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하면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모르겠네요. 아이슬란드만큼이나 외지도 아니고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 봤을 만한, 특히나 잘 사는 나라 리스트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걸로 유명한 나라죠. 북해 유전 세계 15위 산유국의 위엄... 음악하시던 분이라면 그리그로 유명할 테고, 남극에 관심 있으시다면 아문센의 나라로 유명하고(아쉽지만 오늘 이야기에서 아문센은 살짝 나오고 마네요). 피오르드 해안으로도 유명하고. 그 노르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노르웨이의 이름은 노루가 많다고 노루 웨이... 어험 죄송합니다. 자연이 드립을 거부하는군요. 뭐 Nor-라는 말이 붙은 것에서 짐작하시곘지만 북쪽과 관련이 있습니다. 북쪽으로 가는 길 정도로 해석되는 영국 고어(古語) Norþweg이 변화되어 Norway가 된 것이 전세계에 이 나라가 노르웨이로 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르웨이 내에서는 두 가지 언어가 혼용되고 있는데요, 한쪽에서는 노르게(Norge, 보크몰)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노레그(Noreg, 뉘노르스크)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라고 하긴 뭣하겠습니다만 마치 우리 나라에서 마한 진한 변한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백제 신라가 되었듯이 노르웨이도 해안에서 여러 국가가 난립하다가 872년에 노르웨이 왕국이 세워집니다. 원래는 아이슬란드까지 먹으려고 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자치를 포기하는 걸 굉장히 꺼려했고 신생국으로서도 아이슬란드를 정벌할 정도의 처지는 아니었던지라 눈독만 들인 채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 노르웨이 왕국은 굉장히 많은 나라가 치고박고하던 유럽사치고는 정말 엄청나게 오래 갔는데요... 872년부터 1397년까지 무려 500년이 넘게 갔습니다. 가뜩이나 북쪽 땅이라서 관심도 못 받고 있었던데다가 동으로는 스웨덴이요 남으로는 바다(스카게라크 해협)가 가로막고 있었고 게다가 아시다시피 북쪽 기후가 좀 척박해야 말이죠.
그래서 다른 나라 같았으면 줄줄줄 서술이 되어 있어야 할 영문 위키피디아의 노르웨이 역사 단락도 상당히 짧게 서술되어 있는 편입니다. 단, 이건 옆 나라인 스웨덴의 역사가 최소 800년대까지는 거의 반쯤 전설의 영역이었던 영향도 큽니다. 기록이 확실하게 남아 있는 스웨덴의 이야기는 900년대부터 시작하는데... 얘들이 있기는 분명히 있었는데 어디쯤 있었는지 왕조가 있던 것 같기는 한데 어디서 치고박고 싸웠는지 안에서 지지고 볶았는지 기록이 영... 일본서기 생각하시면 좀 이해가 빠를까요? 거기도 만세일계니 뭐니 하지만 아스카 시대 이전의 역사는 그야말로 '?'이잖아요. 기록이랍시고 남아 있는 것도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이러고 있는 판이고...
연도를 보시면 좀 재미있는 것이 872년이면 궁예가 태어난 지 딱 3년이 지난 해입니다. 왕건은 877년생. 그리고 1397년은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계가 싹 쓸려나간 해죠. 그러니까 후삼국 내지는 고려조의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거죠. 물론 두 나라 사이에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하니 단순한 우연이겠습니다만.
1262년에는 40년이 넘도록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에 빠져 있던 아이슬란드를 한 지역 한 지역씩 차근차근 복속시키면서 완전히 아이슬란드 전체를 노르웨이 발 밑에 둡니다. 당시 아이슬란드 역사상 가장 피가 많이 흘렀던 시기라고 했으니, 아이슬란드의 자중지란이 그 먼 장거리 원정이 가지는 페널티를 쌈싸먹을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원정이 정말 정신나간 수준이었던 것이, 오늘날도 노르웨이 남단의 스타방에르(Stavanger)에서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까지 직선거리만 1,500 km가 넘습니다. 그리고 선선한 바다도 니나노 하면서 가기 어려운데 이 일대의 노르웨이 해는 그야말로 지옥의 항해. 가뜩이나 추위도 바람도 심한 북극권의 항해인데 이 일대에서 발생하는 소용돌이는 아예 메일스트롬(Maelstrom, 다크 아콘의 그 기술명 맞습니다)이라 따로 칭해질 정도로 전세계에서 가장 센 소용돌이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걸 다 뚫고 1,500 km 밖에 있는 섬, 그것도 전에 소개드렸다시피 화산섬에다가 깃발을 꽂는다는 것은 제가 듣기에도 무리수이자 미친 짓이네요. 이게 또 깃발만 꽂는다고 끝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는 전투도 불사해야 하는 상황이고... 결국 결론은 둘 중 하나로 가네요. 아이슬란드의 자중지란이 그 모든 불리한 조건을 다 잡아먹을 만큼 치명적이었거나, 바이킹이 희대의 전투종족이었거나.
