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사랑받는 학생, 박정석
며칠 전의 일이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각종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동영상 하나가 있었다. 디씨인사이드의 스타 동영상 갤러리에 있던 '학교에 꼭 이런놈 있다 - 프로게이머 편' 이라는 이 글은 제목 그대로 학교에서 꼭 있을법한 녀석들을 프로게이머들의 모습을 통해 나타낸것이다. 박장대소를 하고 웃은정도는 아니였지만, 분명 봤던 시간이 아깝지 않을정도로 잘 만든, 재밌는 영상이였다. (못 보신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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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랭킹중에 필자가 가장 크게 감명을 받았던 부분은 '시험공부 안하고도 시험에서 1등하던' 김택용도, '야한 얘기를 하는' 김태형 해설 위원도 아닌, '선생님한테 사랑받는 놈', 박정석이였다. 그 동영상 하나로 감명을 받았다고 하면 우스울지 모르겠으나, 박정석이라는 선수는 짧게 잡아도 지난 5년간 임요환 부럽지 않게, 한때는 그 이상으로 팬-해설자-관계자 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복받은 사람'이다. 같은 사대천왕으로 불리우는 이윤열, 임요환, 홍진호등은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인해 사랑받은 만큼의 비난을 받아왔고, 박정석의 업적과 견줄 법한 강민은 KTF 이적후 한동안 '피시방리거' 라는 비아냥을 받아왔으며, 박정석보다 더 강력한 전성기를 보여줬던 최연성은 게임 외적으로는 이중계약 사건으로 인해, 게임 내적으로는 한두번만 연속으로 져도 '한물갔다'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안티들의 농도가 세고 거칠다는 게임리그계에서, 박정석, 이 남자가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필자는 지난 6년간의 박정석의 짧고도 긴 선수생활을 그의 전성기를 바탕으로, 개인리그 중점의 분석을 해보기로 했다.
19세 소년, 푸른눈의 전사를 꺾고 메가웹에 서다 - Debut of Reach
비록 그 전에 itv에서 방송무대를 경험하긴 했으나, 박정석의 데뷔는 아무래도 2001년 코카콜라배 스타리그로 보는게 가장 옳지 않을까 싶다. 당시 '세계 최강'이자 전대회 아쉽게 3위를 차지한 Grrr, 기욤 패트리를 예선에서 꺾고 온 장본인이 바로 이 박정석인 것이다.
(코카콜라 스타리그배 당시 박정석이 속한 예선 6조. 그 전까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기욤패트리는 이 경기에서 탈락 후 끊임없는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그 '마술사' 기욤을 꺾은 박정석은 아직까지도 스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마치 Grrr가 그랬던것 처럼. 물론 이제야 이런말을 한다는게 가능하지만. 이미지 제공 - pgr21)
그 당시 코카콜라배 스타리그를 잠시 회상해보면, 전 대회인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에서 임요환의 승리로 그동안 죽어가던 테란진형은 마침내 낭보를 맞았다. 거기에 때 마침 릴리즈된 1.08 패치는 테란에게 있어선 그보다 더 좋은 천군만마가 있을수 없었다. 맵까지 라그나로크를 필두로 테란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으니, 그야말로 스타리그 출범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저그진영 역시 비록 프리챌배 스타리그처럼 4강에 저그 3명이 들어가던 행복한 시절은 아니였으되, 장진남, 홍진호, 이근택등을 압세운 신진세력들은 7명의 저그유저들을 입성시키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프로토스였다. 한방러쉬의 대가 임성춘이 2시즌 연속 본선진출엔 성공했으나, 전시즌 4위를 차지한 '악마토스' 박용욱은 수능때문에 진출을 포기했고, '푸른눈의 마술사' 기욤 패트리 역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선탈락 했다. 결국 다른 대안은 하나. 당시 나이 19세의 신예 박정석이였다. 어린나이에, 예선에서 기욤패트리를 꺾은 점, 본선에 진출한 두 프로토스중에 한명이라는 점부터 스타리그가 낳은 당대 최고의 스타중 한명의 출발은 그 누구보다도 기구했다.
