, 여러 차례의 선거를 치르며 의회정치도 운영하면서, 바이마르 문화라고 하는 특유의 지성적 성취도 거두면서, 한때는 경기도 살아나고, 전쟁 배상금도 일부는 탕감받고 일부는 상환해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때만 해도 오스트리아 출신의 대독일주의자로 미대조차 못붙고 낙제한 어느 퇴직 군인이 민주주의, 자유주의, 다원주의를 비롯한 “바이마르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고, 국제자본도 유대인, 볼셰비키도 유대인, 마르크시스트도 유대인,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이 유대인이라 하며, “인종청소”, “재무장”, “게르만의 생활공간(레벤스라움)” 확보를 위한 “팽창 전쟁”, “독일 제국의 재건”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장광설을 늘어놓고 다니기 시작할 때, 독일인의 대다수는 코웃음을 쳤던 것입니다. 심지어 괴벨스까지도요.

그러나 “대공황”이라고 하는 글로벌 경제 수준의 재앙이 닥칩니다. 당대의 경제 전문가들도 그 원인에 관해 합의하지 못했고, 사실은 오늘날의 경제 전문가들도 그 원인과 처방에 대해 완전히 정리를 끝내지는 못한 것 같은, 그러니 당시대인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재앙”으로 보였을 현상이 터진 것입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대공황이 초래한 경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미국도 아닌 국가가 국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일자리를 잃고, 바닥도 모른채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독일인들은 이 모든 “불행”을 설명할 단순한 원인과 단순한 해법이 필요해졌습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유대인”이며 모든 불행의 처방은 “나치스”라고 주장하는 국가사회주의노동당이 이 때부터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독일 사회에 이미 만연했던 군국주의, 군사주의, 팽창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천 여 년간 팽배해왔던 반유대주의, 인종주의는 나치스가 피어나기 좋은 토양이 되어 주었고, 1차 대전을 계기로 독일인들이 갖게 된 민족적 열패감이 나치스가 피어나기 좋은 기온이 되어 주었다면, 이제 대공황이 제대로 까지 흠뻑 뿌려 주었습니다.

나치스는 이제 무럭무럭 자라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히틀러와 그의 무리들은 그들 스스로도 놀라워 할 정도로 급속 성장합니다. 중도층, 부동층, 그리고 신보수주의의 지지자들이 “국가”사회주의노동당에 지지를 보내기 시작하고,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의 지지자들마저 국가“사회주의노동당”으로 갈아타기 시작합니다. 의회를 대놓고 부정하는 그들이 총선거에서 승승장구하며 의회에 입성합니다. 독일 연방 의회에 실망한 독일인들이 의회를 조롱하는 나치스를 의회로 보내 준 것입니다.

나치스의 성장에 주목한 것은 신보수주의자들입니다. 1차 대전의 전쟁영웅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이 되어 있었고, 파펜을 비롯한 신보수주의자들이 돌아가며 총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신보수주의 정치세력은 바이마르 공화정에서 대통령도 하고 총리도 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제2제국에 충성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힌덴부르크는 공화정의 대통령이면서도 스스로를 제2제국의 충신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죽기 전에는 정신이 헷가닥 해 히틀러를 보고 “황제 폐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꼴보기 싫은 사회주의자들과 민주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유지하며, 최종적으로는 제2제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반동 혁명의 기회를 피어나는 나치스로부터 발견합니다. 나치스가 주장한 “팽창을 위한 전쟁”을 위한 “재무장”, “독일 제국의 재건”, 그리고 바이마르 체제의 붕괴를 향한 열망 같은 것은 그들도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결국 나치스와 연정하고, 그들과 실권을 하나씩 공유하다가, 나중에는 싸그리 다 넘겨줍니다. 수권법이 통과되고, 총통 히틀러가 의회를 패싱하고 법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미 바이마르 체제는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남아있던 신보수주의자들은 나치스와 심각한 이견은 있었지만, 그것은 폴란드나 체코까지 먹을 것이냐. 유럽 전체로 전장을 확전할 것이냐 수준의 “사소한” 차이였습니다.

