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pgr21의 흔한 눈팅족 sensorylab이라고 합니다. 결혼한 지 1년하고도 반년이나 지났지만, 이곳에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혹시나 하우스 웨딩, 셀프 웨딩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드리기 위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라고 쓰고 실은 자랑하기 위함이라는.. 하핫.
저희 결혼식에 대해 간략히 먼저 말씀드리자면, 바야흐로 2015년 9월 중순 경남에 위치한 제법 규모 있는 펜션의 뒷마당에서 야외결혼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걱정했던 비는 오지 않았고, 하객분들과 정말 즐겁고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경우 장장 6개월 동안 결혼식을 준비했는데, 그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던 소중한 날이었습니다. 그럼 그 6개월 동안의 준비과정을 이곳에서 풀어보자고 합니다.
0. 결정
예전부터 결혼식장을 다니면서 일반 결혼식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는 저에게는 결혼식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한 건물에서 여러 결혼식이 동시에 진행되는, 그리고 사돈에 팔촌까지 아는 모든 사람을 총동원하는 결혼식의 그 정신 없음이란... 결국, 뷔페가 맛있었는지 혹은 맛없었는지 밖에 기억에 안 남더군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저는 저렇게 결혼하지 않으리라!! 라고 다짐했지만, 준비하면서 수백 번도 넘게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구나....” 라고
어쨌든 지금의 제 아내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던 차에, 그럼 한번 해보자며 조금은 특별한 저희 둘만의 결혼식 준비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잘 설득할 수 있었고요. 사실 부모님께서 저희 마음대로 결혼식을 한다는 것을 허락해 주실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준비하면서 그리고 결혼식 마치고 생각해보니 부모님께서 얼마나 많이 양보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1. 장소
우선 결혼식장의 위치는 제가 대학을 경남에서 다녔고 아내도 그쪽 지역 사람이라 저희가 사는 도시 가까운 인근에서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야외결혼식을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서 정말 친한 지인들만 모아서 간단히 결혼식 하는 것이 처음의 목표였습니다. 카페나 레스토랑을 빌려서 할 경우에 따로 의자나 테이블을 빌릴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실내 인테리어에 몇 가지 포인트만 추가하면 결혼식 하는 느낌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근의 제법 규모가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결혼식은 주말에 해야만 하고, 보통 큰 규모를 가진 외곽 지역의 레스토랑과 카페는 주말 장사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사실 제법 큰 규모라고 하더라도 그곳들이 결혼식 인원들을 수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웨딩플레너들은 괜찮은 장소를 아실까 싶어서 웨딩플레너를 찾아갔습니다. 지역에 웨딩박람회를 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이거 웬걸, 전자제품 파는 매장에 테이블 몇 개, 의자 몇 개 갖다놓고 설명 해주는 게 다였습니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하우스웨딩 이라는 게 생소한 나머지 단어조차 몰라서 저희가 이런저런 컨셉을 얘기해주니 그제서 "아! 요즘 그런 새로운 것도 많이 한다던데! 그럼 저와 함께 장소를 찾아볼까요?" 라고 해맑게 얘기하더군요. 저희도 해맑게 인사하고 바로 나왔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그냥 식장에서 결혼식 할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십 번도 넘게 후회하게 되지만.…..
그 이후로 약간은 포기한 상태로 그냥 시간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후배들과 놀러 갈 펜션를 찾다가 우연히 이 펜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후배 중 한 명이 목소리가 워낙 커서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놀려고 독립체로 이루어져 있는 펜션을 찾았는데, 그곳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 순간 아!! 여기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넓은 잔디밭과 적어도 60명 이상 숙박 가능한 독립체 8동에 , 넓은 주차장, 우천 시에도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는 넓은 세미나실 그냥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더욱이 사장님도 친절하시더군요. 그리곤 그 이후에 아내와 다시 펜션에 찾아와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셀프웨딩 준비 대장정의 막을 올렸습니다.
2. 소품 및 장식
야외 결혼식이다 보니 결혼식 분위기를 내는 게 중요했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탁 트여있는 앞마당보다는 비록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뒷마당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잔디밭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하우스웨딩을 전문적으로 맡아 진행을 도와주는 그런 업체들에서 견적을 내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비싸더군요. 결국, 저와 아내는 스스로 하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에 야외결혼식 사진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저희는 농담으로 전 세계 야외결혼식 사진은 다 본 것 같다며 얘기하곤 하는데, 예쁘고 괜찮은 사진만 스크랩해 둔 아내의 폴더에는 어느덧 1000장이 넘어가더군요.