당시 박정석에 대한 해설자들의 평가를 빌리자면, 엄재경 해설위원은 그의 어마어마한 물량은 왼손 한손에서 나오는것이라며 '한손토스'라고 불리운다고 얘기한 바가 있다. (사실 이 부분은 6년전의 일이라 굉장히 애매하긴 하다. 필자의 기억에는 한손토스라고 분명히 말했던것 같다.) '한손토스'라는 별명이 실제로 언급이 됬든 혹은 필자의 착각에서 나온것이든, 그의 물량은 당시 프로토스 유저들중에서는 다섯손가락안에 꼽힐 정도였고, 이 진가는 그 다음시즌 SKY 2001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A조의 당시 최강이였던 임요환을 상대로 진가가 나타났었다. 전략적인 카드를 들고 나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임요환을 상대로 박정석은 '단지 물량'만을 통해 '힘'으로 Boxer를 물리쳤다. ('임요환은 토스한테 쥐약' 이라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것도 이 경기에서 지고 나서부터였다.) 이 경기 이외에도 거의 모든경기에서 박정석의 물량을 느낄수 있는 경기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경기였던 코카콜라배 16강전 홍진호선수와의 경기 이후 '나는날고싶다'님이 작성하신 글의 일부분을 발췌해본다.(이경기에서 박정석은 지며 8강진출이 좌절됬었다.)
홍진호 선수 러커+히드라+가디언 조합으로 박선수 앞마당으로 돌진..박정석 선수는 거의 4부대 가까운 질럿과 2기의 옵저버로 히드라+러커를 막아냈으나..(끝내주는 생산력..+_+) 가디언을 막지 못하고 끝내 지지..
프토의 희망이었던 박정석 선수가 8강이 좌절되었네요..이 게임도 꽤 장기전이었는데..하여튼 박정석 선수의 극악(?)의 생산력을 볼 수 있었음..박선수가 6시쪽 언덕멀티만 알았다면 그래도 나았을텐데..안타깝게 보였음..
(원글 주소 : https://pgr21.com./zboard4/zboard.php?id=newvod&no=37)
박정석은 데뷔시즌에서도, 그리고 임요환을 이겼던 그 다음시즌에서도 입상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16강-8강진출을 하며 한계단씩 성장한것 뿐만 아니라, 프로토스의 암울기의 시발점에서 부터 박정석은 그곳에 있었고, 실패를 경험했다. 초창기의 박정석에게 김동수같은 '여우스러움'을 느끼긴 힘들었으나, 그의 뚝심있는 생산력은 수많은 토스팬들에게 희망과 임팩트를 동시에 주었다. 그리고 차기시즌인 네이트배를 쉰 뒤, 박정석은 돌아왔다. 무당스톰과 함께.
영웅, 가을의 전설이 되다 - Reach in Autumn
박정석이 다시 스타리그에 돌아왔을때, 프로토스의 암울기는 지속되고 있었다. 코카콜라배와 마찬가지로 16강에 입성한 스타리거는 자신을 포함해 두명뿐이였고, 거기에 두시즌 연속으로 가을을 우승했던 '가을의 주인' 김동수는 16강전에서 허무하게 3패를 기록,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줬다. 1년사이 맵이 변해있었고, 참가선수들도 어느정도 변해있었지만, 프로토스의 암울함은 변한것이 없었다. 그 암울함속에서도 다른점을 찾자면 단 하나, 그것을 풀어가야 할 영웅은 더이상 임성춘도, 김동수도 아닌 박정석이였다.