여담으로, 지중해의 시칠리아 근교 바다에서 벌어지는 소용돌이와 지독한 항해가 카립디스와 스킬라라는 괴물 이야기를 낳았듯이, 이 메일스트롬도 여러 바이킹 이야기 - 사가(Saga)를 말하죠 - 및 전설과 문학에서 등장하는 한 괴물의 모티브가 됩니다. 바로 크라켄(Kraken)이죠.
아이슬란드에 이어 그린란드까지 닿았던 노르웨이였지만, 졸지에 노르웨이 왕국의 대가 끊어져버리는 바람에... 죽은 왕의 친가 쪽이 아예 씨가 말라버리는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왕관이 모계 쪽으로 넘어가게 되고, 여기에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흑사병의 대유행으로 인해 노르웨이 땅의 2/3에 달하는 인구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왕관을 이어받은 마르그레테 1세(Margaret I of Denmark)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위를 이어받고 이어 경쟁자였던 스웨덴 왕 알브레히트(Albrekt av Mecklenburg)을 축출해버리면서 오늘날의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서부, 아이슬란드 및 그린란드를 아우르는 대제국인 칼마르 연합(Kalmar Union)이 세워집니다. 스칸디나비아 왕국이라고도 한다네요.
이 스칸디나비아 왕국의 주도권은 덴마크가 쥐고 있었고(위에서 굵은 글씨로 표기한 걸 유념하세요), 그래서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졸지에 한 역사로 묶이게 됩니다. 뒷날 스웨덴은 스톡홀름에서 덴마크 인들을 몰아내고 독립하지만, 노르웨이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결국 이게 죽죽죽죽죽죽 이어지면서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지배를 무려 400년 동안 받게 됩니다. 정확히는 434년(칼마르 연합 포함). 이 기간을 가리켜서 노르웨이 민족주의측에서는 400년간의 암흑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는군요.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폴레옹 전쟁기가 되었는데...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은 중립적인 위치를 지켰지만, 무장중립동맹에 가입한 것을 영국이 적대행위로 간주하면서 1801년과 1807년 두 차례에 걸쳐서 코펜하겐을 털어버립니다. 첫 번째 전투는 그럭저럭 쌤쌤이었다 치는데 두 번째 전투는 완전히 영국의 승리로 돌아갔고, 결국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은 프랑스 편을 들 수밖에 없었죠.
여기서 이야기가 꼬입니다. 옆 나라인 스웨덴에서 1809년에 대 러시아전의 패전 책임을 물어 구스타브 4세 아돌프(Gustav IV Adolf)가 쫓겨나고 삼촌인 칼 13세가 즉위하는데 이미 이 때 나이가 육십이 넘은 노인(1748년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늙은 왕의 후계자도 정해야겠다 러시아를 상대로 잘 싸워야 할 상대도 정해야겠다 스웨덴 내 여론에서는 당대 최강이었던 프랑스군의 원수를 한 명 데려와서 왕으로 삼자는 의견이 우세했죠. 그 과정에서 뤼베크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스웨덴 인을 잘 대해 주었던 전적으로 인해 스웨덴 인에게 호감을 샀던 이 인물...
오우야 잘 생겼네요. 바로 나폴레옹의 원수 중 한 명인 장 밥티스트 베르나도트(Jean-Baptiste Jules Bernadotte)가 스웨덴 왕의 후계자로 낙점됩니다. 이 사람이 개종하면서까지 요청을 수락하면서 - 스웨덴 왕은 오직 루터 교여야만 한다는 룰이 있었거든요 - 스웨덴의 권력을 모조리 휘어잡습니다. 그리고 이 양반이 스웨덴령이었지만 전쟁으로 빼앗긴 핀란드를 포기하고 러시아 편에 붙으면서 노르웨이를 집어먹고 나폴레옹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겠다는 희대의 계획을 성공시키면서 킬 조약(Treaty of Kiel)으로 노르웨이를 홀라당 집어먹습니다. 이게 노르웨이-스웨덴 동군연합의 시초입니다(1814).
이 당시 동군연합이었던 노르웨이-스웨덴 왕국의 깃발입니다. 킁킁 어디서 대충대충 만든 냄새가...
이렇게 1814년에 스웨덴에 편입된 노르웨이는 1818년 베르나도트가 아예 스웨덴의 왕 칼 14세 요한으로 즉위해 버리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스웨덴의 베르나도테 가를 열어제꼈고, 노르웨이도 당연히 스웨덴의 지배를 받습니다. 물론 자치권은 꽤 인정받았습니다만... 그러다가 1905년에 독립을 선언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투표 결과는 무려 99.95%의 찬성(368,208 찬성, 반대표는 고작 184표).