신부들은 꼭 하나씩에 집착한다고 하죠? 제 아내의 경우는 예쁜 드레스도 다이아 반지도 아니었습니다. 의자였습니다. 원목 접이식 의자에 꽂혀서 그 의자로 빌리자고 하는데, 일단 제가 보기에도 일반 플라스틱 의자나 하얀색 보를 씌운 일명 오리 의자보다는 훨씬 예뻐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빌릴 곳이 없더군요. 경남, 부산, 심지어 대구까지 모든 렌탈 업체에 전화해보았지만, 원목 접이식 의자는 없었고, 서울 쪽 업체는 의자 대여비에 왕복 용달 값까지 요구하더군요. 의자 100개 빌리는 데에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는;;; 그 돈 낼 수 있었으면 처음부터 업체를 불렀겠죠.... 그렇게 의자 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심지어 차라리 원목 의자를 사서 이걸로 하우스웨딩 사업을 한번 시작해볼까? 라는 생각까지도 했었습니다. 저 정말 진지하게 아내에게 의자랑 트럭 하나 사서 하우스웨딩 사업 시작하지 않을래? 라고 물어봤습니다. 아내는 그제야 포기하더군요... 그렇게 의자는 결혼식이 있을 그 전 주까지 어떻게 할지 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펜션에 있는 평범한 사무용 검은색 의자를 빌렸고 부족한 부분은 마찬가지로 펜션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로 채웠습니다.
결혼식에 사용된 소품들도 다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교외의 카페들을 다니면서 예쁜 소품들을 눈여겨보았고, 하나하나 직접 만들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만든 소품은 종이 끈으로 만든 작은 공 이였는데, 보통 조명 갓으로 많이들 쓰는 것입니다. 저희는 열개 정도 만들어서 벚나무에 열매마냥 매달았습니다. 결혼식 할 때가 5시 해 질 무렵이라 은은한 햇살과 함께 너무나 예뻤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후에는 필요하신 하객분들에게 나눠 드렸습니다. 둘째는 저희 두 사람 사진을 전시한 창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우연히 직장 쓰레기장에서 건물 리모델링 후에 버려진 나무틀 창문을 보게 됩니다. 가져와서 소품으로 쓰자고 하더군요. 유리 부분을 걷어내고 마 끈과 나무 빨래집게로 꾸미니 나름 느낌이 나더군요. 나중에 꽃장식까지 하니 더 좋았습니다. 셋째, 꽃병입니다. 꽃병은 필요한데 사려고 하니 너무 비싸고... 그래서 유리로 된 병이란 병은 다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들이 마시고 남은 커피 병을 구걸하고, 잘 안 마시는 맥주를 일부러 사서 마시기도 하고.. 넷째, 현판들을 제작했습니다. 이것도 어느 카페에서 본 건데. 캔버스 지에 스프레이로 칠한 글씨의 느낌이 너무 좋더군요. 그래서 현판 만들기에 돌입합니다. 집에 굴러다니던 나무판자에 캔버스 지를 씌우고 스텐실로 만들 종이 인쇄하고 테이프 붙이고 글씨 부분만 오려내고 그걸 다시 캔버스지에 고정하고 스프레이 칠하고... 일이 많더군요. 하다 보니 이것도 요령이 생겨서 처음에는 글자가 번지더니 마지막엔 정말 잘 나왔습니다. 그 밖에 마트에서 3만 원에 산 입간판, 아내가 독일에서 직구한 장난감, 누군가 버려놓은 나무 상자, 대학교에 굴러다니는 원서들, 동네 미술학원에서 빌린 이젤, 직장동료에게 빌린 자전거, 집안 구석 처박혀 있던 단체 사진 액자, 다이X 에서 산 액자들과 작은 나무상자들 등등 아! 준비하는 시간 동안 기념일에는 아내에게 생화 대신 드라이플라워를 선물해서 그 꽃들을 모아 놨다가 결혼식때 썼습니다. 심지어 집에서 직접 꽃을 말리기도 했는데, 그때 한창 장마철이라 제습기 빵빵 돌렸더니 전기료가 더 많이 나왔다는 슬픈 전설이...
그렇게 하나둘씩 소품을 준비해나가면서 아내는 또 다른 것에 꽂힙니다. 그것은 바로 조명이었습니다!, 스크랩해놓은 사진들을 보니, 밤하늘에 떠 있는 백열전구들 참 예쁘더군요. 저는 또 방법을 찾아야 했죠. 펜션 뒷마당의 부분부분 거리를 다 재고, 대충 견적을 내보니 이것 또한 몇십 만원이 훌쩍 넘어가더라고요. 결국 백열전구는 너무 비싸 다른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앵두 조명이었습니다. 이 앵두 조명은 흔히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많이 쓰이는 건데, 비록 크기가 작아서 무언가를 환히 밝히는 데는 무리였지만 포인트를 주기에는 딱 알맞았습니다. 가격도 저렴했고요.