16강을 강도경, 홍진호라는 당대의 두 지존 저그유저들을 상대로 재경기끝에 어렵게 올라왔던 박정석은 8강전에서 베르트랑, 변길섭을 상대로 2연승을 거두며 비교적 쉽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8강이 아니라 4강이였다. 4강에서 다시 만난 홍진호는 그가 만날수 있는 저그중 가장 무서운 저그였고, 스타리그 공식전에서는 0승 4패를 기록중이였다. 박정석이 이전에 진출했던 모든 대회에서 홍진호를 만났고, 졌으며, 그 경기들로 인해 탈락이 확정됐었다. 이미 16강에서도 재경기 포함 두번을 졌던 상대였기에 그의 부담은 그 어느때보다 컸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사상 최초로 하루에 5선 3선승제가 펼처진 이 4강전은, 지금까지도 올드팬들 사이에서는 회자되는 저그 대 프로토스전 명승부중 명승부로 꼽힌다. 한판을 따내면 한판을 빼았기고를 반복하며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던 5차전, 개마고원에서 두 선수는 저그대 프로토스전에서 보여줄수 있는 모든것을 보여줬으며, 이 치열한 경기의 승리자는 박정석이였다. 당시 승부를 정리한 글을 발췌해본다.
...(중략) 더 이상의 물러설 곳이 없는 두 선수의 마지막 5경기는 1경기와 같은 맵인 개마고원 이었다. 박정석 선수는 1경기와 마찬가지의 전략을 사용, 홍진호 선수를 괴롭혔다. 그러나 홍진호 선수는 적절한 방어와 유닛 생산으로 초반의 어려움을 극복, 자신의 별명과 같이 박정석 선수의 앞마당을 폭풍과 같이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박정석 선수로서는 앞마당을 잃으면 경기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필사적인 방어를 펼쳤으며 결국 방어에 성공, 홍진호 선수가 주춤한 틈을 이용, 역으로 홍진호 선수를 밀어붙이기 시작하였다. 공격을 감행하며 다수의 확장을 시도, 자원에서 앞서기 시작한 박정석 선수는 프로토스의 힘을 보여주며 홍진호 선수의 기지를 초토화 시키지 시작하였다. 결국 홍진호 선수는 자원을 채취할 수 있는 모든 기지가 파괴되면 항복을 선언, 박정석 선수가 승리하며 3대2로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원글 : https://pgr21.com./zboard4/view.php?id=newvod&no=746)
불리함이 점쳐지던 상황에서 박정석의 승리는 그 무엇보다도 짜릿했고, 그가 4강전을 치루는동안 종종 튀어나왔던 하이템플러의 사이오닉 스톰은 마치 신내림을 받은것 같아 '무당 스톰'으로 표현되었다. 스타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디선가 들어봤을법한 '프로토스는 남자의 로망'이라는 표현은 박정석에게 그대로 들어맞았고, 이미 홍진호와의 혈투끝에 승리를 거둔 그는 더이상 유망주가 아니였다. 그에게 영웅이라는 칭호가 붙혀지기 시작했고, 영웅은 그런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다 알지 않는가. 4강전이 끝난 22일후 올림픽공원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마이큐브, 질레트, 그리고 EVER 04 - Reach in Starleague, as a Veteran
스카이배 우승 이후 스타리그에서는 거물급 선수들이 들어옴과 함께 거물급 선수들이 빠져나갔다. 이윤열, 서지훈, 박경락이 전자의 케이스고, 김동수와 박정석은 후자의 케이스다. 김동수의 경우는 군입대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해도, 박정석은 우승자 징크스에 제대로 시달리며 성적부진과 함께 급추락했다. 이윤열과 서지훈이 스타리그를 제패하고 박경락이 2시즌연속 4강에 진출하는 동안, 박정석은 잠시 밑에 머물러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박정석을 의심하지 않았고, 누구나 한번쯤 겪을수 있는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맞았고, 박정석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이큐브 스타리그배에서 보다 생산적이고, 보다 전략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초창기의 박정석이 물량에 의존하지만 전술적인 측면이 조금 부족했었다면, 마이큐브 당시의 박정석은 자신의 강점은 더욱 보완하고, 약점은 오히려 강점으로 키워버렸다. 16강 도진광전에서의 헐루시네이션을 이용한 질럿 마인밭 뚫기, 8강 서지훈과의 경기에서의 패스트 다크, 4강 강민과의 경기에서의 마인드컨트롤, 그리고 3,4위전에서는 아비터의 스테시트 필드를 이용해 질럿을 얼려 입구막기 까지 - 각각의 스테이지에서 박정석은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할수 없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의 이용되지 않는 전략들을 가져와 팬들을 열광시켰고, 해설자들을 경악시켰다. (이후 박정석의 캐리어 마인드 컨트롤 전략은 또 한번 실행되었었다 - 박정석 본인에 의해.)