제3제국의 탄생까지 이르는 이 모든 타락의 길에서, 충심으로 제2제국의 신민이었던 신보수주의자들은 별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반유대주의”는 나치스가 좀 유별나게 극악스러워서 그렇지 유럽인들의 “통념”이었고, “반사회주의, 반마르크스주의”는 그들도 공감하는 정서였습니다. 결국 독일의 뿌리 깊은 보수주의가, 독일 제2제국의 유산이,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들의 의사로 나치스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표현의 편의상 "독일이" 나치스를 "받아들였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신보수주의자들과 나치스에 반대투표를 했던 이들, 그리고 나치스가 집권하고 나서 숨거나 국경을 넘거나 남아서 저항했던 이들, 그들도 독일이 아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언부언이지만, 글의 요점을 반복하면 이렇습니다. 통일 독일의 군사주의, 군국주의, 팽창주의, 제국주의, 반유대주의 등은 나치스가 피어나기 좋은 토양이었습니다. 1차대전의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의 무거운 부담이 가져다 준 민족적 열패감은 나치스가 자라기 좋은 온도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나치스라고 하는 씨앗이 떨어집니다. 그 위로 대공황과 대공황이 초래한 심리적 위기라고 하는 물이 흠뻑 부어집니다. 나치스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그 옆에 서 있던 거목, 독일의 신보수주의자는 그것을 쳐내는 대신 기꺼이 그 일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일전에 올린 글에서 저는 글쓰기 버튼이 좀 더 가벼워도 좋다고 했었습니다. 제가 내린 처방에 따라 저부터가 좀 더 경박하고 부주의하게 글쓰기 버튼을 눌러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엊그제 자게에서 젠더 이슈나 세대 이슈를 소재로 오가던 날선 글들의 공방을 보면서였습니다. 그런 글들이 나쁘다,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고 그 나름의 가치는 있는 것인데, 그러나 그런 글들 이상으로 문화, 역사, 지리에 관한 글들을 좀 더 많이 마주쳤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에서입니다. 제 경박하고 엉성한 글들이 보다 뛰어난 분들의 깊이 있는 글들과 댓글 잔치의 마중물이 되면 좋겠네요. 그래서 시간도 남는 김에, 꽤나 경솔하게도, 삼연방 글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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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23/01/05 20:37
수정 아이콘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 읽는 중이라서 더 재밋게 읽엇네요. 나치는 과연 역사의 필연이었을지 아니면 역사의 우연이 겹쳐 일어난 현상일지...
실제상황입니다
23/01/05 20:58
수정 아이콘
전에 바빌론 베를린 봤던 게 생각났네요. 잘 읽었습니다.
자급률
23/01/05 21:01
수정 아이콘
나치는 사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의 증거같은 존재죠. 맥주홀 폭동때 히틀러를 판사들이 완전히 조저버렸으면? 부터 해서 폴란드가 독일에 맞고있는동안 프랑스가 바로 찌르고 들어갔다면? 에 이르기까지, 일찌감치 채찍을 들어 사태를 조기에 정리할 기회들은 수없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고비마다 당근만을 준 결과가 2차대전이고요.

뭐 한국이나 미국도 근30년 보면 당근이 필요한데에 채찍을 쓰고 채찍이 필요한데에 당근을 쓰는건 또이또이라서 남말할 처지는 아닌거같긴 하네요.
아프로디지아
23/01/05 21:04
수정 아이콘
바로 그 히틀러를 조졌어야 하는 판사들 중 상당수가 맘속으로는 히틀러와 나치스의 행보도 애국이라고 생각해 관대히 참작해주었다고도 하네요
23/01/05 22:08
수정 아이콘
저는 히틀러라는 오스트리아인에 책임을 다 지우는건 비겁한거 같습니다. 독일 전체의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아프로디지아
23/01/05 22:46
수정 아이콘
저는 다수 독일인의 연대책임은 인정하는데, 그로 인해 히틀러 개인의 책임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23/01/06 08:16
수정 아이콘
그 말씀도 동의합니다.

소름끼치는건 히틀러는 무신론자에, 수준높은 예술인에, 예민했고, 연극처럼 자신을 연기했고, 강아지를 키웠고, 애인과 결혼하지 않고 삶을 살았고, 죽기 직전 로맨틱한 청혼과 결혼을 하는 등. ‘매우 현대적인’ 인물로 보인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미래인이고 지금 보면 요새 말하는 MZ느낌의 삶을 살았어요. 어쩌면 히틀러는 전쟁에는 졌지만, 라이프 스타일로는 이겼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사상적으로도 독일에는 네오나치가 등장을…)
ioi(아이오아이)
23/01/05 21:52
수정 아이콘
뭐 남의 나라 일이라 그렇긴 한데
나치가 독일 역사에서 있어서 손해 본 것도 아닌거 같아서