역사상 가장 큰 차이로 독립이 의결되면서 누구를 왕으로 모실 거냐는 문제가 벌어졌고(공화정으로 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투표 결과 부결), 덴마크의 왕자였던 크리스티안 프레데리크 카를 게오르그 발데마르 악셀(Chrisitan Frederik Carl Gerog Valdemar Axel)을 모셔오기로 합니다. 근데 이 사람의 어머니가 당시 스웨덴 왕이었던 오스카르 2세(Oscar II of Sweden)의 조카였던 관계로 스웨덴으로서도 전쟁을 걸기 껄끄럽고 해서 어찌저찌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카를 왕자도 대단했던 게, 먼저 자기가 즉위할 때 이름을 500년간 쓰인 적이 없었던 노르웨이산(産) 이름인 호콘(Haakon)에서 따 와서 호콘 7세라고 해서 노르웨이 인들에게 환영받았죠.
즉위할 때 나이가 고작 33세였던 관계로 오래 통치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여러 못 볼 꼴 보기도 했죠. 대표적으로 독일의 침공이 있습니다. 바로 베저뤼붕(Weserübung)이라고 해서 노르웨이를 홀라당 먹어버렸죠. 별것도 안 보이는 노르웨이를 왜 먹으려고 했냐면 이 노르웨이 북단의 나르비크(Narvik) 항을 통해 나르비크 인근의 스웨덴 키루나에서 생산된 대량의 철광석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려는 시도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스웨덴을 먹어야 정상 아니냐 이렇게 물어보실 수도 있는데... 1) 히틀러는 일단 스웨덴은 중립국으로 남겨두겠다고 했고 2) 스웨덴을 먹어봤자 발트 해가 겨울이면 통째로 얼어붙는 관계로 부동항인 나르비크를 반드시 접수해야 할 전략적 필요성이 있었으며 3) 영국을 상대할 북해의 방어망을 갖추어야 했죠. 물론 이 과정에서 크릭스마리네(Kriegsmarine)가 완전히 개털리면서 현실은 딱히 바뀐 건 없었지만.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노르웨이가 나치의 잔당을 뿌리째 뽑고 - 이 과정에서 말이 좀 많았습니다. 의료행위 종사자나, 나치가 진심으로 노르웨이를 위한 건 줄 알았던 순진한 사람들까지도 가혹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벌금이나 징역 등 철저하게 털렸거든요 - 올라프 5세에 이어 하랄 5세가 즉위하면서 오늘날로 이어져 오고 있죠.
노르웨이에 관련된 것으로 처음 이야기를 해 볼 것은... 영어 단어 이야기입니다. 피앙세(Fiancee)니 뭐니 하는 단어들에서 아시겠지만 영어 단어는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등등 각지에서 수입해 온 단어들이 꽤 있죠. 우리 나라도 뭐 많긴 하잖아요. 택시, 버스, 라벨, 컴팩트 디스크, 에프킬라(?) 등등... 근데 노르웨이에서 수입해 온 단어가, 그것도 수입해 온 지 백 년도 안 된 단어가 있어요. 퀴즐링(quisling)이라는 단어입니다.
단어사전 찾아보시면 퀴즐링의 뜻은 매국노, 반역자, 제5열원 정도입니다. 제5열원은 프랑코 반란 당시 반란의 총사령관이었던 에밀리오 몰라(Emilio Mola) 장군이 "스페인 내에는 우리 뜻에 따라서 너네 공화파를 뒤집어엎으려고 일어날 제5부대가 있다"는 허세에서 유래했죠. 아무튼 좋은 뜻은 아니고, 간단히 traitor와 완전 의미가 통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유래는 엉뚱하게도 노르웨이의 사람 이름. 바로 비드쿤 크비슬링(Vidkun Quisling)입니다.
요 양반이었는데... 이 양반이 뭔 짓을 했냐면 말이죠
앞줄에 앉아 있는 맨 왼쪽이 크비슬링인데요, 그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얼굴이 좀 낯이 익지 않습니까? 더불어 제복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하고 말이죠. 바로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 슈츠슈타펠(Schutzstaffel, SS)의 두목이자 나치 독일에서 몇 손가락 내에 들어가는 거물이죠. 베저뤼붕 작전이 개시됨과 동시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그는 독일의 충실한 개 노릇을 하다가 독일의 패망 이후 반역죄로 처형당하는데요, 얼마나 이게 알려졌으면 물 건너 영국에 이 양반의 이름이 반역자의 대명사로 알려졌겠습니까. 물론 이건 국왕 호콘 7세와 그 아들 올라프 5세가 런던에서 망명 정부 일을 하고 있었던 탓이었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이 단어는 영국의 더 타임즈에서 반역자의 대명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쓰이면서 처칠을 포함한 높으신 분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완전히 반역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또 단어가 -ing으로 끝나다 보니 크비슬링의 영국식 발음인 퀴즐링에서 -ing를 떼서 퀴즐(quisl)이라는 동사형 단어로 쓴 적도 잠깐이나마 있었다는군요. 뭐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전사가 전사하셨군, 성박휘가 성박휘했네(전 시공의 폭풍에서 법뻔뻔을 주로 써서...) 뭐 이런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퀴즐링이 퀴즐링했네. XX가 XX했다는 표현을 70년 이상 앞서 사용하신 홍차나라 사람들...