그 시즌 가을의 주인은 절친한 친구 박용욱이 되었지만, 박정석은 잃은것이 전혀 없었다. 역사상 프로토스의 최전성기로 불리웠던 그때의 한 축으로 남았었고, 반년이라는 짧지만 긴 슬럼프는 잊혀진지 오래였다. OSL에서의 단 두번째 4강 입성이였을 뿐인데, 그는 이미 스타계에서 빼놓을수 없는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정확하게 2시즌 후, 박정석은 또 다시 4강전에 진출했다. 이번 상대는 '흑마술사 테란', '벙커링의 제왕' 나도현이였다. 질레트배 당시 스타리그에서 가장 큰 이슈의 중심에 서있던건 세 명 - 최연성, 박성준, 그리고 나도현이였다. 최연성은 스타의 신도 이겨버릴듯한 무시무시한 강력함으로, 박성준은 저그 최초우승을 노리는 겁없는 신예로, 그리고 나도현은 논란이 넘치는 벙커링과 애뜻한 외모에 실력까지 양념으로. 인터넷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박정석의 실력은 예전에 비해 하락하기는 커녕 상승했으나, 이미 세월은 꽤 변한것 같았다. 임요환-홍진호가 없던 최초의 스타리그, 프로토스의 짧던 전성기도 끝나버린 그 때. 설상가상 박정석은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었고, 이때문에 치료를 위한 은퇴설도 모락모락 나오던 참이였다.
하지만 박정석은 박정석이였다. 진짜로 저 먼 우주에 프로토스라는 종족이 존재를 한다면, 그 모든 프로토스인들이 믿을수 있는 단 한명의 수장. 그것이 영웅이였다. 노스텔지아에서 셔틀에 타있던 한 질럿은 기가막힌 장소에 착륙, 나도현의 메카닉 부대를 한번에 녹여버렸고 그 마인 대박은 바로 박정석을 두번째 결승에 올려놓았다.
흔히들 사람들은 '부상투혼' 이라는 단어를 남발하고는 하는데, 박정석에게 있어서는 아깝지가 않은 단어선택이였다. 질레트 결승이 끝나고는 인터뷰에서 '주사를 맞으면서 훈련한다'고 얘기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고백하기도 했었다.
"요즘 목에 주사를 맞았는데 통증이 많이 없어졌다. 한때는 이번 시즌을 쉴까도 생각했으나, 당분간 물리치료와 약물치료, 수영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선수 생활을 끝까지 해보겠다." - 박정석, 2004년 8월 28일 파이터포럼과의 인터뷰에서.
하지만 그의 부상투혼은 단순히 질레트배 준우승으로 그치지 않았다. 커리어 통산 첫 2대회 연속 4강진출을 성공하더니, 당시 그 누구도 꺽지 못하던 '머슴' 최연성을 상대로 할수있는 모든것을 다했었다. '프로토스의 무덤' 이라는 말이 더 잘통하는 머큐리에서 50분이 넘는 혈투끝에 승리를 거둔 1차전은 비록 지금은 잊혀진 감이 있지만 당시 팬들에게는 큰 전율이였다. 2대회 연속 결승진출에는 실패하며 임요환과의 재대결은 불발이되었으나, 이후 펼처진 3-4위전에서는 머큐리에서 저그를, 아니 홍진호를 상대로 '역사상 최강의 한방러쉬'를 선보이며 3위를 차지했다. 역대 프로토스중에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2번 결승진출한 프로토스는 단 4명이며, 4번 4강에 진출한 프로토스는 단 한명도 없다.
