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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6/28 17:49:48
Name Bar Sur
Subject 광주진흥고 졸업생의 '고교아구의 추억'


내가 광주 토박이로 태어나서 거의 미리 정해진 듯 자연스럽게 진학하고 또 다녀야했던 고등학교는 북구 운암동의 '광주진흥고등학교'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또 모를 테지만, 광주에서는 그럭저럭 이름있는 "남학교"인데 내 경우엔 바로 옆 '진흥중학교'(마찬가지 남학교)로부터 자연스럽게 진학했으므로 그 당시의 감상은 조금 암울했다고 할까? '이름이 있다'라고 하면 3가지 이유 정도가 떠오르는데, 첫째는 진흥고가 지역내에서는 가장 선호받는 대학인 전남대에 진학률이 전교생의 50%에 육박하는 '전남대 진학의 명수'였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당시 광주 지역내에서도 화장실 시설이 가장 낙후되었던 탓에 주변 여러학교로부터 고대유적지의 명소처럼 취급받았던 점이라 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나의 진흥 중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말미까지 학교운동장을 완전 점거하고 있는 '야구부' 때문이다.


어린 나이의 우리 눈에 비친 그들은 한 마디로 운동장이라는 학창시절의 지상낙원을 빼앗아간 강권통치 독재자였다. 야구부 텃새 덕에 일반 학생들은 정규 체육 시간과 점심시간 정도가 아니면 공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뛰쳐나가봤자, 중학교와 고등학교 야구부가 사용 중인 공간에 비해 한심할 정도로 부족한 공간에서 날아드는 야구공 피하느라 구석으로 밀려났고, 구령대를 골대 삼은 반쪽짜리 축구나 족구 따위를 할 수 밖에 없었다.(당시 해태가 어째서인지 연습을 위해 찾아왔던 기억도 있고, 당시 최고 스타였던 이종범 선수의 당시 등번호 7번만을 보고도 전교생들이 환호했던 일도 기억나지만)


덕분에 일반학생들에게 야구부는 그리 인식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는데, 각 반에 한 명씩 배정되었던 야구부원들은 말따나마 조금은 교실 안에서는 이질적인 친구로 느껴졌고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아이들도 그리 많지는 않았던 듯 하다. 그럼에도 야구부에 대해 지속적인 학교의 지원은 일반 학생들에게는 일종의 특권처럼 느껴지기고 했고, 전교학생들에게 합숙을 위한 쌀까지 거둬가면서도 그럴 듯한 성적을 거뒀다는 말은 또 들은 적이 없어서 한때 우리들에게는 도대체가 있으나마나 한 야구부 정도로까지 취급받았었다.


학교가 그리 성적이 특출나지도 않았던 야구부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있었듯 한데, 과거에는 '광주 진흥고'라고 하면 만년 2등에 그쳤던 비운의 팀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73년 창단 이후로 22년간 전국대회 준우승만 6차례 차지했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당시 광주에서는 광주일고 야구부의 주가가 전국적으로 절정이었던 시기고, 같은 지역의 우리 학교 입장에서는 이를 갈며 라이벌 의식을 불태웠으리라.


그리고 내가 진흥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뒤에, 이제는 어느 정도 학생들 사이의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야구부에 대한 인식이 확 뒤집히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당시 봉황대기가 진행중이라는 것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학교 수업 중이었던 우리들은 선생님들의 환호성과 들뜬 목소리에 그저 당황해할 수 밖에 없었다. 남학교의 남자 선생님들은 물론 학생들과 맞장구를 잘 쳐주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근엄한 '척'이라도 하는 게 당시의 분위기였기에 우리는 '혹 우리들이 준 스트레스 때문에 집단으로 약이라도 먹었나'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너희들 서울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라는 게 당시 우리 교실에 들어왔던 모 선생님의 첫 마디였다. 말인즉슨 우리 고등학교 야구부가 봉황대기에서 승수를 쌓아나가고 있다는 것,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4강이나 결승에까지 가게 되면 우리 학교도 전교생이 응원차 상경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학교 전체의 이목이 본선을 위해 서울로 향한 야구부의 경기 소식에만 쏠려있었던 것 같다. 한 경기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반 전체가 "앗싸!"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점심 시간마다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이 모여 야구 경기에 몰두했으며 그것을 슬쩍 들어가서 보고온 학생들은 우편배달부처럼 재빨리 그 소식을 각각의 교실로 전달했다.