이왕 2차대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이야기해 보면... 노르웨이에도 크비슬링의 정신나간 통치에 반발하여 레지스탕스가 된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요아힘 뢴네베르크(Joachim Holmboe Rønneberg)였죠. 군인이었는데, 레지스탕스로 들어가서 노르웨이에서 생산되고 있는 중수(重水, 헤비 워터)를 사보타주하는 큰 공을 세웁니다. 이 중수는 핵개발을 위해 필수적인 물질이었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나 오토 한(Otto Hahn) 등 (비록 나치에는 협력하지 않았을지라도) 으리으리한 라인업을 꾸리고 있는 독일의 물리학자 및 화학자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자폭탄이 개발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폭격도 해 보고 특공대도 투입해 보고 별 짓을 다 하면서 중수 공장을 사보타주하고 있었던 건데 그 중 대성공한 공격(거너사이드 작전, Operation Gunnerside)을 이끈 공으로 프랑스 최고 훈장을 포함 자국을 포함한 4개국에서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노르웨이 공영 방송에서 아나운서 역할을 하기도 하다가 얼마 전,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2018. 10. 21)에 99세의 나이로 영면하셨습니다. 고인의 용기와 영웅적인 노력에 삼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피오르드(혹은 피요르드, 피오르 등등 별의별 이름으로 불리네요). 노르웨이 하면 피오르드요 피오르드 하면 노르웨이 아니겠습니까.
우선 피오르드가 뭐냐? 피가 올라갔다를 영어로 하면 피 오르드냐? (죄송합니다... 어헣↗) 이 피오르드는 다음과 같은 걸 피오르드라고 합니다.
1) 일단 바다건 호수건 물이 차 있어야 하는데,
2) 그 물을 가로막는 지형이 깎아지른 절벽 내지는 무진장 높은 지대이고,
3) 빙하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자, 빙하가 필요한데, 빙하가 뭡니까? 얼음이 흐르면 그게 빙하 아닙니까? 빙하가 어떻게 피오르드를 만드느냐? 이건 물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U자곡을 이해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가 중학교 과학 시간 때 배우는 지각의 활동 중에서 U자곡과 V자곡이라는 게 있는데요, V자곡은 물이 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며 사선으로 산을 깎아서 이루어집니다. 반면 U자곡은 얼음이 산을 타고 내려오면서, 특히 빙하기 같은 때를 지나면서 점점 넓어지는 형태라 오랜 시간에 걸쳐서 굵고 넓어지며 모양이 둥글어집니다. 요걸 보시는 게 이해가 빠르겠어요.
이 과정을 거쳐 U자곡이 생성되는데, 이게 깊이 파이고 그 파인 자리로 물이 들어오면 피오르드가 완성됩니다. 깎아지른 절벽 안에 물이 고여있는 게 워낙에 장관인지라 관광 명소가 되기도 하는데요, 생성 과정에서 알 수 있다시피 노르웨이가 아니더라도 극지방이면 다 만들어지는 지형이기는 합니다. 이거 저도 처음에 찾아보고 깜짝 놀랐는데, 의외로 우리 나라에서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은 곳에서 피오르드를 구경할 수가 있더군요.
저는 뭐 피오르드 보려면 아주 그냥 저 멀리 알래스카나 노르웨이 이런 곳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리 나라에서 3천 km만 날아가면(...그래도 생각보다는 가깝지 않습니까?) 피오르드가 있는 곳이 나옵니다. 바로 러시아 맨 끄트머리 꼬랑지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Петропа́вловск-Камча́тский). 일본과 러시아가 틈만 나면 우리 땅이네 하면서 싸우는 쿠릴 열도 바로 위의 꼬랑지 반도인데요, 이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에서 남쪽으로 한 50 km 정도 내려가면 루스카야 만(Russkaya Bay, бухта Русская)이 나옵니다. 여기도 피오르드에요. 노르웨이만큼 깎아지르는 장관까지는 아니어서 그렇지 여기도 사진은 꽤나 볼 만하네요. 단, 저는 상대적으로 가깝다고 했지, 상대적으로 가기 쉽다고는 안 했습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오면 극지방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노르웨이는 무려 1,200개에 달하는 피오르드가 엄청나게 늘어서 있고, 당연히 골짜기에 물이 들어갔으니 만(灣) 지형인지라 지형이 굽이굽이 곡선으로 늘어서 있게 되어 리아스식 해안 저리가라 하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해안선이 나옵니다. 그래서 노르웨이의 해안선을 일자로 죽 늘여놓으면 29,000 km, 그러니까 지구 3/4바퀴를 돌 수 있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나오게 됩니다. 그것도 외지 여러 섬은 싹 빼버리고서도... 만일 해안선이 그냥 밋밋한 해안선이었으면 2,500 km 가량이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하긴 이 거리도 만만치 않긴 하네요.