2차 세계대전도 1차 세계대전이 있는 시점에서 필연이라고 생각하고
antidote
23/01/05 22:18
수정 아이콘
강조하신 부분을 보면 [나치][보수주의자]를 악의 근원으로 몰고 싶어하시는 것 같은데 별로 동의는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보는 2차대전의 원인 2가지는 1) 독일제국의 전신인 프로이센 공국-프로이센 왕국이 병영국가이자 군국주의 국가로 출발해서 상당한 전쟁을 벌이면서 국가를 확장한 시작부터 군대국가 그 자체였던 국가였고 2) 전쟁기간 내내 독일 본토는 물자 부족으로 궁핍에 시달렸어도 전투가 거의 프랑스, 벨기에 등지의 외국에서 벌어져서 후방에 있던 엘리트든 소시민이든 국민들 상당수가 전쟁에 왜 진 것인지 제대로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한번 해보면 해볼만하다고 생각한 것이 크다고 봅니다.

본문에 쓰셨듯이 애초에 전신이었던 프로이센부터가 굉장히 호전적인 국가였고 그게 그냥 외교적으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모든 주변국을 적으로 돌리는 실패를 범한 빌헬름 2세 때 안좋은 여건을 다 뒤집어쓰면서 전쟁이 터진 것 뿐이죠. 본문에 쓰셨듯 비스마르크 때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서 국가를 성공적으로 확장했고, 단지 그때의 위정자는 장기전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인)단기전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상황과 결과를 그렇게 몰아가 성공적인 전쟁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독일인들은 원래부터 애초에 결정적인 순간에 전쟁을 회피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관성을 못버리고 외교적으로 매우 불리해서 전쟁을 벌이면 안되는 상황에서도 전쟁을 벌였다가 망한 것 뿐입니다. 유럽은 중세 이래로 여러 국가들이 서로 각축을 벌이는 밸런스가 상당히 팽팽한 대륙이었고 거기에서 빌헬름 2세가 외교적으로 어려운 구도를 만들고 전쟁을 벌이는 어리석은 짓을 벌인것 뿐이지 이걸 뭐 [보수]가 어떻고 [진보]가 어떻고의 견해로 볼 수는 없습니다.

전쟁을 [보수]가 벌인다는 견해는 틀렸습니다. 소련이 핀란드를 일방적으로 쥐어팬 겨울전쟁도 [보수], [나치]가 벌인 전쟁인가요? 한국전쟁을 개전한 김일성은 [보수]인가요? [진보]인가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은 보수인가요? 진보인가요? 피그만 침공을 벌인 케네디나 이어서 통킹만 사건을 거쳐 베트남에 개입한 린든 존슨은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그냥 전쟁이 날만큼 갈등이나 이해관계가 심하게 대립하거나 야심가에게 여건이 주어지면 나는거라고 봅니다. 그게 전쟁이나 충돌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거라고 봅니다.
[진보]는 전쟁을 안한다, [보수]는 전쟁을 안한다는 그냥 둘 다 틀린 말입니다. 둘 다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

아 주제가 [전쟁]이야기가 아니라 [나치]였나요? 그냥 [보수]를 악으로 몰고 싶어하시는게 아닐까요?
그런데 당시 나치가 유럽을 대상으로 못된짓을 해서 공적이 된거지. 그냥 시대가 그런 시대였어요. 소련이 소수민족을 갈갈이 찢어서 여기저기 척박한 땅으로 뿌려댄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농업정책의 실패로 인해서 소련 전역에서 벌어진 기아는요? 그것도 소련 [보수주의자]들이었나요? 그냥 그 시대가 지금에 비하면 무지해서 벌어진 참사도 많았고 현대인들이 야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게 일어나던 시대였던 것 뿐입니다.
23/01/0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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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보수주의에 대한 두둔은 제가 반대한다기 보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할거 같고요.

