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를 보았습니다.

뭐라고 감상평을 쓸 가치가 있는 영화인가 고민을 좀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답답함과 분노가 가시지를 않아서, 또 이런 이야기를 딱히 할 만한 곳이 pgr밖에 없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우선, 저의 감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포르노다"
또는
"이 영화는 옛날 써커스다"
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분노했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해 적개심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도대체 나를 뭘로 보고 이런 영화를 돈 내고 보게 만드나?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질이 떨어지는 영화를 보고 돈이 아깝다는 느낌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관객"인 "내"가 이런 것을 보고 좋아할 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이 "관객인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악마"를 볼 수 없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라는 제목에 합당한 영화라면, 분명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악마적 존재감에 대한 탐구와 성찰, 표현이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에 악마는 없었습니다.

그저 잔인한 학대와 살인, 성폭행, 시체 유기 등이 너저분하게 널부러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내용들이 어떤 영화적 상상력과도 성공적으로 결합되지 않은 채, 아니 그런 시도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태로 그저 "제시"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감독은 이러한 폭력과 그 결과물로서의 인체 절단 부위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제시는 백년 전 쯤 샴 쌍둥이나 난장이, 엘리펀트맨을 우리에 가두고 그것을 보여주며 돈을 받던 옛날 써커스와 완전히 닮아 있습니다.

문제는 왜 이런 옛날 써커스를 21세기의 내가 멋도 모르고 극장에 들어가 봐야 하냐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이 영화는 남녀의 성기와 교접장면을 보여주는 포르노와도 닮아 있습니다.

포르노의 특징은 성기의 노출과 성행위 장면의 직접적 표현에 있지 않습니다.

포르노와 일반 영화를 구분하는 가장 큰 변별점은 무엇이 무엇에 복무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성행위가 영화의 구성에 복무한다면 그것은 그 성행위가 아무리 직접적일지라도 포르노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영화의 모든 구성이 성행위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라면 그 성행위가 아무리 소프트하게 묘사되어도 포르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의 모든 구성이 폭력 장면이나 시체 조각을 보여주기 위해 복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저에게 "포르노적"입니다.

이병헌, 최민식등 소위 최고의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수 십억의 남의 돈을 투자 받아서 이런 폭력의 포르노그라피를 찍는다는 것은 자원의 낭비이고, 죄악입니다.

절단된 사지를 보는 것이 짜릿하고 재밌으시다면 이 영화를 보셔도 좋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감독이 바닥까지 떨어지며 자신의 추악한 나신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싶으신 분들도 이 영화를 보십시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절대 관람을 말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깊은 성찰이 있다면, 아니 다만 몇 조각의 미덕이라도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경청해서 듣고, 서투르게 적대감을 배설한 저 자신을 반성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영화는 저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될 나쁜 영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