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7/05/23 04:39
공민왕의 몰락은 자업자득적 성격이 강한 것이, 저 정세운 안우 김득배 이방실 뿐 아니라 쌍성총관부 공략의 주역인 인당마저도 토사구팽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권문세족의 힘이 강한 고려에서 왕이 권문세족들을 누르고 개혁을 하려고 했으면 독자적인 군사력을 지닌 무신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을텐데, 개혁을 내세웠던 왕은 오히려 권문세족과 손잡고 무신들을 죽이고 또 죽였죠.
명장은 질시를 받아 죽고 세족들만이 남아 부귀를 누렸습니다. 명장들이 사라진 국경은 왜구에 의해 유린되어 백성들의 피로 시산혈해를 이루었고요. 그런 권문세족의 전횡과 왕의 자업자득을 보며 정몽주, 정도전은 무슨 생각을 했고, 이성계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지.
17/05/23 09:16
아무래도 무신들을 지속적으로 숙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전 세기의 무신정권에 대한 경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무신정변 이후 고려 명종부터 원종 중반까지는 왕이 허수아비에 가까웠다는 점이 공민왕 대까지 계속 상기 되어왔을 수도 있고요;;
17/05/23 07:27
외적은 둘째치고 저 김용한테 또 뎅겅할뻔..
강제 조기유학이 왕과 국내파가 신뢰를 쌓기 어렵게 했고 무신집권과 내정간섭의 역사가 의심병을 지병으로 만든 측면도 있겠죠. (국내파 우왕은 국내파라긴 묘한 상대에게 진짜 당했..)
17/05/23 07:39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정몽주에 대해서는 시류를 못읽고 변화를 두려워하던 꼰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참 복잡하네요... 거기에 어떤 나라건간에 나라가 무너지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이 참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많네요
17/05/23 10:28
정몽주로 죽기 VS 정도전으로 살기
명예롭게 죽기 VS 변절자로 살기 사후 500년간 추앙받기 VS 사후 500년간 역적이었다가 복원받기 요즘 시대야 정도전이지만은 당시 성리학자로는 정몽주가 성공한 인생이네요.
17/05/23 12:04
건국은 이성계와 정도전이 했지만 실질적인 조선 이대왕이자 명군이며, 조선최고의 명군의 아버지인 이방원과 말 그대로 목숨걸고 권력다툼 하다가 졌기 때문이겠죠.
17/05/23 12:10
그런데 정몽주도 이방원에게 죽임당한 건 같은데, 아마도 조선건국 이후에는 질서를 뒤집는 것보다 그 질서에 충성하는 것이 요구되었기 때문이겠죠..
17/05/23 10:50
20만이라는 군사는 저 당시 고려로서 감당하기 힘든 병력이었죠
저때는 사병이 허용되는 시기라 급한대로 20만을 모았지만 저 20만이 전쟁이 끝나고 해산되는게 아니라 사병화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마침 논공행상으로 정세운과 안우가 대립 상태였고요. 자칫 잘못 하다가 후한 말기 황건적을 잡기 위해 호족들이 군대를 양성하고 황건적난이 끝난후 그 군대를가지고 서로 치고박고했던 것처럼 그때 고려도 충분히 군웅할거 시대로 접어들 조건이 내외적으로 갖쳐줘 있던 상황 이였죠 물론 4원수 몰살 이후 군사력 약화로 강력한 반원정책을 포기하고 왜구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었지만요
17/05/23 14:21
한사람이 20만을 다가진게 아니라
여러장수들이 모은 병력이 20만이라는거죠 그리고 제가 따로 글적은것에도 말했듯이 당시 권문세족들은 넓은땅의 수조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고려말에 가면 권문세족들이 영주화가 됩니다. 그래서 정도전, 조준이 조선이 창건하기전에 이 수조권을 손봤던거고요 장수들 다수는 이런 권문세족들이고요 또한 넓은 영지를 가진 권문세족들과 결탁할수도있지요
17/05/23 11:08
교과서로 배울땐 느낌이 잘 안왔었는데 신불해님 글들을 읽어보니 고려말이 민초들에겐 레알 헬게이트였네요. 남쪽으론 왜구 북쪽으론 홍건적 정부는 원나라 잔존세력과 신세력들이 싸우고 수탈은 점점 심해지고..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17/05/23 11:35
이 에피소드가 정도전에선 언급이 안됬는데 육룡이 나르샤에선 정도전 과거 이야기 형식으로 언급이 됬었습니다.
물론 육룡이 나르샤는 기본적으로 성실한 고증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으나 암튼 의미는 비슷하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17/05/23 13:17
공민왕이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는 무신정권을 감안하면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되기 때문에 이성계의 등장(조선의 건구)이 역사의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음 또한 이해가 되네요.
17/09/09 17:08
늦게라도 좋은글 보고 남깁니다.
저런 토사구팽은 옛날에야 이해를 못해도 최근들어서는 왕의 권력이란게 그렇게 절대적인게 아니라, 왕의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많이 생겼습니다. 뭐 맞는말이기도 하고요. 저런 행동들이 단순히 폭군, 암군의 요소로만 취급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방이 그랬고, 주원장이 그랬고, 태종이 그랬듯이 말이죠. 아 물론 선조도 있지요 -_-; 그런데 합리적인 행동들이 모인다고 해서 합리적인 결과를 낳는것만은 아닌거 같습니다. 하나하나의 선택은 분명 최선의 선택이라 볼 수 있는데 3자로서 지켜보면 그는 점점 인간이 아니라 괴물? 그런식으로 느껴지거든요. 대표적으로 이완용이 그렇습니다. 사실 이완용의 처세를 보면 합리성 끝판왕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여튼 저런 행동들을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도 안되고 무작정 비난할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는쪽에 더 좋은 평가를 할 수밖에 없네요. 공민왕도 뭐..참 다양한 면이 있는 왕이죠. 그냥 현군은 날때부터 현군이고, 암군은 날때부터 암군인것처럼 은근슬쩍 배우거나 인식하지만 그런게 아니라는걸 가르쳐준 왕이었죠. 각박한 현실을 극복하기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는데 그게 그를 괴물로 만들었고 일찍 고꾸라지게 만들지 않았나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