나치는 불과 70년 전 사람이고, 사실 서구는 60년대와 지금 크게 달라진게 IT외엔 없습니다. '현대인이 야만이라 생각하던 것들이 당연하게 일어나던 시대'라는 식으로 현대인의 정의로움과 다름을 이야기 하기엔 솔직히 나치스는 너무 최근입니다. 전근대인이라 저지른 폭력은 로마인이나 몽골제국에 적합하지, 나치스는 그렇게 보긴 어렵다 생각합니다. 예컨데 히틀러는 니체의 사상을 좋아했는데 (니체가 나치적이란 뜻은 아니지만) 니체는 매우 현대적인 철학자입니다.
antidote
23/01/05 22:44
수정 아이콘
그 이외의 반례들도 너무 많아요. 프랑스 혁명이 나고 혁명 프랑스는 당대 유럽의 대국들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국가였을 것임에도 종국적으로는 나폴레옹에게 권력을 위탁하고 혁명에 가담했었 장교였던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어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물론 그 전에 주변국에서 먼저 예방전쟁을 벌이긴 했지만 나폴레옹/프랑스는 분명히 중간에 그만둘 기회가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 당장 시진핑의 중국이 대만 침공을 한다면 시진핑은 보수인가요? 진보인가요? 중국인들은 보수인가요? 진보인가요? 애초에 이건 이념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보수가 전쟁을 일으킨다. 이건 흔하게 보수주의자를 [전쟁광]으로 몰아갈 때 잘쓰는 말입니다만 김일성이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은 보수라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음에도 야심에 따라 본인이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면 전쟁을 벌였습니다.
23/01/0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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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보수 진보 이야기를 하시는거면… 나폴레옹은 박정희입니다. 박정희도 좌파였고요. 윤석열님도 무신론자에 운동권 출신이십니다. 전두환 사형선고로 회자된 분이시고, 문통의 검찰총장이셨는데요.

박정희는 보수일까요 진보일까요. 나폴레옹은 말씀대로 좌파의 총아이었으나 지금은 프랑스 보수의 상징이 됐죠? 생각보다 보수와 진보는 그렇게 무 자르듯 나눠지지 않습니다. 저도 좌파의 ‘모든 악은 보수에서 나왔다’라는 식의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보고요. 사르트르와 같은 유럽 진보가 스탈린을 너무 미화했다고도 봅니다만. 궁극적으로는 ‘과거의 진보가 미래에는 보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처럼 칼로 무 자르듯 나눌수 없다 봅니다.