그리고 4강, 이어서 결승 진출.(애석하게도 이 부분의 기억이 정확치 않은데 우리가 첫 응원을 간 것이 4강이었는지 결승이었는지 모호하다) '남학교'라는 공간이 이렇게 축제 분위기가 되었던 것은 그 이후로 우리가 고3 때 2002 월드컵 국대의 경기 시간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 상경 응원이 결정되고 교내방송으로 공지되었을 때, 우리는 한 마디로 불타올랐다. 우리는 다른 화제들보다도 야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당시 2학년으로 우리 야구부의 에이스였던 김진우(현 기아 소속)선배는 특히나 교내 최고의 화제의 인물이 되어서 연일 방송으로 '초고교투수의 등장'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들이 마치 그 주인공인양 뿌듯해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약 10대에 달하는 버스를 대절해서 서울로 향했을 때, 그 순간 우리들의 기분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이미 개선장군이 된 듯 의기양양해했고,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떠들썩해져서 4시간 넘는 시간의 상경길의 버스 안을 두근거림과 흥분으로 달구웠다. 특히나 서울특별시의 입성 시와, 경기가 펼쳐지는 동대문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소피가 마려운 강아지들처럼 어쩔줄을 모르고 안절부절 못했던 것 같다.


동대문 운동장 앞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 우리 눈에는 동대문 운동장도 들어왔지만, '두타'나 '밀리올레'처럼 당시 광주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대형의 매장들에도 눈을 빼앗겼던 것 같다. 어쨌든 경기장 안으로 입장이 시작되고 선생님들의 인도에 이리저리 한눈을 팔면서도 그날따라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이동했었다. 운동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외야의 응원석으로 들어섰을 때, 반대편 쪽에는 이미 순천효천고 쪽의 응원석이 들어서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양쪽의 응원전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남학교여서 거리낄 것이 없었던 우리들은 별 갖가지 방법으로 응원을 펼쳤는데 특히 진흥고의 동문이자 당시 광주 무등경기장 해태 응원의 명물로 알려졌던 소위 '응원 아저씨'(왜 그렇게 불렀을까?)가 단상에 올라 우리를 이끌었던 기억도 난다.


이상하게도 지금에 와서는 경기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 날의 흥분되었던 분위기와 공 하나하나에 안절부절 못해하던 우리들 자신의 모습밖에는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상대를 휘어잡던 김진우 선배의 공과, 환호하던 우리와, 날이 어두워져서 동대문 운동장 근처의 매장들이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으로 주변을 휘황찬란하게 물들이고 있던 광경만이 지금은 꿈처럼 모호하게 여겨진다.


