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것이다.
영어문장으로 치자면 will 같은게 들어간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원망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커피의'co'도 관심없던 내가 이 가게때문에 커피를 마시게 되고, 어느새 이 가게에서만 햇수로 대학 학년 숫자만큼 바리스타로 일을 했다. 어쨌거나, 뭐 전국에 커피숍이 한두개며 망해나가는게 한두개인가 싶은 마음도 있다. 근데 원래, 남이 망하는것과 내가 겪는것은 아무리 간접적인 망함이라지만 기분이 다르다. 당사자만 하겠냐마는.
진열장을 쭉 둘러보니 내가 처음 들어왔을때 부터 있었던 찻잔은 거의 없다. 다 깨져나갔다. 내가 있는 동안 많은 직원들이 이 가게를 거쳐갔다. 그들은 꼭 찻잔을 두어개씩은 갈아치우고는 했다. 막상 이 카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 깨진 잔들이 뭇내 서글펐다. 가게를 뺄 때, 딱 두개의 찻잔만 남겨달라고 할 심산이다. 내가 처음 들어왔을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고운 나비무늬가 새겨진 찻잔이다.
사장님은 이 가게를 점점 넓혀나가고 싶어하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여타 자영업자에 비해서는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임대료가 싸다거나 어디서 돈 나올 구석이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있는 상가 블럭에는 커피숍도 맞은편에 한 개밖에 없었고, 제일 가까운 커피숍은 그래도 100m정도를 걸어가야 했기에 단골 손님분들이 많이 찾아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3년사이에, 우리는 사방 50m이내에 대형 프렌차이즈를 포함한 커피샵을 무려 새롭게 열 두개를 맞이했다. 빼고 더하고 할 것 없이 열 두개.. 50m 사각 블럭을 짜서 인구를 따져봐도, 도합 14개의 카페가 대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반대편까지 따지면 14개가 아니라 20개가까이 되겠지.. 우리만 그만하게 될 건 아닐것이다. 아마..
가게를 쓱 둘러보았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쩌면 사장님보다 내가 청소는 훨씬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남들은 뒤쳐진 인테리어네, 나무결이 다 상해서 손봐야 겠네, 바닥이 색이 다 바래서 보기 그렇네 하고 이야기 하지만 내게는 그저 정이 붙을대로 붙어 미워지지 않는 그런 장소다. 고작 알바주제에 무슨.. 하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본다. 그렇게 힘들어도 알바비 한번 안 밀리고 준 사장님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기본이지만, 사람이 어려울 때 가장 지키기 힘든게 기본 아닌가..
이런게 김보성식 으리 일까 하고 생각하니 속은 웃겼는데 겉은 울상이다. 카페가 12개 더 들어오는 동안 임대료는 한 푼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 물가는 올랐는데 우리 커피값은 더 내렸다. 경기가 안좋으니까, 다들 맛있는 커피를 부담스럽게 마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이 가격을 유지하는건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이 섞여 내린 결정이었다. 이문을 덜 내더라도. 그게 계속 찾아준 손님들에 대한 우리 나름의 장사였다. 물론 이 상가의 건물주들은 그런 우리와는 상관없이 바로 한칸 벌린 점포에 커피숍을 내주고는 했다. 대체로 한 상가의 한 층 한 라인에 같은 업종을 그렇게 낸다는건 비상식적인..일이라고 한다. 물론, 돈 앞에 상식이란게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우리에게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새로 생긴 열 두개의 점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휘황찬란한 인테리어와, 다양한 컨셉, 디저트등을 들고 왔다. 이 열 두개중에서는 전국 어딜가도 있는 별다방이나 꾸쥬워마걸도 포함되어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여전히 열 두개 카페중 우리 카페의 커피가 제일 맛있다. 그렇지만, 커피는 맛있다고 해서 손님을 꼭 끌어모을 수 있는것은 아니다. 감자탕과는 다르다. 감자탕과는. 기호식품에 사치재이기도 한 커피는, 맛있어 봐야 커피일 뿐이다. 정말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 만으로는 안타깝지만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혁신의 시기를 놓친것은 중대한 실수이자 후회할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 사장님은 몇 년 나태했던 시간들에 대해 어찌 할 수 없을 만큼의 화와 분노로 속을 삭이실 것 같다. 변명의 여지는 없다. 다른 가게들이 '이길 만 하다'는 생각에 개업을 했을테니, 그 사이에 계속해서 비록 좁은 가게라 할 지라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늘리고 바꿔가며 계속 매력적으로 가꿨어야 했다고. 그렇지만 다 지나버린 일이다. 디저트를 추가했어야 했네, 인테리어를 내부수리 했어야 했네, 과일을 늘렸어야했네. 이런 이야기를 왜 실천하지 않았냐고 되뇌여본들, 나는 내 돈이 드는 일이 아니니까 그저 그렇게 쉽게 혁신을 읇을 수 있었을 테다. 그렇다고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야속함은 있다. 혁신이 모자라고, 신 메뉴가 부족하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새 카페들이 더 많은 자본으로 경쟁적으로 뛰어드는데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회의감, 건물주의 임대료를 못 올려서 안달이 난 전화통화. 떨어지기는 커녕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 설상가상, 경기는 계속해서 나빠져만 갔다. 이게 혁신으로 해결될 일인가? 임금대비 물가는 말도 안되게 높은 나라. 거기에 임대료는 그보다 더 비상식적으로 높은 나라. 그런데도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며 자영업자는 줄어야 한다는 이야기의 흐름. 중소기업도 망하고 소기업도망하고 자영업자도 망하고. 국민 50%가 140만원 이하의 소득을 올린다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게 노력이나 혁신으로 버텨지기는 하는거였어?하는 의심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다. 겉으로만 멀쩡하게 살아갈뿐, 다들 골병이 든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망했다.