해안선의 길이가 재는 방법이 나라마다 기관마다 방식이 다 다르고 또 재는 단위에 따라 길이가 제각각인지라 통계간의 차이가 굉장히 크긴 한데요,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으시면 영문 위키백과의 List of countries by length of coastline 문서를 참조하시는 게 좋겠네요.
이야기 나온 김에 피오르드 사진 몇장 보고 넘어가시죠.
유네스코 유산이기도 한 게이랑게르피오르드(Geirangerfjord).
역시 게이랑게르피오르드인데요, 깎아지른 절벽이라는 말이 실감이 가시는지요.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옫다(Odda)에서 볼 수 있는 하르당게르피오르드(Hardangerfjord)입니다. 눈 덮인 산과 구름 아래에 조그마한 산 속의 마을 옆에 바닷물이라니 퍽이나 기묘하네요.
노르웨이에서 가장 크고 깊어서 일명 '왕의 피오르드'라 불리는 송네피오르드(Sognefjord). 어메이징하네요. 마치 거짓말처럼 사진 가운데를 딱 갈라놓은 듯한 이 느낌. 야 이건...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참고로 이게 어느 정도로 기냐면 무려 205 km입니다. 서울서 대전 거리를 훌쩍 넘죠.
다른 곳에서 본 송네피오르드입니다. 이러한 피오르드가 여기 소개한 것 외에도 1,197개나 더 있다니 할 말을 잃게 만들죠. 정말 천혜의 관광지로 손색없는 땅입니다. 눈 덮인 피오르드 보고 싶으시면 북쪽의 나르비크(Narvik)나 거기서 더 올라가시면 될 것 같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해 볼 곳은 스발바르 제도(Svalbard)입니다.
뭐 무슨 다섯 명이니 서른 명이니 이렇게 소수가 깃발 꽂고 오순도순하고 있는 그런 곳 말고, 제대로 된 규모가 있는 '마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 1천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지구 최북단의 마을은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롱위에아르뷔엔(Longyearbyen)입니다. 그래서 그 위치가? 78°13′N 15°38′E. 북위 78도라는 정신나간 위치에서도 사람은 천 명씩이나 살아갑니다. 그래도 실감이 안 가시는 분을 위해서 지도로 보여드립니다.
노르웨이 최북단에 있는 핀마르크 주(Finnmark fylke)의 주도(州都)인 바드쇠(Vadsø)로부터 북쪽으로 1천 km 떨어져 있습니다. 인간 승리 만세. 원래는 고래 잡으려고 이런 곳에다가 기지를 만든 게 시초였다는군요. 요즘은 고래잡이는 소수 밍크고래를 제외하면 금지된 추세라 1천 명에 달하는 사람이 뭘 먹고 사느냐? 놀랍게도 바로 석탄입니다. 2007년에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500명 가량이 광업에 종사하고 있었다는군요.
자, 석탄이 무엇입니까? 석탄은 바로 사회주의 낙원을 말하는... 어험. 식물이, 그것도 수목이 쓰러진 땅 위에 겹겹이 땅이 퇴적되어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푹 썩고 탄소만 남은 게 석탄이잖아요. 이 석탄이 발견된 게 1900년대입니다. 고생대에는 이 땅에서도 키 높은 나무가 살았다는 증거이니 대륙 이동설에 더욱 신빙성을 더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겠네요. 2차대전 이후에 이 땅의 석탄을 주로 캐서 실어간 나라는 소련이었습니다. 한때는 섬 인구의 2/3을 차지했을 정도로 여기가 누구 땅인지 모를 정도였었지만 소련이 폭삭 망한 이후로 광부들의 상당수가 철수, 지금은 500명 가량이 남아 있죠. 게다가 석탄이 무한정 매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광산이 닫은 곳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광산업이 주이긴 하지만 관광산업도 끌어보려고 하고는 있는데...
땅이 워낙 북쪽이다 보니 기후가 척박하...긴 한데 생각보다 그렇게 춥지는 않습니다. 저~기 압록강 상류에 백두산 바로 밑에 있는 혜산진보다 겨울이 평균적으로 조금 따뜻한(!!!!!!) 정도. 정확히 하면 최고온도는 혜산진보다 낮기는 한데 최저온도가 혜산진보다 높습니다. 바다라서 산지 한가운데에 콕 박혀 있는 혜산진보다 연교차가 적은 것이고, 그 온도가 얼어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죠. 물론 위도가 위도다 보니 여름에 기온이 올라갈 리가 없어서 꼼짝없이 한대 기후입니다만.
관광은... 일단 스발바르 제도는 국적이고 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받는다를 표명합니다. 뭐 다 좋아요. 문화를 이해하고 녹아들어가는 게 엄청나게 어렵다는 점은 제쳐두고 일단 좋다 이겁니다. 그런데... 스발바르 제도에는 어떻게 들어가죠? 그래서 노르웨이를 거치지 않는 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뭐 쪽배 타고 북극의 그 험한 바다를 뚫어볼 수 있다면야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있을까요...