4대0 승리의 폭죽과 함께, 진흥고 야구부원 전체가 경기장 위에서 한데 뭉쳐서 어우러졌고 외야쪽 우리가 있던 응원석을 향해 전원이 인사를 했고, 우리는 손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르고 열렬히 박수를 쳤다. 과연 1년 전만해도 우리가 그 야구부원들에게 이렇게 박수를 칠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던 학생이 이 중에 있었을까? 야구부는 서울에서 축하파티를 하기 위해 남았고, 우리는 어두워진 밤 중에 준비되었던 버스를 타고 다시 광주로 내려갔다. 다들 흥분 상태로 버스 안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학생들인 이 날의 일이 우리 인생에서 몇 번 오지 않을 엄청난 사건 중의 하나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날 이후 야구부는 우리 학교의 독재자가 아닌 영웅으로 탈바꿈했다. 휴식을 취하는 그들이 운동장에서 사라졌을 때, 우리는 자유롭게 운동장을 사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학교에서는 야구부를 위한 전용 연습장의 건축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활발히 오고가기 시작했고(그런 돈이 있으면 화장실부터 바꿔달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서울에 가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2학년이 된 우리는 다시 한 번 서울로 올라갔다. 광주진흥고는 2000년 봉황대기 우승이후로 대통령배까지 우승,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2001년 청룡기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덕수정보고와의 결승전, 상대는 준결승에서 경기고에게서 삼진 20개를 뽑아내며 청룡기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류제국 선수가 버티고 있었지만, 에이스 김진우와 지금껏 폭발적인 타격을 보여준 타선에 대한 믿음이 철통 같았던 우리는 다시 한 번 동대문 운동장을 향하면서도 불안감은 거의 느끼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한 번 지난 번의 달콤했던 승리를 맛보지는 못했다. 기억력이 붕어수준인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건 준결승에서 지나치게 많은 공을 던져야 했던 김진우 선배가 결승전 선발출장을 하지 못했고, 류제국 선수의 피칭은 과연 청룡기의 괴물다웠다는 점이며, 그 해 타격으로도 알아주던 진흥 야구부의 타격이 그날 뒤늦게 빛을 발하고 김진우 선배의 후반 등판으로 약해져 가던 우리의 응원도 다시 열기를 띄웠음에도 결국 최종적인 역전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해 3학년이 된 우리들의 마지막 상경 응원 경기가 되었다. 밤을 틈타 광주로 내려오는 버스의 기억 가운데 하나가 생각나는데, 힘이 빠져서 하릴없는 우리를 위해 버스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인공으로 나온 코난과 비슷한 환타지 액션 영화를 틀어주었는데 그걸 끝까지 보면서 광주로 내려왔었다. 어째서인진 알 수 없지만 별 볼일 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희망에 차서 기분좋게 잠이 들어 광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내가 다시 한 번 그 때를 반추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이 글을 적고 있음에도 나는 그 날의 기억의 주인공은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야구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맞이했지만 내가 졸업할 때까지 사실상 '그들'로 머물러 있던 야구부원이야말로 그 날 기억의 진짜 주인공임은 자명하고, 우리는 조연 겸 엑스트라로서 아주 기분좋은 영화 한 편을 찍은 듯 그저 기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좋지 않은가. 분명 한 건 우리 인생에 정말 대단한 역사적 사건이 된 그 날들의 열기가 뻗쳐올라가던 밤하늘 아래 그들과 함께 우리가 있었다는 사실이고, 그 사실에 대해서 내가 지금껏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난 지금도 아주 기분이 상쾌하다.


앞으로도 진흥고가 결승무대에 진출하고 내가 응원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날의 기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그날의 최고의 멋진 기억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던 '그들'에게, 지금도 그들을 응원하고 있는 팬으로서 파이팅을 외치며, 이 길었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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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ngWoong
05/06/28 18:04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 저도 중학교 때 야구부가 학교에 있어서 그들을 무지도 싫어했죠~ 싸움이라도 나면 상급생들부터 우르르 달려오고 운동장은 글쓴이님 말대로 항상 그들의 차지였구요..
근데 그 때 우리반에서 뛰던 야구부원중 한 명이 지금 프로팀에 입단해서 열심히 뛰고 있는 걸 보고 어렸을 때의 미움보다도 반가운 마음이 훨씬 더 강하더라구요~