'이보다 더 극적일 순 없다' - Reach in MSL
잠시 주제를 바꾸자. 엠비씨게임 스타리그. 정말 흔하지 않은 박정석의 안티중 어느 한 사람은 '박정석은 온게임넷에서만 잘하는 반쪽선수' 라는 비아냥을 한적이 있었다. 뭐, 솔직히 말하자. 사실이였다. MSL에서 박정석은 그렇다할 성적은 커녕 예선에서 헤매는 경우가 허다했다. 온게임넷에서 그 많은 드라마를 써가는 동안 MSL의 역사 기록속에 박정석의 이름은 제로였다. 강민, 이윤열, 최연성등이 챕터를 써갔고, 박정석에게는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단 한번, 박정석의 이름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멋있게 쓰여진 기회가 있었다. 바로 2005년 여름에 펼쳐진 우주배 엠비시게임 스타리그가 그것이다. 스타리그는 잠정 휴식을 들어가던 그때, 박정석은 자신의 실력과 스타성을 MSL에서도 유감없이 뽐내버렸다.
드라마의 본격적인 막은 패자조 준결승부터 시작된다. 최연성. 비록 그전 시즌 박태민에게 우승자 자리를 잠깐 내주긴 했지만, 최연성에게 있어서 MSL은 자신의 집이였고 보금자리였다. 0%의 운을 가지고 100%의 실력으로 3연패를 차지했던 그였기에, 많은 사람들은 최연성의 우세를 점쳤다. 박정석이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5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박정석은 그런 예측에 대해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3차전 레퀴엠에서의 마인대박은 그 대답을 확실히 보여줬었고, 박정석은 자신의 스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대0으로 상대를 셧아웃 시켜버렸다. 그것도 괴물 최연성을.
각본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1년에 프로토스에게 2번지는 조용호를 상대로 박정석은 프로토스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라고 하면 너무 과분한 표현일까. 하지만 그랬다. 프로토스라는 종족은 언제나 억압 받아왔고, 오랫동안 왕좌에 앉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뚝심으로 뚫어내고, 결국 사나이답게 힘으로 끝내며 시청자들에게 전율을 줬다. 4강전이 그랬다. 2대1로 뒤져있던 상황에서 러시아워에서의 4차전. 박정석은 시리즈 내내 조용호의 무지막지함에 압박받아왔고, 경기내내 그래왔다. 하지만 그 불리한 상황을 이겨낸건 뚝심이였다. 1시간이 넘는 역대 최장시간의 경기에 꼽힐 4차전. 박정석의 마에스트롬과 함께 한방에 끝냈던 그 장면은 보고있던 필자가 물컵을 깨트릴 정도로의 큰 전율을 주었다. 겨우겨우 스코어는 원점을 맞췄는데 끝은 허무했다. 하드코어 질럿 러쉬. 스타크래프트의 태생이후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전략으로, 6분만에 5차전을 끝낸 뒤 박정석은 헤드셋을 벗었다. 이보다 더 극적일수 없었던 시리즈. 박정석의 손에서 이루어 진것이다.
"이게 프로토스입니다! 이게 프로토스에요!" - 이승원, 2005년 7월 21일 박정석과 조용호의 4강전 4차전 경기중 마에스트롬에 걸린 디바우러를 처리하는 박정석을 보며.