음향은 펜션에 있는 앰프와 스피커를 가져다 썼습니다. 꽃장식은 학교 선배가 플라워리스트 일을 하고 있는지라 전적으로 다 맡겼습니다. 너무 화려하지 않게 그리고 저렴하게^^ 곳곳의 포인트들만 장식을 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 제 기대보다 훨씬 예쁘게 장식해주셨습니다. 저희는 따로 스튜디오 사진은 촬영하지 않았고, 결혼식에는 스냅사진 작가님을 섭외했었습니다. 이것저것 다른 소품들 준비하느라 정작 중요한 사진작가 섭외에 늦어서 약간 애먹었던 기억이 있네요. 스냅사진 작가님 따로 섭외하실 분들은 미리 서두르시길 권해드립니다. 저희는 한 달 전에 섭외했었는데, 이미 예약이 많이들 차 있더라고요.
3. 식사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처음 결혼식 준비할 땐 ‘그냥 출장 뷔페 부르지 뭐’ 라고 편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혼식 날짜가 앞으로 다가오면서 점점 걱정되기 시작하더군요. ‘결혼식 당일에 비가 오면 어떡하지?‘ ‘혹시 바람이 많이 불면?‘ 부터 시작해서 시식조차 해볼 수 없는 출장 뷔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최소 30,000원부터 시작하는 높은 가격에 비해서 먹기 좋은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근처의 큰 식당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100명 이상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은 주변에 없었지만, 펜션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호텔 연회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천 시에도 편안히 식사 가능한 것과 더해 100명 이상 하객이 한꺼번에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어 시설이나 음식은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갈비탕으로 선택했는데, 양도 부족하고 맛도 없어서 유일한 옥에 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덕분에 날씨에 대한 걱정은 안 하게 되었으니 그건 다행이었네요.
식사는 비록 별로였지만 정말 크게 히트친 게 있었죠. 바로 커피 트럭이었습니다. 이것도 아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제가 사는 곳 주변 관광지를 돌며 커피 트럭 섭외를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는 섭외가 힘들었던 게, 그분들은 주말에 한 번 자리를 내주면 다시 찾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트럭한대를 섭외했고, 비록 일손이 부족해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 두 메뉴밖에 대접하지 못했지만 하객분들이 정말 좋아해 해주셨습니다.
4. 결혼 당일 진행.
저희 결혼식은 오후 5시에 열렸습니다. 펜션 채크 아웃이 12시라서 결혼식 준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야외에서 12시나 1시에는 해가 머리위에 떠 있어서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옵니다. 그래서 해 질 녘인 오후 5시에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결혼식 아침에 일어나서 메이크업 받느라 정신이 없지만 저는 결혼식을 위해 달려 와준 후배들과 목장갑을 끼고 노가다를 했습니다. 그동안 구상해온 대로 하나하나 조명도 설치하고 소품에 의자까지 배치하니 생각보다 훨씬 예뻐서 결혼하기도 전에 감동의 눈물을 흘릴뻔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대략 오후 3시까지 부랴부랴 준비를 마치고 그제야 목장갑을 벗었습니다. 씻고 양복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받고 나니, 저는 결혼식을 앞둔 신랑이 되어 있었습니다. 찾아와 준 친구들과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망의 신랑신부 입장. 저희는 허례허식을 없이 결혼식을 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절차도 저희 맘대로 했습니다. 저와 신부는 손잡고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동시 입장했고요, 주례 없이 서로에게 쓴 짧은 편지로 잘 살아봅세 하며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닌 들꽃으로 만든 꽃반지를 교환했습니다. 친구가 불러주는 축가 한 곡과 친구의 기타반주에 신부 몰래 준비한 제 축가가 있었고요. 축가 부를 때 신부를 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안 울려고 눈감고 축가 불렀더니 온통 눈감은 사진뿐이더라고요.
그렇게 결혼식은 아주 아주 짧게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 게 있었죠. 바로 선물 추첨, 결혼 안내문에 번호를 매겨서 그 번호를 추첨해, 하객들에게 선물을 나눠줬습니다. 하나에 만 원도 안 하는 값싼 선물들이었지만 다들 즐거워하고 좋아해 해주셔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5. 마무리
즐거웠습니다. 아내와 함께 내 손으로 내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날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정말 보람차고 뿌듯했습니다. 열심히 한 덕분에 결과는 더 좋았고요.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주변 친구들 만나면 정말 결혼식 좋았다고, 자기들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결혼식이었다며 얘기를 듣곤 한답니다. 그래서 누구든 기존 결혼식에 싫증을 느끼고 특별한 것을 원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면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나 궁금하신거 있으시면 물어보세요~ 성실히 답변해 드릴게요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5-30 17:22)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