그리고 지금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 야! 쟤 우리반이었어!" ^^
조폭블루
05/06/28 18:15
수정 아이콘
진흥고 옆 서강고는 언제나 진흥고와 적이엇죠 (음?;)
리드비나
05/06/28 18:16
수정 아이콘
제가 다닌 충암고등학교는 제가 2학년때인 95년도 봉황기때 현재 두산의 에이스 '박명환'선배와 기아의 매년 3할을 치고있는 '장성호'선배를 앞세워 우승을 했었죠.. 그 당시 8강에 신일고를 역전승으로 이기며 감동의 물결을 주더니 결승에서 결국 우승을 먹고 저 역시 동대문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누군지도 모르는 야구부원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울수 없었습니다. 정말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단결됨 글보니 구구절절 느껴지네요
steady_go!
05/06/28 18:37
수정 아이콘
저희 옆 학교였던(이사갔죠.) 진흥고네요. 제 모교인 서강고 지나갈때 마다 가끔씩 보이던 야구복 입은 학생의 압박...
오렌지주스
05/06/28 19:04
수정 아이콘
아~이상하게~ 반가워요..하하. 전 그때 결승상대 순천효천고 졸업생입니다.전 그때 2학년이였네요. 저희 학교 야구부도 결승진출 전까진 그리 환영받진 못했는데 그 이후로(비록 준우승이지만) 인식이 많이 달라졌던 기억이 나네요.
데몬부활
05/06/28 19:11
수정 아이콘
앗 효천고 졸업생이라..-_- 나돈데.-_-;
우리 2~3학년때던가? 준우승한 기억이 한번.;;
비회원
05/06/28 19:13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광주진흥고 출신 한국시리즈의 사나이 김정수 투수 얘기도 나올줄 알았는데... 김진우 선배....
아 이 엄청난 세대의 벽... ^^;;;
05/06/28 20:16
수정 아이콘
크 글 잘쓰시는군요.. 한편의 수필을 보는듯한 ^^
05/06/28 21:37
수정 아이콘
제친구형이 이떄 진흥고 김진우 담으로 제2에이스 김경선(?) 이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그래서 이때 수업시간에 몰래 티비 틀어놓고 봤더랬죠;; 지금은 고대 에이스라고 하던데 하여튼 그때 정말 진흥고 많이 응원했습니다 요즘은 학교를 옮겨서 야구부 애들이 저희 학교 식당들 쪽으로 밥먹으러 가끔오더라구요ㅎ
셋쇼마루사마
05/06/28 22:03
수정 아이콘
오호라~~ 드뎌 동문 후배를 만나는군요...
진우가 선배라^^...시간 참 많이 흐른듯 하네요...
전 고 김상진 친구인데...(그 녀석 많이 안타까웠습니다....TT)
근데 제가 학교 다닐때랑 틀린점이 하나 있네요...
전통적으로 타격이 좋다??? --> 우리때는 투수 하나로 먹고 사는 팀이였는데말이죠....상진이가 분전해서 4강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아무튼 고등학교 그립습니다.....
05/06/28 22:17
수정 아이콘
진흥고라면 그저 버스타고 다니면서 가끔 만나던 학교이군요... ^^;;;;;
뭐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문열어 놓으면 무등경기장에서 울려오던 함성 소리가 아직도 생각나는 듯 합니다.
전남고 다녔던 녀석들은 8회말에 입장하면 공짜라고 자습 시간 끝나기 무섭게 달리던 적도 있었다고 하던데 말이죠......
벌써 오래된 추억이네요.
05/06/28 22:22
수정 아이콘
역시나 기억력의 구멍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군요. 다시 차분히 알아보고(또 생각해보고)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답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05/06/28 22:23
수정 아이콘
봉황대기는 지역 예선이 없는 대회죠 ^^;
아마 본선 경기였을 겁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 4개는
대통령배 - 청룡기 - 황금사자기 - 봉황기 순으로 열립니다.
봉황기 우승 후 안 지고 올라간 전국대회라면 대통령배일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개인적으로 야구를 무지 좋아해서
학창시절동안 우리학교도 야구부가 있었으면...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글을 보니 부러울 따름이네요.
저희 학교는 축구부가 있었는데, 성적이 영 시원찮아서
응원을 가 본 기억이 없네요;;
05/06/28 22:28
수정 아이콘
GogoGo님께// 봉황기 다음 대통령배까지 전승으로 우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때는 응원을 가지 않았었거든요.(저희 학년만 안 간건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 그리고 다음 청룡기 결승에 다시 응원을 가게 된 거죠. 지적 감사합니다.
05/06/28 22:39
수정 아이콘
진흥고...김정수선수와 이대진선수가 떠오르는군요
이대진선수 참 좋아했었는데...
언제 다시 프로야구를 보며 열광할때가 올런지....
글 잘 읽었습니다
아 그리구 프로야구에서 가장 우승을 많이한 선수가 김정수선수
아니던가요? 가물가물하네요
05/06/28 22:47
수정 아이콘
Bar Sur 님// 그런 것이었군요..
하긴 김진우라는(저하고 동갑이지요)거물급 투수가 버티고 있으면
두개 대회 연속 우승도 충분히 가능한게 고교야구지요 ^^
좋은 학교 다니신 것 같아 정말 부럽습니다.
딥퍼플
05/06/29 08:25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상관없지만 저는 탁구 전국가대표 김택수 선수가 나온 광주 숭일고 출신이네요. 김택수 선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높았다죠. 야구쪽은 우리 아버지가 광주일고를 졸업해서 주로 광주일고를 응원했죠.
김대선
05/06/30 20:29
수정 아이콘
아.. 저도 진흥고등학교 출신인데.. 전 Bar Sur 님보다 한 6년정도 빨리 다닌것 같습니다. 19기 니까...
기억나는 추억이라면, 음악실에서 저녁마다 기도모임을 가졌는데, 그중 몇번 음악실에서 귀신을 본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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