아 이게 또 골때리는게, 위키트래블에 의하면... 스발바르 제도는 절묘하게도 솅겐 조약에 의거하여 넘나들 수 있는 지역에서 빠져 있어서 항공편을 무진장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노르웨이 내의 트롬쇠(Tromsø)를 경유한다면, 오슬로 공항에서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지나노르웨이 본국에 발을 딛게 되므로, 우리 나라로서야 딱히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비자가 필요하게 되죠. 그렇지만 오슬로에서 직항으로 스발바르로 환승하게 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오슬로-스발바르 직항이면 필요없는 비자 딸 수도 있으니 매우 조심하라고 강조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간 스발바르 제도는 그야말로 물가가 미쳤다(위키트래블 표현으로는 horribly expensive)고 할 만합니다. 가뜩이나 노르웨이도 엄청 잘 살아서 "니네 돈 많이 벌지? 그만큼 복지도 해 줘야겠지? 그러면 세금을 많이 받아가야겠지? 응 내놔" 뭐 이러면서 물가가 살벌하다 못해 살인적인 수준이라서 위키트래블 같은 데에서 대놓고 여행비용 줄이는 팁 같은 게 공유되고 있는 판인데 스발바르는 그보다 한수 위입니다.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이 아닐지...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 스발바르에 입성했다 칩시다. 워낙에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여기도 로컬 룰이라는 게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반드시 라이플을 휴대한 사람과 같이 돌아다닐 것입니다. 이유는 짐작하시겠지만 그놈의 북극곰. 총기를 휴대하려면 총기휴대증이 있어야 하는데 외국인이 그런 게 있을 리 없으니 총기를 빌려주는 서식을 작성하고 휴대할 수 있다는군요. 당연히 범죄기록 같은 거 다 따져보구요. 재수 좋으면 당일치기로 끝나지만 보통은 4주 걸린다고 하니 결국 현지 가이드와 딱 붙어다니는 게 이득입니다.
북극곰이 사납다기보다는 얘가 워낙 이게 뭐지 먹는 건가 하고 달려드는 습성이 있는지라 공포탄 등으로 내쫓는 시도를 하는 등 별의별 수를 써도 달려들 때 최후의 수단으로 잡는 것을 권장하는데요, 어깨나 가슴을 노릴 것, 머리는 쏘지 말 것, 곰 새끼들은 어미가 살아 있는 한 절대로 건들지 말 것, 곰을 죽였으면 지체없이 당국에서 사건 현장으로 와서 확인받도록 하고 스발바르 주지사에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거 잡으라는 것이여 말라는 것이여 진짜...
또 하나 위험한 게 있는데 북극곰보다는 훨씬 덜 위험하지만 만날 확률은 훨씬 높은 북극갈매기입니다. 얘들은 자기 둥지에 누가 나타났다 하면 일단 빼액대고 시작하며(...) 안되겠소 쏩시다... 아니 쫍시다 모드로, 그것도 머리를 콕콕콕콕 쪼아대는 짓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근데 이게 또 골때리는 게 그렇다고 얘들을 잡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맞는 중에도 반격하면 안 된다고...... 랴 리건... 그래서 나온 방법이 막대기 같은 걸 머리 근처에서 원형으로 빙빙 돌리면 얘들이 뭘 때려야 하나 하고 갈팡질팡하는 와중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데, 글쎄요.
그리고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이 북쪽 끄트머리에서도 해전이 벌어졌었습니다. 다행히 섬의 인구는 이미 건틀렛 작전(Operation Gauntlet)으로 쇼쇼쇽 탈출에 성공했던 터라 무인지대로 남아 있기는 했는데... 이 섬의 진짜 가치는 바로 기상청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비 내리는 날에 소풍 가는 걸로 유명한 기상청인데 뭔 놈의 가치냐 하시겠지만 이 기상 상태에 따라서 영국에서 북극해를 거쳐 소련의 무르만스크 항으로 넘어가는 렌드리스 물자 호송 내지는 파괴작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정확한 날씨 예측은 필수 중의 필수였거든요. 그래서 이 꽤 큰 제도를 노리고 - 이 일대 섬 크기 다 합치면 우리 나라 절반 넘습니다 - 무려 두 대의 전함과 아홉 대의 구축함이 파견되는데 그 중 하나가
이 분...이 아니고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에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이 분. 바로 전함 티르피츠(Tirpitz)입니다. 이것까지 이야기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으니 간단히 줄이면 결국에는 격침되긴 합니다. 그렇지만 꽤나 임팩트를 남겼는지 이 전함에 붙은 별명은 바로 '북해의 고독한 여왕(Lone Queen of the North)'. 그리고 여기에서 활약한 나머지 한 대의 전함은 바로 그 유명한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
그리고 이 2차대전 이전에도 한 번 이 스발바르 제도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는데, 바로 위대한 탐험가였던 로알 아문센이 조난당한 곳이 이 곳입니다. 정확히는, 움베르토 노빌레가 비행선 이탈리아 호를 탔다가 박살이 나고 스발바르 제도에서 조난당했는데 이걸 구하려다가 정작 아문센이 조난당하고 노빌레는 살아서 돌아왔거든요. 물론 대탐험가를 간접적으로 죽게 한 데다가 거의 몇 명 빼고 자기만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에 노빌레는 그대로 탐험계에서 매장당하지만... 이게 후폭풍이 어마어마해서, 당시 권좌를 잡던 무솔리니의 심기를 건드리고 출발했다가 오냐 너 한 번 제대로 당해봐라 하고 돌아온 후에 다른 사람들 다 죽게 만들고 혼자 돌아왔다고 재판에까지 세워서 완전히, 문자 그대로 완전히 노빌레의 커리어를 박살내버립니다. 그리고 모든 불명예를 뒤집어씌우기까지 했으니 그 굴욕은 뭐 말할 필요도 없었겠죠.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스발바르 제도가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스발바르 제도의 서북쪽에 뉘올레순(Ny-Ålesund)이라는 곳에 우리 나라의 기지가 있습니다. 바로 다산 과학기지인데요, 정약용 선생의 호에서 따서 다산이죠.