어디가서 이렇게 망하는 기분을 느껴볼 것인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했다. 내가 망한건 아니니까. 근데 내가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손길이 닿은 만큼 정이 쌓이는 걸까? 그렇게 하기 싫었던 청소들 때문에 쿨해지지도 못하다니. 우습다. 에스프레소가 쪼르르르 떨어진다. 이제는 무려 5년차가 넘은 에스프레소 머신이라 그런지, 샷 하나를 뽑을때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금세 맛이 훼까닥 가 버린다. 다행히, 이번 에쏘는 색깔이 좋다.
휑하다. 동네에 있던 아지트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어릴 적 몰래 숨겨둔 타임캡슐이 이사하면서 없어진 것 같은 그런 상실감. 당장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되려 유예기간 몇 개월을 마치 사형선고마냥 기다리게 된 듯한 괴로움. 이제 어디서 커피를 마시나. 다 떨어진 에스프레소를 휘릭 하고 돌려본다. 금빛 크레마가 샷잔을 따라 빙글 돈다. 너로는 안된다고 한다. 너로는.
제일 힘든건 사장님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장님을 조금 원망하고 싶었다. 그러게 왜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왜 좀 더 치열하게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우리가 사장과 알바사이보다 훨씬 가까운 형 동생 같은 사이라 할 지라도.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테고, 누구보다 속이 쓰라릴 것이다. 내게는 그래도 남 일이니까. 그래서 그저 아쉽고 휑하고 야속한 기분으로 정리할 수 있을테니까. 단골집 하나 없어지는 것 보다 조금 더 아쉬울 뿐이지. 거짓말이다. 그보다는 조금 더 쓰다. 에스프레소 말이다.
건물주 느님의 전화는 그야말로 강력한 신의 심판같았다.
겨우 겨우 흔들거리며 버티던 사장님의 꿈은 우지끈 하고 초라하게 꺾였다. 꿈이라는 것이 어쩜 이리 약한지. 사장님은 들릴듯 말듯한 말 한마디를 되뇌였다. 억울하면..억울하면 돈 벌어야지.... 많이...그건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누구에게 닿기를 바란 말인가.
그래도, 꺾인 꿈이 스스로의 것이었음이 부럽다.
난 그저, '끝'이라는 선고 한마디에 수 없이 헉헉대며 쓸고 닦았던 것들을 잃어야 한다. 날 필요로 하던 곳이 줄어드는 것이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그대로 꿀떡, 넘기고 가게를 나왔다.
뭐야, 평생 일할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바리스타 할 것도 아니었잖아.
고작 알바면서 왜 그래. 무슨 투자자마냥 허세보게. 하고 속을 속여보려다-
내가 주인의식 갖겠다는데 불만있냐? 하고 스스로를 갈궈봤다.
에이씨.
그래도 아직 시간이 조금 더 있으니까.
있으면 뭐해요. 바뀌지 않는데. 임대료주인이 로또맞아도 임대료 깎아줄일은 없습니다 이 양반아. 아이코 그렇습죠.
기도를 열심히 합시다.
근데 하나님은 원래 공짜짱짱맨 아입니꺼...
그건 그래요.
하고 서로 쓰게 웃는다. 에스프레소가 영 쓴게 입 속을 맴돈다. 사장님 이번에 원두 대충볶은거 아님까?
아무리 힘들어도 원두는 똑바로 볶씁니다. 하니 데꿀멍이다.
로스터기에서 올라오는 매캐한 커피향을 사이에 두고 며칠 뒤에 술이나 한잔 합시다. 하며 사장님과 짧막한 인사를 했다.
조만간 마실 싸구려 쏘주 한 잔에, 이 상실감을 함께 넘길 수 있을까? 안주는 배어버린 커피향삼아. 아뇨, 치킨먹읍시다. 그래요. 그게좋겠어.
오늘도 밤이 차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5-0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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