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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5 00:04
4대 유격수였지만 수비는 보여준 적 없던 놈이 수비로 40억 터트린 인생의 아이러니.......
성영훈이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아까운 거 같아요 국가에서 연금이라도 줘야되는거 아니냐!!! 근데 계약금 많이 받긴 했던듯.....
20/06/15 00:09
입단하자마자 그 구린 구리 구장에서 퓨처스를 폭파 시켰을 때 크보판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되기를 바랬는데, 키울 때 삽질 좀 하고 그러면서 키웠더니 한국판 시몬스가 되었...
성영훈은 두산이 사실 오래전부터 점 찍었는데, 전년도 1차지명에서 두산에게 완패를 당한 LG가 어떻게든 만회해보겠다고 계약금 더 올려보려고 했으나, 성영훈이 의리를 지켜 두산에 입단하게 되었죠. 그리고 2년 연속 서울 최대어를 놓친 LG는 이학주에게 기웃거리다 태평양 건너 곰 덕분에 제시도 못하고 결국 오지환을 선택하게 됩니다 크크크 당시 계약금이 5억5천이였고 그 다음으로 많이 받은게 김상수랑 오지환의 2억8천이였으니 어마어마한 재능이긴 했습니다. 그 놈의 혹사가 참...
20/06/15 00:22
근 30년차 꼴데팬이지만.. 소싯적에 LG팬 여자사람이랑 만나면서 LG 유니폼도 사서입고 그랬었는데 (그때가 2011~2012년 이었네요) 잠실에서 열리는 엘꼴라시코는 거의 항상 갔었던거 같은데... 항상 오지환을 보면서 느낀게..
왜 쟤는 수비를 잘하는데 수비를 못하지? 뭐 이런 느낌이었는데... 고등학교때부터 쭉 숏을 봐왔던게 아니었군요.
20/06/15 00:38
본인이 투수로도 재능이 있었던 편이였고, 경기고가 투수 스카우팅을 제대로 못한 탓에 그리 되었죠 크크
이후 경기고 후배 중 비슷한 케이스를 걷게 되는 선수가 하나 있는데 그 선수가 지금 NC의 박준영입니다.
20/06/15 11:37
어려운 건 수비 잘하는데 쉬운건 실책하는 남자.
이번 엘꼴라시코에서도 6-4-3병살 잡는 평범한 공을 기묘하게 정근우 허리 옆을 빠져나가는 토스로 실책하더니 다음엔 3-유간 빠지는 안타성 공을 잡아내고...
20/06/15 11:53
사실 그 토스도 새긴했는데 그 때 2루수가 정주현이였으면 잡았을겁니다. 나이 때문에 순발력이 떨어져서(...)
기록원도 그렇게 판단해서 오지환이 아니라 정근우 실책으로 줬고요. 오지환이 데뷔초 이미지 때문에 실책 기록에서 불리하게 받는걸 생각해보면 뭐... 바로 다음 플레이에서 정근우도 옆으로 새는 토스했는데 잘 잡고 송구도 완벽하게 해서 병살 만들었죠.
20/06/15 00:23
좋은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역시 야구는 유격수가 잘하죠 크크
고등학교때 유격수를 보는 선수는 팀에서 운동능력이 가장 좋을 것이고, 그런 선수는 다른 포지션 뭘 시켜도 잘할것이다가 이장석과 히어로즈의 지론이죠. 이정후나 임병욱같은... 막상 팀의 주전 유격수는 고등학교때 2루수를 봤지만요
20/06/15 00:40
김하성 이야기하시는거죠? 크크
당시 유격수는 미국 갔으니 야탑고도 대단한 팀이였습니다 크크 그나저나 김하성 2루 시키던 친구도 슬슬 리턴 각을 재야할 것 같습니다.
20/06/15 00:26
델동님이 고등학생들 능력치 뽑아먹는데는 도가 텄다고 해야하나..
한국 말고 일본에서 야구했으면 어쩌면 고시엔의 전설이 됐을지도 ㅡㅡ;
20/06/15 00:38
제가 본문에 까먹고 빠트린 내용이 있는데 저렇게 뽑은 이유 중 하나가 당시 대회에 처음 도입되는 승부치기 대비도 있었던 걸 감안하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낭낭하죠.
20/06/15 00:36
06년 대회 우승팀 멤버들과 다른 87년생들이 매년 겨울 추모행사를 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현종 선수랑 황재균 선수가 주축으로 말이죠.
20/06/15 00:33
재밌게 읽었습니다. 4대 유격수 얘기는 들은 적이 있는데, 만일 LG가 이학주를 지명했다면 오지환은 어디로 갔을까요?
종종 저평가되지만 지금의 커리어로도 충분히 KBO 유격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데, 저는 오지환이 삼성이나 키움으로 갔으면 부침을 덜 겪고 더 대단한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0/06/15 01:19
근데 생각해보면 오지환이 입단 1년차때 투고타저에 홈런 치기 꽤 어려웠던 구리에서 홈런 12개-에러 14개를 기록했었고, 고3때 투타 양면으로 활약해서 경기고 사실상 혼자 결승전에 올려놓고 그랬던걸 생각해보면 사실 육성의 정답이 투웨이였을지도 모릅니다? 크크크크
20/06/15 00:43
엘지가 1차 이학주 2차 1라 오지환 뽑을 계획도 있었습니다.
당시 2차 지명전 분위기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였습니다. LG보다 앞순서 팀이 기아-롯데-우리(키움)이였는데 전체 1순위는 안치홍 고정이였으니 해볼만한 계획이였죠. 그리고 저렇게 뽑았다면 강제로 투수 시켰을지도(...)
20/06/15 01:46
류기훈은 두산 지명이 아니라 SK 지명입니다. 아마 연세대 간 것으로 아는데, 이후 프로 미지명 되고, 독립구단까지 간 걸로 압니다.
20/06/15 08:24
크크 역시 인생 몰라요....
분명 10년 전 4대 유격수 중에 제일 떨어졌는데!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한거죠. 암요! 크크
20/06/15 08:53
솔직히 저 때 성영훈은 사기급이라 한국 감독들은 대부분 성영훈 갈았을 꺼에요.
과장 좀 보태면 10년에 한 번 나올 투수였죠. 저 유격수 중 즉전감은 안치홍, 실링은 이학주라고 생각했는데 이학주도 결국 미국에서 안 되는 걸 보니 가슴이 아프더군요.
20/06/15 10:21
그렇죠 당시만 해도 혹사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관대하기도 했고요.
이학주는 불의의 부상만 아니였어도 참...지금도 운동능력이 부상 전에 비해 줄어들었는데도 어마어마한데 말이죠.
20/06/15 15:33
본문과는 큰 관련 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현직 에드먼튼 거주중인데, 동네 사람들이 대개 야구에 무관심하더라구요. (아이스)하키에만 환장.
한국 국대팀이 이 동네에서 열린 야구대회 우승했었다 하면, 그런 대회를 여기서 하냐? 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20/06/15 19:42
그래도 나름 세미 프로 비슷한 축구팀, 미식축구팀, 야구팀이 에드먼턴에 다 있는데... 하키 >>>>> 나머지..같은 느낌이긴 합니다 .킄킄
20/06/15 18:40
오지환은 그 장타력과 운동능력 때문에 유격수 된거지 둘 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투수했거나 외야 갔을겁니다.
그리고 동기가 대졸에 타격이 안 되는 윤진호 였다는 것도 이득이었죠. 아니었으면 오지환 딴거 시키고 윤진호 유격수 시켰을테니... 결론 : 야구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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