아까 좋은 사진 몇 장 보여드렸으니 오늘 글의 마무리는 클래식 음악으로 짓겠습니다.
노르웨이의 클래식 음악가로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그리그(Edvard Grieg)입니다. 페르 귄트 시리즈로 유명하죠. 근데 선율이 뭐냐 하면 정작 기억이...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내가 들어본 게 있기는 했을까 싶은데 사실 의외로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본 곡입니다. 그게 그리그의 곡인 줄 몰랐을 뿐이죠. 예를 들면 페르 귄트 시리즈는 아니지만 그리그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 A단조가 있습니다. 이거는 다른 거 제쳐두고 도입부만 잘 곱씹어 보세요.
이 곡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볼짝시면...
이 피아노 협주곡 A단조에서 2악장만 따 온 것이 이것인데
이 곡은 문명 V에서 약간 편곡되어 삽입되었습니다.
그리그의 페르 귄트 시리즈를 또 빼놓을 수 없죠. 페르 귄트 모음곡은 두 개가 있는데 그 중 Morning Mood라는 곡입니다. 아마 이 선율은 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선율인데 하실 거에요.
역시 페르 귄트 모음곡에 삽입된 곡으로 산왕의 전당에서(In the Hall of Mountain King, I Dovregubbens hall)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거 확실히 아재판독기. 이 도입부가 익숙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당신은 확실히 아재거나 애니메이션, 특히 우리 나라로 더빙된 버전 광팬. 저는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 그 때 봤었죠. 이거 진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 선율이 어디에서 응용되었는고 하니...
그 외에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가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도입부 하모니카 선율에 응용되었다고 하는데 이건 좀 감이 안 잡혀서 잘 모르겠네요. 하여간 이렇게 의외로 많은 곳에서 그리그의 곡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간 나시면 페르 귄트 모음곡을 쭉 한 번 들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수정됨) 워낙 잘 써주신 글에 살짝 거들자면...
관광지로는 유럽사람들이 인생에 한번은 가보고 싶어 한다는 경치 좋은 로포텐 제도와, 유럽대륙 최북단 노드캅이 유명하고, 트롬쇠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도시이자, 세계 최북단 양조장이 있어요.
특히 로포텐 제도는 진짜 한번은 꼭 가보면 좋을 만한 경치를 자랑합니다. 캠핑카/자전거 타고 다니는 외국인들도 많고요. 단, 렌트카가 없으면 대중교통(버스)가 하루에 1-3대 밖에 없어서 많이 불편할 수 있어요.
베르겐은 한자동맹 도시이자, 대구어옵의 중심지로 유명합니다. 뭉크의 절규도 볼 수 있고, 오슬로 노벨 박물관엔 노벨 상 수상자들, 김대중 전 대통령 엽서도 살 수 있고요. 생선 대구로도 유명하지만 지금은 굳이? 라는 느낌이구요.
대신, 물가가 살인적입니다. 시내버스가 6000원(환율에 따라 변동), 제대로 된 외식은 최소 3만원이상입니다. 버거킹세트가 만원이 넘지요. 마트에서 해먹는게 그나마 쌉니다. 그나마 오슬로-베르겐은 비싸네 수준인데, 로포텐-트롬쇠-호닝스바그(노드캅 주변 도시) 물가는 그말싫;;;스발바르는 훨씬 더 비쌀거 같은데 거긴 안가봤네요. 북유럽 물가중에도 노르웨이가 최고봉이라고 합니다. 아, 마트에서는 술은 오후 5-6시? 이후면 구입이 불가합니다.