지금 antidote님은 철저하게 현대인 입장에서 보수 진보로 나누고 최종평가를 하시는데 그럴수 없다는 거지요. 뭐 궁극적으로는 ‘모든 악은 보수기도 하고 진보기도 하다’라는 주징이니 antidote님의 주장에 반대보다는 찬성에 가깝겠네요.
아프로디지아
23/01/0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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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글에서 제가 지칭한 신보수주의자들은 다른 나라에서의 [보수]나 우리 나라의 [보수]와는 분명히 다르죠. 엘베 강 동쪽 지금의 브란덴버그 주 지역에 사는 지주, 군사귀족 엘리트충을 중심으로 하는, 호엔촐레른 왕가의 복고를 바라고, 독일 제2제국의 부활을 바라며, 프로이센의 군사국가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세력을 특정해 신보수주의라고 명칭한 것입니다. 당연히, 민주주의 시스템을 긍정하는 전제에서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긍정하고 적극적 국가개입을 환영하기보다 먼저 경계하는 미국의 보수나, 우리나라의 민주화 이후의 보수나, 심지어 현대 독일의 기민련/기사련 같은 보수와는 전혀 다른 보수죠. 진보와 보수는 역사적, 상대적 개념인데, 당시 독일에서는 아무래도 군주정을 옹호하는 쪽이 비판하는 쪽보다는 수구적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그걸 진보파, 혁명파라고 지칭하면 이상하잖아요. 신보수주의라는 말은 그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책에서 읽은 표현이기도 하고요. antidote님은 표현이 마음에 안드시면 수구주의자, 복고주의자 정도로 바꿔 읽으셔도 되겠네요. 저는 당시 독일의 특정 세력 내지 성향을 지칭하고 싶었던 것이지, [세계 어디에서나] [진보가 아니라] [보수가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보수가 악이다] 같은 증명할 수도 없는 주장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주장이 제 글에서 당연하게 귀결되지도 않을 거 같구요.
그리고 저는 전쟁에서도 더 나은 편과 더 낫지 않은 편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후대가 얼마든지 그 결과를 도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봐요. 어떻게 과거사를 가치평가를 전연 배제해고 볼 수 있을까요? 가치평가가 항상 수반되기 마련이죠. 가급적이면 누군가를 정죄하기보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개선점을 추구하는 방향이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래서 말씀하시는 뉘앙스의 많은 부분에도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이 글의 제목을 독일을 위한 변이라고 달았습니다마는, 그럼에도 저는 독일의 과거사 반성은 마땅했다고 생각합니다.
antidote
23/01/05 22:52
수정 아이콘
당시 독일의 보수층이 독일의 무리한 전쟁과 실패에 일견의 역할을 했을수는 있다고 봅니다만 저는 그냥 독일이 태생부터가 지나치게 호전적인 국가였고 요새말로 소위 따갚돼라고 하던 관성을 못버리고 동전뒤집기를 하다가 결국 실패에 다다랐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독일이 보수였든 진보였든 독일은 멈출 수 있던 지점을 지나서 폭주한 것 뿐이죠.
저는 그냥 당시 독일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라 설사 나치 독일이 프랑스와 그리스 수준에서 확장을 멈추고 소련/영국과의 일시적 공존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전쟁과 승전으로 팽창해버리고 흥분해버린 독일인들은 국토가 잿더미가 되기 전까지 동전뒤집기를 다시 했을거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당시 유럽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에 저는 별로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아프로디지아
23/01/05 23:07
수정 아이콘
저도 당연히 통일독일의 초기 세팅 자체가 호전적이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전쟁에 찬동하고 나중에는 나치스에 찬동하기에 이르른 민족당, 국민당이나 왕정복고류 중 다수와 대개 반전주의적이었고 나치스에 직, 간접적으로 저항까지 했던 사민당, 사회당 지지자 중 다수의 기여 내지 책임의 정도가 과연 동일한지는 의문입니다. 깊게 들어가면 제가 말한 복고주의자들 중에서도 히틀러 암살에 가장 근접했던 군 장성들도 있고, 반대로 공산주의자나 사민주의자 중에서도 열혈 나치스로 거듭난 이들도 있고, 또 공산주의자들은 바이마르 공화정 내내 적색 테러로 어그로를 끌어 여론을 나치스 쪽으로 돌려 놓은 탓도 있고 하니, 결국 정치적 성향이나 입장만을 근거로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독일사를 잘 몰라서 제 생각은 이 정도네요.
antidote
23/01/05 23:27
수정 아이콘
저도 독일사를 전공자만큼 잘 아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나치를 단순히 보수와 결탁한 불량배들로만 모는 것은 별로 찬동하지 않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나치 자체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라는 이름만 보면 좌파적 색채를 띄는 이름을 하고 있고 실제로 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아주 과감한 재정지출을 했고 자본가들과 결탁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나 소시민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태인에 대한 차별은 당시 유럽에서 만연해 있었고 나치가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형태로 한 것 뿐이지. 당대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행하던 행위는 가스실에 사람을 보내면 노동력이 줄어서 안했던 것 뿐이지 충분히 잔혹성을 많이 띄고 있었습니다.
나치가 대죄를 지은 악의 집단인 것은 맞습니다만 저는 20세기 전반기 당시가 2023년 현재의 선진국민들이 보기에 야만의 시대였고 그 맥락에서 당시의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영국은 당시 독일에 훨씬 진보적이고 권력또한 연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통해 천재 과학자를 자살로 몰아간 나라였죠. 그냥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더 각박한 시대였다고 봅니다.
23/01/06 08:14
수정 아이콘
(수정됨) 히틀러가 보수라고 하기엔 ‘그럼 보수가 뭔데’라는 의문이 따릅니다.

사실 보수가 하던대로 하자. 과거로 돌아가자. 라면 나치는 보수가 아닙니다. 나름 혁신을 한다고 들이댄 자들이죠. 한국은 사회주의를 진보, 자본주의를 보수라 보는데요. (아무래도 미국이 도와 건국한 나라니.) 그렇게 보면 히틀러는 국가 사회주의자라 또 진보, 좌파의 모습을 합니다.

하지만 저도 나치에게 보수의 느낌은 듭니다. 국가 공동체 주의고 권위주의니까요. (하긴 뭐 그런식이면 스탈린도…) 이건 걍 제 느낌이고 주장은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부터 사람마다 다르기에 이런 논란은 계속될수밖에 없는듯 합니다.
지구 최후의 밤
23/01/06 08:52
수정 아이콘
제가 본 글에서 나오는 방향성은 일반적인 보수가 아니라 ”저 시절의 독일 보수주의자“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방향이라고 이해했습니다.
23/01/05 22:20
수정 아이콘
필력이 대단하십니다. 잘읽었습니다
아프로디지아
23/01/05 22:4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김재규열사
23/01/05 23:32
수정 아이콘
독일 현대사를 디테일하게 모르는 입장에서 재밌었던 것이 제2제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구 프로이센 지역이 제2제국 때도 그렇고 지금도 사민당 계열의 핵심 지지기반이라는 부분입니다. 제2제국의 심장부 독일인들은 제국주의 전쟁광에 신물이 나 있었지만 오히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제2제국에 대한 환상이 강하게 남아있던 것인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도 독일 보수정당의 주요 지지기반은 바이에른 등 남부지역이라고 합니다.
자급률
23/01/06 00:29
수정 아이콘
사실 구 프로이센 지역은 '우리 생각만큼' 독일의 해외 확장주의나 대전에 책임이 있지는 않습니다.

