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0/07/18 13:11:36
Name 착한밥팅z
Subject [일반] 담배를 끄다.
이 주제로만 4번째 글이네요. 갈수록 글이 못나지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지난 글에도 어김없이 형편없는 글에 과분한 칭찬과, 좋은 말씀들을 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더불어 솜씨없는 글로 수고로운 클릭의 수고와 읽으시는 동안 소중한 시간을 뺏어 죄송합니다.
글을 탈고하지 못해서 항상 글이 엉망입니다. ㅠㅠ
이번 글도 부디 예쁘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점심시간.
열한시부터 두시간이나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다렸던 점심시간이라 들떴던 걸까.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가방을 들쳐 메고는 같이 밥 먹는 스터디사람들을 독촉한다.
하지만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나이차의 서른 두 살의 누나 한 명.

누나 그럼 저 밖에서 기다릴게요! 빨리 오셔요!
기분 좋게 외치고는, 같은 스터디의 형과 함께 현관으로 나간다.

마음이 급한 나는 벌써 입에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고,
현관을 나서자 마자 불을 붙이는데,

그 앞 벤치에 앉아 있는, 또 그 두 사람.

"안녕하세요! 안녕!"

항상 어디서 마주칠지 모른다며 마음의 준비를 한 보람이 있구만.

생각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넨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터디 형과 현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담배 연기를 폐 속 깊숙히 빨아 들이는 습한 날의 오후.

의식적으로 그 두 사람을 쳐다보진 않지만, 그래도 완전히 돌아 설 수는 없어서
내가 제일 자신 없는 옆모습을 그들에게 보이며 서 있는 오후.

평소보다 목소리가 커지고, 평소보다 얼굴이 붉어지고, 평소보다 크게 웃고 있다는걸
제발 눈치채지 못했으면 하지만

그래도 너라면 모를 리가 없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오는 과장된 행동들.

두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담배를 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담배피는걸 끔찍이도 싫어하던 니 표정이 떠올라 담배를 든 오른손이 멈칫한다.

나도 모르게 힐긋,
니 눈치를 보는데,
그 형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 한 개피.

죽어도 안된다며 피는 거 걸리는 순간 끝이라고 무섭게 몰아 붙이던 니 얼굴이 생각 나면서,

그 형은 왜 펴도 되는 걸까,
궁금해진다.

고개를 숙이며 눈으로만 쓴 웃음을 지어 보는데,

아직 담배 못 끊었나 보네...

니 입에서 모기처럼 웅얼거렸고
내 귀에서 천둥처럼 메아리친 한 마디.

뭔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며 담배를 비벼 끈다.

너 때문에 일년을 끊었는데,
너 때문에 일년을 피웠구나.

담배를 끄며, 그런 생각이 들어 그 날 점심은 맛이 없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0/07/18 14:39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네요 ㅠㅠ

2년 전에 사귄 여자친구가 담배를 끔찍하게 싫어해서 사귀는동안 끊었다가 헤어진 후에 다시 피기 시작했습니다. 헤어지고 한 6개월 뒤에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그녀가 오는걸 보고 저도 모르게 황급히 껐던 적이 있네요. 그리고 그녀와 가볍게 인사하고 그녀가 안에 들어가고나서 얼마 후에 혼자 쓴웃음을 짓고 다시 담배를 핀 적이 있습니다. 담배란게 참...
swflying
10/07/18 17:4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떤감정인지 알것 같기도하네요.
저도 얼마 전에 예전에 사귀던 분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뭐 그냥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더라고요.
암턴 더 좋은 사랑 하시길 바라며.
몸에 해로우니 담배는 끊으세요^^;
10/07/18 20:15
수정 아이콘
아련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제티마로
10/07/19 00:48
수정 아이콘
좋은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배고파잉
10/07/19 04:39
수정 아이콘
뭔가 큰줄기에서 벗어난거 같긴 하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네요.
그 형은 왜 펴도 되는걸까..
'이 사람은 담배를 피던 말던 그저 좋다'가 아닌
'이 사람은 담배를 피던 말던 신경안쓴다'로 받아들이시면 좀 편하실 거 같네요.

힘냅시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3579 [일반] 치열한 일요일 예능 승자는...? [69] 똥꼬털 3가닥처6555 10/07/19 6555 0
23577 [일반] 대표팀차기사령탑? [28] LVMH3937 10/07/19 3937 0
23575 [일반] 아이폰4? 갤럭시s? 다 필요없고 갤플만 기다리는 피지알러입니다. [23] 케이윌7126 10/07/19 7126 0
23574 [일반]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7/20(화) 프리뷰 [10] 멀면 벙커링2825 10/07/19 2825 0
23573 [일반] 오랜만에 연아소식 ~ [23] ThinkD4renT4122 10/07/19 4122 0
23572 [일반] 왕의 귀환이 될것인가? 명가의 몰락이 될것인가? WP7 [28] 러프윈드5347 10/07/19 5347 0
23570 [일반] 80점 짜리 겔럭시 S VS 80점 짜리 아이폰 3Gs [91] lovehis8017 10/07/19 8017 0
23569 [일반] 펜홀더의 영원한 챔피언 삼성생명 유승민 선수. (유승민 선수 이야기) [6] 김스크3171 10/07/19 3171 0
23566 [일반] 아이리버 와 CYON, LGU+ 와의 만남 [15] 기다리다5571 10/07/19 5571 0
23565 [일반] 소나타 k리그 13R 경기 결과 [16] 맛강냉이2495 10/07/19 2495 1
23564 [일반] [프로야구] 엘-롯-기의 신나는 4강싸움~ [51] 허저비4554 10/07/19 4554 0
23563 [일반] 부족(不足) [8] 누리군2962 10/07/19 2962 1
23562 [일반] [야구] 박찬호 선수, 동양인 최다승 -2 [48] The HUSE5407 10/07/19 5407 0
23561 [일반] 스티브잡스의 물귀신작전 어떻게보시나요? [133] 파일롯토10240 10/07/19 10240 0
23560 [일반] [남자의자격] 배다해양,서두원씨,신보라양 영상 ... [34] 사신토스10572 10/07/18 10572 0
23559 [일반] 김택수 국가대표 감독님과 탁구를 이야기하다. (김택수 감독님 이야기) [3] 김스크3143 10/07/18 3143 0
23558 [일반] 양키스 구단주 토트넘 인수설? [11] 그린나래3796 10/07/18 3796 0
23557 [일반]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7/18(일) 리뷰 [19] lotte_giants3359 10/07/18 3359 0
23556 [일반] iPhone4의 출시 지연에 대해 [18] 허저비5312 10/07/18 5312 0
23555 [일반] 조금만.. 조금만 진정해 주시면 안될까요..? [24] 이센스8336 10/07/18 8336 0
23553 [일반] 야구 중계 불판 올립니다. [196] EZrock4560 10/07/18 4560 0
23552 [일반] 담배를 끄다. [5] 착한밥팅z4515 10/07/18 4515 0
23551 [일반] 우린 안될꺼야 아마-타바코쥬스 by 권기욱 [5] 그렌즐러3875 10/07/18 387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