그리고 북극권(대충 트롬쇠 이북)을 가면 여름엔 하루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겨울엔 해가 뜨지 않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걸로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백야는, 노드캅 정도에서 자정에도 해가 수평선 위에 있는 것 사진찍는 용도 빼곤 굳이 체험할 필요 없어요... 호텔마다 암막커튼이 있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담엔 오로라를 꼭 보고 싶네요
물가도 물가지만 법 위반 특히 노상방뇨 같은 것에서 벌금을 상상 이상으로 세게 물린다고 들었습니다. 노르웨이 여행하면서 이러이러한 룰 조심하세요 하고 기재한 게 아예 한 사발로 그득히 나오더군요. 위키트래블에서 노하우를 전수하다 못해 물가에 한이 맺혔음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노르웨이(아이슬란드,페로제도)-덴마크-스웨덴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삼한(고구려-백제-신라(가야))처럼 각자의 왕이 있지만 언어도 문화도 같은 스칸디나비아 민족인데, 그런 시대상황에서 근현대를 맞아 통일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민족의식을 갖게 된거라 보여지더군요. (핀란드야 원래 달랐구요.)
언어적으로 노르웨이 서쪽 뉘노르스크나 아이슬란드어가 조금 다른 느낌이 있지만, 사실상 대화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만큼 같다보니.. 스칸디나비아가 공통된 민족의식만 가졌다면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급의 서북부유럽중대국 수준의 경제규모를 가진 대국이 됐을거라 생각됩니다.
(수정됨) 덴마크 스웨덴은 한참 싸운 나라고, 핀란드도 스웨덴의 반식민지 느낌으로 지냈다가 독립해서 굳이 뭉치자는 느낌이 없었을 거에요. (물론 스웨덴과 핀란드 국민간 감정은 좋은 편이라곤 합니다). 노르웨이도 스웨덴과는 묶인 기간이 길지 않아서... 게다가 다들 잘 사니까 굳이 또 뭉쳐야 하나? 란 느낌도 가지지 않나 싶네요.
유럽쪽은 동아시아와는 다르게 인접국들끼리 통합하자는 느낌이 적은 거 같아요. 그나마 게르만 국가 만들자고 했다가 나치때문에 민족감정 주창하기도 힘들고..
제 댓글에도 썼지만 핀란드야 아예 언어 민족이 다르니까 그렇다지만, 나머지 북유럽은 확실히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느낌이 난다는 얘기죠. 언어도 문화도 사실 그냥 같다고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치고받고 갈라져서 현재는 각자 잘살다보니 민족의식할거 없이 그대로 있는거 같아요.
(수정됨) 사진, 음악, 역사 빠진것 하나 없는 종합세트 푸짐하게 잘 읽었습니다. 언젠간 이런 글을 쓰고 싶어요 크크. 사진자료, 주제순서, 트리비아 같은거 등재기준(?)이 어떻게 마음 속에 배열되있으신지 자꾸 이전글을 역주행하게 만드는 대단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퀴즐링과 덧붙여서 잠시 나치청산에 대한 논란을 작게 덧붙이셨는데요. 제 마음 속에서 항상 불쌍한 자리를 찾이하고 있는 문인인 '크누트 함순'의 에피소드도 한번 참고하실만 합니다.
1890년대 노르웨이 문학의 선두주자였고, 노벨상 문학상 (아직 냉전의 체제선전효과 이전이라 북유럽 문학상정도의 위상이던 시절입니다만)을 1920년에 수상했던 인물이지요. 그러나 노벨상 수상직전인 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을 지지하는 등, 잘못된 정치적 선택으로 인한 비난을 견딜 수 없던 서정적인 순수문학 작가의 정신적 연약함, 작품에서도 조금씩 드러나던 인간혐오, 반-문명, 반-자본주의, 반-영국정서, 노르웨이의 때묻지 않은 바이킹 혈통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노벨상 수상 이후 자신의 문학보다는 정치적 주장에 (별로 호의적이지도 않은) 관심만 주는 문학계와 지성계에 대한 증오와 억하심정 등등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2차 세계대전에서는 퀴즐링 정부의 민간계 바지사장이 되고 (심지어 실권도 없으나 이 양반은 개의치도 않았고), 전후 냉전시대에는 일본의 오카와 슈메이처럼 "헤헤 내가 나치즘의 지식인이었다니 나는 그냥 치매걸린 노인이야" 컨셉으로 구치소, 재판정, 가택연금 등을 오가다가 92세의 나이로 1952년에 죽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핵전쟁으로 인간은 다 쓸려나갈거야. 부질없다 낄낄"같은 저주의 글만 쓰다가.
전쟁이 참 사람 여럿 망쳐 놓았죠. 정확히 말하면 전쟁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미쳐 돌아가던 사회상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의 사상으로는 그런 전체주의가 자본주의 내지는 불공평하고 실업으로 인해 불안하고 먹고 살 게 없어 보이는 불만투성이 사회의 유리천장을 깰 구원의 목소리처럼 들렸겠죠. 그리고 민족주의는 당연한 것이었구요.