1. 해군건설하면서 영국이랑 경쟁관계 돌입한거 : 육군은 구 프로이센 장교출신들 입김이 강하니 진정한 나라의 군대가 아니다! 해군이야말로 진짜 나라의 군대! 하면서 독일 내 외부영방 주민들 및 융커 장교에 비스듬한 시선인 지식인 등등의 지지로 추진

2. 식민지만들고 다니면서 여타 열강들이랑 경쟁관계 들어간거 : 외부시장 확보하고 싶었던 산업계에서 주로 지지. 동쪽 시골에서 농장경영하던 융커들은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음

전쟁이 빌헬름의 치세에 일어났다는것도 어떻게 보면 의미심장하죠. 명백히 프로이센 왕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했던 조부와 달리 빌헬름은 새로 만들어진 독일 황제로서의 자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고, 실제로 일련의 퍼포먼스를 통해 프로이센이 아닌 여타 독일지역에서도 서민들 사이에선 어느정도의 친근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합니다. 지식인이나 상류층에겐 경멸을 더 많이 받았다지만...
김재규열사
23/01/06 10:45
수정 아이콘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막연히 어느나라에나 경향성을 볼 수 있는 수도권, 도시지역의 진보 지지 현상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프로디지아
23/01/06 01:12
수정 아이콘
역시 제가 어설프게 알고 있는 수준보다 좀 더 깊게 들어가도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그림이 나오는군요
SAS Tony Parker
23/01/05 23:58
수정 아이콘
2차대전에 대해 책으로 보고 싶으시면 출판사 플래닛미디어를 추천드립니다 여러분

독점 계약으로 세계적 연구자들의 저서를 갖춰뒀습니다
남한인
23/01/06 08:49
수정 아이콘
* 정치학 교과서의 분류법

1상한. 보수주의: 현실에 만족 + 개혁의 가능성 부인
2상한. 자유주의: 현실에 만족 + 개혁의 가능성 시인
3상한. 진보주의: 현실에 불만 + 개혁의 가능성 시인
4상한. 반동주의: 현실에 불만 + 개혁의 가능성 부인

보수주의와 반동주의의 일시적 동맹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봅니다.
23/01/06 10:24
수정 아이콘
히틀러를 낳은 독일을 낳은 영프(베르사유조약)라고 봅니다.

영국 또 너야?
페스티
23/01/06 11: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크크 아무리 그래도 그건 영국보다는 프랑스 때문이죠

수많은 제후국들이 루이14세 시절부터 프랑스에 대한 열등감이 그득그득했죠. 쌓아왔던 그런 감정이 1차대전 때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제국선포을 하는 것으로 표출되었고요. 자존심에 크게 상처입은 프랑스는 말도 안되는 전쟁배상금으로 앙갚음하고 그걸 꾸역꾸역 갚은 독일 국민들이 나치로 격발한 것이 일련의 인과율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영국측은 배상금이 과도해서 독일이 복수할거라 생각했었죠. 프랑스도 알고있었어요. 점령당하고 자존심을 짓밟힌 것 때문에 복수의 씨앗이란 것을 알면서도 과도한 배상금을 메긴거죠.

결국 히틀러라는 인물은 1차대전부터 시작된 팽창주의로부터 이어진 국가의 역량을 모조리 소모하고 싶어하는 국민들의 열망과 그에 부합된 시대의 부름을 받은 것이고 히틀러가 미대에 갔어도 다른 놈이 튀어 나왔을거라 생각합니다. 독일이 불완전연소 했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터졌을 거고요.

뭐 너무 서사에 몰빵한 해석이긴 하네요 흐흐
23/01/06 12:27
수정 아이콘
물론 프랑스가 주범인 건 주지의 사실이긴 합니다만

여기에 영국이 또 꼽사리 끼고 있다는 걸 지적하는 일종의 개그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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