그리고 2007년, 돌아온 박정석 - Reach back in Starleague
5시즌이라고 한다면 2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군대를 입대해서 제대가 가까울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동안 박정석의 이름은 스타리그 본선진출자 명단에 없었다. 초대받는 사람이 8명으로 늘어난 2006년에도 그는 초대받지 못했다. 모두가 그의 전성기는 꽤나 멀어진것처럼 보였고, 마이큐브배때 돌아왔던것처럼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24명에서 16명으로 스타리그의 참가자의 수가 회귀되자 돌아왔다. 변한것은 없었다. 그를 기다리던 팬들은 박정석이 듀얼에서 염보성을 꺾고 올라오자 우뢰와같은 환호가 담긴 댓글들을 올렸고, 모두가 영웅의 귀환을 반겼다.
그렇게 그의 귀환을 환영하던 때가 엊그제 같던데 벌써 박정석은 8강에서 1승을 거뒀다. 3판 2선승제에서 1승을 먼저거둔다는게 얼마나 유리한지는 삼척동자도 알것이다. 지금 박정석은 본인의 5번째 스타리그 4강진출을 노리고 있고, 만약 이를 이룰시에는 이윤열을 제치고 임요환, 홍진호 다음으로 4강 진출횟수 단독 3위에 오르게 된다. 더욱 더 고무되는 점은 단순한 대진운인 아닌, 100% 경기력으로 이뤄내고 있는 성과인지라 어쩌면 3번째 결승진출, 개인통산 2번째 스타리그 우승을 기대해볼만도 하다. 뭐 어떻는가? 단순한 확률상으로 따지면 현재 우승확률은 8분의 1이고, 4강 진출만 한다면 25%인데.
[박정석의 스타리그 통산 성적. 56%의 승률에도 불구하고 그가 리그에 끼쳤던 영향은 역대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박정석, 그의 '멋진' 6년간의 커리어는 아직도 진행중.
박정석을 표현할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필자는 '멋지다'를 뽑고 싶다. 사전적인 의미는 일단 버려두자. 간단한것부터 시작 - 그의 외모, 헤어스타일, 등짝(!). 사람들의 감탄사는 '와, 멋진걸?' 이라는 말로 표현될수 밖에 없는 것들 아닌가?
그의 잘생긴 외모보다 더 멋진건 선수로서의 박정석이다.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은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라는 단 한마디로 강철과도 같은 남성들의 마음을 녹인다. 박정석은 포기를 하지 않는다. 상대가 강할때는 물론이고, 자신이 홀로 남은 프로토스일때도, 목디스크가 자신을 시험할때도, 그리고, 4시즌 연속 스타리그 입성을 실패해 자신이 걷던 일을 포기하고 싶을정도의 유혹이 들때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멋진건 그의 경기내용이다. 이스포츠를 스포츠라고 불리울수 있는 이유중 하나는 스포츠에서 느낄수 있는 짜릿한 감동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예측할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미리 짠 듯한' 극적인 순간들. 그 중심에는 박정석이 있었다. 비록 최후의 우승자는 다른사람이였던 경우가 더 많았지만, 박정석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긴 갈증끝에 언제나 무언가의 해소가 주어진다. 그것이 우승이든, 준우승이든, 혹은 단순한 예선 통과이든.
사람들이 알면서도 언급은 잘 되지 않고있는 사실 하나. 박정석은 현존하는 게이머중 가장 오랫동안 롱런하고 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이윤열보다 일찍 데뷔한 그는 홍진호, 임요환이 없는 이 시점에서 가장 일찍 스타리그를 데뷔한 사나이다. 2001년.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박찬호 전성기때는 진짜 대단했는데요,' 혹은 '김병현 전성기때가 지금까지 이어졌더라면...' 이라고 마치 옛일을 향수하는 발언들의 근원지는 모두 2001년이였다. 그 먼 옛날과도 같은 2001년에서 부터, 박정석은 짧아보여도 긴 선수인생을 걸어왔다. 그리고 스타리그 역사의 3분의 2 넘게 함께 해온 그의 커리어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긴 장문을 끝까지 읽은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다 읽어와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필자가 초반부에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자고 한다. 그것도 똑같은 질문으로.
박정석, 이 남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안 좋아할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